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무예 수련을 하러 보라매공원에 자주 갑니다.


아무래도 권가를 치다보면 멀리까지 갔다오는 일이 잦다보니, 일부러 무기는 들고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잠간 놔뒀다가 누군가 집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무기술은 항상 집에 와서 따로 수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는 무기를 들고 갔습니다. 좁은 공터가 있는데, 제 바로 옆에다가 놓고 그 옆에서만 살짝 권가를 칠 요량으로 들고 갔습니다. 거기는 솔직히 제 시야에 들어와있는 곳이라 설마 싶었지요.


하필이면 날이 많이 풀려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함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수련터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군요. 그때 그냥 나왔어야 했는데... 수련하면서도 영 불안해서 목도가 잘 있나 확인하긴 했습니다. 몸을 풀 때까지는 있는 걸 확인했는데, 권가를 치는 그 잠깐 사이에 뒤돌아보니 사라지고 없더군요.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열이 확 솟구쳤습니다. 제 목도였으면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말 일이었지만, 함께 수련하는 사형에게 어렵사리 빌린 물건이라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 형님께 어떻게 말해야할까 당황스러우면서도 옆에서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운동하고 있는데도 슬쩍 훔쳐간 놈이 너무 괘씸해서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그 넓은 공원을 계속 땀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너무 열받아서 발견하면 아마 주먹부터 날아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화가 잔뜩 난 상태였습니다.


정말 잠깐 사이에 잃어버린지라,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하필 그날따라 사람이 너무 많더군요. 게다가 그놈이 어디로 튀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으니... 다시 수련터로 뛰어와보니 CCTV가 있었습니다. 일단 CCTV를 확인해서 인상착의나 그놈의 도주방향이나 파악하자는 심산으로 관리사무소로 뛰어갔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 曰 "경찰관 입회 하에만 CCTV 열람이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법이 그렇다는데 제가 더 할 말은 없었습니다. 어쨌건 제겐 귀중한 물건이니 바로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관을 불렀습니다. 경찰관을 대동하고 들어갔더니 이제는 "조작할 줄 아는 담당 직원이 없어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겁니다. 왜 그런 말을 이제 와서 하는 건지. 일단 그건 차치하더라도 담당 직원이 없어 주말엔 CCTV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말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순간 얼굴이 시뻘개져서 목소리를 좀 높였습니다.


"제가 잃어버린 물건이야 그렇다쳐도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담당 직원이 없다는 이유로 주말엔 CCTV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게 올바른 행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직원 말이 정말 심각하고 위급한 일이면 담당 직원을 불러서 확인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것도 말은 안된다고 봅니다. 모든 일엔 '골든 타임'이란 게 있는 법인데, 그 직원이 언제 올 줄 알고 사건이 터진 후에 부른단 말입니까. 사실 제 목도의 경우도 그 범인이 공원을 나가기 전에 확인했으면 찾을 확률이 높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보니 결국 놓쳐버린 것 같아 관리사무소 측에 더 화가 납니다. 그래서 서울시에도 정식으로 민원을 접수했습니다. CCTV 열람 절차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빌려주신 사형께도 연락을 드렸습니다. 웃으면서 이해는 해주셨지만, 개인적으로는 민망하고 송구스러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게 뭐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면 하나 새로 장만해드리겠지만, 수제로 만든 물품이라 구할 데도 없다는 게 문젭니다. 나중에 공동구매를 하게 되면 새로 사달라고는 하시는데... 공동구매를 언제 하게 될지도 요원하고... 어제 이 일로 하루종일 우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아무 것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련할 맛도 안 나더군요.


일단 경찰에 정식으로 사건 접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목검일지 몰라도 제겐 남이 빌려준 소중한 귀중품입니다. 물건은 꼭 찾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훔쳐간 놈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사람은 물건값의 높고 낮고를 떠나서 무조건 혼나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목공방도 한 번 알아볼 생각입니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일단 빌려주신 목도만큼의 퀄리티를 낼 수 있는 곳에서 목도를 하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혹시 이 글 보시는 분들 중에 잘 아는 목공방이 있으면 추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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