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용산까지 간 김에 근처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습니다. 때마침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유료 입장이지만 지인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아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 원나라 경원항(현재의 절강성 영파)을 출발해 일본의 하카타로 가던 무역선이 제주도 인근에서 풍랑을 맞아 표류하던 끝에, 신안 앞 바다에 수장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75년 8월. 전남 신안에서 어업을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 화병이 걸려 올라오면서, 본격적으로 정부 차원의 수중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통해 그 무역선의 존재가 65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신안 앞 바다에서 발굴했다하여 '신안선' 혹은 '신안해저선'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정부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9년 동안 무려 10차에 걸친 발굴 조사 끝에 2만 4천여 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수중문화재를 발굴했다고 합니다. 14세기 당시 중국과 고려, 일본을 거쳐갔던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역선이었기 때문에 신안선의 발굴은 당대 동아시아 교류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하카타로 가는 이 배 안에는 주로 향로, 찻잔, 화병과 같은 값비싼 감상품들이 주로 실려있었다고 해요. 이를 통해 당대 일본 상류층이 어떤 취미를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복고풍이 유행하던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방고동기(仿古銅器: 중국 고대 하, 은, 주 삼대(代)의 청동기를 본따 만든 도자기 및 금속기)를 수집했고, 고급 무사와 같은 상류층 사이에서는 화병에 꽃을 꽂아 감상하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차(茶)를 마시는 등의 호화스러운 취미생활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취미생활 자체가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처럼 받아들여졌다는군요.



특별전시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고,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도자기와 금속기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신안선에서 발견된 동전은 무려 28톤 규모라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2전시실에 가면 도자기들을 대형 진열장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점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마치 박물관이 아니라 창고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전시품들 중에는 저렇게 쓰러져있는 도자기도 있던데...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쓰러졌는데 바로 세우기는 번거로웠던 걸까요.



동전하고 금속기도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이 600여년 동안 바닷 속에서 잘 보존되어온 것도 신기한 것 같아요. 당시 공예품들의 수준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후추와 같은 향신료나 열매씨도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신석기시대 탄화된 쌀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후추와 같은 향신료가 바닷 속에서 발굴되었다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이렇게까지 잘 보존되어온 게 참 미스터리한 일이죠.



개인적으로 전시품들보다는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의 생사가 참 궁금하더군요. 물론 거의 다 수장되었겠지만,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전시품의 화려함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이들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 중에는 신안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로 당시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의 선상생활을 재구성한 코너도 있었습니다. 배고플 때는 밥을 해먹고, 심심할 때는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무료함을 달랬을 그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시품들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얼른 고향 땅으로 돌아가 그리운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값비싼 무역품을 팔아 큰 이윤을 남길 생각에 부풀어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신안선에 탔건, 그 사람들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차가운 바닷 속에 잠들어야만 했던 그들의 최후가 안타까운 건 매한가지입니다. 



이번 전시를 주관하는 박물관 측도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전시개요와 에필로그를 꾸며놓았더군요. 참으로 명문장입니다. 누가 이 문구를 기획하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 전시개요와 에필로그 문구를 보고서 감동을 받은 건 처음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전시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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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