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주차 강의의 주제는 '커핑 테스트'.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것을 '커핑(Cupping)'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커피의 맛과 향을 감별하여 좋은 품질(=등급)의 커피를 골라내는 테스트를 '커핑 테스트'라고 한다. 그래서 테스트는 커피의 산지와 원두를 가린 채, 블라인드 테스트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커핑 테스트를 하는 전문 감별사를 '커퍼'라고 부른다고 한다. '커피 소믈리에'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무궁무진한 커피의 세계


이런 커퍼는 굉장히 생소하고 어려운 직종이라, 국내에는 커퍼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공인시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커퍼들은 대개 해외로 나가서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온다고. 바리스타 자격증만 취득하면 모든 커피의 마스터가 되는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더 어려운 커퍼의 단계가 있다는 이야기에, 커피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구나 새삼 깨달았다.


여하간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커핑 테스트란 것을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설명을 들으면서도 우리가 이걸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커피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블라인드 테스트로 감히(?) 커피의 맛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 자시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강사쌤도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를 보고,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어디까지나 체험일 뿐이고, 정답도 없는 거니까 제발 부담갖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점수를 줘라. 그냥 마음에 드는 커피에 높은 점수를, 마음에 안 드는 커피에 낮은 점수를 주면 된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커핑 테스트를 위해 테이블에 원두를 블라인드한 채 A, B, C로 나누어 각각 두 잔씩 총 6잔의 커피가 놓였다. 한 커피당 굳이 2잔씩 배열한 이유는, 한 커피를 여러 잔 나누어 마셔봐야 좀 더 확실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한 잔에 결점두가 있어 맛과 향이 안 좋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보통 한 커피당 4~5잔 이상을 내려놓고 평가한다고.



[Tip] '커핑 테스트' 채점표 용어설명


1. 프레이 그런스 (=Dry)

: 마른 향을 의미함. 원두가루를 컵에 담아 그대로 향을 맡음. 다만 코를 컵에 가까이 들이대고 훅 들이마시면 코에 들어갈 수 있으니, 한 손바닥으로 바깥 면을 감싸고, 휘저어 간접적으로 향을 맡음.


2. 아로마 (=Cup)

: 젖은 향을 의미함. 원두가루가 담긴 컵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1분 정도 지난 뒤 테스트. 커핑 테스트용 스푼으로 컵 위에 올라온 막을 살짝 밀어서 걷어내고 그 사이로 올라오는 향을 맡음. 이 과정을 스니핑(sniffing)이라고 한다.


3. 노즈

: 맛을 의미함. '신맛', '쓴맛' ,'단맛', '바디'로 나누어서 평가를 하며, 테스트용 스푼에 50원짜리 동전만큼 커피를 담아 맛을 봐야 함. 이때 그냥 맛을 보는 게 아니라, 위아래 입술을 붙이고 이 사이로 '츄웁'하며 순간 흡입하여 목울대까지 커피가 도달하게 해야 함. 그때 느껴지는 맛을 평가함. 이 과정을 슬러핑(slurping)이라고 한다. (참고로 실제 전문가 테스트에서는 '쓴맛'이 없고 '짠맛'을 평가한다고 함. 하지만 우리는 초보기에 짠 맛을 느낄 정도가 못되어서 쓴 맛으로 대체)

 

4. 애프터 테이스트

: 커피를 다 마신 후, 입안에 남는 뒷맛(여운)을 평가함.


첨부한 짤방이 내가 A, B, C 커피를 마신 뒤 내린 채점표다. (괄호 안의 냄새는 각 커피의 향을 느끼고 쓴 주관적인 특징이다) 점수는 최대 +10점부터 -5점까지라고 하는데, 안그래도 매기기 힘들어 죽겠는데, 편차마저 이렇게 크니.. 진짜 막 써냈던 것 같다. 강사쌤이 내 채점표를 보더니 "왜 이렇게 마이너스가 많냐"면서도 "C커피가 제일 좋은가보다"고 했다. 


사실 마른 향을 맡았을 때 별로였던 커피가, 젖은 향을 맡았을 때 더 좋은 경우도 있고, 맛에서도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어서 섣불리 뭐가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힘들었다. 강사쌤도 "너무 깊게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본인이 확 당기는 커피에 좋은 점수를 팍팍 주고, 본인 입맛에 안 맞는 커피에는 마이너스를 팍팍 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C커피에 점수를 팍팍 주고, 별로다 싶은 A, B 커피에는 마이너스를 잔뜩 안겨주었다.




커피의 특징을 알아맞히다


커핑 테스트가 종료된 후에 각자 어느 커피가 좋았는지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다. 오늘 수업에 참여한 인원은 나까지 총 7명이었는데 A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3명, B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2명, C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2명이었다. 각자 좋았던 이유를 설명하고, 강사쌤이 어떤 커피였는지 차례차례 공개했다.


일단 세 커피 중 가장 비싼 커피는 A커피라고 한다. A커피는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로, 산미가 도드라져 제일 등급이 좋은 커피라고 한다. 실제로 A커피는 마른향에서 '고추씨 볶는 냄새'가 날 정도로 스파이시한 향이 강한데, 이처럼 특징이 강한 커피일수록 실제로 높은 등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B커피는 세 커피 중 가장 등급이 떨어지는 커피였다. 바로 대표적인 로브스타 커피의 나라 베트남의 커피였다. 그래서 쓴 맛이 제일 강하게 느껴지고, 향과 맛도 없었다. 대신 누룽지 숭늉 끓인 것마냥 구수한 맛이 강하게 났는데, 이게 바로 로브스타 커피의 특징이라고 한다. 로브스타 원두는 인스턴트 커피의 주재료가 되는데, 우리가 로브스타 커피를 구수하게 느끼는 이유도 워낙 인스턴트 커피를 자주 마셔서 '익숙한 맛'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 커피는 끝맛이 텁텁하다고.


마지막으로 C커피는 특징이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향이 좋고 바디가 가벼워 산뜻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살짝 '고구마향'이 난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느끼지 못했다. 여하간 여성이 좋아하는 커피라고 하는데, 이 커피가 바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였다.


