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즐겨 보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불란셔 제빵소'라는 이름으로 파리바게뜨의 PPL 상품들이 등장합니다. 왕사탕, 무지개 카스테라, 꽃빙수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이걸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에서 군침이 떨어지곤 합니다.




제일 처음에 산 '왕사탕'입니다. 극중에서 고애신(김태리)과 구동매(유연석)가 먹었던 사탕입니다. 옛날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싸구려 눈깔사탕이랑 다를 바가 없지만, 드라마 탓인지 뭔가 더 달달하게 느껴지는 맛입니다.




고애신과 쿠도 히나(김민정)가 먹던 '무지개 카스테라'입니다.


원래 카스테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드라마를 보니 왜 그리 당기던지. 그런데 이거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근처 파리바게뜨에 매일 같이 들락날락했는데 갈 때마다 품절입니다. 다른 지점에 가도 항상 품절 소식만... 드라마 자체가 인기가 많다 보니 저처럼 이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오늘도 운동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삼각지역 파리바게뜨에 들렀는데 역시 품절이더군요. 오기가 생겨서 동네 파리바게뜨에 전부 전화를 돌려 재고를 물어봤는데, 마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재고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비를 뚫고서 딱 하나 남은 재고를 집어왔습니다.


달달하니 제법 맛납니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머그컵'에 가배당 커피를 담아서 마셔보았습니다. 기가 막힌 대한제국 풀세트의 완성입니다.


가배당 역시 PPL 상품인데, 이건 파리바게뜨가 아니라 달콤커피에서 내놓은 한정 상품입니다. 드라마에서 각커피를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은 박스에 딱 두 알 들어 있습니다. 커피가루와 설탕을 뭉쳐서 네모난 조각으로 만든 상품입니다. 이 커피 역시 달달하니 괜찮습니다. 사실 보이차와 놓고 보면 헷갈릴 정도로 비슷합니다 (...)


가배당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입고된 지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엊그제 미팅 때문에 강남역에 갈 일이 있어 갔다가, 마침 근처 지점에 재고가 있길래 두 세트 구해왔습니다.


커피잔은 스타벅스에서 올해 광복절 및 대한제국 선포 121주년 기념으로 한정 출시한 '오얏꽃 머그컵'입니다. 드라마 PPL과는 무관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대한제국 시절이라 무척 어울립니다. 마침 어제 방영분에서는 '오얏꽃'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더군요.


오얏꽃 머그컵에 가배당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가배를 사랑하던 고종 황제가 생각납니다.



이런 거 사올 때마다 "돈 쓸 데가 그렇게도 없냐"는 가족들의 핀잔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뭐 저만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이런 거 사먹으려고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돈 버는 건데. 소확행이 따로 있겠습니까.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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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광복절 및 대한제국 선포 121주년 기념 MD를 출시했더군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궁화가 감싸고 있는 모양의 머그컵입니다. 텀블러와 티스푼, 스벅카드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오얏꽃 머그컵이 제일 이쁜 것 같습니다. (가격도 착하고)



솔직히 광복절과 대한제국 선포 121주년은 약간 어거지로 엮은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가배(커피)를 즐겨 드시던 고종 황제를 생각하면 대한제국 선포 기념 MD로는 적절한 컨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출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근처 스벅 매장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실물을 보니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별로 끌리지가 않더군요. 매장까지 가놓고서도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돌아섰는데... 그날 이후로 계속 이 컵이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결국 다시 마음을 바꾸어 가까운 스벅 매장을 찾아갔습니다만, 하루 만에 벌써 품절됐다는 소식이... 다른 매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빨리 매진될 줄 알았더라면 그냥 그때 바로 사는 거였는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는데, 어제 보라매공원에 수련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벅 매장을 보았습니다. 큰 기대 안 하고 들어섰는데, 운 좋게도 아직 재고가 남아 있었습니다. 두 개 남은 것 중 하나를 데려왔습니다. 가격은 17,000원.


이번에 통인동 커피공방에서 공수해온 시그니처 블렌딩 원두 '경복궁의 가을'을 핸드드립으로 내린 뒤에 친구가 캐나다에서 사온 '메이플 시럽'을 타서 아이스 커피로 한 잔 마셨습니다.



