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10047363


2018 남북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사상 최초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방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비록 판문점 구역 안으로 제한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쟁점 중 하나가 바로 김정은이 우리 대한민국 국군을 사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보통 외국 정상이 국빈으로 방한하게 되면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서서 우리 국군 의장대를 사열합니다. 김정은 역시 우리 정부가 '국빈 대우'를 한다고 알려졌기에 우리 의장대의 사열을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지요.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김정은이 국군 사열을 받는다고 보도가 나왔네요. 이건 가벼이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댓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여론들도 좋지 않습니다. 저 역시 민주당원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통일지상주의자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북한은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목함 지뢰 설치 등 각종 도발을 자행한 주적이며, 김정은은 그 수괴입니다. 지금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해서 적국의 수괴가 아닌 건 아닙니다. 적국의 수괴에게 우리 군이 사열을 받는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는 생각합니다. 아마 이번 사열은 북측에서 먼저 강하게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정부가 굳이 국민 여론이 나빠질 게 뻔한 김정은의 사열을 앞장 서서 추진했을 리는 없고 북한이 '선례'를 들어 자신의 최고령도자에 대한 남측의 예우를 요구했겠지요.


그 선례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각각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했던 것을 말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도 너희 최고지도자로부터 사열을 받았는데, 왜 우리 지도자는 못 받느냐"고 나설 명분이 있는 셈이죠.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이러한 논리 앞에서 딱히 반박할 명분을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더욱이 한반도에 봄이 오려는 마당에, 그깟 의전 문제 하나가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무릎을 꿇고 건달의 다리 사이를 기어간 한신의 고사처럼 두 눈 질끈 감고 잠깐 고개 한 번 숙이는 게 훨씬 실리적인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열 한 번 해주는 대가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논의에 진지하게 임한다면 까짓거 한 번쯤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국제사회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번 결정을 지지하기 힘든 건, 역시 그들의 도발에 꽃다운 생명을 잃은 우리 국군 용사들과 남은 유족들 때문입니다. 특히 자식과 형제들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 입장에서 김정은이 우리 군을 사열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듯 합니다. 그런 유족들의 감정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을 덮어놓고 잘했다고 지지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에 달렸을 듯 합니다.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래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된다면 이번 사열 문제도 평화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자 빅픽처로 재평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다시 태도를 바꾸어 우리의 뒷통수를 치는 순간, 이번 문제는 문재인 정부를 레임덕에 빠트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가베치
,

- 영화명: 태양 아래

- 감독: 비탈리 만스키

- 장르: 다큐멘터리

- 국가: 체코, 러시아. 독일, 라트비아 그리고 북한

- 개봉일: 2016년 4월 27일

- 관람가: 전체관람가


전역하고 처음으로 영화관에 다녀왔다.


사실 요근래 상영작들 중에서 그닥 극장에까지 가서 볼 만한 작품은 없는 것 같아, 딱히 영화관에 갈 이유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태양 아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오늘 조조로 보고 왔다.



북한 찬양에서 북한 현실에 대한 고발로의 전환


영화의 전체적인 감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북한판 빅브라더'다. '빅브라더(big brother)'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년>이란 작품에서 비롯된 단어인데, 막강한 정보와 권력을 쥐고서 사회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 내지는 사회체계를 의미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사회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인민들을 주무르는 북한 당국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초창기 기획의도는 북한을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애초에 이 영화는 북한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지원 아래 기획된 작품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이 이루어졌는데, 감독을 맡은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1년 동안 북한에 체류하면서, 북한의 현실을 목도하고 위험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바로 초기 의도와는 달리 북한을 고발하기 위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것.


