요즈음 들어 무예를 수련하며 '대인수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선, 실전성을 살리기 위해서 대인수련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알음알음 여러 무술을 배워본 기억이 있는데, 특히 중국무술 도장에서는 유난히 대인수련의 비중이 매우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나마 태극권 도장에서는 '추수'라는 독특한 형식의 대인수련이 존재하지만, 그것도 비중이 크지는 않았고 내가 겪어본 많은 중국무술 유파들이 대부분 도장에 나가서 각자 투로 몇 번 돌고 사부님으로부터 자세 교정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실전성이 좀 있다고 입소문 좀 탄 유파들의 공통점은 '대인수련'의 비중이 독련(獨練)의 비중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영춘권 같은 경우는 개인수련보다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더 큰 유파 중 하나다. 대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니, 내가 배운 기법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자연스레 용법을 체득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반복 수련으로 나중에는 극한 상황에 처해져서도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6년 전에, 고작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춘권을 수련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전혀 영춘권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금도 가끔 상대와 겨루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영춘권의 자세와 기법으로 공방을 펼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다양한 수련생들과 팔을 맞대고 하는 대인수련을 무수히 많이 반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에 와서는 대인수련의 비중이 형편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체계가 없는 무술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두 번째,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 


이건 개인수련을 많이 하다보면 느끼는 건데, 사실 우리는 매일 매일 수많은 유혹과 싸우면서 살고 있다. 특히 무예수련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꼭 수련할 시간만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다른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스스로 수련을 거를 핑계를 만들어낸다. 


'오늘은 몸이 좀 찌뿌둥하니까 하루쯤 쉬어도 괜찮겠지', '오늘은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지' 등등 수련할 때만 되면 이런 유혹에 시달린다. 결국 의지가 좀 약한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굴복해 그날도 수련을 거르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그리고 '오늘 안 했으니까 내일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하지만, 그때 뿐이다. 다음 날도 또 같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노사들은 '매일 하루 30분씩만 수련해도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던가.


이렇게 개인수련을 거르게 되는 것도 결국 혼자 하는 수련이 지겨워서일 수도 있다. 물론 수련을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정의짓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절정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단순히 취미로 즐기면서 하려는 사람들에게, 지루함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닐까 싶다.


여하간 개인수련을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수련을 게을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대인수련을 하게 되면 어쨌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수련시간에 맞춰 수련터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련터에 나가서도 다같이 수련을 하므로 나 혼자서 대충 수련할 수가 없고, 다같이 모여서 즐겁게 얘기하며 수련하다보면 어느새 재밌게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수련하고 있는 무예24기는 현재 어떨까?


무예24기에도 대인수련은 존재한다. 우선 <무예도보통지>에도 왜검 교전, 권법 교전 등 교전(交戰)이라는 이름 아래 갑(甲)과 을(乙)로 나누어 2인이 서로 약속대련하는 형식의 수련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무예24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파의 대인수련 형식을 많이 차용해왔는데, '수벽'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태극권의 추수가 대표적이다. 또 현재 내가 소속된 한양류에서는 자체적으로 상대방과 손과 무기를 맞대고 다양한 수련을 전개해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교전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약속대련도 너무 형식화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수벽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응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내가 구상하는 방안으로는 각 기술들을 별도로 뽑아서, 상대방과 계속 주고받는 '단식 응용 수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일단 얼마 전부터, 우리 한양류에서도 권법 동작들을 뽑아 실험적으로 해오고 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식을 주고받으면서 용법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에는 약속대련을 거쳐 자유대련까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유대련의 형식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어쨌거나 저마다 실전에서 강하다고 주장하는 여러 무술 유파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 무술이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생존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그 생존능력이란 결국 무술의 본질인 '실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한 방법의 대인수련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내가 수련하는 무예24기가 공연용으로 화석화된 무예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내 몸을 보호하는 호신의 수단으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고민하고 수련해나갈 것이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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