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은 지난 번에 이어 보라매역 인근에 있는 '커피공방 멜란지'에서 열렸다.


오늘은 '핸드로스팅'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지난 주 수업 말미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강사님이 계속 "오늘 정말 더울 거다. 그래서 가볍게 옷 입고 오라고 하지 않았나"라며 겁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로스팅(볶기) 작업이라 계속 불 앞에서 작업을 해야하니 덥긴 덥겠지만,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다.



핸드로스팅이란?


아무튼 홈바리스타 강좌를 듣기 시작한 지 8주차에, 드디어 처음 생두(원두가 되기 전 상태)를 만져보았다. 냄새도 맡아보고, 한두 알 입에 넣어 씹어도 보았는데, 정말 원두와는 맛과 향이 완전히 달랐다. (향은 미세하게 났지만 거의 안 난다고 보는 게 맞겠다) 단순히 가열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이렇게 맛과 향이 차이가 난다니, 참 신기했다.


핸드로스팅이란 말그대로 '손으로 커피콩을 볶는 것'을 의미한다. 로스팅의 단계는 총 9단계로 나뉘는데, 초기 3단계를 약배전(약로스팅)이라 하고, 중간 3단계를 중배전(중로스팅), 마지막 3단계를 강배전(강로스팅)이라 부른다고 한다. 어느 단계로 볶아야 한다는 정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기호에 따라 로스팅 단계는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야하며, 각 단계에 따라 추출하는 커피의 종류도 다양하다고 한다. 우리가 수업 때마다 마시고 있는 드립커피는 중간 단계로 로스팅하고 있으며, 마지막 3단계 강로스팅은 진한 에스프레소용이라고 한다. 결국 로스팅을 강하게 할수록 맛과 향이 더 강해진다는 얘기다.


단순 반복의 연속, 결점두 골라내기


우리는 본격적인 로스팅에 앞서, 모아놓은 생두에서 결점두(불량콩)를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모양이 마냥 못생겼다고 버리면 마실 게 없으니, 못생겼다고 막 골라내지 말고, 정말 이상하다 싶은 것들(속에 벌레 생기고, 곰팡이 낀 것들, 깨진 콩들)만 골라내라고 했는데, 해봤어야 알지... 하다가도 '내가 무슨 기준으로 콩들을 골라내고 있는 걸까...' 싶었다. 아무튼 내 기준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결점두를 골라내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나만의 기준이 생겨서 막 골라냈는데, 함께 수업 듣는 아주머니가 "이렇게 다 골라내면 먹을 게 없어"라고 하시면서 골라낸 콩들 중 다수를 다시 섞어버렸다. 음...


그리고 4명이서 한 테이블을 잡고, 각각 다른 로스팅 기구를 이용해 핸드로스팅을 해보았다.


<로스팅 기구 종류>


1. 도기 : 도자기 재질로 만들어진 팬으로, 예열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예열이 끝나고 나면 다른 기구보다 훨씬 로스팅 속도가 빠르다. 또한 콩을 집어넣고 배출하는 구멍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막혀있어 먼지가 날리지도 않아 청소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도자기라 무겁고, 열전도가 빨라 뜨거워서 오래 잡고 있질 못한다.


2. 통돌이 :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철제 기구로, 콩을 넣고 손으로 계속 돌려가며 콩을 볶는 방식이다. 큰 힘이 안 들고 편하지만, 사방으로 콩껍질이 날리고 연기도 많이 나서 가정용으로 쓰기엔 불편하다.


3. 수망 : 냉면 거름망처럼 생겨서 가볍고 편하나,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도기와 통돌이가 이미 로스팅을 마친 뒤에도 한참을 더 볶아야 비로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로스팅의 순서


로스팅의 순서는 먼저 생두를 계속 볶아대는 '흡열반응'으로 시작한다. 이때는 생두가 열을 흡수하는 단계라고 한다. 그러다가 '발열반응'이 오기 시작하는데, 더 이상 열을 견뎌내지 못한 콩이 열을 밖으로 방출하는 것이다. 이를 '크랙'이라고 하는데, 팝콘 터지는 소리처럼 '딱! 딱!' 소리가 나서 '팝핑'이라고도 한단다.


이 발열반응은 1차, 2차로 나뉘며, 1차에서 팝콘 터지는 소리가 난 뒤에도 계속 볶다보면 2차 반응이 온다. 2차 반응의 소리는 1차와는 달리 모닥불 타는 '타닥타닥' 소리가 나며, 이 2차가 왔을 때 즉각 로스팅을 멈추고 쿨링(급속냉각)하면 드립용 중로스팅 원두가 탄생하고, 2차 소리가 온 뒤에도 불을 올려 계속 볶게 되면 또다시 '타다다닥' 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때가 강로스팅 단계라고 한다.


이처럼 로스팅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감각(촉각, 시각, 청각, 후각)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나도 오늘 로스팅을 해보니 확실히 재미는 있는데, 이걸 집에서 매번 해먹는 건 결코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집에서 핸드밀로 원두를 직접 갈아 드립해서 먹는 것도 가끔은 번거롭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데, 생두를 볶는 작업까지 해야한다고 한다면... 웬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매번 해먹기는 힘들 것이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 말 그대로 '갓 볶은 커피'는 바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향과 맛도 별로 없거니와 이산화탄소로 가득차서 건강에도 매우 안 좋다고. 적어도 2~3일은 숙성시킨 뒤에 먹어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로스팅을 마친 원두에서는 향이 그닥 나지 않았다. 이게 3일 정도 지나야 비로소 지금 우리가 마시는 원두의 향이 난다고.



커피 한 잔에 담긴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


여하간 오늘 핸드로스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세상사 결코 쉬운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커피의 가치를 너무 가벼이 여겨왔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커피가 너무도 흔한 음료로 자리잡고 있다. 식당, 사무실 등 어딜 가도 믹스커피 한 박스가 하나씩 구비되어 있고, 집 밖을 나서면 온통 한 집 건너 전부 카페들이다. 이렇게 커피는 현대인들에게 밥 먹고 입가심용으로 가볍게 한 잔 하는 '식후땡'으로 자리잡은 지 꽤 오래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참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하니 결코 커피의 가치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되겠다 반성해본다.



커피는 참 매력적인 음료다. 그래서 끝까지 정복해보고 싶은 욕구가 든다. 단순히 바리스타 자격증을 노리고 커피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이 커피라는 음료의 모든 것을 정복해보고 싶다. 그 길이 험난하겠지만,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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