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는 휴학생이다보니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충분히 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설 연휴가 연휴 같지가 않네요.


남들 다 일하는 평일에 집안에만 콕 들어박혀있는 게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집에 있으면 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해서, 일부러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보라매공원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가 오늘의 커피 한 잔 시켜놓고 1시간 정도 독서하다가 나왔습니다. 이런 일상의 여유를 충분히 누리면서 살고 싶네요. 아마 복학하고나서부터는 즐기기 쉽지 않은 여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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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관악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사먹은 '가츠동'.


먹는 내내 일식을 좋아하시는 블로그 친구 분이 떠올랐습니다.

6,500원인데... 언젠가 신촌에서 먹은 가츠동만 못했습니다.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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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미소타 한 알을 자사호에 넣어 하루 종일 우려마셨습니다.


원미소타란 지유명차에서 개발한 소타차(보이차의 일종으로 둥글게 뭉쳐놓은 차)의 일종인데요, 저렇게 엄지손톱만큼의 크기로 낱개 포장되어 있습니다. 한 번 마실 때 반으로 쪼개서 나눠 마시거나, 아예 한 알을 통째로 넣어 우려마시면 됩니다. 보이차 자체가 워낙 여러 번 내려마시는 차라, 10번 이상 내려마시기도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탕색이 좀 연해지면서 맛과 향도 연해지면 더 이상 우려먹지 않습니다. 효능은 남아있을지 모르겠는데, 영 안 땡기더군요.


사실 차를 내려마시는 과정인 번거롭고 귀찮기는 합니다. 표일배라는 간단한 도구가 있긴 하지만, 그건 또 차를 내려마시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맛과 향도 자사호에 내릴 때보다 덜한 게 사실입니다. 자사호로 우리게 되면 맛과 향이 풍부한 대신에 관리하기가 좀 까다롭지요. 다 마신 뒤 세척하는 것도 일이고요. 


그래서 이 과정 자체를 즐기려고 노력 중입니다. 결국 차를 내려마시는 과정도 하나의 공부이자 수련인 셈이니까요. 그리고 물 끓이는 동안 한 번, 차를 우리는 동안 한 번... 틈틈이 참장도 서고 권가도 치면서 무예 수련을 하기 때문에 요새는 그래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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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오후, 한국문화정품관 4층에서 티쿱스토어가 주최하는 발효차 교육 2강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귀하고 맛있는 차를 먹을 수 있을까 잔뜩 기대하고 갔습니다. 사실 밤잠을 설친 뒤라, 조금 피곤해서 걱정했는데요. 그래도 차를 마시는 동안 피곤함이 해소되는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다만 평소보다 피곤해서 몸의 반응이 둔하긴 하더군요. (원래 보이차를 마시면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곤 합니다)


오늘은 반발효차인 우롱차(오룡차)와 후발효차인 보이차를 집중적으로 마셨습니다. 우롱차의 한 종류인 '대홍포(大紅袍)'도 맛을 볼 수 있었는데요, 중국 복건성의 무이암산에서 난다고 해 '무이암차'의 일종으로도 분류가 된다고 합니다. 차예사 선생님께서는 대홍포라는 이름의 유래도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중국의 어느 서생이 장이 굳는 병에 걸려 고생했는데 마침 무이암산에 위치한 한 사찰에 들렀다가 스님이 우려준 차를 마시고 씻은듯이 나았다고 합니다. 훗날 그 서생은 관리가 됐는데, 마침 황후가 자신과 똑같은 병에 걸렸던 겁니다. 어의들도 손을 쓰지 못해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자신이 마신 차를 진상했더니 황후도 씻은듯이 병이 나았다고. 기쁜 황제는 말단 관리였던 그를 당상관의 반열에 올렸고 홍포를 하사합니다. 홍포는 붉은 비단옷으로 고위 관리만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우연히 만난 스님 덕분에 초고속 승진을 한 그는 답례를 하기 위해 사찰을 찾았지만, 이미 스님은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사찰 한 켠에 스님이 심어놓은 차나무에 자신의 홍포를 걸어줬다고 합니다. "너 덕분에 내가 출세했다"면서 말이죠. 그때부터 그 차는 대홍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런 고사들을 들을 때마다 참 흥미진진하고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듣고 마시면 차맛이 더 달게 느껴지더라고요~ 기분 탓이겠죠 ^^


