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을 휘두를 때 번쩍번쩍하는 검광과, 부드럽게 상하좌우로 베어내리는 검선(線)을 보자니 '참 곱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검을 수련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런 매력에 빠져서 검을 수련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어제부터는 연구회에서 중국식 도법(刀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유엽도라고 부르는, 중국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를 쓰는 법입니다. 기초 자세만 배웠을 뿐임에도 참 어렵더군요. 무예24기를 수련하면서 조선식 검술을 수련하다가 중국식 도술을 해보려니 차이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전에 배운 게 지금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닥 안 해봤습니다만, 역시나 어제 수련하는데 제 폼이 엉성한지 사부님으로부터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릇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빈 그릇이면 붓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채워진 그릇을 도로 비워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제 고민을 듣던 사형도 "나도 그래. 그건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되는 문제야"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결국 수련은 평생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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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권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무예24기 수련을 안하다보니 요새 관심이 부쩍 줄어들었네요. 오랜만에 유튜브 서핑하다가 새로운 영상이 하나 올라왔길래 공유합니다. 대충 훑어보니 뻔한 내용인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무예24기에 대해 모르는 이들에겐 어떤 무술인지 잘 설명해주는 영상인 듯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무예24기는 무술적 가치보다는 문화콘텐츠적 가치로 승부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는 이만한 상품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권도에 비해 다양한 병장기가 등장하니 훨씬 화려하고 역사성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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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식입니다.


조선시대 권법에 관한 논문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군사> 101호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수원 무예24기시범단의 최형국 박사님께서 쓰신 논문입니다. 



(사진 출처: muye24ki.com)


그렇게 긴 분량의 논문도 아니고, 문화사적 관점에서 쓴 논문이라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조선시대 군사들은 맨손무예를 어떻게 익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동작의 고증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고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남아있는 사료들을 통해 학술적으로는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합니다. 조선군이 병영에서 어떻게 권법을 익혔고, 권법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논문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만, 아래 논문 PDF 파일을 따로 첨부해뒀습니다. 편하게 다운받아서 읽어보시면 됩니다.



조선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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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입문 이후로 5년 가까이 애정을 갖고 수련해왔던 무예24기를 잠시 관두기로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태극권, 홍가권, 영춘권 등 다양한 무술을 수련해왔음에도, 제일 오랜 시간 그리고 제일 열심히 수련했던 무예가 바로 무예24기였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짬짬이 수련을 해왔고, 휴가 중에도 반드시 수련터에 나가 사부님께 교정을 받았을 정도니까요. 물론 그 애정은 지금도 식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옮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저 칼과 창을 휘두르는 맛이 좋아서 무예24기를 해오긴 했지만, 제 마음 속에는 여전히 맨손무예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시대에 칼이나 창을 들고 다니며 호신을 하기는 힘드니까요. <무예도보통지>의 권법 수련을 열심히 해보기도 했지만, 애시당초 <무예도보통지> 자체가 맨손무예의 비중이 낮은 데다가 완벽한 복원이 이뤄지지 않아 제가 원하는 수준의 수련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수 개월 전에 "타 문파의 권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포스팅을 한 바 있었죠. 다만 그 시기와 권종을 정하지 못해 계속 견학이나 다니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더 미루다간 영영 기회를 놓치겠다는 생각에, 이제 정말 새로운 문파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며칠 전에 갑작스럽게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사부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엔 농담처럼 얘기를 꺼냈고, 저 역시도 이번 달까지는 좀 더 고민해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마당에 무예24기 수련이라고 제대로 될 리가 없더군요. 결국 더 미룰 것 없이 당장 다음 주부터 새로운 도장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성장을 위해서는 떠나는 게 맞는 것 같다"면서 기꺼이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셨지만, 그래도 시원섭섭해하는 눈치셨습니다. 저도 그게 참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제 개인의 성장과 무술적 욕망의 해소를 위해서라도 떠나는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무예24기 수련을 병행할까도 고민해봤지만, 오히려 사부님께서 "무리해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리시더군요. 오히려 제게 "제대로 된 정종 문파에 가서 성공하면 그걸로 된 거다"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어제 일요일 정규수련을 마지막으로 무예24기 수련을 중단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사부님께서 진검을 빌려주시며 "대나무베기나 실컷 하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덕분에 대나무 여럿 쪼개고 왔습니다. 조촐한 송별회(?) 겸 부대찌개로 다같이 점심 먹고 헤어지는데 참 미안한 마음도 들고,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뭐 집도 가깝고 어차피 무술 외적으로도 자주 만날 일이 많지만, 오랜 시간 몸 담았던 문파를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공허하네요. 그래도 가끔씩 송년회 등 경조사는 참여하면서 인연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어찌됐건 내일이면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납니다. 어떤 무술을 배우게 될 지는 이미 결정했지만, 아직까지 밝히기가 좀 그렇습니다. 입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 제자가 된 것마냥 떠들고 다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정식으로 입문하고 수련을 시작하면 수련일기를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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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수련시간에 촬영한 영상. 사부님께서 곤방 교전의 일부 장면을 지도하는 중.


