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광화문-경복궁 일대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제 조금씩 지쳐갑니다. 날도 추워지고, 매 주말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끼어 행진한다는 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결국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찝찝해서라도 광장에 나갈 수밖에 없겠더군요.


대신 오늘은 좀 일찍 가서 오후 4시부터 열리는 '청와대 포위' 행사에만 참석하고, 본행사와 행진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을 허용한 관계로, 동서남으로 청와대 방면의 행진이 이뤄졌습니다. 제가 행진한 구간은 남쪽 코스인 청와대 사랑채 앞 자하문로입니다. 경찰이 세워둔 차벽 뒤로 청와대 영빈관이 가까이 보이더군요. 여기서 우렁차게 외쳐댔으니, 청와대 안에 있는 박 대통령도 분명히 국민의 성난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청와대에 없을지도...?)


박 대통령에게 진지하게 건의합니다. 이제 국민들에게 황금주말을 반납하기 바랍니다. 본인 한 명만 깔끔하게 내려오면 5천만 국민 모두가 주말에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습니다. 차벽으로 막혀 주말만 되면 울상인 삼청동 일대 상인들에게도 웃음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복궁을 관람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해외 관광객들이 헛걸음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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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부터 경복궁 옆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라는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평소 조선왕릉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미루고 미루다가 더 늦기 전에 가봐야겠다 싶어서 엊그제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조선왕릉, 세우다', '조선왕릉 정하다', '조선왕릉, 모시다', '조선왕릉, 돌보다' 등의 테마인데, 국왕이 승하한 후, 국장준비가 이루어지는 과정부터 왕릉이 조성되고 절기, 기일마다 제례를 지내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시는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다 둘러봤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지막 코너에 '지하1층에서 이어집니다'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뭐지 싶었는데, 마지막 테마인 '조선왕릉, 돌보다'라는 코너는 지하 1층에서 전시한다는군요. 엊그제 갔을 때는,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 부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오늘 다시 가서 나머지 전시까지 보고 왔습니다. 


사실 조선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어떻게 왕릉이 조성되는가에 대해서는 조선왕릉을 자주 다니며 숱하게 접했기에, 그닥 흥미롭거나 새로운 내용들은 아니었습니다. 전시되고 있는 유물들도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정조 구릉지(舊陵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나 임금의 관인 재궁(梓宮) 정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지하1층 전시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VR(가상현실)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여기가 제일 인기가 많더군요. 전시 자체는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 코너만큼은 다들 줄지어 몰려있을 정도였습니다. 


VR 체험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앉아서 보는 VR로 그냥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3D 영상을 보는 개념입니다. 두 번째 VR은 서서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헤드셋을 착용하고 머신 위에 올라서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인터렉티브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제자리에서 뛰거나 걸을 때마다 화면에서 사람의 모션을 인식해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가 더 흥미진진해보여서 체험해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이게 제일 인기가 많더군요. 줄도 길거니와, 기계를 자주 식혀줘야 한다고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습니다. 


결국 첫 번째 VR만 체험해봤는데, 화성의 융릉(사도세자의 무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것도 엄청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론으로 지상과 공중에서 촬영한 융릉을 계속 따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인터렉티브 시스템처럼 제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제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360도로 회전이 되면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미디어도 VR이 대세라고 하는데, 박물관에서 이런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고궁박물관 뿐만 아니라 많은 박물관들이 도입했으면 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면 전쟁기념관 같은 곳에서는 실제 전장을 VR로 체험할 수 있는 코너를 도입한다던지요. 2019년 건립 목표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서는 평소 가보기 힘든 해외 임시정부 청사를 VR로 체험할 수 있도록 코너를 마련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시개요]


조선왕릉은 조선의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한다. 유교적 통치 이념 속에서 절대적 권위와 위엄을 지닌 신성한 존재였던 왕과 왕비가 사후에 묻히게 되는 왕릉은 생전에 거처하던 궁궐과 마찬가지로 성역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왕릉 위치의 선정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는 국가적 예법에 따라 신중하고 엄격하게 진행되었으며, 완성된 이후에는 왕실을 수호하는 조상신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자 왕실 의례의 장소로서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조선왕릉은 500년 역사의 건축, 조경, 조각, 제도, 의례 등 유·무형의 요소가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또한 조선왕조 역대 27대 왕과 왕비의 왕릉이 대부분 온전히 남아 있어 역사적 변천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2009년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도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내용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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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경복궁에서 <수라간-시식공감>이라는 행사가 열려, 어머니와 함께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즘 <궁중문화축전>이라고 하여, 서울에 있는 조선 궁궐에서 궁궐별로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수라간-시식공감>은 그 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다. 조선시대에 임금님께만 진상되던 궁중음식을 맛볼 수 있는 체험행사인데, 궁궐에서 수라상을 직접 맛볼 수 있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창덕궁 달빛기행>처럼 야간에 궁궐을 관람하는 행사도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임금님 수라상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이 행사에 더 끌렸다. (두 개의 행사를 동시에 예매하기엔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마침 전역하고 할 것도 없는 백수인지라, 티켓 오픈이 열리는 시간에 컴퓨터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오픈되자마자, 어머니와 단 둘이서 다녀올 요량으로 2장을 예매했다.


