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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 시작한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엔 영혼의 강제동원이 이뤄지고 있던 '대동아성전대비'와 탐방단이 새롭게 찾아낸 '윤봉길 의사 구금소 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특히 윤 의사의 구금소 터를 찾아가는 여정은 흥미진진한 내용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슬프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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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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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독립기념관 주최로 4박 5일 간 열린 '2017 대학생 나라사랑 역사탐방'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일본 가나자와·도쿄 지역 일대의 독립운동사적지 등을 둘러보는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탐방하는 동안 보고 들으며 느꼈던 경험을 탐방수기로 묶어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 전문을 옮겨오기에는 다소 번거로운 것 같아 앞으로는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뒤, 기사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을 블로그에 링크로 첨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열람과 공유 부탁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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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강원도 강릉에서는 매년 가을마다 커피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로 8회째 열리는 '강릉커피축제'지요. 저 역시 커피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커피 축제를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가용 없이 가는 지방여행은 상당히 힘들어서 '그냥 운전면허 따고 내년에 갈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습니다만... 사람 일이란 게 당장 내일 일도 모를진대 이번에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개막식 당일인 어제 당일치기로 다녀왔습니다.



버스에서 잘 요량으로 아침 일찍 티켓 끊어 출발했습니다. 가는 내내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부족한 잠도 청하면서 머리를 좀 식혔습니다. 그동안 글 쓰며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는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시쳇말로 힐링이 되는 것 같더군요. 가는 길에 이등병 때 발굴했던 발굴지(대관령 제왕산)를 지나쳐가면서 감회도 새로웠고요.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커피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행사장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어서, 인근의 '허균·허난설헌 생가터/기념관'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강릉 온 김에, 여기도 한 번 가보면 좋겠다 싶어서 여기부터 먼저 들렀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여기가 그 유명한 초당순두부마을입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오느라 새벽밥을 먹었더니 배가 너무 고프더군요. 그래서 유명하다는 순두부집에 들어가 백반(7,000원)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근데 제 입맛엔 별로였습니다. 아마 요즘 젊은 사람들 입맛엔 별로일 것 같습니다. 콩비지, 순두부...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적응하기 힘든 맛이죠.



가장 먼저 들른 허균·허난설헌 생가터와 기념관.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허균과 허난설헌은 남매 사이죠. 그리고 둘 다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제가 아는 지식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 때우기용으로 들어간 기념관에서 제법 깊은 감명을 받고 나왔습니다. 양반/남성 중심의 통치체제에 저항했던 혁명가로서의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고요. 지금까지 출간된 <홍길동전>의 다양한 판본들도 전시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홍길동'이라는 이름 석 자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죠. 그냥 사람 이름을 예시로 댈 때도, 관습처럼 홍길동이라고 하니까요. 그 이름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허균입니다. 아무튼 기념관을 나오면서 <홍길동전>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커피축제 행사장인 강릉 녹색도시체험센터가 나옵니다. 그곳 일원이 모두 행사장인데요, 강릉 지역의 카페란 카페는 죄다 모인 것 같네요. 그 넓은 센터 광장에 부스들이 가득했는데요, 부스별로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료 시음 행사를 진행하면서, 커피 원두를 팔기도 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원두를 볶고 내려보는 '로스팅-드립' 체험도 있었습니다. 행사장 외진 곳에 위치한 어느 카페 부스에서는 음료를 사먹으면 무료로 타로를 봐주기도 하더군요.


덕분에 눈요기도 많이 하고, 먹을 거리도 넘쳐나서 배부르게 많이 먹고 다녔습니다. 커피 무료 시음도 하고, 초당순두부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순두부탕수와 물회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배가 불러서 못 먹은 게 한입니다. 커피로 만든 '커피만쥬', '커피빵'도 있었는데, 그건 솔직히 맛 없었어요.



강릉 시내 유명한 수제맥주집 '버드나무 브루어리' 부스도 있었어요. 막걸리 양조장을 개조해서 만든 수제맥주집이라고 하는데, 홍보하러 나왔더라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강릉의 유명한 수제맥주도 한 번 마셔봐야겠죠. 그래서 한 잔 했습니다.



개막행사로 '강릉커피 100人 100味'라는 행사를 하더군요. 100명의 강릉 지역 바리스타들이 동시에 커피를 내리는 행사였습니다. 관람객들은 자기가 맛보고 싶은 바리스타 앞에 줄을 서서 커피를 받아마시는데,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피축제는 행사장 일대에서만 열리지만, 강릉에는 '커피거리'가 따로 있습니다. 안목해변(강릉항)을 따라 카페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는데, 여길 커피거리라고 한답니다. 강릉까지 왔으니 바닷바람도 한 번 쐬고 가야겠죠. 마침 행사장과 강릉항을 연결해주는 셔틀버스가 있어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면서 모래사장을 걷다가, 핸드드립 전문 카페 '산토리니'에 가서 커피 한 잔 했습니다. 