하여 만스키 감독은 목숨을 걸고 메이킹필름을 러시아로 밀반출해 재편집을 한 뒤 고발성 영화로 성격을 바꾸어 제작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에 의해 걸렸더라면, 최소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북한에 억류되어 평생 강제노동을 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참 대단한 용기와 신념을 가진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영화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평양에 거주하는 8살 소녀인 진미와 그녀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진미는 광명성절(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조선소년단에 입단을 하는데, 다가올 태양절(김일성의 생일)을 앞두고 소년단의 일원으로 공연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진미의 부모는 각자의 일터에서 성실하게 노동에 임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진미 아버지가 일하는 봉제공장에서는 "오늘 생산률 200%를 달성했다"며 생산률 높이기에 공헌한 여성 노동자에게 꽃다발과 박수를 안기고, 여성 노동자는 겸손하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꽃다발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다. 진미 어머니가 일하는 두유공장도 마찬가지다. "진미가 광명성절을 맞아 조선소년단에 입단했다"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북한의 초기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북한판 빅브라더


하지만 감독은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영화를 '비틀기' 시작한다. 만스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오디션을 통해 8살 소녀인 진미가 최종 주인공으로 선발되자, 진미의 집이 갑자기 고급 아파트로 바뀌었으며, 진미 아버지는 실제 직업이 신문기자였으나 영화 촬영을 위해 봉제공장 기술자로,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이었으나 두유공장 노동자로 직업까지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 진미 가족은 식사하며 나누는 대화까지도 당국이 지시한 대사를 읊조려야만 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하여 감독은 진미 부모의 직업이 당국에 의해 강제로 변경되었으며, 영화 촬영 중간에도 당국에서 길 안내를 이유로 자신들을 끊임없이 밀착 감시하고 통제했음을 중간 중간 자막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기시킨다. 촬영한 필름을 사전에 검열당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


무엇보다 매 장면마다 북한 당국 측 인사가 짜여진 각본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대사를 읊도록 하는 메이킹 필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훈훈한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임을 알게 한다. 메이킹 필름 속 북한 노동자들의 눈에는 영혼이 없으며, 중간 중간 하품을 하거나 얼굴에 귀찮음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사진: 상심에 빠진 진미의 표정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말미에는 진미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데, 진미를 달래기 위해 스태프가 "좋아하는 시 없어?"라고 묻자, 갑자기 진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선소년단 입단 선서'를 읊기 시작한다. 진미에게 좋아하는 시는 '조선소년단 입단 선서'이며, 좋아하는 음식은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으로서, 늙는 것과 암을 예방해주는 김치'일 뿐... 진미는 "좋아하는 게 없냐"는 스태프의 질문에 울먹이면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할 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게 바로 북한의 현실이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면서, 인민들을 억압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경배하게끔 세뇌시키는 북한이라는 나라. 인간의 기본권인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혹자는 이런 북한을 두고 500년 동안 전제군주가 통치했던 조선왕조보다도 더 억눌린 나라라고도 평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조선은 임금이 무능하거나 폭정을 저지르면 반정(反正)을 일으키거나, 농민들이 떼지어 봉기라도 일으켰지만, 북한은 아예 그럴 여지조차 없으니 말이다. 어쩌다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이토록 잔인하고 비이성적인 나라가 세워졌을까 한탄스럽다.


진미는 무사할까?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진미 가족의 안부였다. 진미 가족은 북한 당국에 의해 동원되어 의도대로 촬영에 임했다지만, 감독이 임의로 진미 가족의 일상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고발해버렸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이다. 이게 괜히 죄 없는 진미 가족에게까지 불똥이 튈까봐 그게 너무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제작한 만스키 감독도 누구보다 우려가 큰 것 같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만스키 감독이 국내 시사회에 와서 "진미 가족의 안부가 제일 걱정이다. 진미와 그녀의 가족이 무사할 수 있도록 전세계 여론이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했단다. 국제사회의 여론 따위는 코웃음칠 북한이기에 저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북한사회의 현실을 전세계에 고발해야 한다는 대의(大義)와 진미 가족의 안부를 지켜야 한다는 소의(小義) 사이에서 누구보다 심적 갈등을 했을 감독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사진: 진미의 미소에 영혼이 없어보인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외면해서는 안될 현실


다큐멘터리이기에, 내용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우리는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한반도 북부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재수없어 우리가 조금만 더 위쪽에서 태어났더라면, 우리 역시 스스로 통제당한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못한 채, 오로지 김씨 왕조만을 숭배하며 굴종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반도 북쪽에서는 '빅브라더' 아래 억압받는 우리의 동포가 있다. 그 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보는 것이 바로 영화를 본 관객들의 다음 과제다.


PS. 엔딩 크레딧에서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 주민들이 헌화한 꽃송이들을, 당국 관계자들이 일일이 금속탐지기로 검사하는 장면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무서운 거냐.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