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위협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삶, 국가무한책임은 어디로?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49&aid=0000132522&sid1=001


2007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부대다.


국유단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국가무한책임'을 완수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꽃다운 청춘을 불살라가며 희생한 모든 국가유공가자들은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을 영구 지속사업으로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가무한책임의 범주에는 지금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생존 국가유공자들도 포함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보훈처'라는 기구가 있어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국가유공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1연평해전에 참전해 우리 해군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댓가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잃은 한 참전용사가 편의점에서 콜라를 훔치다 적발됐다는 사연은 보훈처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물론 보훈처에서도 국가유공자를 보살피기 위해 연금을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살 곳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거나 당장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폐지를 줍는 등 생계에 위협을 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이야기가 매년 들려오고 있으니, 과연 이들을 위한 보훈처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국가유공자를 위한 제도가 형식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보훈처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고위공직자 중 '적폐청산' 1호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전격 경질하고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겠다는 등 보훈사업에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제 그 의지에 걸맞는 실천이 필요할 때다.


2017년 6월 24일


역사독서모임 독사신론(讀史新論)

(http://facebook.com/suhistor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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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국유단에서 선/후임 관계로 만난 동생과 29초짜리 단편 영화 하나를 찍었더랬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원을 주제로 한 '현충원 29초 영화제'란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바로 여기에 출품할 목적으로 찍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한창 촬영을 해야 할 시기에 '장마'가 오는 바람에 다소 난항을 겪긴 했습니다. 그래도 비 그치면 바로 찍을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으로 열심히 기획회의를 하고, 음원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국가보훈처에 수시로 전화를 하는 등,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더랬습니다. 덕분에 장마가 끝나자마자 곧장 촬영에 돌입할 수 있었고, 마침내 오늘 아침 공식 홈페이지에 영화가 올라갔습니다.


영화 스토리는 저희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돌아오지 못한 유해'에 촛점을 맞춰보았습니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싸우다 전사하여 돌아오지 못한 호국영령의 유해가 12만 5천여 위라고 하고, 그 전에 일제 강점 당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해외로 망명간 독립투사들의 유해 역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너무나 많죠. 이분들은 아예 통계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현충원에는 '위패봉안관'과 '무후선열제단'이 있는데, 바로 여기가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위패로나마 모신 곳입니다. 지금도 이곳에만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들을 기다리며 유족들이 남기고 간 편지와 사진들이 눈시울을 붉히곤 합니다. 그래서 이 장소를 현장 답사한 뒤에, 바로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주제 선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 모시는 것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고,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은 국민 모두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현충원에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분들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그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영화를 만들어보았습니다.

■ 영화 보러가기: http://www.29sfilm.com/1606970


[영화 정보]

제목: 현충원은 대한민국의 기다림이다

시놉시스

현충원은 단순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안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역사의 굵직한 사건 속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많은 이들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의 연인이고,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했습니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들을 위해, 또한 우리가 그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그들을 기다립니다. 

스탭 (STAFF)

감독: 유지호
촬영: 유지호, 박하은
기획: 김경준, 유지호
자료지원 및 검토: 김경준
배우: 함형민, 박하은, 유지호, 이현수, 설은환

솔직히 이번 영화 제작은, 감독을 맡은 친구가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영상 편집 기술이 없어서, 이 친구가 밤새도록 열심히 만들었죠. 이 친구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제 스스로 무임승차하는 느낌이라 기획회의에서 나름 열심히 스토리를 짜내고, BGM 제공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등 신경을 좀 썼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의 빚이 남은 것 같아서, 남은 공모기간 동안 이렇게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이 영화제는 네티즌들의 추천과 덧글을 많이 받아야 수상에 유리하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희가 수상을 목적으로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감독을 맡은 친구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작은 상이라도 하나 타면 그 흘린 땀방울에 보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염치불고하고 여기저기 추천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추천을 하려면 가입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좋은 의미로 만든 영화이니만큼 적극적인 추천과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PS. 수상 여부를 떠나,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은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직접 편집까지 배우면서 함께 했더라면 더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현충원의 의미를 널리 알리는 작업에 함께 동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보람찼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며 새로운 인연들과 만났던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다들 땡볕에 고생 많았는데, 모두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에 남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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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을 나와 홍 실장님과 함께 바로 옆 효창원의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올랐다. 이곳에서 나는 김구 선생님께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큰 절을 올렸다. 군 입대 전에 김구 선생님 묘소에 와서 참배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참배를 마치니 때마침 원로 애국지사 김우전 선생이 올라오고 계셨다. 김우전 선생은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님의 비서를 지낸 분이다.