근데 여기 메뉴판을 보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카페 좀 많이 다녀봤다 생각했는데,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품종의 스페셜티가 가득하더라고요. 역시 커피의 세계는 넓습니다. 다 처음 보는 커피라, 어떤 커피를 마셔야하나 고민이 되더군요. 그때 그 카페에서 제일 비싼 커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커피들이 대개 6천원 선을 웃도는 반면에 그 커피만 한 잔에 1만원이었습니다. 가난한 휴학생 신분에 사치라면 사치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굳이 그 돈 아낄 필요가 있을까 싶어 주문했습니다.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게이샤 보케테'라는 이름도 어려운 커피입니다. 바리스타 분이 커피 내리는 과정을 직접 지켜봤는데, 굉장히 꼼꼼하게 내리더군요. 다 내린 뒤에는 코로 향을 맡고, 다시 따로 작은 잔에 받아내서 직접 맛보면서 드립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판단한 뒤에, 비로소 손님에게 서빙합니다. 


과연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하면서 맛 봤는데.. 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 입이 굉장히 저렴해서 좋은 커피를 못 알아봤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커피는 정답이 없기에, 그 커피는 제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커피를 맛보는 재미가 있었기에 딱히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동해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더군요. 잠시나마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내려놓고, 미리 준비해 간 시집을 읽으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혼자서 온갖 허세는 다 부리고 온 듯 하네요.



시간이 좀 있었더라면, 여유있게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서 밤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을텐데... 애석하게도 밤 8시에 출발하는 티켓을 끊어놓는 바람에 조급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퇴근시간이라 차 막힐 거 감안해서 일찍 정류장으로 갔는데, 강릉시내 버스 배차간격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축제기간엔 증차를 하던가 해서 배려를 했으면 싶은데.. 이건 뭐 3~40분에 한 대꼴로 오니까... 기다리다가 똥줄이 탈 정도였으니. 안되겠다 싶어 카카오택시로 콜택시를 불러도 호출에 응하는 택시들도 없고. 다행히 한 대 오길래 붙잡아타고 올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축제에 가실 분들이 계시다면 이 점은 감안하고 계획을 짜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릉커피축제는 10월 3일까지 열린다고 하고, 앞으로도 남은 기간 동안 다양한 부대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한 번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커피에 환장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구경하고 올 수 있을 거예요. 더욱이 근처에 바닷가도 있고 다양한 관광지가 많으니 겸해서 같이 둘러보고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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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오늘 삼청동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을 거쳐 시청까지 걸어왔습니다. 


오전까지 세찬 소나기가 내린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도 맑게 개면서, 햇살도 다시 뜨겁게 작렬하더군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햇볕은 뜨거워서 좀만 오래 걸으면 금세 땀이 나더라고요.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것이 완연한 가을이 온 것 같긴 한데, 한낮은 여전히 덥다시피해서 도대체 언제 진짜 가을이 올까 싶네요. 이러다 확 추워질 것 같긴 한데... 매년 추석 때는 항상 시원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땀이 날 정도로 더우니 진짜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문제인 것 같긴 합니다.



아무튼 광화문 거리를 걷다가, 그늘 진 가로수 밑을 지나다보니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게 인상적이어서 사진 몇 장 찍어봤습니다. 8월의 무더운 여름보다는 산책하기 좋은 날씨인 듯 합니다. 



슬슬 찬 바람이 불어오면서 마음에도 찬 바람이 불어오네요. 오늘도 삼청동에 갔더니 왠 커플들이 그리 많던지... 전역하면 무조건 솔로탈출부터 하겠노라고 다짐했던 게 꽤 오래 전 일인데... 아직까지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하늘도 참 무심한 것 같습니다. 전역하면 당장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하던 분대장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껄껄...


오늘도 그저 혼술 한 잔에 시름을 달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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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지난 6월 말부터 경복궁 옆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평소 조선왕릉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미루고 미루다가 더 늦기 전에 가봐야겠다 싶어서 엊그제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조선왕릉, 세우다', '조선왕릉 정하다', '조선왕릉, 모시다', '조선왕릉, 돌보다' 등의 테마인데, 국왕이 승하한 후, 국장준비가 이루어지는 과정부터 왕릉이 조성되고 절기, 기일마다 제례를 지내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시는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다 둘러봤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지막 코너에 '지하1층에서 이어집니다'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뭐지 싶었는데, 마지막 테마인 '조선왕릉, 돌보다'라는 코너는 지하 1층에서 전시한다는군요. 엊그제 갔을 때는,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 부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오늘 다시 가서 나머지 전시까지 보고 왔습니다. 


