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4년 9월 9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군대란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가치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 같다. 집에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TV가 군 생활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렸고, 밖에 있을 땐 전화를 걸기는커녕 받는 것도 귀찮아했던 내가 이젠 지인들의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놓고 틈날 때마다 전화기 앞에 죽치고 앉아서 막 전화를 걸어댄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선임들의 배려로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에 앉아있는 짧은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편지. 훈련소에 있을 때 편지를 받는 것만큼 반갑고 행복한 일이 또 없었다. 매일 분대장들이 인터넷 편지와 손편지를 불출해주는데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는 사람과 한 통도 못 받는 전우들의 표정은 극과 극이다. 혼자서 수십 통씩이나 편지를 받은 놈이 얄밉게 편지를 들고 다니며 뽐낼 때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대장님이 "군대 와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하셨는데, 전우들 사이에서 편지를 받고 안 받고가 그 기준이 되어버렸다. 밖에 있을 때 군대 간 친구, 동생들이 편지를 써달라고 할 때 귀찮아서 미루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래도 아주 나쁜 놈은 아니었던지 몇몇 지인들이 인터넷 편지와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보내주어 고마웠다. 특히 한 지인은 멋들어진 시(詩)까지 곁들인 편지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때마침 완전군장을 메고 20km 야간행군을 하는 날이었는데, 행군 중 쉬는 시간에 읽으면서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이번 연휴엔 짬을 내어 고마운 분들에게 손편지를 여러 통 썼다. 아마 그들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나는 다시 철원에 있어 즉각 답장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마음만큼은 서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훈련소 식당에 "사실 군대에 있을 때 가장 효자가 된다"란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그 말이 가슴 절절하게 공감된다. 6주 간의 힘든 훈련 와중에도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울지는 않았는데, 수료식 날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러 부모님이 오셨을 때, 보자마자 눈물이 팡 터졌다. 부끄럽지만 자대 와서 부모님께 전화드렸을 때도 그만 선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생활관에서 TV를 보는데 GOD의 '어머님께' 뮤비가 나와서 또 소리 없이 울었다. 지금 다짐처럼 될 진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하면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단 생각 뿐이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항상 건강하시기만을 기도한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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