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대망의 출국일이 밝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아침에 비교적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친구와 김포공항에서 만나 공항철도로 환승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출국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서 꽤나 일찍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금방 끝났습니다. 티켓 끊고, 미리 예매한 포켓와이파이와 교토행 하루카(고속철도) 티켓도 수령했습니다. 일본 고속철도 티켓을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령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여행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참 신기하고 편리하더군요. 출국 심사 마친 뒤, 점심 먹고 면세점 구경 좀 하다가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동해 상공을 날아 마침내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깥에 나가는데, 훅 끼쳐오는 덥고 습한 공기. 확실히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던데 피부로 확 느껴졌습니다. 과연 3박 4일 동안 무사히 보고 다닐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어쨌거나 저희는 바로 교토로 가기 위해 하루카를 타러 이동했습니다. 사실 저나 친구나 일본어도 영어도 할 줄 몰라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직감'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할지 몰라도 직감적으로 여기다 싶으면 그냥 들이대고 본 거죠. 무식하면 용감하달까. 


그런데 생각보다 이 직감이란 놈이 대단하더군요. 여행 중 구글 맵이 잘못 알려준 길을, 직감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끼고 반대로 가니까 제대로 도착하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하루카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사실 교토행 하루카인 줄 알고 열차를 탔는데,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니 다른 블로거가 올린 하루카 내부 사진하고 지금 저희가 타고 있는 열차 사진하고 전혀 다르더군요. 


"야, 우리 잘못탄 것 같다"하고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간사이국제공항으로 돌아가는 반대편 열차를 탔습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보니 하루카행 열차는 하루카 전용 탑승구가 따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다른 관광객들도 거기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저 사람들 왜 열차 왔는데 안 타고 서있지' 하면서 다른 열차를 탔던 겁니다.


결국 도착하자마자 뻘짓을 하는 바람에 지체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카는 자유석으로 운영이 되는 터라 티켓이 있어도 좌석이 차면 입석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앞서 하루카를 탔더라면 이미 줄이 길어서 꼼짝없이 서서 갈 뻔 했는데, 한 번 보내놓고 나니 줄이 리셋되어 저희가 비교적 앞줄에 자리잡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하루카에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일반 열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하루카를 타니 1시간 20분 만에 교토역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역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교토타워부터 들르는 거였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막상 교토타워를 보니 그닥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그냥 역 앞에서 감상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바로 숙소로 길을 잡았습니다.





숙소는 교토역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저녁이라 날이 선선해서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뭐 이렇게 낯선 땅 구석구석을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자유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한 30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가 나타났습니다. 교토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는 '다나카-야-인'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료칸 분위기가 나는 숙소로 일부러 예매했는데, 이런 형태의 숙소들이 거리에 밀집해있더군요. 인적 드물고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거리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이 맞는 용어인지 모르겠습니다)소리도 무척 좋았구요.




숙소에 도착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주인 아주머니의 한국어가 유창하시더군요. 알고 봤더니 재일교포라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아들인 '마사토'라는 이름의 청년이 저희를 숙소로 안내해주었는데 무척 밝고 경쾌한 청년이었습니다. 이후로 한 번도 보지는 못 했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곧장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산조역 근처에 있는 '이케다야'라는 술집이 바로 목적지였습니다. 


여기도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숙소가 위치한 지역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는데, 좀 걷다보니 시끌벅적한 번화가가 나타나더군요.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삐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성진국답게 유흥업소들이 많이 보이는데, 솔직히 이런 장면은 저희 동네 근처 신림동만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라... 크게 이색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낯 익은 사진이 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의 기반을 닦은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앞에 비석이 있길래 한자를 해석해보니 이곳이 료마의 거주지였다는 것 같군요.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이 부근에 료마가 암살당한 현장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제 관심사는 오로지 신선조에만 꽂혀 있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침내 신선조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 이케다야에 도착했습니다.




이케다야는 원래 여인숙이었습니다. 막부 말기에 막부에 적대적이었던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황양이파들이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교토수호직이었던 아이즈번 영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암살과 교토 시내 방화, 천황 납치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첩보를 입수한 신선조 대원들이 1864년 7월 8일, 야밤에 이케다야를 습격해 이들을 처단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케다야 사건'입니다. 신선조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한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메이지유신을 1년 늦춘 사건'이라고 평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이곳이 과거 이케다야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비석과 함께 지금은 동명의 이자카야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다보니 술집에서는 적극적으로 신선조 마케팅을 하고 있더군요. 아예 내부에 신선조 관련 그림과 모형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고, 신선조 특유의 톱니바퀴 모양 하오리를 입어볼 수 있게끔 복장들을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원들도 신선조 하오리를 입고 서빙을 하더군요.





그외엔 딱히 신선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과거 신선조가 활약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사케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첫 잔은 우선 이곳에서 죽어간 신선조 대원들을 위해 추모의 잔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케다야에서 가볍게 1차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서 숙소에서 2차를 달렸습니다. 깊은 밤, 교토의 료칸에서 친구와 마시는 사케 맛이 참 달더군요.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 3부에서 계속 -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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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팅 때문에 역삼동에 갈 일이 잦은 편입니다.