 

 

이젠 생존 당시 김구 선생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노병(老兵)이지만 당신이 모셨던 김구 선생님에 대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고, 분향하는 것을 보니 내 가슴도 먹먹해졌다. 나는 김우전 지사님께 사진 한 장 같이 찍기를 청해 함께 사진을 찍는 영광을 얻었다.

 

 

 

이후 나는 홍 실장님과 헤어져 삼의사묘역(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묘역)과 임정요인 묘역(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였다. 삼의사묘역에 가니 예비 유해발굴병으로서 안중근 의사의 가묘(유해 없는 무덤)가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그런데 비석들이 하나 같이 새똥과 흙탕물로 뒤범벅되어 차마 못 볼 지경이었다. 급한대로 가방에서 물휴지를 꺼내어 닦을 수 있는 데까지 닦았다. 삼의사묘역 뿐만 아니라 임정요인 묘역도 심각했다. 특히 조성환 선생 묘역의 비석은 닦을 때보니 비석이 흔들려서 위태롭기까지 했다.

 

효창원은 현충원과 달리 국립묘지가 아닌 근린공원이라 현충원만큼의 관리를 기대할 순 없다지만, 엄연히 공원관리소가 있는데 대체 관리소는 무얼 하고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다. 아마 군대 가기 전까지도 열심히 용산구청에 민원을 넣다갈 것 같다. 내가 전역하고 나왔을 때면 이미 효창원이 국립묘지가 되어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염원한다.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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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14년 6월 26일)는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서거하신 지 꼭 65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개인적으로 김구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 등으로 지금까지 추모식에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군대 가기 직전에서야 이렇게 추모식에 참석하게 되어 송구스럽다.

 

추모식장 가는 길에 이봉창 의사 동상 앞에서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박기서 회장님과 김용삼 운영위원님이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효창원을 국립묘지화하라는 성명서를 배포하고 플래카드를 걸고 계셨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박기서 회장님은 택시기사 신분으로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를 정의봉이라는 몽둥이로 때려죽인 분이다) 가서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웃어주셨다. 이 땅에서 김구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 누가 진정으로 김구 선생님을 존경하고 김구 선생님의 족적을 따라 걷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추모식장에 도착하니 김양 前 국가보훈처장(김구 선생 손자)부터 증손자 등 유족들이 입구에서 도열해 추모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김양 처장이야 완전히 할아버지 김구를 빼닮아 투박한 무골상이고, 증손자로 보이는 젊은 유족들은 훤칠하면서도, 눈매가 작은 것이 얼굴에서 얼핏 김구 선생님의 투박한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인사라도 나눠보고 싶은데, 워낙 사람도 많고 내가 어디 명함 내밀 그런 명사도 아니었기에, 먼 발치에서나마 그냥 봤을 따름이다.

 

 

 

 

김구 선생의 명성에 걸맞게 원로 애국지사들 뿐만 아니라 정의화 국회의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장 등 다양한 명사들이 참석하여 기자들도 많이 왔다. 그러나 추모식은 국민의례, 추모식사, 추모사, 추모가 합창, 헌화 순서로 이루어져 한 30분 만에 끝난 듯하다. 끝나고 바로 옆 컨벤션홀에서 점심식사가 제공되었는데, 역시 이 자리에서도 화려한 면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부 찾아가서 일일이 악수 청하고 인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많았지만, 자리가 자리인데다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처지가 못 되기에 그냥 먼 발치에서만 바라 볼 따름이었다.