사실 조선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어떻게 왕릉이 조성되는가에 대해서는 조선왕릉을 자주 다니며 숱하게 접했기에, 그닥 흥미롭거나 새로운 내용들은 아니었습니다. 전시되고 있는 유물들도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정조 구릉지(舊陵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나 임금의 관인 재궁(梓宮) 정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지하1층 전시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VR(가상현실)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여기가 제일 인기가 많더군요. 전시 자체는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 코너만큼은 다들 줄지어 몰려있을 정도였습니다. 


VR 체험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앉아서 보는 VR로 그냥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3D 영상을 보는 개념입니다. 두 번째 VR은 서서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헤드셋을 착용하고 머신 위에 올라서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인터렉티브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제자리에서 뛰거나 걸을 때마다 화면에서 사람의 모션을 인식해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가 더 흥미진진해보여서 체험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이게 제일 인기가 많더군요. 줄도 길거니와, 기계를 자주 식혀줘야 한다고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습니다. 


결국 첫 번째 VR만 체험해봤는데, 화성의 융릉(사도세자의 무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것도 엄청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론으로 지상과 공중에서 촬영한 융릉을 계속 따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인터렉티브 시스템처럼 제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제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360도로 회전이 되면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미디어도 VR이 대세라고 하는데, 박물관에서 이런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고궁박물관 뿐만 아니라 많은 박물관들이 도입했으면 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면 전쟁기념관 같은 곳에서는 실제 전장을 VR로 체험할 수 있는 코너를 도입한다던지요. 2019년 건립 목표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서는 평소 가보기 힘든 해외 임시정부 청사를 VR로 체험할 수 있도록 코너를 마련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시개요]


조선왕릉은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한다. 유교적 통치 이념 속에서 절대적 권위와 위엄을 지닌 신성한 존재였던 왕과 왕비가 사후에 묻히게 되는 왕릉은 생전에 거처하던 궁궐과 마찬가지로 성역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왕릉 위치의 선정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는 국가적 예법에 따라 신중하고 엄격하게 진행되었으며, 완성된 이후에는 왕실을 수호하는 조상신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자 왕실 의례의 장소로서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조선왕릉은 500년 역사의 건축, 조경, 조각, 제도, 의례 등 유·무형의 요소가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또한 조선왕조 역대 27대 왕과 왕비의 왕릉이 대부분 온전히 남아 있어 역사적 변천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2009년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도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내용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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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 |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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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오늘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용산까지 간 김에 근처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습니다. 때마침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유료 입장이지만 지인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아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 원나라 경원항(현재의 절강성 영파)을 출발해 일본의 하카타로 가던 무역선이 제주도 인근에서 풍랑을 맞아 표류하던 끝에, 신안 앞 바다에 수장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75년 8월. 전남 신안에서 어업을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청자 화병이 걸려 올라오면서, 본격적으로 정부 차원의 수중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통해 그 무역선의 존재가 65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신안 앞 바다에서 발굴했다하여 '신안선' 혹은 '신안해저선'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정부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9년 동안 무려 10차에 걸친 발굴 조사 끝에 2만 4천여 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수중문화재를 발굴했다고 합니다. 14세기 당시 중국과 고려, 일본을 거쳐갔던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역선이었기 때문에 신안선의 발굴은 당대 동아시아 교류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하카타로 가는 이 배 안에는 주로 향로, 찻잔, 화병과 같은 값비싼 감상품들이 주로 실려있었다고 해요. 이를 통해 당대 일본 상류층이 어떤 취미를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복고풍이 유행하던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방고동기(仿古銅器: 중국 고대 하, 은, 주 삼대(代)의 청동기를 본따 만든 도자기 및 금속기)를 수집했고, 고급 무사와 같은 상류층 사이에서는 화병에 꽃을 꽂아 감상하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차(茶)를 마시는 등의 호화스러운 취미생활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취미생활 자체가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처럼 받아들여졌다는군요.



특별전시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고,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도자기와 금속기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신안선에서 발견된 동전은 무려 28톤 규모라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2전시실에 가면 도자기들을 대형 진열장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점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마치 박물관이 아니라 창고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전시품들 중에는 저렇게 쓰러져있는 도자기도 있던데...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쓰러졌는데 바로 세우기는 번거로웠던 걸까요.



동전하고 금속기도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이 600여년 동안 바닷 속에서 잘 보존되어온 것도 신기한 것 같아요. 당시 공예품들의 수준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후추와 같은 향신료나 열매씨도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신석기시대 탄화된 쌀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후추와 같은 향신료가 바닷 속에서 발굴되었다는 건 처음 들어봤어요. 이렇게까지 잘 보존되어온 게 참 미스터리한 일이죠.