요새 <미스터 션샤인>을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극중에서도 고종 황제가 가배차를 즐겨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머그잔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망국의 설움과 굴욕을 감내해야만 했던 고종 황제가 생각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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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대망의 출국일이 밝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아침에 비교적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친구와 김포공항에서 만나 공항철도로 환승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출국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서 꽤나 일찍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금방 끝났습니다. 티켓 끊고, 미리 예매한 포켓와이파이와 교토행 하루카(고속철도) 티켓도 수령했습니다. 일본 고속철도 티켓을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령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여행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참 신기하고 편리하더군요. 출국 심사 마친 뒤, 점심 먹고 면세점 구경 좀 하다가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동해 상공을 날아 마침내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깥에 나가는데, 훅 끼쳐오는 덥고 습한 공기. 확실히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던데 피부로 확 느껴졌습니다. 과연 3박 4일 동안 무사히 보고 다닐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어쨌거나 저희는 바로 교토로 가기 위해 하루카를 타러 이동했습니다. 사실 저나 친구나 일본어도 영어도 할 줄 몰라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직감'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할지 몰라도 직감적으로 여기다 싶으면 그냥 들이대고 본 거죠. 무식하면 용감하달까. 


그런데 생각보다 이 직감이란 놈이 대단하더군요. 여행 중 구글 맵이 잘못 알려준 길을, 직감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끼고 반대로 가니까 제대로 도착하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하루카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사실 교토행 하루카인 줄 알고 열차를 탔는데,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니 다른 블로거가 올린 하루카 내부 사진하고 지금 저희가 타고 있는 열차 사진하고 전혀 다르더군요. 


"야, 우리 잘못탄 것 같다"하고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간사이국제공항으로 돌아가는 반대편 열차를 탔습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보니 하루카행 열차는 하루카 전용 탑승구가 따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다른 관광객들도 거기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저 사람들 왜 열차 왔는데 안 타고 서있지' 하면서 다른 열차를 탔던 겁니다.


결국 도착하자마자 뻘짓을 하는 바람에 지체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카는 자유석으로 운영이 되는 터라 티켓이 있어도 좌석이 차면 입석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앞서 하루카를 탔더라면 이미 줄이 길어서 꼼짝없이 서서 갈 뻔 했는데, 한 번 보내놓고 나니 줄이 리셋되어 저희가 비교적 앞줄에 자리잡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하루카에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일반 열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하루카를 타니 1시간 20분 만에 교토역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역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교토타워부터 들르는 거였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막상 교토타워를 보니 그닥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그냥 역 앞에서 감상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바로 숙소로 길을 잡았습니다.





숙소는 교토역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저녁이라 날이 선선해서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뭐 이렇게 낯선 땅 구석구석을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자유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한 30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가 나타났습니다. 교토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는 '다나카-야-인'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료칸 분위기가 나는 숙소로 일부러 예매했는데, 이런 형태의 숙소들이 거리에 밀집해있더군요. 인적 드물고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거리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이 맞는 용어인지 모르겠습니다)소리도 무척 좋았구요.




숙소에 도착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주인 아주머니의 한국어가 유창하시더군요. 알고 봤더니 재일교포라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아들인 '마사토'라는 이름의 청년이 저희를 숙소로 안내해주었는데 무척 밝고 경쾌한 청년이었습니다. 이후로 한 번도 보지는 못 했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곧장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산조역 근처에 있는 '이케다야'라는 술집이 바로 목적지였습니다. 


여기도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숙소가 위치한 지역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는데, 좀 걷다보니 시끌벅적한 번화가가 나타나더군요.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삐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성진국답게 유흥업소들이 많이 보이는데, 솔직히 이런 장면은 저희 동네 근처 신림동만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라... 크게 이색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낯 익은 사진이 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의 기반을 닦은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앞에 비석이 있길래 한자를 해석해보니 이곳이 료마의 거주지였다는 것 같군요.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이 부근에 료마가 암살당한 현장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제 관심사는 오로지 신선조에만 꽂혀 있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침내 신선조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 이케다야에 도착했습니다.




