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미친듯이 덥다. 정말로.


어제는 수련하다 처음으로 퍼졌다. 상대방과 열심히 자유추수를 하는데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넘어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한증막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자유추수를 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너무 더우니까 공격이고 방어고 간에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중간 중간 '타임'을 외치면서 숨을 돌리다가, 결국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말하고 끝내버렸다. 


그러고 나서 옆에서 쉬고 있는데 극도의 갈증과 더위에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침 사제 한 분이 대련을 요청하러 다가왔는데 어지러워서 못 하겠다고 거절했다. 미안하게도. 


어차피 수련 끝날 때도 다 되었고 해서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이거 뭐 쉬어도 충전되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이 상태로는 더 못 할 것 같아서 결국 사부님께 먼저 간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수련터에 늦게 오는 법은 있어도 먼저 가는 법은 없었던 터라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워서 지쳤다고 하니 다들 왜 이렇게 약하냐고 한다. 


나도 자괴감을 느낀다. 나만 유난히 더위를 타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년 여름엔 어떻게 견뎠나 의문이다. 오죽하면 여름엔 수련을 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도 들었다. 근데 나 없는 동안 쭉쭉 뻗어나갈 동기들을 생각하면 또 그러진 못하겠다. 덥다고 쉬는 모양새도 우습고. 매년 여름마다 수련 안 할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극복해야 할 과제인 듯 하다.


오늘도 미팅이 있어 낮에 돌아다녔는데, 정말 밖에서 돌아다니는 그 잠깐의 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밥 먹는 동안에도 등줄기에 흐르는 땀 때문에 먹는 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밥 먹는 것조차 고통스러우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마트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샀는데 소음만 요란할 뿐 전혀 시원하지가 않다. 7천 원만 날렸다. 썅.


7월 말에는 일본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7월 말이면 더위가 절정일 때다. 게다가 한국보다 더 습하고 덥다는 일본이다. 여행 가서 더위 때문에 고생만 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된다. 여행은 고생하러 가는 게 아니라 즐기러 가는 건데... 친구와 같이 가기로 한 터라 이제 와서 "더워서 못 가겠다"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고민이다. 난 왜 이렇게 더위를 타는 걸까. 나의 저주 받은 체질이 원망스럽다.


그나저나 함께 수련하는 사형이 남양주에 지부를 오픈했다. 굉장히 부럽다. 나도 수료하고서 보라매공원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치는 상상을 해봤다. 내가 열심히 땀 흘리며 꿍푸를 쌓아오던 장소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친다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느 순간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수련터 홍보는 블로그로 할까 SNS로 할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서라.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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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술을 정말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웬만큼 술을 먹어도 오바이트를 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 요근래 들어 벌써 두 번이나 오바이트를 했다. 게다가 어제는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비싼 돈 주고 사 먹은 여명이 아까울 지경이다.


무협지 속 영웅호걸들을 보면 술을 동이째 들이켜고도 내공으로 버티는데, 나는 몇 잔 술에 백기를 들고 말았으니 이거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속이 울렁거리는 통에 도저히 택시를 타고 갈 자신이 없어서 그냥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상도동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 40분. 무려 2시간을 걸었다. 


이렇게 오래 걸어본 건 또 오랜만이었다. 예전엔 광화문에서 집까지도 가볍게 걸어다녔는데 어제는 발도 아프고 걷다 디쳐서 중간에 여러 번 다리쉼을 했다. 


아무렴 술에 취해 평소보다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만날 수련을 해놓고선 이렇게 지쳐버리다니... 또 한 번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 


요새 들어 술이 웬수처럼 느껴진다. 늘어나는 뱃살도 그렇고.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든 것도 그렇고. 모두 다 이놈의 술이 원인 아닐까.


마침 <어느 애주가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술이 깬 뒤 찾아오는 숙취의 고통과 갈수록 나빠지는 건강을 언급하면서 술을 끊으라 권하고 있다. 


나 역시도 요새 들어서는 술 마실 때의 즐거움보다 술 마신 뒤 찾아오는 피곤함과 허무함, 고통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듯 싶다. 요즘 혼술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그냥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끊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싶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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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하늘에서 미친듯이 비를 퍼부어댔다.


퇴근 후 사무실에서 나설 때만 해도 비가 그친 상태였는데, 사무실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10분 사이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바짓단이 다 젖으니까 짜증나서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로 이동해 잠깐 비를 피했다. '빗줄기가 약해지면 얼른 뛰어가야지' 하고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만 보고 있는데... 도무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집은 코앞인데... 짜증나서 그냥 나왔다. 그러고 한 1분이나 걸었을까. 빗줄기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쳐버렸다. 하늘이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괜히 울컥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예년보다 이른 장마라고 하는데, 매년 언제 장마가 오는지 일일이 기억하고 있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이르게 왔든 늦게 왔든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눅눅하고 꿉꿉하고 습하고 덥고... 내가 싫어하는 온갖 성질의 것을 다 지니고 있는 여름 장마가 정말 싫다.


나는 원래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서 물 맞는 걸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옷이 젖었을 때의 찝찝함, 비가 오면 야외활동(수련을 포함한...)에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싫다. 더욱이 여름 장맛비는 시원함을 동반하기는커녕 꿉꿉함만 더해서 짜증난다.


비를 좋아했던 때도 있긴 있었다. 군 생활할 때. 물론 나는 여름 군번이라 훈련소에서 자주 비를 맞았는데, 그 기억은 끔찍했다. 비가 올 때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면 물에 젖은 판초우의가 종아리에 차박차박 달라붙는 그 느낌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행군 때도 웬 비가 그리 쏟아내렸는지... 그때 내린 비 때문에 녹슨 총을 기름칠하느라 무척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자대 배치 후부터 비는 나에게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었다. 비가 내리면 모든 작전이 중지되고 막사 안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 맞으며 산을 타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유해의 훼손이나 유실 우려가 있어서 웬만하면 그날 작전은 취소된다. 


그래서 발굴병들은 누구랄 것 없이 비 소식을 기다린다. 발굴병들은 아침마다 창문 밖으로 비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뉴스로 그날의 일기예보를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밤에 잠들 땐 내일 제발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잠을 청한다. 새벽에 자다 깨서 비 내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면 속으로 '아싸'를 외치고, 한참 내리던 비가 일과 시간 직전에 그쳐버리면 속으로 '씨발'을 외친다. 비가 그치면 영락없이 출동이기 때문이다. 호국영령께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그 당시 우리의 마음이 그랬던 것을.


어쨌거나 앞으로도 살면서 비 오는 날을 반길 날은 없을 것 같다. 살면서 비를 반겼던 기억은 군 시절이 유일할 것 같다.



PS. 요며칠 수련터에 못 나갔는데, 비가 와서 또 하루 제꼈다. 이 비를 뚫고 수련터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거보면 장대비에도 꿋꿋하게 수련터에 나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한편으로 내 스스로의 열정이 이거밖에 안 되나 싶어서 씁쓸함을 느낀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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