개인적으로 전시품들보다는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의 생사가 참 궁금하더군요. 물론 거의 다 수장되었겠지만,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전시품의 화려함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이들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 중에는 신안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들로 당시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들의 선상생활을 재구성한 코너도 있었습니다. 배고플 때는 밥을 해먹고, 심심할 때는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무료함을 달랬을 그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시품들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얼른 고향 땅으로 돌아가 그리운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값비싼 무역품을 팔아 큰 이윤을 남길 생각에 부풀어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신안선에 탔건, 그 사람들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차가운 바닷 속에 잠들어야만 했던 그들의 최후가 안타까운 건 매한가지입니다. 



이번 전시를 주관하는 박물관 측도 신안선에 타고 있었을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전시개요와 에필로그를 꾸며놓았더군요. 참으로 명문장입니다. 누가 이 문구를 기획하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 전시개요와 에필로그 문구를 보고서 감동을 받은 건 처음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전시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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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예24기 한양류 식구들과 함께 관악산에 다녀왔다.


식구라고 해봐야 사부님과 두희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 뿐이었지만... 그래도 제일 수련터에서 제일 체력 좋은 남자 3인방이 산을 타니, 거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전역하고 이틀 만인 4월 15일에, 관악산 등산을 했었는데... 오늘이 5월 15일이니 딱 한 달만에 또 관악산을 타게 된 셈이다. 물론 그때는 사당역에서부터 연주대를 찍고, 깔딱고개를 지나 서울대입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서울대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연주대를 찍고 연주암 뒤로 내려가는 완만한 우회코스를 통해 사당역까지 거꾸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한 달 간격으로 관악산의 여러 코스를 찍어서, 이제 '사당-연주대-서울대입구' 구간은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이 든다.


아무튼 오전 9시 30분에 서울대입구 근처 만남의 광장에 모인 우리는, 설렁설렁 이야기를 하며 등산을 했다. 지난 번에 혼자 산을 탈 때는, 혼자라서 그랬는지 매우 심심하고 지루했는데 오늘은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며 산을 타니 긴 등산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예24기 이야기, 십팔기 이야기, 역사학계 이야기...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연주대에 도착.


정오가 되면 관악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에서 점심 공양을 무료로 한다기에, 내려갔더니 줄이 정말 길다. 하필 오늘이 일요일이었던지라 등산객들로 바글바글거렸는데, 생각보다 로테이션이 빨리 돌아서 금세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비빔밥'. 사찰음식인데다가 다량으로 뽑아내는거라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시장이 반찬이고 무료로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맛있게 한 그릇 비워내고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길에 우리는 '산악 뜀걸음'을 했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등산객들을 새치기하며 바위를 뛰어넘고, 흙길을 뛰어내려가는 등 험준한 산길을 달려갔다. 사부님 曰 "이게 일반 평지에서 달리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하셔서 나도 사부님 따라 열심히 뛰었지만, 따라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자칫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건데, 사부님은 넘어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뛰어다니셨다. (한복 입고 어떻게 저렇게 잘 뛰어다니는지.. 역시 무예를 오래 수련하면 저래 되는건가)


사부님은 "산에서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뛰면 효과가 좋다. 특히, 넘어질까 긴장을 하게 되는데, 긴장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몸을 쓸 줄 알아야 고수가 된다. 단, 긴장을 풀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말에 유념하며 열심히 따라 뛰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없어지셨다.




결국 두희 형님과 단 둘이 한참 내려가다보니 하늘이 흐려지는 것이 곧 비가 올 조짐이었다. 그래서 발걸음 속도를 더 빨리 올렸는데, 결국 산을 다 내려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수관에 도착해보니 사부님은 비가 오기 시작할 때쯤 이미 전수관에 도착했다고 한다. 21세기 김광택?


아무튼 정신 없이 뛰어다니느라 자연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친한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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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경복궁에서 <수라간-시식공감>이라는 행사가 열려,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즘 <궁중문화축전>이라고 하여, 서울에 있는 조선 궁궐에서 궁궐별로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수라간-시식공감>은 그 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다. 조선시대에 임금님께만 진상되던 궁중음식을 맛볼 수 있는 체험행사인데, 궁궐에서 수라상을 직접 맛볼 수 있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창덕궁 달빛기행>처럼 야간에 궁궐을 관람하는 행사도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임금님 수라상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이 행사에 더 끌렸다. (두 개의 행사를 동시에 예매하기엔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마침 전역하고 할 것도 없는 백수인지라, 티켓 오픈이 열리는 시간에 컴퓨터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오픈되자마자, 어머니와 단 둘이서 다녀올 요량으로 2장을 예매했다.