이케다야는 원래 여인숙이었습니다. 막부 말기에 막부에 적대적이었던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황양이파들이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교토수호직이었던 아이즈번 영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암살과 교토 시내 방화, 천황 납치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첩보를 입수한 신선조 대원들이 1864년 7월 8일, 야밤에 이케다야를 습격해 이들을 처단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케다야 사건'입니다. 신선조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한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메이지유신을 1년 늦춘 사건'이라고 평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이곳이 과거 이케다야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비석과 함께 지금은 동명의 이자카야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다보니 술집에서는 적극적으로 신선조 마케팅을 하고 있더군요. 아예 내부에 신선조 관련 그림과 모형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고, 신선조 특유의 톱니바퀴 모양 하오리를 입어볼 수 있게끔 복장들을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원들도 신선조 하오리를 입고 서빙을 하더군요.





그외엔 딱히 신선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과거 신선조가 활약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사케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첫 잔은 우선 이곳에서 죽어간 신선조 대원들을 위해 추모의 잔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케다야에서 가볍게 1차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서 숙소에서 2차를 달렸습니다. 깊은 밤, 교토의 료칸에서 친구와 마시는 사케 맛이 참 달더군요.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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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팅 때문에 역삼동에 갈 일이 잦은 편입니다.

디지털 마케팅·IT 비즈니스 업계는 대부분 역삼동 쪽에 밀집되어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번에 아마존 직원을 만날 일이 있어 이베이가 입주한 '강남파이낸스센터'에 갔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큰 건물인 줄 몰랐는데, 지하 8층에 지상 43층 규모라고 하더군요. 고층건물에 갈 일이 별로 없는 터라, 좀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촌놈' 티 제대로 내고 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초고속으로 올라가는데, 흔들흔들거리니까 괜히 심장이 쫄깃하더군요. 그리고 올라가다보면 비행기 탈 때처럼 귀가 멍멍해지는 현상이... 서울 한복판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그런 경험을 하니 신기했습니다.


저자 미팅 끝내고 미팅룸에서 창밖의 서울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봤습니다. 미팅룸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기가 막히더군요. 외부인들에게는 개방이 안된 공간인데, 여기 직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휴식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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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일본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 휴가는 굉장히 즉흥적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애시당초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슬슬 휴가 시점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부터 일본까지 자전거 일주를 계획한 군대 선임(앞으로는 그냥 편의상 '친구'라 부르기로)이 "일본에서 합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오더군요.


제게 허락된 휴가는 3일. 그러니까 주말끼고 3일이면 일본에서 며칠 동안 놀고 먹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판단했습니다. 그 친구가 자전거 타고 일본에 건너오는 시점에 맞춰, 저 역시 비행기 타고 건너가 일본 어딘가에서 만나 며칠 놀고 먹다가 저는 저대로 다시 돌아오고 그 친구는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올 휴가를 보내기로 잠정 합의를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왕복 항공권까지 다 예매했는데, 바로 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일본에서 폭우로 100여명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본 폭우 소식이 국내 실검에까지 오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그 친구가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인들은 복구하느라 정신없는데 그 옆에서 유유자적 자전거 타고 다니기엔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맥이 빠지더군요. '누구 때문에 내가 항공권을 예매했는데...'하면서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친구가 내건 명분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 가야하는 건가' 싶어 고민이 컸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그런 제 입장을 배려해서 "자전거 여행은 포기했지만 형과 비행기 타고 같이 가겠다"며 동행을 약속하더군요.



어쨌거나 자전거여행이 아닌 3박 4일 간의 일본여행이 중심이 되면서 코스 역시 제가 주도해서 짜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가게 되면 교토 지역의 신선조(신센구미) 유적을 집중적으로 둘러볼 생각이었습니다. 작년에 NHK 대하드라마 <신선조!> 시리즈를 워낙 감명 깊게 본 터였습니다. 교토는 신선조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라 아직도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부랴부랴 국내 블로거들 중 이미 교토 신선조 투어를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정리해서 대략적인 코스를 짰습니다. (아래 코스 참조)


[교토·오사카 3박 4일 코스]


1일차(7.21): 교토 (이케다야)

