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난 주부터 서울 소재 모 중학교 자유학기 선택과목 '전통무예 권법' 반이 개강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교실에서 간단하게 자기소개하고 몸풀이랑 기본적인 호신술 몇 개만 지도하고,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장에 나가 무예를 지도했습니다. 


아, 그런데 정말 한 번 수업할 때마다 진이 빠지는 듯 합니다. 확실히 성인들에게 무예를 지도할 때와는 달리 몇 배는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야 대개 본인들이 하고 싶어서 온 데다가, 성인이라 굳이 제가 목소리 높일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키니까 온 거고, 더욱이 한창 혈기왕성할 때 아닙니까. 더욱이 인원은 어찌나 많던지... 


다른 애들 교정해주느라 잠깐 한 눈 팔고 있으면, 그새 딴 짓하고 있고, 그 딴 짓 하는 애들에게 주의주려고 하면 또 그 사이에 다른 애들이 딴 짓하고 있고... 딴 짓의 양상도 천차만별입니다. 핸드폰 꺼내서 게임을 하질 않나, 자기들끼리 철조망에 매달려서 메뚜기를 잡지를 않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지를 않나... 그런 거 보면 맥이 탁 풀리는 느낌입니다.


최대한 재미있고 흥미롭게 진행하기 위해서 초장부터 공방 연습을 시켰지만, 애들한텐 그것도 지루한가 봅니다. 몇 번 깔짝깔짝하더니 그새 지루하다고 "새 기술 가르쳐주세요!" 하는데... 어린 애들 붙잡고 "무예란 반복 숙달이 가장 중요하다.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교하는 것도 별무소용일 것 같고요. 여러모로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해야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합니다.


어떤 애들은 첫 만남부터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뜬금없이 "피자 사주세요!"하질 않나, 자기를 일진이라고 소개하지 않나... 저한테 "선생님 싸움 가르쳐요? 싸움 잘해요?" 당돌하게 질문하기까지.. 이쯤 되면 제가 얼마나 힘들지 감이 오시죠?


그래도 애들은 순수한 것 같더군요. 저런 모든 행동에 특별히 악의가 있는 것 같진 않고, 중학교 1학년 다운 순수함이 많이 보입니다. 나름대로의 편견도 있었지만 막상 얘기하다보면 애들답게 순진하다는 걸 금세 느끼겠더라고요. 그리고 개중에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꽤 있고요. 여기도 희한하게 여학생들이 더 많은데, 몇몇 여학생들 중에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 친구들 보면서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지도 방식을 계속 고민하면서, 더 재밌게 해봐야겠습니다. 애들에게 진지하게 무예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냥 재밌게.. 무예란 게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네요.


PS. 역시 교직이수 안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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