행사가 있기 이틀 전부터, 웬 날씨가 이리 험악한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가 간 날은 운 좋게도 비가 그친 직후라 하늘이 아주 맑았다. 다만, 여전히 바람은 거세어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옥의 티. 거센 바람 탓에 경복궁에 깔린 모래들이 잔뜩 휘날려 정상적인 관람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행사 당일, 경복궁에 도착한 우리는 아직 행사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었기에, 행사가 열리는 소주방 권역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느긋하게 궁궐을 관람했다. 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자경전을 둘러보면서, 동행했던 어머니가 경복궁은 또 처음 와 본다고 하셔서 괜히 안쓰러웠다. 여태껏 서울에 몇십 년을 살면서, 코앞에 있는 궁궐 한 번 못 가보고 뭐하신 건지...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시큰했다.



행사장인 소주방에 도착하니 이미 닫혀있는 문 앞에서 행사 참여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12시부터 점심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아예 시간을 딱 맞춰서 개방했다. 이건 좀 아쉬운 행정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기다릴 거라면 안에 들어가서 착석시켜놓고 기다리게 해도 상관 없을텐데... 


참고로 행사가 열리는 소주방은 궁중음식을 만들던 부엌으로, 일상식을 만드는 내소주방과 잔치음식을 만드는 외소주방 그리고 별식을 만드는 생물방으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은 '외소주방'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이곳에서 수라상을 체험하는 건 고증에 맞지 않겠다. 임금님이 자기 침전에서 밥을 먹지, 부엌에서 밥을 먹겠나.




(사진: 행사가 열리는 경복궁 외소주방)


아무튼 12시 정각이 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한 켠에 마련된 카운터에서 예매 확인을 한 뒤에, 자리를 배치받았다. (자리의 경우는 무작위 선정) 안그래도 모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깥 쪽이 아니라 방 안에서 먹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는 방 안으로 배정받아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한 10분 정도 되었을까? 궁녀 복장을 한 직원들이 하얀 보자기에 감싼 식사를 들고 와 우리 상에 올려놓았다. 




(사진: 배달(?) 온 식사... 보자기에 수놓인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무늬가 인상적이다)



(사진: 도슭 수라상이 담긴 4단 유기 합)


식사메뉴는 총 2가지인데, '골동반 동고리'와 '도슭 수라상'이 그것이다. 기왕 먹는 것, 골고루 먹어보고 싶어서 예매할 적에 어머니는 골동반 동고리로, 나는 도슭 수라상으로 메뉴를 주문했었다. (골동반 동고리는 15,000원, 도슭 수라상은 20,000원이다) 


골동반(骨董飯) 동고리에서 '골동반'은 비빔밥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고리는 둥글납작하게 만든 고리상자를 말한다. 결국 고리상자에 담은 비빔밥이란 뜻이다. 비빔밥에 올리는 나물은 제철에 나는 신선한 것을 썼으며, 흰색, 푸른색, 갈색 등 색색의 나물을 섞었다고 한다.





(사진: 골동반 동고리)


동고리에 담겨져 나온 밥을 보니 이미 약고추장과 참기름으로 간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나물만 넣어 비비면 완성. 밑반찬으로는 호두정과, 오이송송이, 풋고추부각, 배추김치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먹은 '도슭 수라상'은 왕과 왕비만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일상식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합에 조금씩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도슭'은 도시락의 옛 말이란다. 아무래도 임금님에게 대접하듯 수라상을 걸지게 차려내기에는 주최 측이 부담스러웠던지, 도시락처럼 4단 유기합에 담겨져 나왔다.


도슭 수라상을 구성하는 열두가지 음식에는 선조들의 음식 철학인 음양오행과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 즉, 좋은 음식은 약의 효능을 낸다는 뜻)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수라상에는 육포장아찌, 오이송송이, 명란젓, 배추김치, 황태구이, 탕평채, 전복초, 더덕구이, 원추리나물, 생선전유화, 쇠고기산적, 애호박전이 밑반찬으로 나왔고, 국으로는 석류탕(만둣국)이 나왔다.






(사진: 도슭 수라상)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식값에 비해 질과 양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당대 임금님이 실제로 이렇게 맛없게(?) 먹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대인들의 입맛과 옛 조상들의 입맛은 다를테니... 그래도 높은 가격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고, 간도 제각각이었던 밑반찬들이 실망스러웠다. 명란젓은 너무 짜고, 석류탕은 너무 싱거웠다. 특히 석류탕에 들어간 만두는 달랑 3개인가 들었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맛 없는 짬밥 먹다 나온 나조차도 이렇게 느끼는데, 입맛 까다로운 우리 어머니야 말할 것도 없지... 결국 어머니가 남긴 골동반까지 내가 다 먹어치웠다.