1959년에 채취한 오래된 노차도 맛봤는데요, 저희 아버지가 1959년생이시니 굉장히 긴 역사를 자랑하는 차인 셈이죠. 이어서 보이차들도 차례대로 맛봤습니다. 이번에 티쿱스토어에서 기획상품으로 개발한 '지유복천차'도 맛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보이차에 각종 한약재를 조합해 만든 건강차(양생차)라고 합니다. 가격이 좀 후덜덜하긴 한데, 몸에 좋다고 하니 탐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오늘은 일단 시음으로 만족하는 걸로... ^^;



교육 중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펑펑 내리더군요. 마침 수업장소인 정품관이 창덕궁 바로 앞에 위치한 데다가, 4층 건물이라 그런지 창덕궁이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눈 내리는 고궁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려니 운치 있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차예사 선생님의 말을... 대부분 한 귀로 흘려보낸 것 같습니다 ㅠ.ㅠ 그 풍경에 자꾸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더군요.



아무튼 오늘도 귀한 차 실컷 마시고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유명차 종로점에 들러 원미소타 한 봉을 추가로 샀습니다. 이거 차맛을 한 번 들이니 자꾸 지갑을 열게 되는군요. 평생 좋아하는 차를 실컷 마시려면 역시 돈부터 벌고 봐야... 흑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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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한창 커피에 푹 빠져 살았었는데요, 얼마 전부터 커피 대신 차(茶)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사실 무예24기를 가르쳐주시던 사부님께서 보이차의 효능을 열심히 말씀하고 다니셔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실제로 수련 전후로 보이차를 직접 끓여주셔서 몇 번 얻어 마시다보니 저도 보이차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부님 따라 차회도 가보고 보이차도 사서 마셔봤는데요, 제 성격이 원래 한 번 꽂히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보이차도 마시다보니 '제대로 알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맛과 향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지, 어떤 차호로 우리는 것이 좋을지, 각 차의 특징은 뭔지... 아무래도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때마침 '티쿱스토어'란 곳에서 제1기 발효차 교육을 실시한다는 광고를 냈더군요. 정규 차예사 과정은 50만원 정도 하는데 반해, 이번 교육은 단기 과정이라 6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로 차 이론을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요. 선착순 모집이라길래 하루 고민하고 바로 다음 날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사실 사부님은 "차라리 그 돈으로 차를 사먹으라"며 "차는 이론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많이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수강신청했습니다.




교육은 총 2주에 걸쳐 4강(매회 100분: 이론 60분+실기 40분)으로 구성됐는데요,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반이 있고 토요일에 몰아서 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대신 토요반은 일주일에 두 번 할 것을 한 번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강의시간도 한 번에 3시간으로 책정됐더군요. 장시간 수업을 들을 자신이 없긴 했지만, 토요일이 제일 프리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보단 한 번 가는 게 편해서 토요반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4일 토요일, 첫 강이 열렸습니다. 강의는 창덕궁 앞에 위치한 '한국문화정품관'이란 곳에서 진행됐습니다. 오늘은 첫 날이라 발효차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차의 기원, 분류, 갈래, 쓰임)과 녹차&홍차에 대해 배웠습니다. 남자 차예사 한 분, 여자 차예사 한 분 이렇게 둘이서 강의를 진행하셨는데요, 남자 차예사 분께서 이론 설명을 하는 동안 여자 차예사 분은 끊임없이 차를 우려내주셨습니다. 



이론 설명을 듣다보니 다들 궁금한 것도 많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많아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난해하더군요. 커피도 어렵지만, 차란 것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단기 과정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사부님의 말씀이 슬슬 이해도 가더군요. 실제로 강의를 해주신 차예사 분들도 "우리는 어릴 적부터 주입식 교육을 많이 받아서 자꾸 교과서적인 접근을 한다"면서 "차는 일단 많이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나중엔 이론 설명을 그냥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듣듯 편하게 들으면서 우려주시는 차를 마시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처음엔 보이차로 워밍업을 하고 이어서 우롱차->녹차->홍차 순으로 차를 시음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보이차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 차를 마시는 순서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차는 발효도가 낮은 순부터 높은 순으로 마셔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향도 옅은 차에서 점점 진한 차로 가야한다고 하고요. 맨 마지막엔 보이차를 마시면서 기운을 정돈해줘야 몸이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잘못 마시면 밤에 잠도 못자고 괴롭다고 하네요. 그런 설명을 들으니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뭣보다 가장 인상 깊은 얘기는 차에 담긴 오행의 원리였습니다.