행사가 있기 이틀 전부터, 웬 날씨가 이리 험악한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가 간 날은 운 좋게도 비가 그친 직후라 하늘이 아주 맑았다. 다만, 여전히 바람은 거세어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옥의 티. 거센 바람 탓에 경복궁에 깔린 모래들이 잔뜩 휘날려 정상적인 관람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행사 당일, 경복궁에 도착한 우리는 아직 행사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었기에, 행사가 열리는 소주방 권역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느긋하게 궁궐을 관람했다. 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자경전을 둘러보면서, 동행했던 어머니가 경복궁은 또 처음 와 본다고 하셔서 괜히 안쓰러웠다. 여태껏 서울에 몇십 년을 살면서, 코앞에 있는 궁궐 한 번 못 가보고 뭐하신 건지...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시큰했다.



행사장인 소주방에 도착하니 이미 닫혀있는 문 앞에서 행사 참여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12시부터 점심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아예 시간을 딱 맞춰서 개방했다. 이건 좀 아쉬운 행정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기다릴 거라면 안에 들어가서 착석시켜놓고 기다리게 해도 상관 없을텐데... 


참고로 행사가 열리는 소주방은 궁중음식을 만들던 부엌으로, 일상식을 만드는 내소주방과 잔치음식을 만드는 외소주방 그리고 별식을 만드는 생물방으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식사를 한 곳은 '외소주방'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이곳에서 수라상을 체험하는 건 고증에 맞지 않겠다. 임금님이 자기 침전에서 밥을 먹지, 부엌에서 밥을 먹겠나.




(사진: 행사가 열리는 경복궁 외소주방)


아무튼 12시 정각이 되자,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한 켠에 마련된 카운터에서 예매 확인을 한 뒤에, 자리를 배치받았다. (자리의 경우는 무작위 선정) 안그래도 모래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깥 쪽이 아니라 방 안에서 먹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는 방 안으로 배정받아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한 10분 정도 되었을까? 궁녀 복장을 한 직원들이 하얀 보자기에 감싼 식사를 들고 와 우리 상에 올려놓았다. 




(사진: 배달(?) 온 식사... 보자기에 수놓인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무늬가 인상적이다)



(사진: 도슭 수라상이 담긴 4단 유기 합)


식사메뉴는 총 2가지인데, '골동반 동고리'와 '도슭 수라상'이 그것이다. 기왕 먹는 것, 골고루 먹어보고 싶어서 예매할 적에 어머니는 골동반 동고리로, 나는 도슭 수라상으로 메뉴를 주문했었다. (골동반 동고리는 15,000원, 도슭 수라상은 20,000원이다) 


골동반(骨董飯) 동고리에서 '골동반'은 비빔밥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고리는 둥글납작하게 만든 고리상자를 말한다. 결국 고리상자에 담은 비빔밥이란 뜻이다. 비빔밥에 올리는 나물은 제철에 나는 신선한 것을 썼으며, 흰색, 푸른색, 갈색 등 색색의 나물을 섞었다고 한다.





(사진: 골동반 동고리)


동고리에 담겨져 나온 밥을 보니 이미 약고추장과 참기름으로 간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나물만 넣어 비비면 완성. 밑반찬으로는 호두정과, 오이송송이, 풋고추부각, 배추김치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먹은 '도슭 수라상'은 왕과 왕비만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일상식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합에 조금씩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도슭'은 도시락의 옛 말이란다. 아무래도 임금님에게 대접하듯 수라상을 걸지게 차려내기에는 주최 측이 부담스러웠던지, 도시락처럼 4단 유기합에 담겨져 나왔다.


도슭 수라상을 구성하는 열두가지 음식에는 선조들의 음식 철학인 음양오행과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 즉, 좋은 음식은 약의 효능을 낸다는 뜻)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수라상에는 육포장아찌, 오이송송이, 명란젓, 배추김치, 황태구이, 탕평채, 전복초, 더덕구이, 원추리나물, 생선전유화, 쇠고기산적, 애호박전이 밑반찬으로 나왔고, 국으로는 석류탕(만둣국)이 나왔다.






(사진: 도슭 수라상)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음식값에 비해 질과 양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당대 임금님이 실제로 이렇게 맛없게(?) 먹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대인들의 입맛과 옛 조상들의 입맛은 다를테니... 그래도 높은 가격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고, 간도 제각각이었던 밑반찬들이 실망스러웠다. 명란젓은 너무 짜고, 석류탕은 너무 싱거웠다. 특히 석류탕에 들어간 만두는 달랑 3개인가 들었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맛 없는 짬밥 먹다 나온 나조차도 이렇게 느끼는데, 입맛 까다로운 우리 어머니야 말할 것도 없지... 결국 어머니가 남긴 골동반까지 내가 다 먹어치웠다.


한편으로 또 허무했던 것은, 현장에서 티켓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사전예매로만 티켓 구매가 가능한 줄 알고, 오픈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간신히 예매했다고 혼자 뿌듯해했는데, 현장에서도 티켓을 팔고 있으니... 그래서 우리가 식사하는 중간에도 관람객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즉석에서 주문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이럴거면 사전에 예매한 이들에 대한 서비스(?)가 따로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도 한 번쯤 경험해보기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 궁궐에서, 수라상을 받아보겠는가. 또 식사 중간에 즉석에서 국악공연을 하는데, 우리를 위해 즉석 연주까지 해준다고 생각하니 뭐라도 된 것마냥 어깨가 절로 펴졌다. 물론 먹느라 정신 없어 음악이 귀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식사하고 나오면서 경회루와 광화문을 거쳐 출구로 나왔다. 나가면서도 내내 '경복궁은 처음 온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조금 더 구경을 시켜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대충 보고 나올 수밖에... 다음을 기약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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