2일차(7.22): 교토 (니시혼간지·마에카와저택·야기저택·코엔지·미부데라·킨카쿠지·사료호센·하치다이신사)

3일차(7.23): 교토 (기요미즈데라·산주산겐도·도요쿠니 신사·귀무덤·후시미이나리신사)

4일차(7.24): 오사카 (오사카성·도톤보리)



신선조 유적과 일부 유적들은 제가 짰고, 나머지는 친구가 골랐습니다. 일본의 폭염을 감안해서 최대한 널널하게 짜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괜히 이 더위에 이거 저거 보겠다고 욱여넣었다가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라. 다행히 신선조 유적들은 대부분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번에 해치우기(?)가 수월했습니다.


코스를 짜면 짤수록 자꾸 가보고 싶은 지역이 늘어나는 게 함정(...) 원래는 신선조 유적만 돌아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찾던 중 '하치다이 신사'가 또 눈에 띄더군요. 미야모토 무사시가 요시오카 일족과 대혈전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라고 합니다. 한때 또 미야모토 무사시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결국 추가했습니다. 더 추가했다간 죽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고 참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들더군요. 대학 입학 후 거의 매년 중국으로, 일본으로 그도 모자라 러시아와 독일까지 다녀왔지만 대부분 단체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준비랄 게 없었습니다. 숙식이며 이동이며 모두 현지 가이드가 함께 하니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사실상 처음으로 혼자 가는 자유여행(친구와 가는 거긴 하지만)이라 더 많이 떨리더군요. 항공권 예매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든 걸 처음 하다보니 마치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사람처럼 헤매기도 하고 걱정도 컸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철저하게 준비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젠 직장에 얽매인 몸이라 환전할 여유조차 빠듯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대망의 21일이 밝았습니다. 뭔가 덜 준비된 것 같은 불안함과 찝찝함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잡았습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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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엑스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국제차문화대전' 참관을 위해 갔었는데, 작년보다 별로 볼 게 없더군요. 원래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등 해외 각국의 차를 시음하고 판매하는 부스가 많았는데, 어째 올해는 국산차와 중국차 부스만 가득합니다. 그런 차들이야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다니며 시음만 하다가 금방 나왔습니다.


이대로 가기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C홀에서 '2018 대한민국 라면박람회'란 걸 하고 있더군요. 라면박람회라는 건 처음 들어봤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으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습니다.





박람회장에서는 한국 라면, 일본 라멘, 태국 라면 등등 전세계 라면을 팔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라면 한 잔'이라는 브랜드의 티백도 팔고 있더군요. 라면국물을 먹고는 싶은데 면은 먹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 국물만 우려주는 티백이라고 합니다. (아니 잠깐, 그러면 그냥 스프만 따로 빼서 팔면 되는 거 아냐...?)





입구에서부터 라면 티백 같은 기상천외한 상품을 보니 뭔가 대단한 라면들이 있지 않을까 크게 기대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단 라면박람회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게 정체성이 모호한 박람회였습니다. 


라면이 아닌 메밀국수 같은 국수류도 판매하고 있더군요. 뭐 거기까진 같은 '면'이니만큼 이해할 수 있는데, 뜬금없는 북한 화폐 판매 코너는 왜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아이스크림 코너, 맥주 코너, 된장/고추장 코너까지... 라면박람회가 아니라 그냥 잡화점에 온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북정상회담 특수 탓인지 북한 문화 체험 부스가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라면박람회라면 북한 라면을 팔던지 그도 아니면 평양냉면이라도 팔던지 해야하는데 전혀 상관 없는 주먹밥과 떡만 팔고 있더군요. 참 이 박람회의 정체성이 뭘까... 누가 기획한 걸까... 심경이 복잡해졌습니다. 





아무튼 점심을 안 먹은 터라 '북한 간이식당' 부스에서 즉석음식을 사먹었습니다. 


