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3 - 최후의 대결>로 <엽문>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듯 했던 엽위신-견자단이 <엽문 4>로 복귀합니다. 솔직히 <엽문>을 소재로 3편이나 우려먹었으면 뽑아먹을만큼 뽑아먹었다고 생각하는데, 후속작이 나온다고 하니 조금 걱정도 됩니다. 물론 스토리가 산으로 가더라도 견자단의 액션연기 하나만큼은 일품이니 기대가 됩니다. 저야 뭐 제가 좋아하는 견자단의 엽문을 또 한 번 스크린에서 만날 생각에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다만 제가 좋아했던 시리즈인만큼 제발 '박수 칠 때 떠났어야지' 라는 말이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엽문 4>로 견자단의 오리지날 <엽문> 시리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포스터를 보니 무술감독은 '원화평'입니다. 1, 2편에서 홍금보가 무술감독을 맡았던 것과 달리 3편에서 원화평이 무술감독을 맡으면서 액션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요. 영춘권의 화려한 수기가 많이 죽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번 4편에서는 어떤 식으로 액션을 풀어낼지 궁금합니다.


한편 <엽문> 시리즈와는 별개로 '스핀오프'(외전) 격의 <장천지>도 개봉 예정입니다. <엽문 3>에서 견자단과 최후의 대결을 펼쳤던 영춘권사 장천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입니다. 솔직히 이 작품까지는 정말 오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황비홍도 그렇고 엽문도 그렇고... 중국인들은 하나 대박치면 정말 쪽쪽 빨아먹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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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웹서핑을 하던 중 새로 나온 무협영화 한 편이 풍극안 선생의 유작이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작이라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작품을 뜻하는 바인데, 저는 풍극안 선생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부랴부랴 찾아보니 2016년 3월 2일 식도암으로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향년 68세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kamagi2000/220764824382)


풍극안 선생이라면 성룡과 함께 성가반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7,80년대 다양한 무협영화로 이름을 날린 분입니다. 워낙 개성 있고 험악해보이는 마스크 탓에 단골 악역으로 등장하곤 했지요. 제가 보던 무협영화에는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기에 워낙 인상 깊은 배우였습니다. 최근에는 <쿵푸허슬>에서 맹인 음악무술가, <엽문 2>에서 팔괘장을 구사하는 정 사부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분이 돌아가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제가 아무리 홍콩무협에 대해 옛날만큼 관심이 떨어졌다고 해도, 참 충격적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홍콩무협배우의 별세 소식을 이제서야 알다니요.


홍콩에선 유명한 분이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탓에, 국내 DB에도 업데이트가 안된 모양이더군요. 네이버에는 아직도 사망 정보가 안 올라와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렇게 하나둘 잊혀지는 것이...


요근래 제가 좋아했던 홍콩무협영화 배우들이 하나 둘 지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참 씁쓸함을 느낍니다. 홍가권의 대가이자 쇼브라더스 무협영화의 거장 유가량 감독이 2013년에 별세하고, 유가량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황비홍 역으로 정통 홍권을 선보인 유가휘는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 신세입니다. 이제 풍극안 선생마저 돌아가셨네요. 여기에 이연걸은 난치병에 걸려 매우 수척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룡, 견자단도 언제까지 그 몸과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참 가슴이 아파옵니다. 어릴 적 전설처럼 생각했던, 때론 친구보다 더 친숙했던 스크린 속 스타들이 하나 둘 지는 것을 지켜봐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새삼 이소룡의 죽음이 당대 열성팬들에게 줬을 충격과 슬픔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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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가끔은 본 영화를 또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히 이상하게 토요일 밤만 되면, 특히 한 철 지난 홍콩무협영화를 자꾸만 보고 싶어집니다. 어제도 그래서 견자단 영화를 볼까, 성룡 영화를 볼까.. 아니면 유가휘 영화를 볼까... 계속 고민하다가, <취권>을 보기로 결심하고 DVD를 꺼내 들었습니다.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열심히 집중해서 봤습니다. 확실히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서 그런지, 오랜만에 보는데도 세세한 부분까지 다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취권>은 제가 본격적으로 무술에 흥미를 느끼고 그 세계에 입문하게 해준 영화라, 제겐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하게까지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무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항상 레퍼토리가 똑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본 영화 <취권> 때문이다"


실제로 저는 이 영화를 보고서, 곧장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달려가 '현대쿵후교본'이라는 책을 산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도장 갈 용기가 없어서 교본으로나마 독학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흑백으로 된 아주 조잡한 그 교본은 도저히 독학이 불가능한 수준의 책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YouTube도 있었는데, 왜 21세기에 그런 전근대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는지 우스운 노릇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지금도 제 서가에 꽂혀있습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동네 태극권 도장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제 무술세계로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초딩 때 배운 태권도는 논외로...) 도장에 나가니 책만 봐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동작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무술 독학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독학하면 몸 망가진다' 이런 말을 많이 하며 말리는데, 저는 제 스스로 책이나 영상을 보고 따라할 정도의 재능이 없음을 알기에, 애시당초 독학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그냥 동작들 몇 개나 따라했을 뿐. 진지하게 독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죠.