 

추모식장에서 우연히 홍소연 前 백범기구기념관 자료실장님을 만났다. (홍 실장님과는 올해 1월에 4박 5일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적지 탐방을 함께 다녀왔고, 이젠 <청년백범>의 일원이라 반가운 사이다) 홍 실장님이 다른 사람들하고 계속 인사 나누는 동안, 나는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념관이나 둘러보자는 생각에 기념관을 둘러봤다.

 

 

그런데 2층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전시실이 리모델링되어 코너 하나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원래 상해 임시정부 시절의 김구 선생님 집무실을 복원해놓은 코너였는데, 없애버리고 <백범일지> 소개 코너로 바뀌어 있었다. <백범일지>에 대해서는 맨 마지막 전시코너에 이미 전시하고 있음에도 굳이 멋진 집무실 전시를 없애버리고 중복되는 <백범일지> 코너를 만든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아쉽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코너를 둘러보다가 '유해봉환' 코너에 이르러 잠시 발길이 멈추었다. 실제로 김구 선생님은 해방 직후 고국에 돌아와서 가장 주력했던 일이 해외에 흩어진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발굴해 환국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이동녕, 차리석 두 임정요인의 유해가 돌아왔고,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지금의 효창원(효창공원)이 마련되었다. (훗날 조성환 선생이 서거하자 임정요인 묘역에 추가 안장되셨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찾지 못해 가묘로 남겨두었다)

 

 

김구 선생님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고국에 모시는 것이야말로 남겨진 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합격하여 예비 유해발굴병으로 입대를 기다리는 몸으로서, 김구 선생님의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해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할 것이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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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10시에 병무청 홈페이지를 통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사실 이미 재학생 입영신청을 통해 7월 22일 임실 35사단 신병훈련소로 육군 일반병 입대가 확정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날짜를 다시 확인하러 우연히 들어간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마침 '유해발굴병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평소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라 지원했었다.

 

지원하고 최종합격 통지를 받기까지 얼마나 피가 마르고 애가 타던지... 유해발굴병은 일반병과 달리 체력테스트와 면접을 보는데 이를 위해 한 달 정도 바싹 체력단련을 했지만 실전에서 완전 망해서 기본 점수를 받았다. 면접 역시 열심히 준비해갔으나,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많이 나와 동문서답에 횡설수설하다시피 했었다. 그래서 최종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20일 동안 정말 가슴을 졸였다.

 

어제도 간밤에 잠을 못 자고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가 10시에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병무청 홈페이지에 접속, 합격조회를 클릭하는 순간... 떡! '최종합격'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안도의 한숨이 푹....!

 

그런데 입대일이 7월 14일이다. 일반병 지원 때보다 8일이나 앞당겨졌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합격 발표 전에는 "지금 당장 가라고 해도 갈테니 붙여만 달라"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조금 신변정리할 시간은 줬으면..."하는 마음이... 너무 급하게 가는 것보단 주위에 인사도 하고 마음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한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무튼 이야기를 들어보니 논산훈련소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 자대를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배치받아 이곳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자대가 집에서 코 앞인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자대에 머무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참고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6.25 남북전쟁 중 싸우다 스러져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한 미수습 유해를 발굴해 가족의 품에 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부대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 6.25 남북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한시적 사업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이 사업을 영구적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유해발굴감식단이 설치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4년 동안 8,000구의 유해를 발굴했다고 하는데, 아직 찾지 못한 유해가 13만 구가 넘는다고 하니 가슴이 아픈 일이다.

(필자가 2012년 통일부 상생기자단 5기 기자로서 견학갔던 인제 명당산 유해발굴현장 사진. 이때부터 유해발굴감식단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현재 유해발굴병은 역사학과, 고고학과 등 관련 전공을 2년 이상 수료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유해발굴병에 합격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자대를 이곳으로 배치받아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의 발굴현장에 투입되어 쉴 새 없이 산을 타며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을 하게 된다.