곤방(棍棒)은 '봉'을 의미하며 교전(交戰)의 형태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다. 교전이란 갑(甲)과 을(乙)로 나뉘어 공격/방어를 주고받는 것이다. 봉술이지만 봉 끝에 창날이 달려있다고 상정하고 공방을 주고 받는 것이 특징. 모든 장병기를 익히기 전에 기초를 다지는 용도로 아주 좋다. 


일반적으로 중국무술에서는 홀로 수련할 수 있는 독련 투로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에는 처음부터 상대방과 주고 받는 형태로만 수록되어 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다.


내일 모레 전장에 나가야 할 군사들의 무예라는 특성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하다. 당장 써먹을 수 있도록 상대방과 대련의 형태로 연습하면서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나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수련문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uye24ki/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seoulmuye24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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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0월 1일에 신도림 디큐브시티에서 열린 '무예24기 공연' 당시 촬영한 영상입니다.

시연자는 저희 '무예24기 한양류'의 장원주 사부님이십니다. 저도 이 공연에 참가하긴 했는데, 당시에는 배운 게 별로 없어 권법 공연에만 참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부님 혼자서 기창, 본국검, 월도 등 나머지 모든 공연을 다 하셨죠.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뒤적이다가 당시 촬영한 '본국검'과 '기창'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만, 나머지 공연 영상을 찾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사실 이날 사부님이 보여주신 월도 시범이야말로 하이라이트였거든요.

사부님께서는 "당시 장소가 너무 좁아서 제대로 못 보여줬다"며 옛날 영상을 다 지워버리라고 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이 정도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장소가 비좁다보니 약식으로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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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력을 키운다는 것은 굳이 누군가와의 대결을 상정하며 풀어내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담력은 자신을 이기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모든 두려움은 상대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첫째,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꼭 수련 뿐만 아니라 독서나 명상 등을 혼자 풀어가봐도 좋다. 가능하면 산이나 바다 등과 같은 자연 속이 좋다. 나도 20대 때에는 텐트 하나 둘러메고 온 산천을 헤맸다.


둘째, 누군가와 싸우려 하지 마라. 무예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과 바른 마음을 키우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쌓인다.


셋째, 만약 싸워야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상대가 나보다 최소 배이상 전투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라. 그럼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공포나 두려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있다. 단지 그것을 표현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와 그것에 빠지느냐 벗어나느냐의 선택이다. 그 또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출처: 한국전통무예연구소 홈페이지 內 최형국 소장님의 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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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서핑 중에 발견한 영상인데, 참 재밌게 잘 만들었네요. 저도 몰랐던 사실들이 있는데, 웬만한 역사전공자보다도 자료수집을 열심히 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성우 분의 목소리도 좋고요)

여하간 일본도와 그것을 활용하는 일본의 검술에 대한 조선의 관심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검술에 호되게 당하면서, 그들의 검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죠.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조선군은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를 애용했던 탓에, 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천시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조선 문종 때는 환도의 길이가 11cm까지 짧아져서, 문종이 직접 한탄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11cm면 30cm 자의 반도 안되는 길이인데... 단도 수준의 칼로 일본도를 상대한다는 건 목숨 내놓고 싸우는 거죠.

조선 숙종 때는 일본의 검술인 왜검(倭劍)을 수입해오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드라마 <대박>으로 유명해진 김체건이라는 인물이 이때 등장하는데요, 숙종의 밀명을 받고 부산 왜관에 잠입해 몰래 왜검술을 훔쳐배웠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예 일본으로 건너가 검술을 훔쳐배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훔쳐배운 왜검술을 숙종 앞에서 시연하니 왕을 비롯한 신하들이 모두 놀랐다고 하죠. 이 김체건이라는 인물은 왜검을 좀 더 실용적으로 수련하기 위해 교전(交戰: 일종의 약속대련) 체계를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사부님 말씀으로는 "그런 건 사실 후대에 뻥튀기된 속설일 가능성이 높고, 실은 조선통신사가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기예를 보여주는 일이 흔했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일본의 검술을 보고 배워왔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하시더군요. 제일 현실적이고 납득하기 쉬운 유래인 듯 합니다.

유래가 어찌되었건 간에 '적의 강점을 취해 적을 무찌른다'는 선조의 지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무예도보통지>에서 왜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하는 일부 유파에서는 "왜색이 짙다"면서 왜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아예 수련조차 안 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건 <무예도보통지>의 편찬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군요.