강사쌤은 커피의 특징만으로도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며, 특징이 강하고 바디가 묵직한 A커피는 '남성성'이 강한 커피고, C커피는 '여성성'이 강한 커피라고 했다. 나는 C커피가 더 산뜻해서 내 입맛에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나는 여성성이 강한 건가.


오늘 커핑테스트를 하면서 신기했던 건, 어쨌거나 내가 느낀 맛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커피를 더 선호하느냐는 개인의 기호에 따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각 커피의 특징은 정확히 캐치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강사쌤이 내가 느꼈던 특징을 고스란히 언급하시는 것이 아닌가. '고추씨 볶는 냄새'도 그렇고, A커피에서는 신 맛이 도드라지고, B커피에는 쓴 맛이 도드라지고, C커피에서는 바디가 가볍다는 것까지... 내 입맛이 아주 둔하지는 않구나 싶어 뿌듯했다.


착한 커피의 의미


강사쌤은 오늘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아라비카'와 '로브스타'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의 주재료가 값싸고 질이 떨어지는 로브스타 원두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커피를 배우면 배울수록 로브스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단다. 


그렇다고 로브스타가 마냥 나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단다. 베트남 커피에서도 느껴지듯이, 로브스타에는 '구수함'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미 유럽에서는 로브스타 원두를 같이 블렌딩하여 구수한 맛을 내는 커피도 유행을 하고 있단다.


하지만 분명한 건, 로브스타 원두를 적당히 섞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길거리에서 '착한 커피'라고 해서 1,000원, 1,500원에 파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커피값에는 브랜드값도 포함되어 있어 어느 정도 거품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커피에는 인스턴트용 로브스타 원두를 잔뜩 블렌딩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커피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맛을 보고 구수한 맛이 느껴지면 로브스타라 판단하고 더 먹지 말아야 한단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져 그 맛이 구수하다고만 생각하고 오히려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건 착한 커피라고 할 수 없단다. 진정한 의미의 착한 커피는 좋은 원두를 넣고 싸게 팔아야 착한 커피라고. 


그리고 아라비카와 로브스타는 카페인 함량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는데, 보통 2~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로브스타 커피를 많이 마시면 카페인 과다섭취로 건강에도 좋지 않단다.


결국 좀 비싸더라도 건강과 내 입을 생각한다면, 등급 좋은 아라비카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 그것이 오늘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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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백수인 저한테 그래도 가장 바쁜 날이 있다면, 화요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낮에 부천으로 해금을 배우러 가고, 해금 수업이 끝난 뒤에는 곧장 집 근처 문화센터로 가서 홈바리스타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저녁에 중앙대학교에서 '활쏘기 특강'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화요일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정신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하간 해금 수업이 끝난 뒤에는, 홈바리스타 강의 시간까지 텀이 참 애매합니다. 그래서 보통 해금을 10~20분 정도 더 연습하고, 근처 식당에 들러 급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에 바로 문화센터로 가면 시간이 딱 맞곤 합니다.


오늘도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 학원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요, 마침 학원이 부천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근방에 식당은 많은 편입니다. 오늘도 그래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러시아 요리 전문점'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저는 흔히 먹는 음식보다는 매 끼니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하거든요.


식당에 들어서니, 러시아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종업원들 역시 전부 러시아 출신인 듯 했습니다. (살짝 동양계의 모습이 보이는 게 고려인 동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지라, 식당 내부는 한가했는데, 다소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온 러시아인들도 몇 명 있더군요.


테이블 하나 잡고, 메뉴판을 받아서 펼쳤는데 메뉴만 봐서는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요. 메뉴 아래 간단한 설명이 있긴 한데... 그래도 무난해 보이는 '먀소 브 클랴레'라는 요리를 메인요리로 주문했습니다. 튀긴고기 요리라고 하는데, '돈가스'와 흡사하다는 설명만 듣고서 바로 주문했죠. 



그리고 메인요리를 주문하면 사이드메뉴가 무료라고 해서 '러시아 식빵'을 골랐는데, 서빙하시는 분이 "클랴레에는 러시아 식빵보다는 으깬 감자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해서 그럼 그걸로 달라고 했습니다. 이대로 메인요리만 먹기에는 아쉬울 것 같아서 '캄포트'라는 음료도 주문했습니다. 총 8,000원이네요.


근데 막상 요리가 나오니까... 비주얼이 돈가스가 아니라 오믈렛이예요. 근데 한 점 썰어서 먹어보니, 맛도 진짜 오믈렛입니다. 제가 아는 돈가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계란옷을 입혀 구워낸 돼지고기 오믈렛이었습니다. 소스도 그냥 케쳡이었구요. 



솔직히 맛도 저한텐 별로였습니다. 돈가스와 같은 바삭함도 없고, 돼지고기가 질겼습니다. 계란에 소금이 뭉쳤는지 먹다가 갑자기 짠맛이 확 나기도 했고요. 캄포트라는 음료도 러시아식 과일주스라고 하는데, 밍밍해서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사이드메뉴로 나온 으깬 감자가 차라리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뭐 다른 요리들도 있으니까, 섣불리 이 집이 맛없다고 평가할 순 없겠고요. 그래도 다른 테이블에 올려진 요리들을 보니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요리들도 많던데, 기회가 된다면 다른 요리에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오늘은 그냥 제가 메뉴를 잘못 선택했다고 봐야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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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은 지난 번에 이어 보라매역 인근에 있는 '커피공방 멜란지'에서 열렸다.


오늘은 '핸드로스팅'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지난 주 수업 말미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강사님이 계속 "오늘 정말 더울 거다. 그래서 가볍게 옷 입고 오라고 하지 않았나"라며 겁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로스팅(볶기) 작업이라 계속 불 앞에서 작업을 해야하니 덥긴 덥겠지만,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다.



핸드로스팅이란?


아무튼 홈바리스타 강좌를 듣기 시작한 지 8주차에, 드디어 처음 생두(원두가 되기 전 상태)를 만져보았다. 냄새도 맡아보고, 한두 알 입에 넣어 씹어도 보았는데, 정말 원두와는 맛과 향이 완전히 달랐다. (향은 미세하게 났지만 거의 안 난다고 보는 게 맞겠다) 단순히 가열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이렇게 맛과 향이 차이가 난다니, 참 신기했다.