녹차: 木의 기운 / 뻗침의 성질 / 각성 효과 / 변비 해소 / 소화 작용 (위)

홍차: 火의 기운 / 올림의 성질 / 각성 효과

우롱차: 土의 기운 / 풀림의 성질 / 소화 작용 / 안정 효과

백차: 金의 기운 / 응축의 성질 / 집중 효과

보이차: 水의 기운 / 내림의 성질 / 소화 작용 (장) / 상성하허(上盛下虛)


이렇듯 차마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하나만 마시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날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맞는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위가 더부룩하면 녹차를 마시고,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아프면 보이차를 마시면 된답니다. 중국인들은 더울 때 홍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홍차는 火의 기운이 있어 습한 여름에 마시면 몸의 습기를 건조시켜줘 더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이열치열의 원리인 셈이죠.


현대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차는 보이차가 아닐까 해요. 상성하허라는 말처럼, 현대인들은 머리 쓸 일도 많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아서 기운이 자꾸 머리로 올라오는데 보이차를 마시면 이 기운을 아래로 내려준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의 복원력을 높여줘서 각종 병이 침투할 수 없는 튼튼한 면역체계를 세워주기도 하고요.


실제로 이론 설명을 들으면서 차를 마시니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된 보이차를 마시면 허리와 등줄기가 훈훈해지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반응이 느껴지더라고요. 친절한 차예사님들의 설명에 얹어 귀한 차들을 마시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교육을 들으면서 심오한 차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개완이나 표일배로 간단하게 차를 우려마셔왔는데, 보이차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자사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자사호는 중국 강소성 의흥의 서남부 지역에서만 나는 자사라는 독특한 광물질로 만든 차호입니다. 희소성에 더해 수공예 작품이라 작품성까지 더해져 가격이 만만찮은데요, 이날 제가 본 자사호들도 최저가격이 7만원부터 시작해서 비싸게는 800만원 짜리까지 있더군요. 7만원도 학생 신분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어차피 한 번 장만하면 평생 마실 수 있으니 큰 맘 먹고 질렀습니다. 


오늘 강의 내내 차를 우려내주신 이정수 차예사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자사호 특징을 설명해주시면서 괜찮은 제품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자사호를 사고 나니 자꾸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내친 김에 개완과 찻잔 그리고 자사호를 닦을 때 써야 한다는 차건(수건)까지 샀습니다. 무려 8만 5천원이 나왔네요. 서비스로 우롱차 티백을 받아왔습니다.



처음엔 사놓고서도 '괜히 산 거 아닐까' 조금 후회도 되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학생 신분에 7만원은 보통 큰 돈이 아니기 때문이죠. 차에 대해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무슨 차 하나 마신다고 큰 돈 들이냐"고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혀를 차시더라고요. 그러나 막상 자사호로 보이차를 내려마시니 그 맛과 향이 정말 남다릅니다. 귀한 물건이니만큼 관리도 까다로워서, 혹여나 망가트릴까봐 조금 걱정은 됩니다만 어찌 됐건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우니 잘 샀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차 생활하려고 합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이면 2강이 있는데요, 이날도 좋은 차를 마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PS. 뜬금없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위대하고 매력적인 나랍니다. 무술, 요리, 차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저한테 중국은 너무 매력적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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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신촌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저녁까지 해결하게 됐습니다.


뭐 먹을까 고민하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허름한 국밥집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 번쩍하는 신촌 번화가 한복판에 다소 허름해보이는 국밥집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상호를 보니 '지하철 2호선보다 오래된 집'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살코기국밥이 5,500원(현금가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기에 더 끌리더라고요.


들어가서 살코기국밥 한 그릇 시켰습니다. 제가 순대국은 잘 못 먹는 관계로, 살코기국밥을 시킨 건데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국물은 순대국 국물을 그대로 쓰는 것 같은데, 평소 제가 순대국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인 누린내... 뭐 이런 게 별로 안 나더라고요. 무엇보다 고기가 정말 푸짐하더군요. 국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나니 정말 '든든하다'는 느낌이 딱 떠올랐습니다.