PS. 여담이지만 수련터에서 제 별명이 '왜장'일 정도로, 전 왜검을 조선검보다도 좋아합니다. 단순한 동작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저돌적이고 직선적이어서 그 강렬한 기세가 마음에 듭니다. 사부님도 "왜검의 4개 유파만 제대로 마스터해도 웬만한 검객들 다 쓰러트리고 다닐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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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에서 무예24기를 지도하고 계시는 최형국 선생님의 '환도 베기(Sword Cutting)' 영상 몇 개를 간추려봤습니다. 

무예24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후로, 최 선생님의 현란한 베기 시범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무거운 환도를 마치 신체의 일부인마냥 자유자재로 현란하게 휘두르는 모습도 그렇고, 칼을 쓰는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포스가 있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군요. 여하간 실제로 시범을 보면 그 카리스마에 입을 절로 벌어지곤 합니다.

저 정도 경지에까지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고된 수련을 거치셨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정말 고수가 된다는 건 험난한 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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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조선 군사의 하루'라는 주제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연사는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저자이자 수원에서 한국전통무예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최형국 박사님이었고요.


책 출간 기념으로 기획한 북콘서트 형식이라고 하길래, 책 내용을 그대로 풀어 설명하는 강의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 아는 뻔한 내용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최 박사님의 강의를 직접적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는데, 책 속에 없는 내용까지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면서 재미있게 강의를 이끌어주셨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더라고요. 안그래도 오늘 낮부터 계속 쏘다닌데다가 몸도 안 좋아서 강의 시간에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딴 생각 들 틈이 없더군요.



특히 조선군의 하루라는 미시사적인 관점을 통해 전통시대 군사사와 무예사의 특징을 재밌게 설명해주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중간 중간에 무예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강의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무(武)라는 글자의 함의와, 일담이력삼정사쾌(一膽二力三精四快)와 같은 무예의 요체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요, 사실 무(武)라고 하면 보통 지(止: 그칠 지)와 과(戈: 창 과)가 결합되어 파생된 단어로 많이들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 역시 지과위무(止戈爲武)라고 하여 '창을 그치게 하는 것이 무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죠. 이를 두고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이 무예의 본질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은데, 최 박사님 말로는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다. 힘이 있는 자가 다른 이들이 힘을 갖지 못하도록 창을 그친다는 뜻이다. 즉 절대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못하도록 힘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시더군요. 처음 듣는 해석에 신기했습니다. 역시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무예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일담이력삼정사쾌(一膽二力三精四快)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기에 너무 어려운 개념이기도 합니다. 담력과 힘이 실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그걸 갖추기가 어렵다는 거죠. 아무리 정교한 기술과 빠른 스피드, 강력한 힘이 있어도 결국 담력이 없으면 상대방 안면에 주먹을 꽂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려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소위 깡다구라고 하는 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죠. 새삼 담력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담력부터 길러야겠어요.


아무튼 강의를 듣는 내내 여러모로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당대 군사들의 움직임을 생각할 때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겁니다. 최 선생님도 강의 내내 "역사란 상상이 어느 정도 결합이 되어야 한다"며 "사료를 볼 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라"고 강조하시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통시대 군사들에 대한 이미지가 극도로 미화되었거나, 폄하되는 등 상식 밖의 이미지로 구축되어버렸습니다. 상식을 빼고 그저 상상만 한 결과겠지요.


그리고 그 헛된 망상을 널리 퍼트리는 데 일조한 매체가 바로 사극이 아닐까요. 지휘관이 칼 뽑아들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꼴이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오늘날 육군참모총장이 권총 하나 뽑아들고 북한군 진영에 뛰어드는 꼴이라고 생각하면 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연출인 줄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시청자들도 이런 장면을 보면서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 한 편을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서 보면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최 박사님은 이를 두고 "개그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가 비싼 시청료 내고 보는 드라마인데, 그런 식으로 밖에 연출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강의를 통해 접했던 조선군의 모습은 정말 오늘날 현대 군인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점호 받고, 행군도 하고, 비상식량(오늘날의 전투식량)도 가지고 다니고, 숙영할 때는 A텐트를 치고, 밥 먹을 때는 군가도 부르고 구령에 맞춰 식사하는 습관도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신호체계에 숙달되어 비상시에도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하간 정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실제 사료와 유물(환도, 활, 화살 등)들을 가지고 오셔서 직접 보여주시면서 수업을 진행하니까 수강생들의 집중도도 높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워낙 말재주가 좋으셔서요. 겉모습만 보면 과묵한 무인의 이미지인데, 화술이 상당하시더군요. 그런 뛰어난 화술도 내심 부러웠습니다. 청중들도 꽤 많이 왔는데 다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끝나고도 질문 공세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예상 시간을 뛰어넘어 무려 2시간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아무튼 무예24기를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참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좋은 기회를 많이 얻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예24기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런 강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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