오랜만에 <취권>을 보니 어릴 적 로망(지금도 있습니다만)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한 번 홍가권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요즘 몸 풀이 정도로 생각하고, 밤마다 홍가권의 권법들을 한 차례씩 연무하곤 하는데, 정말 매력적인 권법인 것 같아요. 진지하게 홍콩 쪽에 가서 정통 홍가권을 제대로 배워볼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내친 김에 '취팔선'까지...


영화를 보고 감상에 푹 빠져버려서, 어제는 밤잠을 좀 설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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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엽문 3 - 최후의 대결>을 통해 6년 만에 스크린에서 영춘권의 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기세에 힘입었는지 이번 달말에 또 한 편의 영춘권 영화가 국내 개봉한다고 합니다.


바로 <사부 - 영춘권 마스터>인데요, 원제는 <사부>고, 영문제목이 <The Master>입니다. 아무래도 영화 <엽문> 시리즈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생각인지, '영춘권 마스터'라는 부제를 붙였네요. 솔직히 격이 떨어져 보입니다. 굳이 '영춘권 마스터'라는 유치한 부제를 붙였어야 했는지...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해보자면, 주인공이 영춘권의 고수인데, 천진에 도장을 세우기 위해 천진 지역의 8개 문파와 대결한다는 내용입니다. 굉장히 고전적인 중국무협영화의 스토리를 답습하고 있어서, 줄거리만 보고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저는 스토리보다는 액션 장면 위주로 감상하기 때문에, 액션만 잘 다뤄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중국에서 개봉했을 때부터 예고편만 보고, 정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침부터 국내 개봉 소식을 접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19일 개봉이라고 하니 아직 2주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는군요. 빨리 개봉해서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영춘권의 시원한 맛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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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매일 아침을 기다리게 했던 다큐멘터리 <천하무림기행>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천하무림기행>은 마운틴TV라는 작은 규모의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그 형식과 구성이 매우 독특하여 방송 전부터 이미 화제를 모았다.


매일 아침 8시에 마운틴TV와 네이버 캐스트에 동시 업로드되어 별도의 시청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한 편당 러닝타임이 10분을 넘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었다. 인간의 최대 집중력은 15분이라고 하는데, 짧은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볼 수 있게끔 맺고 끊음을 정말 잘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도 한 번 클릭하면 한 눈 팔새 없이 집중해서 보게 만들었으니까. 특히 UHD 화질로 제작하여, 엄청난 고화질을 자랑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컴퓨터 성능이 안 좋은 관계로, 초고화질로 설정하면 자꾸 버퍼링이 생겼다. 그래서 좀 낮은 단계로 감상해야했다)


천하무림기행은 큰 틀에서 '제1장 이것이 무협이다', '제2장 협객은 살아있다', '제3장 전설의 비급', '제4장 전설의 고수를 찾아서'라는 총 4개의 대주제로 나뉘었으며, 각 주제당 5편씩의 짤막한 소주제 에피소드로 구성이 되어, 총 20편의 에피소드로 방송되었다.


각 장에 대해 다시 설명해보자면 '제1장 이것이 무협이다' 편에서는, '무협'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함께 오늘날 무협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자세하게 다루었고, '제2장 협객은 살아있다' 편에서는 역사 속 대표적인 협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협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윈'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제3장 전설의 비급'에서는 무협지에 종종 등장하는 '비급'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찰했고, '제4장 전설의 고수를 찾아서' 편에서는 실제로 현실에서 무예를 수련하며, 21세기의 무림고수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무예를 수련하는 입장에서, 무협지 이야기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는, 현실의 무림세계 이야기가 더 궁금했고, 그런 부분을 많이 다뤄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보기 시작한 거라, 제3장부터 정말 몰입해서 재밌게 봤다. 특히 남소림사의 승려로부터 전수받은 비급을 토대로, 마을 주민 전체가 대대로 익혀오고 있는 '멜대봉법'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또 우연히 중국에 왔다가, 그곳에서 무예의 달인을 만나 아예 눌러앉아 무예 수련에 열중하는 파란 눈의 서양인 수련생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한 편으로, 20편의 에피소드는 알찬 구성이었지만 그래도 좀 짧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30편 정도로 2주 정도만 더 방영했어도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중국무림기행>이 아니라 <천하무림기행>이니,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무림 이야기도 다뤘으면 좋았을텐데 싶지만, 그건 굉장히 대규모 스케일이라 너무 큰 바람인 것 같고... 태극권, 소림권 뿐만 아니라 현실 무림에 존재하는 다양한 권법들에 대한 역사와 인물, 권술의 특징 등도 소개해줬으면 정말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천하무림기행 스페셜 영상)