핸드로스팅이란 말그대로 '손으로 커피콩을 볶는 것'을 의미한다. 로스팅의 단계는 총 9단계로 나뉘는데, 초기 3단계를 약배전(약로스팅)이라 하고, 중간 3단계를 중배전(중로스팅), 마지막 3단계를 강배전(강로스팅)이라 부른다고 한다. 어느 단계로 볶아야 한다는 정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기호에 따라 로스팅 단계는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야하며, 각 단계에 따라 추출하는 커피의 종류도 다양하다고 한다. 우리가 수업 때마다 마시고 있는 드립커피는 중간 단계로 로스팅하고 있으며, 마지막 3단계 강로스팅은 진한 에스프레소용이라고 한다. 결국 로스팅을 강하게 할수록 맛과 향이 더 강해진다는 얘기다.


단순 반복의 연속, 결점두 골라내기


우리는 본격적인 로스팅에 앞서, 모아놓은 생두에서 결점두(불량콩)를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모양이 마냥 못생겼다고 버리면 마실 게 없으니, 못생겼다고 막 골라내지 말고, 정말 이상하다 싶은 것들(속에 벌레 생기고, 곰팡이 낀 것들, 깨진 콩들)만 골라내라고 했는데, 해봤어야 알지... 하다가도 '내가 무슨 기준으로 콩들을 골라내고 있는 걸까...' 싶었다. 아무튼 내 기준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결점두를 골라내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나만의 기준이 생겨서 막 골라냈는데, 함께 수업 듣는 아주머니가 "이렇게 다 골라내면 먹을 게 없어"라고 하시면서 골라낸 콩들 중 다수를 다시 섞어버렸다. 음...


그리고 4명이서 한 테이블을 잡고, 각각 다른 로스팅 기구를 이용해 핸드로스팅을 해보았다.


<로스팅 기구 종류>


1. 도기 : 도자기 재질로 만들어진 팬으로, 예열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예열이 끝나고 나면 다른 기구보다 훨씬 로스팅 속도가 빠르다. 또한 콩을 집어넣고 배출하는 구멍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막혀있어 먼지가 날리지도 않아 청소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도자기라 무겁고, 열전도가 빨라 뜨거워서 오래 잡고 있질 못한다.


2. 통돌이 :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철제 기구로, 콩을 넣고 손으로 계속 돌려가며 콩을 볶는 방식이다. 큰 힘이 안 들고 편하지만, 사방으로 콩껍질이 날리고 연기도 많이 나서 가정용으로 쓰기엔 불편하다.


3. 수망 : 냉면 거름망처럼 생겨서 가볍고 편하나,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도기와 통돌이가 이미 로스팅을 마친 뒤에도 한참을 더 볶아야 비로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로스팅의 순서


로스팅의 순서는 먼저 생두를 계속 볶아대는 '흡열반응'으로 시작한다. 이때는 생두가 열을 흡수하는 단계라고 한다. 그러다가 '발열반응'이 오기 시작하는데, 더 이상 열을 견뎌내지 못한 콩이 열을 밖으로 방출하는 것이다. 이를 '크랙'이라고 하는데, 팝콘 터지는 소리처럼 '딱! 딱!' 소리가 나서 '팝핑'이라고도 한단다.


이 발열반응은 1차, 2차로 나뉘며, 1차에서 팝콘 터지는 소리가 난 뒤에도 계속 볶다보면 2차 반응이 온다. 2차 반응의 소리는 1차와는 달리 모닥불 타는 '타닥타닥' 소리가 나며, 이 2차가 왔을 때 즉각 로스팅을 멈추고 쿨링(급속냉각)하면 드립용 중로스팅 원두가 탄생하고, 2차 소리가 온 뒤에도 불을 올려 계속 볶게 되면 또다시 '타다다닥' 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때가 강로스팅 단계라고 한다.


이처럼 로스팅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감각(촉각, 시각, 청각, 후각)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나도 오늘 로스팅을 해보니 확실히 재미는 있는데, 이걸 집에서 매번 해먹는 건 결코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집에서 핸드밀로 원두를 직접 갈아 드립해서 먹는 것도 가끔은 번거롭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데, 생두를 볶는 작업까지 해야한다고 한다면... 웬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매번 해먹기는 힘들 것이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 말 그대로 '갓 볶은 커피'는 바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향과 맛도 별로 없거니와 이산화탄소로 가득차서 건강에도 매우 안 좋다고. 적어도 2~3일은 숙성시킨 뒤에 먹어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로스팅을 마친 원두에서는 향이 그닥 나지 않았다. 이게 3일 정도 지나야 비로소 지금 우리가 마시는 원두의 향이 난다고.



커피 한 잔에 담긴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


여하간 오늘 핸드로스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세상사 결코 쉬운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커피의 가치를 너무 가벼이 여겨왔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커피가 너무도 흔한 음료로 자리잡고 있다. 식당, 사무실 등 어딜 가도 믹스커피 한 박스가 하나씩 구비되어 있고, 집 밖을 나서면 온통 한 집 건너 전부 카페들이다. 이렇게 커피는 현대인들에게 밥 먹고 입가심용으로 가볍게 한 잔 하는 '식후땡'으로 자리잡은 지 꽤 오래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참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하니 결코 커피의 가치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되겠다 반성해본다.