한편으로 또 허무했던 것은, 현장에서 티켓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사전예매로만 티켓 구매가 가능한 줄 알고, 오픈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간신히 예매했다고 혼자 뿌듯해했는데, 현장에서도 티켓을 팔고 있으니... 그래서 우리가 식사하는 중간에도 관람객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즉석에서 주문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럴거면 사전에 예매한 이들에 대한 서비스(?)가 따로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도 한 번쯤 경험해보기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 궁궐에서, 수라상을 받아보겠는가. 또 식사 중간에 즉석에서 국악공연을 하는데, 우리를 위해 즉석 연주까지 해준다고 생각하니 뭐라도 된 것마냥 어깨가 절로 펴졌다. 물론 먹느라 정신 없어 음악이 귀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식사하고 나오면서 경회루와 광화문을 거쳐 출구로 나왔다. 나가면서도 내내 '경복궁은 처음 온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조금 더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대충 보고 나올 수밖에... 다음을 기약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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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어제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역사유적지 탐방행사에 다녀왔다.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은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탐방 프로그램인데, 이번이 18회째라고 한다. 


2014년 7월 6일이었던가. 군 입대를 딱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는데, 그때도 탐방 행사가 있었다. 그때는 또 1박 2일로 경남 밀양까지 다녀오는 꽤 큰 행사였다. 당시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좀 의미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기도 하고, 그간 친하게 지냈던 기념관 관계자 분들께 입대 인사도 드릴 겸해서 참가했었더랬다.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전역하고 다시 탐방에 참여하려니 감회가 어찌 남다르지 않을손가. (그때는 12회 행사였다)



(사진: 2014년 7월 5일, 제12회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 당시 밀양 박차정 선생 묘소에서)


어쨌건 이번 행사는 당일치기로, 그것도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짧게 진행하는 답사여서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오후 1시가 다 되어, 집결지인 삼양교통 종점 앞으로 가니 이미 많은 회원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도 재빨리 대열에 합류하여, 가장 먼저 기념관의 장원석 학예사님과 강대운 시설팀장님께 오래간만에 인사를 드렸다. 입대 전 청년백범 답사단의 일원으로 함께 중국을 다녀오면서 첫 인연을 맺었고, 입대 후에도 휴가 나와 연락드렸을 때, 지체없이 달려나와 소주 한 잔 사주시며 군 생활을 위로해주던 매우 고마운 인연들이다.


일행이 다 모이자 첫 답사지인 '봉황각'으로 향했다. 그런데 봉황각 앞에 도착하니, 장 학예사님이 갑자기 내 소개를 하시며 "전역한 지 얼마 안 됐으니 경준씨가 오늘 몸풀이 겸 모두 앞에서 국군도수체조를 지도해보라"고 즉석 주문을 하셔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진: 봉황각으로 가는 입구)



(사진: 봉황각 입구에 모인 탐방 회원들)


할 수 없이 맨 앞에서 국군도수체조를 하긴 했는데, 사실 말년이 되고서부터는 점호 때마다 생각없이 대충 체조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조를 하긴 처음이라 동작들도 중간 중간 까먹고, 구령과 동작이 안 맞아서 애를 먹기도 했다. 


체조를 마치고 나니, 이미 군대를 다녀온 군필자 회원들은 "나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라는 말로 군 생활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까 동작이 틀렸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 "빠졌네"라고 한 마디 툭 던지는 분도 계시던데... ㅎ 얼마 전까지 말년 병장이었던 예비역한테 뭘 더 바라십니까...


한바탕 체조 소동(?)을 겪은 뒤에, 봉황각에 올라가 가이드 선생님으로부터 봉황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진: 봉황각 전경과 설명해주시는 가이드 선생님)


봉황각은 경술국치 이후인 1912년에 천도교(동학)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세운 목조건물이다. 손병희 선생은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천도교 정신으로 무장한 투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투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일제의 감시망이 소홀한 서울 변두리에 이 봉황각을 지었던 것이다. 실제로 손병희 선생의 3.1혁명 구상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이곳을 거쳐간 많은 지도자들이 3.1혁명의 주체세력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민족대표 33인 중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참고로 봉황각의 현판은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위창 오세창 선생이 썼다고 하며, 건물의 양식은 경복궁의 건청궁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봉황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오르막길이 있는데, 그 길을 오르면 봉황각의 설립자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우리는 묘소를 참배한 후에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 몽양 여운형 선생의 묘소로 향했다.