<천하무림기행>이 끝나고, 네이버 캐스트에 스페셜 영상이 올라왔는데, 영상을 보고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실 처음 마운틴TV에서 <천하무림기행>을 방영한다고 했을 때, "마운틴TV라면 산악방송인가? 산악방송에서 왜 이런 걸 하지...?"싶어, 다큐멘터리의 퀄리티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뜯어보니 참 훌륭한 방송이었다. 다큐멘터리의 홍수 속에서 보기 드문 고퀄리티의 수작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퀄리티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송사가 영세한 소규모 방송채널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까지 정말 힘들었다고 눈물(?)로 고백하는 후기 영상을 보니, 그 열정과 진심에 감동을 받았다.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칭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스페셜 영상을 보니,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까지 정말 많은 제작진들의 진심과 열정, 땀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편으로, 돈도 안 내고 안방에 앉아 너무 쉽게 본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아무쪼록 이런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 달 가까이 나를 즐겁게 해준 제작진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앞으로도 번창해서 더 좋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포스팅을 보시는 분들도 <천하무림기행> 많이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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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혀 끝으로 만나는 중국 - 명절의 맛  (2) 201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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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 취권

감독: 원화평

개봉년도: 1978년

출연: 성룡, 황정리, 원소전




내가 취권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우연히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영화였는데, 그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젊은 청년이 성룡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성룡을 무척 좋아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인자한 미소와, 변화무쌍한 액션, 그리고 쉴 새 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나이 든 성룡의 영화만 보아오다가, 성룡의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영화 취권을 보게 된 것이다. 20대의 젊은 성룡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그의 모습이 반가워 영화를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30년 전 영화답게 단순하게 이루어졌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철부지가 괴팍하면서도 엄한 스승 밑에서 열심히 취권을 수련하다가 마침내 아버지를 노리는 자객과 싸워 이긴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에겐 영화가 매우 신선했고, 충격적이었다. 요즘 나오는 액션 영화들은 각종 특수효과와 비현실적인 액션으로 구성되어 가끔은 진부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특수효과라고 할 만한 것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져 모든 액션이 철저한 리얼 액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역 배우도 쓰지 않고, 성룡 그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하듯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가 영화 속에서 구사했던 아크로바틱한 전통 쿵푸 액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실제로 취권은 중국 무술 영화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된 작품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불멸의 쿵푸스타 이소룡의 영화가 전세계를 흽쓸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액션에 열광했다. 그러나 그가 34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무술 영화의 인기는 잠깐 주춤하게 된다. 그때, 성룡이 나타난 것이다. 젊은 성룡은 이소룡을 모방하기보다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액션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과 끊임없는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취권이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상대방을 방심시킨 뒤, 갑작스러운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취권은 많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고,성룡 특유의 코믹함과 결부되어 상상 이상의 대박을 터뜨린 것이었다. 나 역시 이러한 신선함에 반한 것이었고, 비록 30년 전의 영화였지만 이 영화를 내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로 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취권을 보고난 직후 아크로바틱한 중국 쿵푸 액션에 반하여, 얼마 안 가 쿵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무술은커녕 다른 운동도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하던 내가, 영화 한 편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쿵푸를 수련하면서 가끔씩 취권을 다시 보며 옛 추억을 상기하곤 한다. 내 인생에 있어 취권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 소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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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이어짐 -


결국 아쉬운 마음으로 부대 복귀를 해야했는데, 정말 천운이 따랐는지 다음 휴가를 나올 때까지도 <엽문 3>가 극장에 걸려 있었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용산CGV에서 계속 상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휴가를 나오자마자 바로 그날 첫 회 상영되는 <엽문 3>를 관람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엽문 3>를 상영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영화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엽문> 시리즈는 한 편의 영화를 두 개의 큰 에피소드로 나누어 그려왔었다. <엽문>에서는 첫 번째 에피소드가 북방에서 온 북방권의 고수 금산조(번소황)와 엽문의 대결이었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 중국인들을 탄압하는 일본군 장군과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엽문 2>에서는 홍콩으로 막 이주한 엽문과 텃세를 놓는 홍콩 무술계의 대표이자 홍가권의 고수, 홍진남(홍금보)과의 대결이 첫 번째 에피소드였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중국무술가들을 조롱하는 영국 복서와 중국무술의 자존심을 걸고 엽문이 맞서는 내용이었다.



