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해금 조율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그만 주아가 부러지고 말았더랬습니다. 이 주아라는 건 해금의 현(줄)을 조이고 푸는 역할을 하는데, 워낙 뻑뻑해서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도 안 돌아가는 바람에 홧김에 힘을 줘서 돌리다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는데요, 이게 부러졌을 때는 눈 앞이 정말 캄캄했습니다.



일단 해금이 제 악기도 아니고, 대여한 악기인 데다가 아예 나무가 부러진 거라, 수리비로 얼마나 나올지 감이 전혀 오질 않았기 때문이죠. 돈 많은 귀족도 아니고, 가난한 휴학생 신분인지라 해금이 부러지자마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수리비' 걱정이었습니다.


거의 울상이 되어서 악기를 대여한 '류충선국악기연구원'에 연락을 했는데, 사장님이 시간 될 때 와서 수리하라고 하시더군요. 이거 뭐 걱정이 되어서 며칠씩 기다릴 수가 있나요. 당장 다음 날 가겠다고 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악기사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사장님께 보여드리니 "누가 돌렸나요"라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라고 대답하기가 참 민망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대여기간 연장하자마자 부러졌으니, 이건 계속 해금을 배우라는 계시인 것 같다"고 농담도 하시고, 제 마음을 많이 풀어주셨습니다. 게다가 "멀리서 오셨는데 그냥 가세요"라며 무상 수리까지. 수리비 걱정이 가장 컸는데, 사장님의 통큰 인심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장님 말씀이 "주아는 요령이 있으면 초등학생도 쉽게 돌릴 수 있지만, 요령이 없으면 천하장사 이만기가 와도 절대 못 돌린다"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사장님은 쉽게 잘만 돌리시던데... 도대체 왜 안되는 걸까 싶어서, 수리 끝나자마자 근처 공원 가서 30분 동안 낑낑거리며 계속 요리 돌리고 조리 돌리고 해봤지만... 오히려 더 풀리기만 할 뿐, 조여지지가 않더군요. 계속 주아를 잡고 씨름하다보니 양 손바닥은 물집이 잡히다못해 다 벗겨져서 지금까지도 쓰라릴 지경입니다. 아무튼 그러고 있자니 '이러다 또 부러지는 거 아닐까' 겁이 덜컥 났습니다. 당장 다음 레슨까지 연습을 못해가는 게 속상한 일이긴 하지만, 차라리 안전하게 선생님께 조율을 맡기고, 주아 돌리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주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까, 전문가들조차도 주아로 미세한 음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아서 개량 주아를 쓰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름철일수록 습기를 머금어 뻑뻑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틈과 틈 사이가 꽉 아물려 더 안 돌아가게 되는 것이고요. 이럴 때 무리하게 힘을 주면 안되고, 선풍기 바람도 쐬어가면서 살살 달래줘야 한다고...


다음 주 레슨 때는 주아 돌리는 요령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워봐야겠습니다. 아무튼 한바탕 악기가 부러지는 난리 끝에 좋은 교훈을 얻었네요.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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