두부밥, 인조고기밥, 속도전 떡 이렇게 세 가지 메뉴를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두부밥은 예전에 동국대 북한학과 축제 때 먹어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별 거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조고기밥과 속도전 떡을 사먹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분들이 직접 만들어서 팔고 있더군요. "탈북한 재료를 쓴다"는 홍보 멘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인조고기는 콩고기를 의미합니다. 그냥 콩고기를 얇게 저며서 그 안에 밥을 싸고 양념장을 발라 먹는 주먹밥입니다. 맛은 그닥 별로였습니다. 두부밥이랑 그닥 맛 차이도 없더군요. 그래도 속도전 떡은 먹을 만 했습니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떡인데 일명 '퐁퐁이 떡'이라고 한답니다. 달달하니 괜찮더군요.





배를 채우고서 다른 부스들도 둘러봤는데... 그닥 볼 게 없었습니다. 차라리 무료시식코너라도 많으면 좋겠는데, 여기 깔린 푸드트럭들은 대부분 돈 내고 사먹어야 합니다. 메뉴도 마라탕, 돈코츠라멘, 메밀소바 등등 길거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어서 굳이 여기서 돈을 내고 사 먹을 이유를 못 찾겠더군요. 


박람회장을 나서기 전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 아쉬워서 랍스터 라면인 '랍면' 두 봉지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식으로 기획된다면, 그닥 또 오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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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평소부터 봉하마을은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거리가 워낙 멀고 교통이 불편해 마음 먹고 가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다 이번에 출발 3일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술집 '관악바보주막'에서 단체버스로 당일치기 방문을 한다기에 충동적으로 신청해서 다녀왔습니다.



봉하마을이 워낙 멀기에 하루 안에 다 보고 돌아오려면 새벽같이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발장소인 신림역으로 향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벌써 점심 때더군요. 한반도가 넓다는 걸 새삼 또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대통령의 집'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 머물렀던 집입니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집"이라는 유지에 따라 지난 5월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됐습니다.



예전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집을 일컬어 '아방궁'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은 바 있지요.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의 집인데 일반 주택보다는 호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꼼꼼하게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대통령의 집은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방궁은커녕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집 한 채만 있더군요. 다만 이 집엔 '철학'이 있다는 것이 여느 집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집은 흙,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설계됐다고 합니다. 또 주변 산세와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립니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속 밖으로 나오게끔 설계가 됐다고도 합니다. 이유인즉슨,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안에만 꽁꽁 틀어박혀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계속 밖에 나와서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표어가 액자에 걸려있습니다. 그 아래 웬 낙서가 있길래 의아했는데, 손녀가 한 낙서라고 합니다. 뭔가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서 뭉클했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휴식을 취하던 안채(거실)를 지나면 서재가 나옵니다. 서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참모들과 함께 마을 생태계 복원과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총 919권이라고 합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들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 다니는 입장에서 우리 출판사 책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없더군요. 아쉬워라...


노 전 대통령은 하루에 책을 5~6권씩 번갈아가며 읽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매우 비슷한 스타일인데요, 그만큼 지적 욕구가 왕성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퇴임 후 그가 남긴 육필 원고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가 가진 지식의 원천이 모두 이 책들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책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이를 지도자로 세우게 되면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컨셉을 강조하던데, 앞으로도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대통령의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던" 유서 내용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 묘역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 새겨진 작은 너럭바위 하나만이 이곳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잠든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뭉클하더군요. 연신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게도 9년 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당시 고3이었던 저는 토요일이었음에도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졸중', '노무현 전 대통령 음독' 등 노 전 대통령의 유고 소식이 확실치 않은 상태로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하굣길에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서거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영결식이 있던 29일은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였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영결식 생중계를 틀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이게 나라냐"면서 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이래저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인 듯 합니다.


묘역 참배 후에는 봉화산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봉화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굽어봤던 장소,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부엉이바위는 펜스와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관람객들은 아쉬운 마음을 이기지 못했던지 펜스를 넘어 부엉이바위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펜스로 막혀 있었지만 부엉이바위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바라본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참 가슴이 착잡해지더군요.



내일이면 벌써 그의 서거 9주기를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요. 무너진 민주주의를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촛불)으로 바로 세우는 모습을 보고 못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면서 "야! 기분 좋다!"고 외치지는 않았을까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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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파미에스테이션 국숫집 '면주방'에서 사먹은 갈비국수(9,000원)


진한 육수가 일품이었으나, 조리 시간이 너무 길고 갈비가 적어 아쉬웠다. 아무리 물가가 비싼 강남이라지만 9천 원짜리 국수에 어울리지 않는 적은 양이 아쉽기만 하다. 