(사진: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


몽양 여운형 선생의 묘소는 강북구 변두리의 한 주택가에 조촐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인가 나도 입대 전에 이곳에 혼자 찾아왔을 때, 도저히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기념관에 전화해 계속 위치를 물어보고,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분의 묘소야말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잘 모셔져야 할 터인데, 유족들이 그건 또 원치 않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사진: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로 가는 북한산 둘레길의 와중에서... 꽃이 참 예뻤다)


여운형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 후에, 우리는 백설기 떡과 막걸리로 음복을 하며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 휴식 시간에 잠깐 여운형 선생 묘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운형 선생의 서거 후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은 미국에서 특별히 제작해 공수해온 관에 선생의 시신을 안치하도록 배려했고, 포르말린 용액으로 방부처리를 하여 미라 상태로 입관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향후 3~40년 내로 통일이 되면 이장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사진: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에서 참배하는 탐방단 회원들)


장 학예사님은 "이런 조치들을 했던 것을 보면,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3~40년 내로 우리가 분명 통일이 될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오늘까지도 우리가 통일이 되지 못한 상황이니 참 부끄럽고, 여운형 선생님 앞에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서게 된다"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여운형 선생의 시신이 미라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나도 처음 듣기에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장 학예사님의 부연설명에 가슴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사진: 매번 역사탐방 때마다 고생해주시는 장원석 학예사님)


딴지는 아니지만 아마 여운형 선생의 시신이 현재까지도 미라 상태일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미라 상태로 보존 중인 김일성-김정일 시신 같은 경우도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수 억원의 비용이 투입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조금씩 시신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포르말린 용액으로 한 번 방부처리한 여운형 선생의 시신이 여전히 원형 그대로일지는 의문이다. 물론, 묘를 쓸 때 조선시대처럼 회곽묘(석회로 석실을 만들어 공기가 안 통하게 안치하는 방식)를 썼다면 몰라도... 근데 그렇게까지 묘를 썼을 것 같지는 않고. 논지에서 조금 벗어났는데,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여운형 선생의 장사가 제대로 치뤄지길 고대해 볼 따름이다.


여운형 선생의 묘소를 나온 후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인근 '국립 4.19 민주묘지'로 향했다. 이곳은 1960년 4.19혁명 당시 순국했던 호국영령들과, 혁명 당시 부상을 입었던 분들의 묘역이 위치한 국립묘지다. 불과 며칠 전이 4.19 혁명 56주기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 있는 코스였던 것 같다.



(사진: 국립 4.19민주묘지의 기념탑)


우리는 이곳에서도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 설명을 들으며 이동했다. 맨 먼저 기념탑 아래서 4.19혁명 당시 순국한 호국영령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묘역을 이동하며 설명을 듣기 시작했는데, 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대부분 학생이었던 점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미처 피워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들이었기에... 한편으로, 나와 비슷한 나이에, 아니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도 자유와 민주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다 돌아가신 그 용기와 신념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사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 최루탄 사건'의 주인공, 김주열 열사의 가묘)


묘역을 둘러본 후에, 유영봉안소에 올라가 또 한 번 참배하고, 마지막으로 기념관에 들렀다. 기념관에서는 4.19혁명의 역사적 배경과 경과, 결과, 의의를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일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념관 관람은 좀 띄엄띄엄 보고, 2층 영상관에 올라가 10분 정도 되는 영상물을 시청했다. 4.19 혁명 전후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촬영한 흑백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또 한 번 가슴이 저미어왔다.


기념관 전시관람을 끝으로, 오늘의 <몽양 여운형 역사탐방>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탐방의 여운은 뒤풀이를 위해 이동한 인근 식당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여운형 선생을 추모하는 노래를 직접 지었다는 어느 어르신은 흥에 겨워 즉석에서 직접 노래 열창도 하시고,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오늘의 탐방소감을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어제 사람들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개인 블로그를 빌어 내 개인적인 소감도 말하고 싶다. 


전역한 지 열흘째... 딱히 할 일도 없어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다가 오래간만에 사람 많은 곳에 나오니,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사실 어제 탐방 같은 경우는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보다는 그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전역인사도 하고, 오랜만에 사람 많은 곳에 나가서 사람 향기를 맡고 싶다는 목적이 컸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맡았던 꽃향기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어제 탐방을 계기로 계속 집에만 있을 게 아니라 더 자주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계속 집에만 있다보니 여전히 사고방식과 언어습관이 군대식이어서, 사람들을 만나도 말투도 그렇고, 대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매일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 빨리 민간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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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

벌써 전역한 지 이틀째.


이미 말년 휴가 때부터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하지?'하는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전역하고 나니 심사가 더 울적하고 불안해진다. 전역하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군 생활 2년 동안 남들보다 뒤쳐진데다가 나이도 있고 하니 정말 빨리 뭐라도 해야한다는 중압감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전역도 했으니 공식적인 '백수'가 된 셈인데,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마냥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잠만 자는 것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 오늘은 근처 관악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 중 하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어머니 따라 가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전역하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휴가 때만 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 결국 전역하고서야 오게 됐다.


