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하늘에서 미친듯이 비를 퍼부어댔다.


퇴근 후 사무실에서 나설 때만 해도 비가 그친 상태였는데, 사무실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10분 사이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바짓단이 다 젖으니까 짜증나서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로 이동해 잠깐 비를 피했다. '빗줄기가 약해지면 얼른 뛰어가야지' 하고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만 보고 있는데... 도무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집은 코앞인데... 짜증나서 그냥 나왔다. 그러고 한 1분이나 걸었을까. 빗줄기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쳐버렸다. 하늘이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괜히 울컥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예년보다 이른 장마라고 하는데, 매년 언제 장마가 오는지 일일이 기억하고 있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이르게 왔든 늦게 왔든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눅눅하고 꿉꿉하고 습하고 덥고... 내가 싫어하는 온갖 성질의 것을 다 지니고 있는 여름 장마가 정말 싫다.


나는 원래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서 물 맞는 걸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옷이 젖었을 때의 찝찝함, 비가 오면 야외활동(수련을 포함한...)에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싫다. 더욱이 여름 장맛비는 시원함을 동반하기는커녕 꿉꿉함만 더해서 짜증난다.


비를 좋아했던 때도 있긴 있었다. 군 생활할 때. 물론 나는 여름 군번이라 훈련소에서 자주 비를 맞았는데, 그 기억은 끔찍했다. 비가 올 때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면 물에 젖은 판초우의가 종아리에 차박차박 달라붙는 그 느낌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행군 때도 웬 비가 그리 쏟아내렸는지... 그때 내린 비 때문에 녹슨 총을 기름칠하느라 무척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자대 배치 후부터 비는 나에게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었다. 비가 내리면 모든 작전이 중지되고 막사 안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 맞으며 산을 타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유해의 훼손이나 유실 우려가 있어서 웬만하면 그날 작전은 취소된다. 


그래서 발굴병들은 누구랄 것 없이 비 소식을 기다린다. 발굴병들은 아침마다 창문 밖으로 비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뉴스로 그날의 일기예보를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밤에 잠들 땐 내일 제발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잠을 청한다. 새벽에 자다 깨서 비 내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면 속으로 '아싸'를 외치고, 한참 내리던 비가 일과 시간 직전에 그쳐버리면 속으로 '씨발'을 외친다. 비가 그치면 영락없이 출동이기 때문이다. 호국영령께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그 당시 우리의 마음이 그랬던 것을.


어쨌거나 앞으로도 살면서 비 오는 날을 반길 날은 없을 것 같다. 살면서 비를 반겼던 기억은 군 시절이 유일할 것 같다.



PS. 요며칠 수련터에 못 나갔는데, 비가 와서 또 하루 제꼈다. 이 비를 뚫고 수련터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거보면 장대비에도 꿋꿋하게 수련터에 나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한편으로 내 스스로의 열정이 이거밖에 안 되나 싶어서 씁쓸함을 느낀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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