 

아무튼 6.25 남북전쟁 발발 64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에, 이런 뜻 깊은 소식을 접하게 되어 나로서는 감개무량하다. 솔직히 체력테스트나 면접이나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붙었기에, 이건 내 능력 덕분에 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로 하여금 당신의 유해를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호국영령들께서 나를 이끄신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초심을 잃지 않고, 국군 용사님들의 유해를 한 구 한 구 발굴하여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하겠노라 굳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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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가는 20세기 초 암울했던 때에 우리 선조들이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대한 독립의 그날을 기약하며 우렁차게 부르던 노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로 시작하는 대표적인 독립군가 외에도 '압록강 행진곡', '광복군 제2지대가', '용진가', '대한제국 애국가' 등 선조들이 독립을 염원하며 불렀던 독립군가는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독립군가를 발굴하여 보전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의무이건만 발굴&보전은 커녕 오히려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티즌들에게 독립군가를 무료로 나눔하여, 많은 이들이 독립군가를 즐겨 듣고 부르며 후대에 널리 보전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독립군가야말로 우리 선열들의 혼과 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소원인 한반도의 완전하고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통일을 기원하며 삼천리 방방곡곡에 독립군가가 울려퍼지도록 '21세기 신독립군'의 심정으로 함께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보내드리는 독립군가는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국가보훈처에서 대중 가수들을 불러다 리메이크한 버젼입니다. 그래서 독립군가라는 딱딱한 타이틀과는 달리 대중가요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김장훈, BMK, 서문탁, 럼블피쉬 등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함) 국가보훈처에서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음원입니다.

 

독립군가를 원하시는 분은 메일주소를 덧글로 달아주시면 확인하는대로 순차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늦게 확인할 수도 있으니 천천히 기다리시면 언젠가 다 보내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PS. 파일 받으면 감사하다는 인사 정도는 해주는 센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는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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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제27차 <아!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이하 장정) 모집 포스터가 나왔다. 26차 장정을 다녀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참 이럴 때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실감한다.

장정은 장준하 선생이 중국 쉬저우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 광복군이 되는 6천리 장정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행사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 장준하 선생이 추운 겨울에 얼어죽을 각오로 넘어야만 했던 파촉령 등등... 10박 11일 장정 기간 동안 들렀던 곳들 중 어느 한 군데도 눈물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마침내 장정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는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해 '애국가'와 '독립군가'를 힘차게 부르고 정식으로 '청년등불'이 되었을 때의 감격은 직접 다녀와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정말 내 스스로가 광복군이 된 것 같고, 단신으로 일본군 몇 명 정도는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사실 요즘 무료로 떠나는 해외역사탐방이 많다보니, 주위에 홍보해도 참가비 95만원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내 돈 내고 다녀와야 돈이 아까워서라도 더 열심히 보고 듣고 느끼고 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개인이 가려면 95만원으로 택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정도 비용도 국가보훈처에서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금액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알바해서 번 돈으로 참가비를 내고 다녀왔다. 장정 막바지에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님께서 "니가 알바한 돈으로 참가비 내고 왔는데,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또 알바해서 95만원 내고 가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녀본 모든 역사탐방이 하나같이 다 유익하고 의미있었지만, 특히 장정과 장정을 다녀온 청년등불들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부디 많은 분들이 지원하고 선발되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기를...

자세한 사항은 http://www.peacewave.or.kr/bbs/zboard.php?id=4_2_1_1&page=1&page_num=30&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n&keyword&no=4687&category 를 참조.

PS. 장정을 다녀와서 국가보훈처 블로그에 게재했던 후기가 있는데, 이걸 한 번 읽어보면 어떤 행사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1부: http://mpva.tistory.com/2292
2부: http://mpva.tistory.com/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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