커피는 참 매력적인 음료다. 그래서 끝까지 정복해보고 싶은 욕구가 든다. 단순히 바리스타 자격증을 노리고 커피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이 커피라는 음료의 모든 것을 정복해보고 싶다. 그 길이 험난하겠지만,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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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위대태껸 서촌모임 참관 후에, 시청역 근처 강서면옥에 들렸더랬습니다. 여기 평양냉면이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이 났는데, 언제고 한 번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에 '강서면옥'을 검색하면 뜨는 업체정보에는 이런 설명이 있는데, 얼마나 맛있으면 저럴까 싶어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정통 이북식 강서면옥의 맛은 서소문 근처 청와대까지 소문이 흘러 들어갔습니다. 총까지 들이대며 다짜고짜 육수 만드는 것을 공개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주방을 지켰습니다. 50년 동안 이뤄온 냉면 맛에 대한 모욕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청와대 직원들도 두 손 들었고, 육수만 국립과학연구소로 들어가 성분검사를 마친 뒤 냉면의 청와대 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강서면옥의 단골 아닌 단골이나 다름없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냉면이라고 해서 별다르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일반 손님이 먹는 냉면과 똑같았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때면 으레 강서면옥으로 주문이 옵니다. 평양에서 온 북측 대표들에게 이북의 맛이 살아 있는 강서면옥의 냉면은 인기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대개는 시대에 따라 약간씩 강한 맛으로 냉면 맛도 변하게 마련인데 강서면옥의 냉면 맛은 오랫동안 한결 같습니다.


사실 몇 주 전에도, 덕수궁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점심을 먹으러 여기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기다릴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물론 기다릴 여유도 없었고요. 


이번에 서촌에서 걸어서 시청역까지 오다가, 퍼뜩 강서면옥이 떠올랐습니다. 날도 더운데 생각난 김에 다시 한 번 가서 도전해보자 하고, 갔습니다. 



이번엔 아예 홀이 텅텅 비었네요. 아무래도 그때는 평일 점심시간이라 직장인들 때문에 그렇게 줄이 길었나봅니다. 주말 저녁에는 손님이 없네요. 어느 때건 한결같이 사람들로 바글거려야 진짜 맛집일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드넓은 홀에 혼자 앉아 '평양냉면'을 주문했습니다.


근데 여기... 무려 냉면 한 그릇의 가격이 12,000원입니다. (함흥냉면은 11,000원) 사실 이 가격 때문에 엄두가 안 나긴 했습니다만, 제 신조가 '먹기 위해 산다' 라서요. 원래 식탐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저란 사람은 식도락(食道樂)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1년 9개월 동안 식사권(?)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맛 없는 짬밥만 줄기차게 먹어댄 통에, 밖에 나가면 아무리 비싸도 먹는 데는 돈 아끼지 말자고 다짐했던 터였습니다.


주문하고 15분 정도 지나서, 드디어 등장한 평양냉면. 



비주얼은 이렇습니다.


면발이 메밀이라 찰져서 잘 넘어가더군요. 개인적으로 냉면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면발 때문입니다. 보통 냉면의 면발에는 전분이 많이 들어가서 질깁니다. 그래서 가위질이 많이 필요하죠. 전 이런 면은 목이 잘 멕히는 관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근데 여기 평양냉면은 메밀이라 굳이 가위질을 할 필요 없이도, 먹기 편했습니다.


그리고 육수가 참 괜찮았습니다. 약간 슴슴한 듯하면서도 진하게 우려낸 육수의 맛이 냉면의 맛을 살려주더군요. 솔직히 겨자랑 식초를 넣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이 냉면은 그냥 이 상태 그대로 먹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일부러 오리지널로도 먹어보고, 식초와 겨자를 조금씩 넣어가며, 다양한 버젼(?)으로 냉면을 즐겼습니다.


개인적으로 맛은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짜 평양냉면을 맛보면, 각종 조미료의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맛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만 그래도 12,000원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브랜드가격인지, 자리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5분 만에 후루룩 먹어치우고나니 참 허망하더군요.


사실 요즘 우리네 인식 속에, 냉면이란 고깃집 가면 후식 서비스로 나오는 메뉴로 전락한 지 오래라서, 12,000원씩이나 주고 냉면을 먹는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서비스 냉면과 여기 냉면의 맛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요.


전 개인적으로는 누가 사준다고 하면 냉큼 얻어먹겠지만, 굳이 따로 찾아가서 사먹지는 않겠습니다. 아, 물론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펑펑 쓸 수준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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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딱히 강의랄 건 없었고, 지난 번에 예고했던 바와 같이 '핸드드립 경연대회'가 열렸다. 수강생 11명 중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린 사람에게 원두 한 봉지를 상품으로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지난 번에 구매한 원두가 이날 아침에 내린 커피를 마지막으로 바닥이 나는 바람에, 새로 원두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내심 '오늘 핸드드립 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해서 원두 한 봉 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원두 구입을 잠시 미루었다. 혹시 아는가. 만에 하나 다른 수강생들을 다 제치고 1등을 해서 얻게 될 지. 그러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원두 걱정이 없을 것 아니겠는가.


본격적인 드립을 하기 전에 오늘은 강사님이 직접 내려준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셨다. 오늘의 커피는 '엘 살바도르 라호야 SHG'라는 원두로 내린 커피였다. 등급을 의미하는 SHG는 지난 번에 배운 SHB와는 또 다른 개념이었는데, SHB가 'Strictly Hard Bean'으로 속이 알차고 밀도가 단단한 원두를 의미한다면, SHG는 'Strictly High Grown'으로 매우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원두를 의미한다고 한다. 찾아보니 SHB나 SHG나 큰 차이는 없는 듯 하다. 둘 다 어쨌든 고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를 의미하며, 높은 곳에서 자라날수록 밀도가 단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등급을 적용하는 나라가 다르다는 점이 차이랄까.


아무튼 커피는 높은 지역에서 자란 원두일수록 훨씬 맛있고 가치가 높다고 하며, 오늘 마신 이 라호야 커피는 카카오의 쓰고 단 맛이 나면서도 신맛도 적당히 섞여 있는 커피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 원체 미각이 둔한 것인지, 향과 맛의 특징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이어서 본격적인 핸드드립 대회가 열렸다. 원래 11명이 수강을 하는데, 한 명이 오질 않아서(아싸, 경쟁자가 줄었다!) 10명이서 대회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열린 개인전에서는 한 명씩 드립을 해서 돌려가며 맛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같은 원두를 썼음에도 사람에 따라 맛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이 참 신기했다. 같은 등급의 원두를 같은 양 넣었고, 같은 도구를 썼으니 승부는 결국 '물붓기'에서 판가름이 난 것 같다. 붓는 물의 양과 물줄기의 속도 등에서 이 미세한 맛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10명이 드립을 하는 동안, 강사님은 잘못된 드립 방법이나 잘된 드립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 원두가루 이상 물을 부으면 맛이 연해지므로 안됨 (물이 일정 이상 차면 멈추고 다음 추출을 기다려야 함)

- 2, 3차 추출시에는 물줄기가 굵어져야 함 (1차 추출시에 이미 원두가루가 불어서 물줄기를 얇게 부으면 추출이 느려지기 때문에)


사실 10명의 커피를 돌려가며 마셔봤지만, 정말 심하게 연하게 우리지 않는 이상 맛의 차이를 그닥 느끼지 못했다. 내 미각이 정말 둔하긴 한가보다. 이래서 무슨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ㅜ.ㅜ


아무튼 강사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신 덕분에... 내가 우승을 차지했다. 