특별히 준비랄 것도 없이, 그저 김밥 두 줄과 시원한 생수 한 병만 챙겼다. 물론 복장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갖추었다. 군 생활하며 입었던 발굴피복으로 완전 무장하고, 우리 단 캡모자까지 착용한 뒤에 전투화(발굴화)까지 신고보니 영락없는 발굴병의 모습이다. 사실 나한텐 이 복장이 가장 편할 수밖에 없다. 늘 산을 탈 때마다 이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산을 탔으니... 오랜만에 추억이나 느낄 겸, 일부러 발굴복으로 갖춰입고 집을 나섰다.




(사진: 오늘의 내 등산복장! 완전 발굴병 코스프레가 따로 없다)


사당역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코스가 있다고 하여, 무작정 사당역으로 향했다. 내 손엔 지도도 없었다. 그저 주말에 사당역에 가보면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있었던 것만 생각하며, '어떻게든 길이 나오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평일 오전임에도 드문드문 등산객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길이 맞나 싶을 때는 그 사람들을 이정표 삼아 따라갔다.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관악산 등산로 초입이 등장!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음에도 뒤돌아보니 경치가 아름다웠다. 저 멀리 내가 군 생활한 현충원도 보이고, 우리 집도 보이고, 63빌딩이며 한강이며 서울시내 한복판이 다 내려다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올라갔던 것 같다.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지만, 목적지인 연주대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길어서 지루했다. 이정표 상으로는 소요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하러 가는 산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코스가 힘든 코스도 아니었고. 다만 목적지인 연주대에 다다르니 마지막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험한 암벽이었다. 






(사진: 관악산 등산 중 내려다 본 서울시내)


사실 중학생 때 처음 관악산을 탔던 기억은 내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연주대를 코앞에 두고서 암벽이 무서워 한사코 안 가겠다고 버텼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일행들은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당시의 기억은 약간은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이라, 굳이 관악산을 다시 찾은 것도, 나름 산 좀 탄다고 자부하는 국유단 발굴병 출신으로, 다시 한 번 정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너무 관악산을 무시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방자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시 타도 산이 험하긴 험해 겁이 났다.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길이니 우회하여 돌아가라는 경고문도 군데군데 있었다. 근데 애석하게도 우회로를 찾지 못해서, 결국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앞으로 못 갈 것 같아서, 일부러 앞만 보고 전진했다. 암벽에 찰싹 달라붙어, 밧줄과 쇠사슬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기어올라갔다. 끝 없는 암벽을 타고 올라서니 마침내 관악산 정상 도착!




(사진: 관악산 정상 도착!)


일단 무사 도착에 안도의 한숨을 푹 한 번 내쉬어주고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니, 평일임에도 등산객들은 꽤 있는 편이었다. 평일에도 이 정도인데, 주말엔 얼마나 사람이 많을까. 산은 역시 사람이 드문 평일에 타야 그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연주대는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초기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의상대'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를 듣고,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연주대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찰칵! 뒤에 보이는 암자가 연주대)


연주대에 가보니,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무릎 꿇고 저마다 각자의 소원을 부처님께 빌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소원 하나 빌어야겠다 싶어 합장을 하고 작은 소원(?)을 빌었다.


연주대에서 기도를 드린 뒤에, 연주대에서 조금 아래에 떨어져 있는 사찰 '연주암'에 들러 사찰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도 부처님께 절과 기도를 드리고서, 점심을 먹은 뒤에 반대 방향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사진: 관악산 연주대 근방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서울대학교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길은 악명 높은 '깔딱고개'였다. 계단이 워낙 많아서 등산객들에게 정말 힘든 구간이라고 하는데, 나야 내려가는 입장이라서 힘든 줄 몰랐지만,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좀 힘들긴 했을 것 같다. (계단하면 또 악명 높은 화천의 무명 943고지를 잊을 수 없다)


그래도 사당역에서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길이 너무 길어서 지루했는데, 이쪽 길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다. 사실 올라가면서도, 어떻게 다시 반대로 내려가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 길은 상대적으로 짧아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서울대 캠퍼스가 나왔다. 물론 캠퍼스가 워낙 넓은지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데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다. 등산로를 따라 호수공원을 지나,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대를 벗어나 삼성고등학교 앞까지 왔다. 마침 그곳에 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관악산 연주대를 정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내려오고 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좀만 더 천천히 오르고 내려가며 경치를 즐겼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수 있겠다. 발굴지에서 등산을 하면, 사브작사브작 천천히 오르는 게 아니라, 간부와 선임들의 눈치 때문에 죽기 살기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짬이 차면 천천히 타고 싶어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르게 타고 있다. 덕분에 후임들은 나 따라오느라 죽을 맛이었다.


사실 난 타고난 성격도 급해서, 등산을 통해 '사브작사브작' 걸으며, 성격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었는데, 경치를 즐길 것도 없이 그저 빠르게 타다보니 이게 잘 안되는 것 같다. 등산모임이라도 나가야 할까봐.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면서 천천히 타다보면 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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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