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일제의 침략과 억압에 맞서 싸운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역사상 3.1운동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의 청산리대첩과 더불어 그 의의가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만세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3.1운동은 전국적인 봉기로 이어져 마침내 일제의 조선에 대한 통치 방식을 전면 수정하는 결과를 이끌어냈으며,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운동은 중국, 인도 등 이웃 국가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3.1 운동을 처음 계획하고 주도한 것은 소위 민족대표라 불리는 33명의 명망 있는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종교계, 예술계, 학계에 종사하는 이들로서 신지식을 습득하고 사회의 원로로 대접받는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31, 중국집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자발적으로 종로경찰서에 신고하여 연행되었다. 그렇기에 3.1 운동을 계획한 것은 민족대표라 불리는 33명의 인사들이었으나, 사실상 주도한 것은 학생, 노동자 등 일반 민중들로 이들은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를 벌이며 조선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3.1 운동의 주역은 결코 민족대표 33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족대표를 자임한 그들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었기에 그 당시에 조선 민중 중에서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사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3.1 운동에 앞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였더라면 민족대표로서 3.1 운동의 구심점이 되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이 구상한 독립운동에 대한 방략은 그 자체로 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그들이 구상한 독립운동 방략엔 어떤 문제점들이 있었을까? 

 

우선 그들은 국제적인 현실 감각이 부족했다. 그들은 3.1 운동을 계획하기에 앞서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자극받아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모든 민족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의 민족자결주의는 얼핏 듣기엔 조선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는 말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이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조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들의 식민지에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일본은 강화회의에서 전승국의 자격으로 참여했고, 그들의 식민지였던 조선에게는 자연스레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족대표들은 이러한 본질을 포착하지 못하고, 그것이 국제 열강의 조선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열강에 독립청원을 하는 방안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통해 각각 필리핀과 조선의 지배를 묵인하기로 약속하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인 현실감각이 떨어진 민족대표들은 원수의 나라나 마찬가지인 미국에 독립청원을 하려하고 있었다. 사실 독립청원이라는 것 자체도 모순일 수밖에 없었다. ‘독립을 하려고 남의 나라에 청원을 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식민지 국민으로서, 주권을 회복하려고 하면서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되레 남의 나라에 독립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들의 힘을 들여 조선을 독립시켜주겠는가? 분명 그들은 더 큰 것을 요구할 것이고 아마 일본보다 더 잔혹하게 억압하여 조선을 완전한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훗날 광복 후 미국이 한반도 남부에 미군정을 설치하고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농단한 사례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다. 

 

민족대표 33인들은 결국 국제적인 현실감각이 떨어지는데다가, 우리 민족의 힘을 모아 스스로 주권을 되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일본보다 더 강한 세력에 기대어 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늑대를 잡으려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격이 아닐까? 

 

게다가 그들은 조선 민중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훗날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인 손병희는 사의천박한 민중들이 모였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라는 말로 조선 민중을 폄훼했다. 민족대표라는 자들이 되레 조선 민중을 천박하다고 욕하며,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폭거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찌 민족대표라는 숭고한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며, 그들에게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처럼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던 그들이 변절하여 친일로 돌아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결국 최남선, 최린과 같은 이들은 대표적인 친일파로 돌아서서 일제의 침략 정책에 부합하게 되니, 그들에겐 민족대표의 자격도 없으며 방략 또한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나온 무의미한 방안들이었을 뿐이다. 

 

93주년 3.1절을 맞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은, "역사는 민중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이다. 비록 그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고위층일지 몰라도,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민초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유관순 의사와 같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이야말로 진정 민족대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도 스스로를 '민족대표'라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조국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자.

Posted by 가베치

독립군가는 20세기 초 암울했던 때에 우리 선조들이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대한 독립의 그날을 기약하며 우렁차게 부르던 노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로 시작하는 대표적인 독립군가 외에도 '압록강 행진곡', '광복군 제2지대가', '용진가', '대한제국 애국가' 등 선조들이 독립을 염원하며 불렀던 독립군가는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독립군가를 발굴하여 보전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의무이건만 발굴&보전은 커녕 오히려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티즌들에게 독립군가를 무료로 나눔하여, 많은 이들이 독립군가를 즐겨 듣고 부르며 후대에 널리 보전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독립군가야말로 우리 선열들의 혼과 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소원인 한반도의 완전하고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통일을 기원하며 삼천리 방방곡곡에 독립군가가 울려퍼지도록 '21세기 신독립군'의 심정으로 함께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보내드리는 독립군가는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국가보훈처에서 대중 가수들을 불러다 리메이크한 버젼입니다. 그래서 독립군가라는 딱딱한 타이틀과는 달리 대중가요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김장훈, BMK, 서문탁, 럼블피쉬 등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함) 국가보훈처에서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음원입니다.

 

독립군가를 원하시는 분은 메일주소를 덧글로 달아주시면 확인하는대로 순차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늦게 확인할 수도 있으니 천천히 기다리시면 언젠가 다 보내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PS. 파일 받으면 감사하다는 인사 정도는 해주는 센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는 센스!

Posted by 가베치

날짜: 2014년 6월 15일 토요일

장소: 중앙대학교 야외수련장

수련내용:

- 몸풀이

- 수벽

- 입선

- 단전단련

 

오늘은 기본공 훈련에 충실했다. 검 들어베기 한 번 하지 않고 끝난 적은 처음이다. 그런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정말 알찬 수련이었다. 단전단련을 했는데, 내 신체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괴감이 들었다. 수련을 잘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피부가 안 좋고 여드름이 막 나는 게 온 몸의 경락이 막혀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걸 뚫기 위해선 꾸준한 참장(입선)과 단전 단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꾸준히 하긴 하겠는데 정말 좋아져야 할 터인데...

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