강사님 曰 "전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래도 막내가 제일 잘 내렸다. 물줄기도 일정하게 잘 부었고, 드립퍼의 세 구멍에서 물이 잘 빠졌다. 좀 더 진하게 우렸으면 좋았겠지만,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며 칭찬해주셨다. 결국 커피원두 한 봉을 상품으로 득템했는데,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케냐AA' 원두를 집어들었다.



이어서 '단체전'이 열렸다. 단체전은 5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팀별 대표가 드립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가장 맛있게 커피를 내린 대표가 속한 팀 5명에게 각각 원두 한 봉씩을 상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팀은 나와 함께 유일한 남자 수강생이자, 제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대표로 나섰는데, 설마 했는데 이분이 또 우승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인도네시아 만델린 G1'이라는 원두 한 봉을 추가 득템했다. 


결국 오늘의 위너는 나였던 듯... ^^ 

커피 두 봉 들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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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가장 바쁘면서도 즐거운 날이 바로 화요일인데, '해금 수업'과 '커피 수업'이 잇달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함께 무예 배워볼과' 수업까지...) 억지로 하는 수업 같으면 화요일이 온다는 게 싫겠지만, 해금이나 커피나 내가 정말 배우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과목이거니와, 나날이 배우는 재미가 있어 몸은 고단해도 즐거운 하루다.


오늘로 벌써 홈바리스타 강좌도 6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 딱 반을 한 셈인데, 벌써 반이나 했다는 것도 놀랍고, 이제 반 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홈바리스타 강좌가 끝나면, 곧바로 정식 바리스타 자격증반 등록을 할 생각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드립퍼들


오늘은 '각종 드립퍼'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드립퍼란 핸드드립 시 서버 위에 올려놓고, 커피를 여과시켜주는 도구를 의미한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크게 4가지로 나뉜다.


1) 멜리타

: 드립퍼의 시초. 독일의 멜리타 벤츠라는 여성이 개발한 드립퍼로, 남편에게 커피를 타주기 위해 고민하다가 개발한 것으로, 구멍이 하나 밖에 없다. 그래서 물이 잘 안 빠진다는 단점이 있다.


2) 칼리타

: 멜리타 드립퍼를 개조해 구멍을 세 개 뚫은 일본식 드립퍼. 멜리타 드립퍼에 비해 물이 잘 빠지는 관계로 초보자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드립퍼의 본고장은 독일로 역수출 될 정도로 히트 친 상품이다.


3) 고노

: 원뿔형 드립퍼로 융-드립의 맛을 내기 위해 고안된 드립퍼다. 리브(드립퍼 안에 새겨진 무늬인데, 갈비뼈의 Rib에서 비롯되었다. 숨구멍 역할을 하는데, 공기를 순환시켜 물이 잘 빠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가 곧은 직선이고 드립퍼의 절반 정도 길이 밖에 안된다.


4) 하리오

: 역시 원뿔형 드립퍼지만 리브가 고노와 달리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위의 4가지 드립퍼는 드립퍼의 형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드립퍼를 만드는 제조브랜드이기도 하다. 드립퍼는 곧 '브랜드=형태'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자개발한 드립퍼가 있는데, '이정기 드립퍼'가 그것이다. 일본이 구멍 세 개 뚫은 드립퍼를 특허등록하는 바람에, 우리는 구멍을 두 개만 뚫어놓았는데, 그 드립퍼를 고안한 사람의 이름이 이정기라서, 이정기 드립퍼라 명명되었다.


커피의 기름까지 추출하는 '융 드립'


여기서 잠깐. 위에서 잠깐 언급한 '융 드립'은 무엇인가.


사실 커피에서 추출되는 커피기름은 커피의 향미를 돋구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과지를 이용한 핸드드립으로는 이 기름이 걸러져서 커피의 향미를 모두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기름까지 모두 추출되는 '천'을 이용한 드립이 고안되는데, 이 천을 '융'이라고 한다. 이렇게 천을 이용해 드립하는 것을 '융 드립' 혹은 '넬 드립'이라고 한단다. 


융 드립의 경우 기름까지 추출되는 것은 좋으나, 물이 너무 잘 빠져서 커피가 진하게 우러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드립과는 달리 '점 드립'으로 추출한다고 한다. 테두리에 조금씩 '점'을 찍으면서 붓는 기법이다. 


이렇게 추출된 융 드립 커피는 바디(입에 감기는 맛을 의미)가 풍부하여 커피맛을 내는 드립으로는 최고지만, 소재가 천인만큼 관리가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게다가 한 천당 많이 써봐야 최대 30회 정도 쓰면 버려야 한다고 한다.


이런 융 드립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드립퍼가 위에서 언급한 '고노'와 '하리오' 같은 원뿔형 드립퍼인데, 이 원뿔형 드립퍼는 원두가루를 평평하게 쌓는 것이 아니라, 소복하게 산처럼 쌓고,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물을 부어 뜸을 들이는 방식으로 드립을 한다.


우리는 강사님이 직접 원뿔형 드립퍼로 추출한 커피를 맛보았는데, 확실히 기존의 드립과 달리 같은 원두를 썼음에도 커피 표면에 기름기가 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맛도 많이 달랐다.