(사진: 엽문 3 국내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엽문 3> 역시 두 개의 큰 에피소드로 영화를 그려나가고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엽문의 아들이 다니던 소학교를 강제로 매입하기 위해 호시탐탐 마수를 뻗치는 서양인 사업가 프랭키(마이크 타이슨) 일당과의 대결이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누가 진짜 정통인지 가리자'며 도전해온 또다른 영춘권의 고수 장천지(장진)와의 대결이다.


그리고 결국 영화의 결론이자 핵심적인 교훈의 모티브가 되는 '아내 장영성의 암 투병'이 두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고 있다.


홍금보와 차별화된 '원화평식 영춘권'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견자단의 영춘권 액션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특히 기존 <엽문> 시리즈의 무술감독이 홍금보였던 것에 반해, 이번 3편은 원화평으로 무술감독이 바뀌면서 홍금보와는 또다른 원화평식 영춘권 액션을 볼 수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확실히 액션 면에서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점이 많이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발차기'를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영춘권은 사실 족기보다는 수기를 위주로 하는 대표적인 남방 무술이기에 지금까지 영춘권을 그려온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기 위주의 액션을 영춘권의 모든 것인마냥 표현해오곤 했다. 그러나 원화평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영춘권의 족기도 적절하게 사용해가면서 영춘권의 새로운 액션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사진: 목인장을 치는 엽문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동안 견자단의 영춘권을 그리워했던 관객들을 위해 액션 장면을 군데군데 많이 집어넣기도 했다. 조폭들과의 집단 난투라던지, 무에타이 고수와의 대결, 타이슨과의 대결, 그리고 또다른 영춘권의 고수 장천지와의 대결 등등... 특히나 지금까지의 엽문 시리즈에서는 늘 영춘권이 다른 문파, 다른 국적의 무술과 싸워왔는데 이번 3편에서는 '영춘권 vs 영춘권'이라는 초유의 대결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영춘권의 진수를 맛보게 하였다.


마치 영춘권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촬영에 임한 것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 장천지와의 대결에서는 영춘권의 온갖 수기와 족기 그리고 두 개밖에 없는 무기술(육점반곤과 팔참도)을 이용한 대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춘권의 매력에 푹 빠졌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스토리


하지만 화려한 액션에 비해 스토리 전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뭔가 이야기들이 개연성도 떨어지고,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사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할 것만 같았던 프랭키가 고작 3분의 대결에서 무승부로 끝나자, 엽문을 그냥 보내주고는 더 이상 내용이 이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뭐 학교 매입을 포기했다는 건지... 고작 그 3분의 결투만으로 학교를 포기할 정도로 학교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너무 성급하게 매듭지어버린 느낌이었다. 여기에 더해 프랭키의 수족이었던 담요문 역시 어딘가로 도망가버리고서는 더 이상 나오질 않는다. 그가 처벌을 받거나, 엽문에게 실컷 얻어맞고 쫓겨나는 내용으로 매듭지었더라면 이렇게 'X싸고 밑 안 닦은 느낌'은 안 들었을텐데.



(사진: 견자단 vs 타이슨 - 출처: 네이버 영화)


여기에 더해 기존 <엽문> 시리즈에 등장했던 조연들이 대거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엽문> 시리즈에서 꾸준하게 조연으로 출연하여 엽문과의 우정을 이어갔던 친구 주청천(임달화)과 그의 아들 주광요라던지 엽문에게 얻어맞고 정신 차린 뒤 엽문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주었던 금산조, 엽문의 첫 번째 제자였던 황량(황효명) 등등... 엽문의 친구, 제자들이 대거 등장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이번 3편이 <엽문> 시리즈의 종결판이었던만큼, 마지막 작품까지 그들이 함께 나와 엽문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었더라면 더 완벽한 결말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대종사의 아름다운 퇴장


결국 <엽문> 시리즈는 끝났다. 속설로 <엽문 4>가 제작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나야 견자단의 영춘권 액션을 더 보면 좋기야 하다만, 솔직히 너무 욕심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장 <엽문 3>만 해도 '너무 질질 끈 나머지 시리즈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는 혹평이 쏟아지는 판국에,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사진: 영춘권 vs 영춘권의 화려한 마지막 대결 - 출처: 네이버 영화)

여하간 <엽문 3>를 극장에서 봄으로써, 나는 <엽문> 시리즈 전체를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일대종사는 이렇게 조용하지만, 아름답게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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