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방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니가 좋아하는 영춘권 나온다!"하고 부르시더군요. 뭔가 싶어 달려가봤더니, <혀 끝으로 만나는 중국 - 명절의 맛>이라는 중국요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더군요. 


이 시리즈 꽤나 유명하죠. 어제는 MBC에서 명절 특선으로 방영했는데, 공중파 뿐만 아니라 케이블에서도 종종 방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편이 아니라 시리즈물이거든요. 볼 때마다 감각적인 영상미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는데, 어제 방송 분은 영춘권이 나온다고 해서 아예 영상을 따로 구해다가 처음부터 봤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춘권은 굉장히 잠깐 나옵니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무술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고 있고요, 다만 거위구이 요리를 영춘권 수련에 빗대서 함께 묘사하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명의 영춘권사가 서로의 팔을 섞으며 치사오 하는 장면과 요리사가 능숙하게 거위를 손질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면서, 내레이션으로 무술수련과 요리의 공통점을 구결처럼 읊어대는데 영상미의 퀄리티가 대단했습니다.



한 편으로 부러운 것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명절만 되면 인근 무술가 가족 및 제자들을 대거 초청해서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그 자리에서 서로 투로도 보여주고 함께 손도 섞어보는 등 아주 재밌는 시간을 보내더군요. 중국영화나 무협지에 등장하는 문파 교류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좁아터진 무술판인데, 권종을 떠나 이렇게 명절 같은 때에 서로 모여 교류도 하고, 정(情)도 쌓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요리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한 요리의 향연에 입이 벌어지더라고요. 솔직히 우리나라 네티즌들을 보면, 중국에서 무슨 이상한 사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대륙의 클라스' 어쩌고 하면서, 심심찮게 중국을 비하하곤 하는데,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땅이 넓다보니 기괴한 사건, 사고도 많은 곳이지만 그만큼 수준 높은 문화와 각 분야별 쟁쟁한 고수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무술, 요리와 같은 단적인 부분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아... 중국은 정말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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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대단원의 막을 내린 UHD 다큐 <천하무림기행>  (0) 2016.05.02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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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매일 아침을 기다리게 했던 다큐멘터리 <천하무림기행>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천하무림기행>은 마운틴TV라는 작은 규모의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그 형식과 구성이 매우 독특하여 방송 전부터 이미 화제를 모았다.


매일 아침 8시에 마운틴TV와 네이버 캐스트에 동시 업로드되어 별도의 시청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한 편당 러닝타임이 10분을 넘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었다. 인간의 최대 집중력은 15분이라고 하는데, 짧은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볼 수 있게끔 맺고 끊음을 정말 잘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도 한 번 클릭하면 한 눈 팔새 없이 집중해서 보게 만들었으니까. 특히 UHD 화질로 제작하여, 엄청난 고화질을 자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컴퓨터 성능이 안 좋은 관계로, 초고화질로 설정하면 자꾸 버퍼링이 생겼다. 그래서 좀 낮은 단계로 감상해야했다)


천하무림기행은 큰 틀에서 '제1장 이것이 무협이다', '제2장 협객은 살아있다', '제3장 전설의 비급', '제4장 전설의 고수를 찾아서'라는 총 4개의 대주제로 나뉘었으며, 각 주제당 5편씩의 짤막한 소주제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어, 총 20편의 에피소드로 방송되었다.


각 장에 대해 다시 설명해보자면 '제1장 이것이 무협이다' 편에서는, '무협'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함께 오늘날 무협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자세하게 다루었고, '제2장 협객은 살아있다' 편에서는 역사 속 대표적인 협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협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윈'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제3장 전설의 비급'에서는 무협지에 종종 등장하는 '비급'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찰했고, '제4장 전설의 고수를 찾아서' 편에서는 실제로 현실에서 무예를 수련하며, 21세기의 무림고수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무예를 수련하는 입장에서, 무협지 이야기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는, 현실의 무림세계 이야기가 더 궁금했고, 그런 부분을 많이 다뤄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보기 시작한 거라, 제3장부터 정말 몰입해서 재밌게 봤다. 특히 남소림사의 승려로부터 전수받은 비급을 토대로, 마을 주민 전체가 대대로 익혀오고 있는 '멜대봉법'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또 우연히 중국에 왔다가, 그곳에서 무예의 달인을 만나 아예 눌러앉아 무예 수련에 열중하는 파란 눈의 서양인 수련생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한 편으로, 20편의 에피소드는 알찬 구성이었지만 그래도 좀 짧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30편 정도로 2주 정도만 더 방영했어도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중국무림기행>이 아니라 <천하무림기행>이니,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무림 이야기도 다뤘으면 좋았을텐데 싶지만, 그건 굉장히 대규모 스케일이라 너무 큰 바람인 것 같고... 태극권, 소림권 뿐만 아니라 현실 무림에 존재하는 다양한 권법들에 대한 역사와 인물, 권술의 특징 등도 소개해줬으면 정말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천하무림기행 스페셜 영상)


<천하무림기행>이 끝나고, 네이버 캐스트에 스페셜 영상이 올라왔는데, 영상을 보고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실 처음 마운틴TV에서 <천하무림기행>을 방영한다고 했을 때, "마운틴TV라면 산악방송인가? 산악방송에서 왜 이런 걸 하지...?"싶어, 다큐멘터리의 퀄리티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뜯어보니 참 훌륭한 방송이었다. 다큐멘터리의 홍수 속에서 보기 드문 고퀄리티의 수작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퀄리티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송사가 영세한 소규모 방송채널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까지 정말 힘들었다고 눈물(?)로 고백하는 후기 영상을 보니, 그 열정과 진심에 감동을 받았다.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칭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스페셜 영상을 보니,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까지 정말 많은 제작진들의 진심과 열정, 땀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편으로, 돈도 안 내고 안방에 앉아 너무 쉽게 본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아무쪼록 이런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 달 가까이 나를 즐겁게 해준 제작진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앞으로도 번창해서 더 좋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포스팅을 보시는 분들도 <천하무림기행> 많이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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