코스타리카 따라주 SHB


참고로 오늘 마신 커피는 '코스타리카 따라주 SHB'라는 커피였는데, 코스타리카라는 나라의 따라주에서 채취한 커피라고 한다. SHB는 예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고지대에서 자라나 밀도가 높고 단단한 원두를 의미한다. 코스타리카 커피는 화산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로, 구수한 맛이 강하고 신 맛이 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나라는 인스턴트용 커피로 활용되는 로브스타 원두 재배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은 커피 등급을 매기는 기준에 대해서도 공부했는데, 국가별로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제각각이며 일반적으로 '결점두(불량 원두)의 양', '원두의 크기, '재배 고도' 등 세 가지가 기준이 된다고 한다.


고양이똥으로 만든 커피 '코피 루왁'


곁가지 이야기로 오늘은 '코피 루왁'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식민지 무역을 하던 네덜란드는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커피를 재배하고, 열매가 열리면 죄다 거두어갔기 때문에, 정작 원주민인 인도네시아 주민들은 커피를 맛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는 루왁이라는 사향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커피 열매를 먹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화가 되지 않아 그대로 배설이 되었고, 커피가 너무나 먹고 싶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루왁의 변에서 나온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원두는 사향고양이의 뱃속에서 발효되어 그 맛이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 유명한 '코피 루왁'의 기원이며, 이 맛을 모방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동물들에게 일부러 커피 열매를 먹이기도 한다는데 '코끼리똥 커피'도 있으며, 베트남은 족제비에 커피를 먹인 '족제비똥 커피', 다람쥐에게 먹이고 배설시킨 '다람쥐똥 커피'가 있다고 한다.


다람쥐똥 커피를 맛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오늘 베트남 다람쥐똥 커피를 맛보았다. (일명 콘삭 커피) 베트남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인 로브스타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커피 원두 자체의 품질이 떨어지고, 너무 써서 연유를 타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핸드드립으로 추출하지 않고, '핀 드립'이라는 전용 드립퍼를 이용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우리는 오늘 핀 드립으로 내린 콘삭 커피를 연유에 섞어 마셨다. 커피가 너무 쓴 관계로 연유를 탔고, 인위적인 '헤이즐넛향'이 첨가된 커피였다. 달달하니 맛은 있었지만, 정말 자판기 커피 마시는 느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맛있다고 훌훌 마셨겠지만, 이제 제대로 된 원두커피를 즐기는 입장에서 이런 달달하고 인위적인 맛의 커피는 입맛만 망치는 것 같아, 몇 모금 마시고는 다 버렸다.


아무튼 오늘 강의를 통해 각종 드립퍼 종류를 배우고 나니 정말 커피의 세계는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는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더니... 홈바리스타 강좌도 이렇게 배울 게 많은데, 정식 자격증 강좌는 또 얼마나 어려울까. 세상에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새삼 어느 한 분야든, 그 분야에서 전문가(대가)로 활동하는 이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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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작문화원에서 홈바리스타 강좌를 들으며, 그 어느 때보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매 수업 때마다 우리가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맛보는 시간을 갖곤 한다. 하지만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있다보니까, 직접 핸드드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커피 도구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마음 먹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커피강국' 답게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 추출도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과 '비용'이었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있는데, 어떤 브랜드의 품질이 좋고 나쁜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하나같이 비용들이 비싼 것이 아닌가. 이젠 커피가 하도 흔한 일상이 되어버려서, 집에서 간편하게 추출할 수 있는 핸드드립 도구들은 저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비싼 것 같았다. 커피 하나 내리는 데 무슨 도구가 그리도 많이 필요한지, 원두를 갈아야 하는 핸드밀(그라인더)부터, 여과지(드립지), 서버, 포트, 드리퍼까지... 전부 계산해보니 5~6만원 돈 나오는 것이었다. 전역하고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어, 통장 잔고가 2~3천원 정도인 신세라 결국 눈물을 머금고 잠시 구매를 미루었었다.


그러다 예전에 단기 알바하고 받기로 한 대금이 엊그제 들어와, 통장에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야말로 미루지 말고 커피 도구를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일사천리로 구입했다. 최대한 저렴하면서도 그래도 구매고객들로부터 평이 좋은 브랜드인 '휴레드 빈플러스' 시리즈로 구입했다. 다해서 5만 5천원 정도 깨졌다.



사실 처음에는 핸드드립 도구를 살지, 모카포트 도구를 살지도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에스프레소로도 추출이 가능하고, 아메리카노로도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모카포트'가 여러모로 간편하고 다용도 활용이 가능해서 끌렸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그닥 즐겨마실 것 같지도 않거니와, 모카포트보다는 손이 더 많이 가는 핸드드립이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 있어서 운치도 있고, 손맛(?)도 있을 것 같아 핸드드립 도구를 선택했다.


택배가 오자마자, 홈바리스타 수업 때 받아왔지만 내릴 도리가 없어 냉동실에 묵혀두었던 원두를 갈아 2~3일 만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빨리 새 원두를 사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욕구가 굴뚝같아, 어제 열정대학 수업 들으러 가는 길에, 남영동 '스트라다 146' 카페에서 원두를 구입했다.


200g에 7,000원이었는데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인 것 같다. 물론 이제 갓 커피세계에 입문한 왕초보로서 원두의 시세나, 품질에 대해 전연 아는 바가 없지만서도, 200g 정도 양이면 그래도 일주일은 거뜬할 듯한데, 7,000원 밖에 안한다고 하니 저렴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이 카페는 아메리카노도 3,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원두 이름은 '블랙잭'인데, 설명을 보니 에티오피아와 과테말라, 콜롬비아의 원두를 블랜딩한 것 같다. 하지만 구체적인 원두의 종류를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각 카페 브랜드별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블랜딩 기법이 있기 때문에 원두의 비율이나 종류를 비공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여기도 원두 원산지만 밝혀놓은 것 같다. 참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신기한 커피의 세계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밀에 어제 산 커피 원두를 넣고 열심히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렸다. 아직까지 커피 향과 맛을 구분할 정도의 내공은 없어서, 좋다 나쁘다 평가하긴 힘들다. 다만 홈바리스타 수업 때 강사님 曰 "신 맛이 나는 커피가 좋은 커피다"라고 했는데, 이 커피에서는 신 맛이 전혀 나질 않았다. (근데 신 맛이 나는 커피가 무조건 좋은 커피인 건 아닌 것 같다. 커피란 게 개인의 기호에 따라, 블랜딩 기법에 따라 쓴 맛만 나기도 하고 신 맛만 나기도 하니까... 신 맛 나는 커피가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커피 공부는 하면 할수록 헷갈리고 어렵다)


그리고 커피 원두가 굉장히 기름져보였는데, 확실히 내려서 마셔보니까 약간 기름진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근데 기름진 맛이 나면서도 뒷맛은 깔끔했다. 그게 또 신기하데.


