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에 이어 올해 기대작 중 하나였던 <1987>을 어제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1987>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하 박종철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면서 고문 사실에 대해 은폐와 조작을 시도하지만 양심 있는 이들에 의해 그 진실이 폭로되면서 한국 사회를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됩니다. 


영화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합니다.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는 이들에 맞서 그 진실을 파헤치고 알리려는 양심 세력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인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화장을 시도하는 경찰을 제지하는 최 검사(하정우),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는 윤 기자(이희준), 부검 결과에 대한 조작을 거부하는 국과수 황 박사 등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했던 것은, 놀라우리만치 고증에 충실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박종철 사건을 최초 보도한 신성호 전 중앙일보 기자의 <특종 1987>이라는 책을 한 번 읽고 갔더랬는데, 책에서 본 사건의 전개과정이 스크린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극중 연희(김태리)라는 인물 빼고는 전부 실존 인물이라고 하는데, 각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실명과 신분이 자막으로 뜨고 있어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1987>에는 박 처장(김윤석)을 제외하고는 단독 주연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따로 없습니다. 하정우, 유해진, 설경구, 강동원, 김의성, 여진구, 박희순, 이희준, 오달수 등등 정말 많은 주·조연급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전부 비슷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6월 항쟁을 이끌어낸 것은 몇몇 '영웅'이 아니라 각자 자기 위치에서 양심을 지키고자 한 평범한 소시민들이 다함께 거둬낸 결실임을 강조하려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감독의 의도 자체는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스토리가 분산되어 약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특히 김태리와 강동원의 로맨스는 굳이 넣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아쉽습니다.


<신과함께>를 봤을 때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가슴이 매우 먹먹해지는 영화였습니다. 백골단이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장면이나, 경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장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각종 고문을 당하는 장면, 대학생들이 최루탄을 맞아가며 싸우는 장면, 서울시청 앞 광장이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찬 장면들을 보면서 몇 번이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던 것 같습니다. 


1987년이면 제가 태어나지도 않은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정말 저랬단 말이야?' 하고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얼마 전, 현대사 수업 도중의 일이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 대한 설명을 하시다말고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가는데 여기저기서 총 소리가 나더라. 그런데 그게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쿠데타였다"면서 "그게 불과 3~40년 전 이야기라 나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새삼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저분의 기억 속에는 우리가 겪지 못했던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에 묘한 이질감이 들었더랬지요.


그리고 '저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과연 앞에 나서서 최루탄 가스 마셔가며 열심히 돌을 던질 수 있었을까. 단순한 가정일 뿐임에도 쉽게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만큼 두렵고 험난한 길이기 때문이지요. 30년 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위해 싸운 순국선열들에 대해 더욱 감사함을 느끼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편안한 삶을 구걸하는 대신 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꿋꿋이 가시밭길을 걸어간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제가 누리는 자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 자신도 그렇거니와 영화 <1987>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 선열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오늘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학생운동한답시고 정말 힘들었던 졸업 전 마지막 학기.

힘들었던 만큼 학점으로 보상을 해주는 건가.


사실 장학금을 받지 않는 이상, 더 이상 학점은 무의미하긴 하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 기사 링크: http://omn.kr/oxn5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지난 6일 공개된 영화 <1987>의 메인 예고편에서는 경찰 조사 중 사망한 한 대학생의 죽음을 두고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 파헤치려는 이들의 숨 막히는 대결이 묘사됐다.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아래 박종철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던 22살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범행 직후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로 위장,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나 결국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6월 민주항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 <1987>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박종철 사건 뒤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30년 만에 공개된 특종기자의 취재수첩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 개봉에 맞춰 함께 읽어보면 좋을 '가이드북'이다. 올해 1월 박종철 사망 30주기에 맞춰 출간된 <특종 1987>이다. 박종철 사건의 전개 과정 뿐만 아니라,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들 그리고 박종철 사건이 한국 민주화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다뤄내고 있어 1980년대의 정치적·사회적 흐름까지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인 신성호 전 중앙일보 기자는 1987년 1월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박종철 사건을 최초 보도한 장본인이다.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린 특종 기자로서 그는 30년 전 자신이 취재하며 보고 들은 진실을 낱낱이 공개한다. 덕분에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그렇다면 박종철 사건은 세상에 어떻게 알려질 수 있었던 걸까. 1987년 1월 15일 오전, 중앙일보 사회부 법조 출입기자였던 저자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대검찰청 취재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 친분이 있던 이홍규 공안4과장이 "경찰, 큰일 났어"라며 저자에게 툭 한 마디 던진 것. 젊은 기자의 '촉'이 즉각 발동됐다. 이른바 박종철 특종의 시작이었다.


