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3.10 [수필] 나는 미생이다
  2. 2016.09.20 [영화] <카트> (2014)

요즘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고 있다. 처음부터 '정주행'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간간이 주요 장면만 돌려보는 정도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데 드라마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대사를 들어도 그때 그때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미생>은 고졸 출신 비정규직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드라마다. 윤태호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절절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제목 미생은 바둑용어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어려운 바둑용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말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란 뜻이다. 그 반대의 뜻으로는 완성된 삶을 의미하는 완생이 있다. 즉, 미생이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디뎌 어리숙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처지를 빗댄 표현인 셈이다. 


나는 군대에서 이 드라마를 처음 봤다. 당시 나의 계급은 일병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일병은 '일만 하는 병사'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만큼 한창 바쁠 짬이다. 더욱이 그 당시의 나는 의지할 후임조차 없는 막내였다. 군 생활의 낙이랄 게 없는 그때, 선임들 틈바구니에 끼어 곁눈질로 보던 <미생>은 유일한 낙이었다. 애석하게도 항상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 청소시간이 시작됐다. 매번 결정적인 10분을 놓치는 게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첫 휴가 계획을 짜면서 '<미생> 정주행'을 목록에 넣어놨을까.


아무튼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까닭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 낙하산으로 매번 실수 연발에, 선임들에게 깨져가면서 점점 직장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주인공의 처지는 당시 군대에 있던 내 처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잠시나마 드라마 속 그를 통해 나의 처지를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병장이 되면 저절로 완생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막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병장이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후임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여전히 미숙했고 팀의 리더로서 우리 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만 앞섰을 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계급이 오를수록 늘 새로운 고민과 과제가 던져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역증을 받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등병이었을 때나 병장이었을 때나 나는 늘 미생이었음을.


전역하고 돌아온 사회는 여전히 내가 미생임을 더욱 절감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과제들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토익을 비롯한 어학·자격증 등 취직을 위해 쌓아야 할 스펙은 끝도 없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열심히 스펙을 쌓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면 나는 완생이 되는 걸까? 아니다.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도 꾸려야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직장에 살아남아야만 한다. 결국 나는 언제까지나 미생일 뿐이다.


사실 완생이란 내 삶이 다하는 그 순간에서야 마주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이뤄지지 못할 허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딱히 절망스럽지는 않다. 산을 정복한 뒤에 느끼는 정복감은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른 뒤에는 내려올 일밖에 없다. 그러나 미생들에겐 올라야만 하는 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아직 오르지 못한 산을 찾아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그러니 완생을 꿈꾸며 나아가되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눅들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드라마 <미생>이다. 결정적인 한마디로 주인공을 늘 응원해주던 직장상사 오과장은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 미생일 뿐. 그렇게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거지" 


* 이 글은 2017학년도 1학기 수원대학교 교양과목 '문예창작의 이론과 실제' 수업 중 작성한 글을 과제용으로 다듬어본 것입니다. 무단 불펌을 금지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

영화 <카트>를 봤습니다.


이 영화도 봐야지 봐야지 하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본 영화입니다. 한 대형마트 계약직 판매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 통지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요, 2007년에 있었던 한 대형마트에서의 대량 해고 사태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딱히 그 사건 하나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곳곳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풍경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작년 말에 방영했던 드라마 <송곳>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드라마 <송곳>이 영화로 리메이크된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이 영화가 더 먼저 개봉했더군요. 대형마트의 대량 해고 사태에 직면해 투쟁을 벌이는 여자 판매사원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회사의 부당 해고 방침과는 무관하게 자리가 보장된 정규직 남자사원이 여자 판매사원들과 연대해서 노조 투쟁을 벌이는 것도 그렇고. 놀라우리만치 드라마와 영화의 구조가 빼다박은 듯 흡사합니다.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 둘 다 출연한 배우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노조 활동을 거부하거나 노조에서 탈퇴하는 이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내내 머릿 속을 맴돌더군요. 영화에서 보면 마트 측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이간계를 씁니다. 몇몇 주동자들에게 "당신만은 자리를 보장할테니, 노조에서 탈퇴해라"라고 유혹하죠. 사람인 상 그런 유혹에 당연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투쟁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직업 활동가'나 먹고 사는 게 충분히 보장되어 마트 알바를 그저 용돈벌이 정도로나 하는 이들이라면 별 의미 없는 제안이겠지만, 대다수의 계약직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입니다. 그저 '반찬값' 벌러 나온 게 아니라 '생계'를 위해 뛰어나온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마트 측의 제안은 정말 달콤한 악마의 열매일 수밖에요.


결국은 이에 굴복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은 굴복한 이들에 대해 '변절자'라고 욕하고 매도하지만,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누가 저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당장 집에 돌아가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데 말이죠. 어떻게 보면 끝까지 남아서 투쟁을 벌이자고 외치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드라마나 영화니까 가능하지, 실제로 당장 내 가족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내 아들이 급식비를 못내서 점심을 굶는다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리고 이길 확률도 희박한 이 싸움을 굳이 내가 해야하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일제강점기의 상황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군요. 독립운동가들을 끊임없이 회유하기 위해 이간책을 썼던 일제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굴복하며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조선인들... 여기에는 생계형 친일파 혹은 대다수의 힘 없는 민중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물론 두 사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다소 어폐가 있겠지만, 결국 강자 앞에서 굴복해야 하는 약자들의 현실이나, 생계를 위해 현실과 일정 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힘 없는 민중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독립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카트>에서도 대형 마트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부당해고에 끝까지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지금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죠. 대량 해고 사태에 몇 년, 몇십 년 동안 굴하지 않고 천막 농성을 벌이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저들에겐 도대체 어떤 신념이 있기에,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가족들의 생계를 외면하면서까지 투쟁을 벌이는 것일까. 그 신념이란 것이 일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나보다는 우리를 위하자는 마음이 신념으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요? 지금 당장은 나나 내 가족이 고통받아도, 결국 나 하나의 희생으로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것을 꿈꾸기에... 그들은 기꺼이 투쟁에 앞장섭니다. 우리 독립운동가 선조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마지막으로 영화 <카트>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우리를 한 번만 봐달라"고. 이 외침은 우리에게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길거리에서 내몰려 천막 농성을 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언제 한 번 따뜻한 관심 한 번 줘봤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하게 됩니다. 당장 저게 내 가족의, 내 미래의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니까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고 자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군요.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