디지털 마케팅·IT 비즈니스 업계는 대부분 역삼동 쪽에 밀집되어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번에 아마존 직원을 만날 일이 있어 이베이가 입주한 '강남파이낸스센터'에 갔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큰 건물인 줄 몰랐는데, 지하 8층에 지상 43층 규모라고 하더군요. 고층건물에 갈 일이 별로 없는 터라, 좀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촌놈' 티 제대로 내고 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초고속으로 올라가는데, 흔들흔들거리니까 괜히 심장이 쫄깃하더군요. 그리고 올라가다보면 비행기 탈 때처럼 귀가 멍멍해지는 현상이... 서울 한복판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그런 경험을 하니 신기했습니다.


저자 미팅 끝내고 미팅룸에서 창밖의 서울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봤습니다. 미팅룸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기가 막히더군요. 외부인들에게는 개방이 안된 공간인데, 여기 직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휴식처가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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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일본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 휴가는 굉장히 즉흥적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애시당초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슬슬 휴가 시점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부터 일본까지 자전거 일주를 계획한 군대 선임(앞으로는 그냥 편의상 '친구'라 부르기로)이 "일본에서 합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오더군요.


제게 허락된 휴가는 3일. 그러니까 주말끼고 3일이면 일본에서 며칠 동안 놀고 먹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판단했습니다. 그 친구가 자전거 타고 일본에 건너오는 시점에 맞춰, 저 역시 비행기 타고 건너가 일본 어딘가에서 만나 며칠 놀고 먹다가 저는 저대로 다시 돌아오고 그 친구는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올 휴가를 보내기로 잠정 합의를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왕복 항공권까지 다 예매했는데, 바로 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일본에서 폭우로 100여명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본 폭우 소식이 국내 실검에까지 오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그 친구가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인들은 복구하느라 정신없는데 그 옆에서 유유자적 자전거 타고 다니기엔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맥이 빠지더군요. '누구 때문에 내가 항공권을 예매했는데...'하면서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친구가 내건 명분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 가야하는 건가' 싶어 고민이 컸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그런 제 입장을 배려해서 "자전거 여행은 포기했지만 형과 비행기 타고 같이 가겠다"며 동행을 약속하더군요.



어쨌거나 자전거여행이 아닌 3박 4일 간의 일본여행이 중심이 되면서 코스 역시 제가 주도해서 짜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가게 되면 교토 지역의 신선조(신센구미) 유적을 집중적으로 둘러볼 생각이었습니다. 작년에 NHK 대하드라마 <신선조!> 시리즈를 워낙 감명 깊게 본 터였습니다. 교토는 신선조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라 아직도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부랴부랴 국내 블로거들 중 이미 교토 신선조 투어를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정리해서 대략적인 코스를 짰습니다. (아래 코스 참조)


[교토·오사카 3박 4일 코스]


1일차(7.21): 교토 (이케다야)

2일차(7.22): 교토 (니시혼간지·마에카와저택·야기저택·코엔지·미부데라·킨카쿠지·사료호센·하치다이신사)

3일차(7.23): 교토 (기요미즈데라·산주산겐도·도요쿠니 신사·귀무덤·후시미이나리신사)

4일차(7.24): 오사카 (오사카성·도톤보리)



신선조 유적과 일부 유적들은 제가 짰고, 나머지는 친구가 골랐습니다. 일본의 폭염을 감안해서 최대한 널널하게 짜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괜히 이 더위에 이거 저거 보겠다고 욱여넣었다가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라. 다행히 신선조 유적들은 대부분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번에 해치우기(?)가 수월했습니다.


코스를 짜면 짤수록 자꾸 가보고 싶은 지역이 늘어나는 게 함정(...) 원래는 신선조 유적만 돌아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찾던 중 '하치다이 신사'가 또 눈에 띄더군요. 미야모토 무사시가 요시오카 일족과 대혈전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라고 합니다. 한때 또 미야모토 무사시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결국 추가했습니다. 더 추가했다간 죽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고 참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들더군요. 대학 입학 후 거의 매년 중국으로, 일본으로 그도 모자라 러시아와 독일까지 다녀왔지만 대부분 단체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준비랄 게 없었습니다. 숙식이며 이동이며 모두 현지 가이드가 함께 하니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사실상 처음으로 혼자 가는 자유여행(친구와 가는 거긴 하지만)이라 더 많이 떨리더군요. 항공권 예매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든 걸 처음 하다보니 마치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사람처럼 헤매기도 하고 걱정도 컸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철저하게 준비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젠 직장에 얽매인 몸이라 환전할 여유조차 빠듯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대망의 21일이 밝았습니다. 뭔가 덜 준비된 것 같은 불안함과 찝찝함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잡았습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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