"6년째 법조를 출입하고 있던 나는 이홍규 과장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찰 간부들은 비교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 p.25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데스크(편집부)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비밀작전에 가까운 취재가 시작됐다. 검찰과 서울대, 유족을 상대로 이중, 삼중 취재를 한 끝에, 사망한 대학생의 신원이 서울대생 박종철임이 밝혀졌다. 이미 돌아가고 있던 윤전기를 즉각 멈춰 세운 채 박종철의 사망 소식을 급하게 지면 배치했다. 그렇게 박종철 사건은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와 탄압이 극심할 무렵이었다. 저자는 박종철 사건을 보도한 직후 자신과 언론사에 가해온 정부의 압박에 대해서도 폭로한다. 당장 기사를 내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더라는 정부 고위 관계자 얘기도 우습고 황당하지만 "정보기관에 끌려갈지도 모르니 피신하라"는 동료들의 충고에 따라 밤새 잠적해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당대 언론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 구슬프기까지 하다.


그러나 저자의 특종을 시작으로 여러 언론사가 작심한 듯이 추가 취재와 보도에 매달렸다. 언론사 통·폐합, 보도지침 하달 등 전두환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언론인들이 박종철 사건을 기화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박종철 사건의 언론사적 의의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비로소 언론인들이 권력의 혀에서 벗어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기관 본연의 사명을 실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 <1987> 속 하정우, 실존 인물이었다


한편 영화 <1987>에서는 진실을 쫓는 기자, 사체 화장을 막는 검사, 숨겨진 진실을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교도관에 이르기까지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숨겨진 영웅들이 등장한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실제로도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용기를 낸 '의인'들이 있었다. 특히 "경찰, 큰일 났어"라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이홍규 과장의 경우 25년 만인 지난 2012년 딥 스로트(deep throat: 내부고발자)임이 밝혀졌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흘렸던 것이다. 훗날 그는 "어린 학생이 죽었는데 이렇게 묻어야 하나 싶었다"며 "진실은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내부고발을 결심한 동기를 증언한 바 있다. 


영화 속에서 하정우가 맡은 '최 검사' 역시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바로 사건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었던 최환 검사다. 그는 사건 직후 고문 사실을 은폐하고자 사체 화장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아들이 조사 받다가 죽었다는데 당장 화장해서 유골 넘겨달라고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느냐"며 쫓아낸 일화로 유명하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부검 결과에 대한 경찰의 조작 시도를 우려해 부검도 사설 대학병원에서 집도하도록 지시했다.


이외에도 물고문 의혹을 제기한 의사 오연상, 물고문 혐의를 인정한 정구영 서울지검장, 경찰의 사인 조작 지시를 폭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황적준 박사 등이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기여한 공로자들로 등장한다. 


저자는 1972년 당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 역시 딥 스로트였던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마크 펠트의 제보 덕분에 가능했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박종철 사건은 그 진실이 묻힌 채 전두환 정권의 여러 의문사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의의를 부여한다.


그 이후로는 역사가 설명하는 그대로다. 박종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 전국의 광장은 박종철 사건 조작과 은폐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함성으로 뜨거웠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의 수용으로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30년째 풀리지 않은 의혹... 전두환 개입 여부 밝혀야


저자는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에 대해 지적한다. 바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실체다. 박종철 사건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 경찰, 검찰 등 관계기관은 수시로 모여 사건의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사건 직후 경찰이 밝힌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수사 결과 역시 이 자리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이 회의 구성원에 대한 실체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으며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법적 시효는 지났다 하더라도 역사적 진실 규명에는 그 시한이 있을 수 없다"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았음을 주지시킨다. 또 당시 권력의 꼭대기에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분명히 밝혀야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박종철이라는 이름 석 자는 흐릿해진 지 오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박종철이라는 이름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원하던 모습이고, 박종철이 꿈꾸던 세상인가? 오늘의 우리 모습이 그들이 꿈꾸던 세상과는 거리가 있다면 박종철 사건은 30년 전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 p.239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지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손으로 6명의 대통령을 뽑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총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을 사찰하며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역대 보수정권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화의 길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씁쓸한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그러나 좌절할 이유는 없다. 6월 항쟁 이후의 실패가 곧 민중의 실패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30년이란 시간은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더 뜨겁고 단단하게 담금질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혁명은 바로 그러한 갈망이 폭발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문화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는 시급한 과제가 남아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지난 실패를 답습해야만 한다. 박종철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적폐청산과 제도적·문화적 민주화가 완성되는 날, 비로소 우리는 박종철이라는 이름 앞에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