추운 겨울철 정말 따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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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드디어 나만의 해금을 장만했습니다. 사전에 해금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직접 가서 하나씩 만져보고 곡도 연주해보면서 자기한테 맞는 악기를 골라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더군요. 선생님께서 미리 악기사에 연락해서 제게 맞는 악기들을 몇 대 준비해놓으라고 부탁도 해놓으셨습니다.


오늘 악기사에 갔더니, 사장님께서 아마추어용 해금을 여러 대 내놓고 '2대만 고르라'고 하시더군요. 그 자리에 앉아서 일일이 조율 확인도 해보고, 스케일 확인도 하고 즉석에서 '오나라', '아리랑' 같은 곡들도 연주하면서 괜찮은 놈을 탐색해봤습니다. 솔직히 아직 초보라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꽤나 오랫동안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으려니, 사장님께서 한 말씀 하시더군요.


"촉이 오는 걸로 잡으세요. 그게 본인한테 맞는 악기인 겁니다"


그 촉이란 게 뭔지 모르겠지만, 켜봤을 때 느낌이 좋은 놈으로다가 두 대 골랐습니다. 사장님이 하나씩 직접 테스트를 해보더니 한 놈을 골라 제게 건네시더군요. 그리고 또 한 마디 하십니다.


"해금은 가르치는 선생님의 스타일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쪽 선생님한테 배우려면 이 악기가 낫겠네요"


악기면 다 같은 악기지, 촉이 온다는 것도 신기하고 지도하는 선생님 성격에 맞는 악기가 따로 있다는 것도 얼핏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저야 초보고, 이분은 국악 전문가이니 그러려니 했지요. 내심 신기했습니다. 누가 보면 해리포터가 요술지팡이 사러온 줄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금을 샀습니다. 프로용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지만, 아마추어용도 무려 55만원이나 하네요.


그동안은 대여 방식으로 중고 해금을 빌려 연습을 해왔습니다. 큰 맘 먹고 시작했지만, 언제까지 배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뜻 고가의 해금을 산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탓입니다.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연장을 해오다가 어느새 또 추가 연장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더군요. 고민하다가 이젠 그냥 한 대 사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변이 없는 한, 꽤나 오래도록 배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매주 해금을 배우러 서울-부천을 왔다갔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돈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별 불만 없이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건, 그 과정을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해금을 배우는 건 여전히 녹록치 않습니다. 반 년 이상 배웠지만 아직도 기본기를 완벽하게 숙달하지 못해 고생 중입니다. 몇 개월 전에 배운 '오나라'와 '아리랑'을 아직도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합니다. 그럼에도 지루함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부단히 연습해서 간신히 칭찬 받을 정도가 되면, 선생님은 여지없이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십니다. 그럴 때면 또 한숨이 나오죠. 다시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합니다. 어느 정도 연습해서 이제 좀 된다 싶으면 얼른 선생님께 가서 검사를 받고 싶습니다. 마치 칭찬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처럼요. 


해금은 정직합니다. 연습을 안 하면 남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못 따라가 쩔쩔 매는 쪽팔림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력을 해야합니다. 선생님 앞에서 검사를 받을 때, 적어도 내가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안도합니다. 혹여 칭찬이라도 받게 되면 날아갈 듯 기쁘고요. 그런 맛에 해금을 배우러 다니는 것 같습니다.


진도 욕심을 버린 것도 해금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듯 합니다. 스스로 둔재임을 인정한 탓에 오히려 기본기의 완벽한 숙달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곡도 벅찬데, 선생님께서 새 곡을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마음 같아선 선생님께 기본기 교정만 집중적으로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 와서 음대 입시를 준비할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해금 공연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즐긴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배움이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예랑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네요. 예전엔 초식 하나라도 더 빨리 배우고 싶었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안 가르쳐주시면 크게 실망스러워 하기도 했었죠. 지금은 그런 마음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래서 형의권을 수련하면서도 지루함을 별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질보 한 걸음을 내딛더라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완벽하게 숙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올바른 길로만 걷자는 게 제 신조가 됐습니다. 스스로 둔재임을 인정하니까 마음도 저절로 비워지더라고요.