아무튼 아직은 핸드밀의 분쇄조절도 제대로 못 해서, 갈려나오는 원두의 굵기도 매번 제각각이고, 드립지에 붓는 물줄기도 일정하지 못한 왕초보지만, 꾸준한 공부와 연습으로 '마니아' 정도만 되도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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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 강좌 주제는 <카페메뉴 탐구>였다.


흔히들 카페에 가면 메뉴판 앞에 서서 '뭘 주문해야 하나...?' 망설인 경험이 한두 번씩은 꼭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항상 그러는 것 같은데, 매번 아메리카노만 먹을 게 아니라 다양한 커피나 메뉴를 즐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 메뉴를 계속 들여다만 본다고 저게 뭔지 알 도리가 있나? 특히나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에 가면 중소 규모의 카페보다 그 메뉴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서, 외계어를 적어놓은 것만 같은 메뉴판 앞에 서면 마치 어른 앞의 아이가 된 것마냥 작아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주문을 받는 알바생들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내 얼굴은 빤히 쳐다보고 있는지. 메뉴판을 빠르게 눈으로 훑는 내 머릿 속에는 '아.. 도대체 뭘 주문해야하나' 하는 고뇌로 이미 과부하 상태에 빠져있거늘, 이미 그들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고객이 주문할 메뉴를 모니터에 찍을 준비를 하고 있고, 시선은 계속 나를 향하고 있다. 그 시선 속에서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어서 빨리 주문해!' 하는 느낌을 받는다. 소심한 나는 결국 그들의 눈치에 못 이겨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고 항복하고 만다. 결국 카페 문을 당차게 열어젖힐 때와는 달리 내 손에는 늘 아메리카노만이 들려나올 뿐.


오늘의 강좌 <카페메뉴 탐구>는 바로 나처럼 카페에만 가면 소심해지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카페에 가서 만날 '아메리카노'만 시킬 게 아니라, 다른 메뉴들도 미리 알고 가서 색다른 커피도 한 번 시켜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강사 분이 사전에 준비해 온 프린트에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메뉴들 몇 개가 나열되어 있었다. 실제 카페에 가면 이보다 더 많은 종류의 메뉴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만 공부한다고 해서 모든 카페를 정복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카페를 대표하는 메뉴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날 공부한 커피의 종류는 크게 아래 7가지로 정리된다.


1. 에스프레소 (일명 이탈리안 커피)

2. 아메리카노 (일명 아메리칸 커피)

3. 카페라떼 (일명 프렌치 커피)

4. 카페모카

5. 마끼야또

6. 꼰빠냐

7. 카페 프레도


생각해보면, 카페에 가서 멋도 모르고 '녹차 프라푸치노 한 잔이요', '샤케 라또 한 잔이요' 하고 용기 있게 생소한 메뉴들에 도전해본 적이 몇 번 있었거니와, 마시면서도 대체 이게 왜 '프라푸치노'이고 '샤케 라또'인지 알지도 못 하고 그냥 마셔댄 기억 뿐이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도 '샤케 라또'가 커피에 일본 술인 사케를 부어 만드는 음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술도 먹고 싶고, 커피도 먹고 싶을 때 '샤케 라또'를 시켜 먹으면서도 "이거 도수가 낮은가, 취하는 느낌이 안 드네" 했는데... 


강사 분 曰 "커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샤케 라또' 하면 사케 넣어 만드는 줄 알기도 하더라구요 ㅎㅎ" 차마 "그게 전데요."하고 말할 수는 없었다.


카페메뉴 공부가 끝난 뒤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즐겨 마셨다고 하는 일명 '황제의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고급 커피잔에 전용 스틱을 올려놓고, 그 스틱 위에 각설탕을 올린 뒤, 40도가 넘는 위스키를 살짝 붓는다. 그 다음에 불을 붙이면 알코올 도수 때문에, 불이 붙어 끓기 시작하는데, 끓으면서 녹아버린 각설탕과 위스키를 커피에 부어 마시는 것이다. 위스키의 향과 커피의 향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맛을 냈는데, 위스키는 끓였기 때문에 알코올이 전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느낌 탓일까? 한 잔 먹고 나니 왜 나는 알딸딸한 느낌을 받았을까. 하긴 나는 무알콜 맥주를 마시면서도 취하는 느낌을 받는 이상한 놈이긴 하다.


이 황제의 커피는 나폴레옹이 여자를 꼬실 때 만들었던 커피라고 하는데, 확실히 만드는 과정 자체는 별 거 없지만, 워낙 신기해서 남자들이 여자 꼬실 때 보여주면 다들 껌벅 넘어갈 것 같긴 하다. 나도 나중에 한 번...?


PS.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G2'였다.


PS2. 몰랐는데 오늘이 강사님 생일이었다. 수강생 중 한 분이 미리 준비해 온 호두파이 케익으로 간단하게 생일파티를 하고, 직접 드립한 커피를 곁들여 호두파이를 먹었다. 참 훈훈한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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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멀리서 온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랑은 군대에서 만난 사이인데, 원래 나보다 한참 선임이었지만 내가 남들보다 군대를 좀 늦게 간 편인지라, 이 친구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다. 그래서 전역하고서는 친한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전역하기 전에도 종종 만났는데, 그 친구 집이 군산이라 자주는 못 본다. 그러던 차에, 엊그제 일자리 설명회를 들으러 서울에 올라온다기에, 바로 약속 잡고 만난 것이다.


