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수련 중에 '허공의자'라는 수련이 있다. 무예24기를 수련하며 배운 것인데, 등을 벽에 바싹 붙이고 허리를 낮춰 의자에 앉은 것마냥 허공에 앉아 버티는 수련이다. 중국무술의 마보와도 비슷한데, 마보만큼이나 힘든 수련 중 하나다.


이 자세는 척추를 바르게 하고, 기혈을 뚫어주어 내기(內氣)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자세라고 한다. 앉아서 버티는 자세이니 하체 단련이 되는 것은 묻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하루 10분씩 3개월 이상 꾸준히 하면 뱃살도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 이 자세를 배웠을 때는, 1분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그때 사부님이 "여학생들도 10분 이상은 한다"고 하길래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군대 있을 때는, 매일 같이 이 자세를 연습하기도 했다. 그때도 3~4분을 넘기기 힘들었던 것 같다.


허공의자 수련은 결코 쉽지 않은데, 우선 하체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무술의 마보 자세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허리를 낮추고 앉아 오랜 시간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지루함' 역시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가만히 앉아서 5분, 10분 버틴다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허공의자를 하는 도중에 '얼마나 됐을까' 하며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고작 1분 지났을 뿐이다. 이런 지루함을 이겨내보고자 일부러 TV를 보면서 하기도 했고,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지루함을 다소 덜 수는 있었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너무 힘든 수련인지라, 사실 무예를 수련하면서도 은근슬쩍 이 수련은 거르곤 했다. '오늘은 몸이 피곤하니까 생략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갖은 핑계를 대면서 내 자신과 타협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부님으로부터 허공의자의 효용성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계속 듣다보니, 꾸준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평생 무예를 수련하며 대가가 되겠다고 다짐해놓고서는 힘들다는 이유로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완벽한 '자기모순'도 없을 것이다. 사부님이 내게 자주 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그래가지고 무슨 대가가 되겠다는거야?"다. 확실히 이런 말을 들으면 자극이 된다.


요즘은 그래서 개인수련을 하게 되면, 무조건 허공의자부터 먼저 한다. 최소 10분을 기준으로 허공의자를 수련하는데, 며칠 전부터 허공의자가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항상 힘들다. 하지만 1~2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자세가 완전히 잡히면, 어느 순간 하체가 시원해지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오늘은 그 느낌이 절정에 달했다. 너무 편안해서 졸음이 올 지경이었다. 오늘은 TV나 음악도 켜지 않았다. 사부님 말씀대로 온전히 호흡에만 집중했다. 그랬는데도 지루함은커녕 편안함이 느껴졌다. 몸이 편안해지니 마음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하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비오듯 줄줄 흘렀을텐데 오늘은 땀도 그닥 안 나고, 하체도 일체의 요동이 없었다. 다만 등에는 땀이 나서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하체가 계속 허리 아래로 낮아지는 바람에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세를 잡곤 했지만, 한 번 풀린 자세를 다시 잡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시간을 정확하게 재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20분 가까이 한 것 같다.


사부님 말씀에 따르면 "이 자세를 하고 나서 호흡을 하면 정말 공기가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원체 감각이 둔한지라 아직까지는 그런 느낌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면 허공의자가 편안해진다'는 말에는 공감할 정도가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꾸준히 하다보면 나중에는 공기가 맛있다는 말에도 공감할 정도가 되겠지.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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