여하간 올해 전역하기 전에 이런 저런 버킷리스트를 적어봤는데, 해금 배우기는 바로 그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스스로 실천했고,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낍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형의권 배우기'라는 새로운 버킷리스트도 실천했네요. 둘 다 꾸준히 배워서 내년 이맘때쯤 스스로에게 또 한 번 대견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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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회(茶會)란 곳에 다녀왔습니다.


말그대로 차예관(찻집)에 모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정기적으로 존재하는 모임이 아니라, 그냥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가면 그게 차회고, 찻집 네트워크를 따라 초면의 사람들끼리 모여 차를 마시면 그게 또 차회가 되곤 합니다.


집에서 마시던 보이차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찻잎을 새로 사기 위해서라도 차관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회를 연다고 하니 같이 가보자"고 권유받아서, 함께 다녀왔습니다. 차회가 열린 장소는 보이차 전문점인 지유명차 청담점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갔던 인사점과는 달리 독립된 점포가 있어서 규모가 큰 편이었습니다. 보이차와 차구(茶具: 차를 내리는 도구)가 정말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가격들이 후덜덜하더군요. 눈에 탐나는 것만 보이면 가격 생각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저조차도 수십 번씩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들이었습니다. 보이차를 내려마시는 자사호(찻주전자)가 최소 7만원에서 비싸게는 120만원까지 있더군요. (물론 그보다 더 비싼 자사호도 얼마든지 많다고 합니다) 보이차 역시 '차테크'란 말이 존재할 정도로 가격대가 다양한 편이지요.



커피가 그랬듯이, 차를 내려 마시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도구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개완(중국식 찻잔)이나 표일배(간편하게 내려마시는 휴대용 도구)를 통해 차를 내려마십니다만, 정말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갖춰야 할 도구들이 꽤 많은 편입니다. 어차피 평생 마실 차라면 도구를 언젠가 갖추긴 해야할 터인데, 솔직히 아직까지는 차 구매를 소비 1순위로 맞추기엔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도구가 좋은지도 잘 모르는 터에 무작정 지르고 보기에 가격 데미지도 너무 큰 것 같고요. 


이날 차회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쪽 점장님도 "일단은 도구 욕심 내지 말고 지금 있는 도구로 차만 열심히 마시라"고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이런 차회에 자주 와서 다양한 도구로 차를 내려마시다보면, 자연스레 경험으로 터득하게 된다고. 도구는 그때 가서 사도 괜찮다고 하네요. 아쉬운대로 일단 찻잎만 사왔습니다. '지유소타'라는 보이찻잎과 '매점'이라는 우롱찻잎을 데려왔습니다.



(가격대가 얼마로 보이시나요. 저 작은 자사호가 120만원, 파란색 개완이 40만원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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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권 수련을 시작하면서 근처 싸고 괜찮은 맛집을 찾아봤습니다. 수련시간대가 애매해서 아무래도 자주 저녁을 밖에서 해결해야 할 듯해서요. 일단 저렴한 가격에 맛과 양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곳으로는 관청 구내식당만한 곳이 없죠. 마침 수련터에서 10분 거리에 마포구청이 있더군요. 당연히 구내식당도 있었고, 일반인들에게도 개방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주민들에게 인기만점인 곳이더라고요. 저렴한 가격에 맛이 괜찮다보니 구청 직원들보다도 일반인들의 발길이 더 잦다고... 오죽하면 식당 측에서 시간 문제로 공무원 우선 배식하다보니 그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있을 정돕니다. (개인적으론 그게 맞다고 봅니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을 쪼개서 나온 건데 주민들 때문에 기다리다가 밥을 못 먹거나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먹어야 한다면... 이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여하간 어제 그래서 한 번 가봤습니다.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더군요. 원래는 두 가지 요리 중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어제는 한식 하나만 제공하더군요. 아마 점심에만 그렇게 하고, 저녁은 일원화해서 제공하나 봅니다. 가격은 부천시청 구내식당과 동일하게 3,800원이었습니다. 메뉴는 짜장밥이었고요. 뷔페식이라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떠먹을 수 있었습니다.