기왕 멀리서 오는데, 좀 맛있고 색다른 집에 데려가고 싶어서 홍대 근처 맛집을 알아보다보니 둘 다 '인도요리'를 먹자는데 동의했다. 그래서 인도요리 전문점 중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산띠(SHANTI)'를 방문했다.



인도 여행자들이 인정한 맛집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 문구가 적힌 판넬이 식당 출입문 앞에 붙어있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지인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고, '홍대 인도요리' 하면 이곳의 이름이 가장 많이 노출되니, 맛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인도풍 인테리어에,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인도음악이 정말 인도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확실히 인도요리가 가격이 쎄긴 쎄다... 돈도 안 벌고 있는 남학생 둘이 나눠 내기에도 참 벅찬 가격이었는데, 어쨌거나 여기까지 와서 그래도 제대로 먹고 가긴 해야겠어서, 가장 무난한 세트 A로 2인분 주문했다. (1인분이 21,500원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세트A는 '샐러드, 사모사(인도식 만두), 난(인도식 빵), 탄두리치킨, 커리, 밥, 라씨(인도식 요거트)'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커리는 '닭고기', '쇠고기', '양고기' 중에 택일을 하게 되어있어, '양고기'로 정했고, 라씨 역시 친구는 망고로, 나는 블루베리로 주문했다.


중국식 코스요리처럼 차례차례 나오는데, 일단 보기는 참 좋았다. 먹어보니 맛도 나름 괜찮았다. 사실 몇 달 전에도 인도요리가 너무 먹어보고 싶어서, 혼자 여의도 IFC몰 푸드코트에서 인도요리를 사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푸드코트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맛이 별로여서 실망스러웠었다. 그러나 확실히 인도요리 전문식당인지라, 맛은 괜찮았다. 그중에서도 양고기 커리맛이 일품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카레, 커리와는 차원이 다른 듯...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의 양은 아니었지만, 나는 딱 적당히 먹은 것 같다. 원래 부족하게 먹어야 몸에도 좋다지 않은가. 너무 배부른 느낌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여하간 친구는 계속 양이 부족하다고 아쉬워 하긴 했는데... 둘 다 맛에 있어서는 인정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그 친구와 만나, 사치스러운 인도요리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친구 역시나 앞으로 먹고 살 문제로 고민이 많은 듯 싶다. 오늘 서울에 올라온 것도, 직업 설명회 참석 차 올라온 거고... 전역하고 자격증 따랴, 직업 설명회 들으랴 그래도 자기 앞길 찾아서 저렇게 열심히 동분서주하는데..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뭘 하는지... 자꾸 반성만 할 게 아니라 실천을 해야하는데 게으른 내 자신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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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금학원에 등록하고서 첫 수업을 듣고 왔다.


부천에 위치한 '해금소리'라는 작은 교습소인데, 원장님이 퓨전국악걸그룹 '연리지'의 리더로, 실력이 있는 분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학원이 집과 거리가 좀 있어서 망설여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일반 국악학원보다는 해금 전문 학원에서 배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어서 고르게 되었다. 또 원장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믿고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이곳을 선택했던 것이다.


해금과의 첫 인연


사실 옛날부터 해금은 국악기 중에서도 나에게 매우 매력적인 악기였다. 


해금의 매력을 알게 된 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던 때였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해금연주가 강은일 씨가, 생전에 노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아침이슬'을 해금으로 독주했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구슬프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해금의 소리에 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아마 은연 중에 해금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었나보다. 오늘 친구에게 해금을 배운다고 얘기했더니,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드디어 꿈을 이루는 모습이 멋지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기억 못하는 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신통방통하다만...)


전역 전 작성한 버킷리스트


하지만 본격적으로 해금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데, 전역하기 직전에 해금을 배워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생겼다.


말년 휴가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해금연주가 조혜령 씨의 '이등병의 편지' 해금 연주를 듣고서,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나, 좀 있으면 떠나야 되는 부대에 대한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인해 한동안 싱숭생숭하던 때였는데, 안그래도 구슬픈 '이등병의 편지'를 구슬픈 소리를 내는 해금으로 들으니 마음이 크게 동했더랬다.



그래서 부대 복귀하자마자, '전역 후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목록에 '해금 배우기'를 넣었는데, 전역하고 딱 한 달 조금 넘어서 해금 배우기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사실 제일 걱정되는 건, 내가 음치에 박치라는 것. 어느 악기가 안그러겠느냐마는 특히나 해금은 연주자의 섬세한 손길과 절대음감이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악기라고 해서, 지레 겁부터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내가 음악에 대해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쪽으로는 완전 둔재에 가까우니... 


하지만 '재능이 없더라도 꾸준히 즐기면서 열심히 하면 대성할 수 있다'는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얻은 교훈이, 해금에도 적용되리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수업에 참여했다. 


내가 등록한 취미반은 원래 4명의 소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명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세 명으로 줄어서 더 단촐하게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인원이 적어서 원장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기에는 적합하나, 덕분에 비용이 예상치 못하게 1만원이나 늘어 부담이 좀... 정말 뭔가 배우려면 투자를 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역시 돈이 많이 드는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봐야 하는 건가.



강의 시간이 1시간으로 짧기도 하거니와, 멀리서 와서 어렵게 배우는 악기이니만큼, 원장님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경청하고, 또 열심히 줄 당기기 삼매경에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수업이 끝나버렸다. 이제서야 조금 감이 잡히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대로 가버리면 다음 주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릴 것 같아, 수업이 끝나고도 혼자서 20분을 더 연습하다가 문을 나섰다.


진도를 나가려면 평소에도 열심히 연습을 해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악기가 없으니... 아무 때나 와서 연습해도 된다고는 하는데, 거리가 거리인만큼 자주 오는 건 힘들 것 같고... 가끔 바람 쐴 겸 들러서 연습을 해야겠다.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해야지... 무예나 악기나.. 결국 모든 건 일맥상통하는 법이다.


아무튼 아직은 '끼긱끼긱' 거리며 칠판 긁는 소리나 내는 형국이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꾸준한 연마로 나 홀로 멋진 곡 한 곡을 독주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본다. 어쨌든 이렇게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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