근데 여기만 탓할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고속터미널역 근처 식당 밥값은 서울 변두리 식당보다 곱절 이상 비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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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처럼 주말을 맞아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권가 치면서 건넜습니다 ㅎ)


몸 좀 풀고 권가를 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굉음이 울리길래 고개를 들어봤더니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비행 중이더군요. 처음엔 단순 훈련의 일환인 줄 알았는데, 색색의 스프레이(정확한 용어를 모르겠군요)를 뿌리면서 곡예를 부리더군요.


알고 봤더니 공군 블랙이글스 팀이 서울 상공에서 비행 시범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까이서 전투기를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에 한참을 스마트폰을 들고 따라다니며 열심히 사진 찍고 영상도 찍었습니다.


단연 압권은 전투기들이 서울 상공에 수놓은 '태극마크'였습니다. 그리는 모습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다 완성한 뒤의 모습만 봤네요. 처음부터 그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으면 좋았으련만. 


아무튼 길 가던 버스도 잠깐 정차한 사이에 승객이며 운전기사며 할 것 없이 창틈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비행을 구경하는 진풍경도 벌어졌습니다. 참 재밌는 구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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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있어 갔다가

오랜만에 남산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들렀습니다.



2011년 지금의 신축 기념관이 들어서기 전, 낡은 기념관이 있던 시절부터 자주 들락날락하던 곳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이 뜸했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니 재단장을 거쳤는지 일부 코너의 구성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크게 바뀐 건 없었는데, 아이들을 위한 체험코너가 조금 늘어났습니다.


이런 건 참신하고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활자로만 구성된 단순 설명문은 지겹고 어렵죠. 그냥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체험형 코너를 확대하는 게 제일 좋다고 봅니다. 


특히 옛날 전화기 모형에 안중근 의사로 분한 성우의 목소리를 녹음해놓은 건 성인인 제가 봐도 인상적인 코너였습니다. 호기심에 전화기를 들었다가 대사를 끝까지 다 들었네요. 마치 안 의사가 실제로 제게 전화를 해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계획을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언제 봐도 의분과 기개가 넘치는 안중근 의사의 친필 유묵들입니다. 마침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경매에 나온 안 의사의 유묵은 작품별로 차이가 있지만 억 단위를 호가한다고 합니다. 최고가가 6억이었나 했답니다. 한 편으로 <진품명품>에 안 의사의 유묵이 나왔을 때 감정위원들은 '0원'으로 매기기도 했죠.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없어서 그랬다고...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코너였습니다. 


기념관을 방문한 아이들이 안 의사에게 보내는 쪽지를 포스트잇에 적어서 붙여놨습니다. 아이들의 어린 마음과 솔직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안 의사의 유해는 찾지 못했지만, 하늘에 계신 안 의사께서도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낸 조국에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에 크게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 이름 찾아보세요 ㅎㅎ)


2009년 고3 때였습니다. 지금의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새로 건립한다며 전국 각지에서 모금운동이 벌어졌었는데, 저 역시 안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동전 저금통을 들고 건립위원회 사무실까지 찾아갔더랬습니다. 그때 모은 돈은 5만 원도 안 되는 푼돈이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때 일로 <조선일보>와 인터뷰도 했었고 저렇게 동판에 제 이름이 새겨지는 영광도 입었습니다. 이 기념관 주춧돌 세우는 데 미력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사실이 제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원래 제 꿈은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취직하는 것이었는데... 살다 보니 어릴 적 꿈대로 살기가 쉽지 않네요. 앞으로 또 어떻게 이 기념관과 연을 이어갈지 또 모르죠 ㅎ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옆에는 '백범광장'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원래 여기도 이런 공원이 아니었는데, 서울시에서 한양도성을 정비하면서 광장도 유원지처럼 잘 조성해놓았습니다. 덕분에 오며 가며 즐거운 감상을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과 성재 이시영 선생님 동상을 보며 잠시나마 옷매무새를 다듬어보기도 하고요.


집에서 멀지 않아 가끔씩 산책하러 오면 좋을 듯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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