맛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생각보다 아쉬웠습니다. 부천시청 구내식당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더군요. 부천시청 구내식당은 공간이 매우 넓고 사람이 한적한 편이라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가 있는데, 여긴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아주 바글바글합니다. 그리고 직원들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은 것 같더군요. 심지어 엄마들이 애기들 데리고 무진장 많이 옵니다. 공무원 우선 배식이라는 제한을 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반찬의 가짓수도 부천시청보다 적었고, 메인반찬의 경우는 자기가 떠먹지도 못하고 직원이 주는 것만 받아먹어야 합니다. 더 달라고 해서 받아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찬 리필이 상당히 눈치보이는 건 사실이죠. 부천시청처럼 처음에 자기가 받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뭐 전문식당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구내식당이니까 그러려니 이해를 합니다. 부천시청과 달리 주민들의 수요가 많다는 점도 공급에 영향을 끼쳤겠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오나 봅니다. '컵 반출금지'라는 카드도 붙어있습니다. 누군가 컵을 가져가긴 했다는 건데.. 참 구질구질하네요. 그깟 컵 얼마나 한다고... 아무튼 근처에서 저녁 해결할 일이 있거든, 여기가 저렴하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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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교습소 근처에 이마트 중동점이 있어 간 김에 가끔씩 들러 쇼핑을 하곤 합니다. 제가 좋아라하는 각종 주류들도 즐비하고, 먹을 것도 많아 애용하는 편입니다. 올 가을까지 뭔 공사를 한다고 천막을 쳐놓더니, 얼마 전에 가보니까 '일렉트로마트' 라는 게 1층에 새로 생겼더군요. 이마트 브랜드로 운영하는 전자제품 전문 마트인 듯 합니다. 모든 이마트에 있는 게 아니고, 전국에 9개 매장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마트 쇼핑할 때마다 한 번씩 스쳐지나가는데, 어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이쇼핑을 즐겼습니다. 입에서 연신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오더군요. 관심 없이 볼 때는 몰랐는데, 관심 갖고 찬찬히 훑어보니 신기한 제품들이 잔뜩 있습니다. VR, 드론, 액션캠 등등... 가히 전자제품계의 혁신을 불러온 상품들을 보다보니 "이렇게 세상이 발전했구나" 싶습니다. 몸은 2016년에 살고 있는데, 머리는 여전히 조선시대에 살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이미 한참 전에 나온 전자기기들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백면서생이지만 그래도 급관심이 생기더군요. 몇몇 제품들은 도저히 그 용도를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만지작 거리기만 했습니다.


안그래도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노트북 한 대 없는 게 생각보다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노트북 한 대 마련할 생각이었는데, 다음에 일렉트로마트에서 한 대 구입할 생각입니다. 어제도 노트북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왔는데, 차이점은 잘 모르겠네요.. ㅋ 그래도 탐나는 컴퓨터 제품들이 참 많데요. 특히 옛날 타자기를 본따 만든 블루투스 키보드와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키보드는 참 탐이 났습니다.



대형 TV도 있었는데요, 마침 TV를 구경하던 한 가족이 "내가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하길래 자연스레 시선이 가더군요. TV가 크고 좋아보이는 건 알겠는데... 헉... 가격이 무려 3,200만원입니다. 세상에 무슨 TV 한 대가 차 한 대랑 맞먹는 가격인지...



피규어 매장에는 엽문 피규어도 있었습니다. 엔터베이 제품인데 이건 45만원이네요. TV나 피규어나 너무 비쌉니다. 뭐 이걸 취미로 하시는 분들껜 당연한 가격일 수도 있겠지만, 저와 같은 문외한 입장에서는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밖에는... 이렇게 말하는 저조차도 거금을 들여 병장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그 사람들 눈에는 똑같이 보이겠죠 ㅋㅋㅋ



'일렉트로바'라는 것도 있습니다. 전자제품 매장에 왠 '바(Bar)'일까 싶긴 한데, 양주와 고량주 등 주류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고, 특히 미니어처들은 아기자기하기까지 합니다. 지나가는 손님들이 여기서 칵테일이나 맥주 한 잔 하면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네요. 아직 도전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혼자 술 마시기는 좀....



여하간 신기한 제품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비쌉니다 (...)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궁해서 그렇지, 누군들 얼리어답터가 되고 싶지 않겠습니까.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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