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 


중간에 군대도 갔다오고, 전역 후에도 바로 복학하지 않고 1년 동안 쉬면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네요. 복학을 앞두고 알아보니 학교는 여전하면서도 바뀐 것도 많은가봅니다. 당장 학제개편이 이뤄지면서 단과대학들도 다 바뀌었습니다. 교내 비리 문제로 시끌벅적한 건 변한 게 전혀 없네요. 씁쓸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휴학하고 지금처럼 사는 게 너무 즐거워서 복학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한 때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배운 게 뭔가 회의감도 컸습니다. 그렇다고 자퇴라는 선택도 막연하기만 해서, 결국 복학하기로 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학기는 지난 번에 받아둔 장학금이 있어서 그냥 버리기도 좀 아깝더군요. 대신 올해는 학점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정말 듣고 싶은 과목들만 듣다가 졸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 4학년 1학기 수강신청을 완료했습니다.


옛날엔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서버가 폭주하는 바람에 정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수강신청을 위해 아침 일찍 고성능 컴퓨터가 있는 PC방에 가서 수강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까지 큰 실패 없이 무난하게 듣고 싶은 과목들을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 수강신청을 위해 오픈시간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대기했는데, 이제는 정말 싱겁게 끝나는군요. 서버도 여유롭고, 사람들도 여유롭습니다. 아마 4학년이라 다들 여유가 생긴 듯 합니다. 자리도 많이 널널하네요. 그래서 장학금 신청이 가능한 최소 학점(12학점)으로 수강신청을 금세 끝냈습니다.


이번에는 총 4과목을 수강합니다. 전공은 '현대북한사' 딱 하나 뿐이네요. 1교시 수업이라 아침 일찍 가야하는 게 영 고달픕니다만 (출근길과 맞물려 인파가 장난이 아닙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밖에 학교를 가지 않아 예전보다는 편하게 통학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 과목들은 정말 제가 듣고 싶은 과목들만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시간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러닝(온라인강의) 강의로 '영화 중국어'를 골랐습니다. 오프라인 중국어강좌를 들으려고 했더니, 전부 1학년 때 들었던 과목이라 또 들으면 재수강이 됩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온라인 강의를 하나 신청했습니다. 올해 안에는 중국어를 배우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학교에 중국어 강의가 있는데 학원부터 가는 것보단 학교에 있는 강의를 잘 활용하는 게 우선이겠다 싶었습니다. 올해는 학교에 설치된 중국어 관련 과목들을 좀 듣다가, 학원으로 갈아탈 생각입니다.


'취재와 보도'는 언론정보학과 전공입니다. 저는 역사 전공이고 복수/부전공을 선택하지 않아 원래 들을 수 없는 과목이지만 미리 교수님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다보니 현장 취재를 할 일이 잦은 편입니다. 그런데 취재 요령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보니 주먹구구식으로 취재하곤 했습니다. 딱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규 이론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에, 이번 참에 한 번 제대로 배워보려고 합니다. 완전 실습형 강의라고 하니 더욱 재밌게 배울 수 있을 듯 합니다.


교양으로 선택한 '문예창작의 이론과 실제'도 구미가 당기는 과목입니다. 그동안 블로그 글쓰기, 기사쓰기와 같은 비문학 글쓰기는 꾸준히 해왔지만 소설과 같은 문학적 글쓰기는 제대로 도전해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문학적 재능은 젬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방면으로 글쓰기 역량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한 번 신청해봤습니다.


복학하면 휴학생 때보단 덜 여유롭겠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이니 예전보단 널널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가는 통학길에 책도 좀 많이 읽고 남은 캠퍼스 생활 좀 의미 있게 보내다가 떠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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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게이트 오픈

일상/잡담 2017. 2. 13. 16:14


토 나오는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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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시국선언문


온갖 비리와 부패, 몰상식의 연속이던 시간들도 모자라 중세시대에서나 나올 법 한 신권정치(神權政治)가 등장한 작금(昨今)의 상황을 목도하며 우리는 전 국민의 마음과 정확히 일치하는 분노와 혐오, 그리고 4.19에 대한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1960년 4월 26일 오전 10시 20분, 라디오를 통해 이승만은 아래와 같이 성명을 발표한다.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 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 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내가 아래서 말하는 바대로 할 것이며, 한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군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첫째,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습니다. 둘째,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셋째,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습니다. 넷째,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습니다"


183명이 사망하고 6259명이 부상당한 4.19혁명은 그 유명한 시국선언문 <자유의 종을 난타하라>의 내용처럼,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서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키며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 광정(匡正)하려는 우리 집단 지성들의 승리로 끝났다.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표독한 전횡이 국민의 거센 저항으로 종결된 것이다.


인심(人心)은 곧 민심(民心)이고, 민의(民義)는 곧 대의(大義)로 귀결되는 게 세상의 분명한 이치다. 민생의 원루(冤淚)를 외면한 채 비선 무당 패거리들에게 둘러싸여 눈을 감고 귀를 닫아 민심의 실체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자에게 우리는 고언(苦言)한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더 이상 역사에 죄를 짓지 말고 속히 하야(下野)하라. 국민의 뜻을 또다시 역행하고 남은 임기를 채우려 한다면, 그대는 역사에 “이승만”만도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검찰 포토라인에서 울부짖던 국무조정실장(國巫調整實長, 원 표기 國務調整室長에서 무당 무자와 최순실의 열매 실자를 차용함)과 그대는 국가 예산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기업에서 수백억을 강탈한 공범이다. 하다못해 라스푸틴과 신돈도 처음에는 민중을 위했다. 경고하건데 국민이 바라는 것은 국면 전환용 개헌이 아님을 명심하라. 대한민국은 당신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2016년 11월 2일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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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예전에 다른 카페에 업로드한 글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영상입니다.

3년 전에 만들어진 영상이다보니, 좀 철 지난 영상입니다만... 사실 이 영상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용기가 부족하여 의기 있는 학우들의 운동에 함께 동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제가 소속된 학교이니만큼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생각입니다. 

당장 내 집안의 일에는 침묵하면서, 사회와 국가의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것부터가 이미 모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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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던 2011년에 작성한 글이다.


어제 교양 수업 시간에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였다.


북한과 중국이 맞닿은 국경 지역... 즉 개산툰, 단둥, 연길 등 주요 국경 지역을 남한의 PD들이 목숨을 걸고 밀착 취재를 한 것인데, "만약 중국 공안에게 발각되면 바로 북한으로 호송된다. 그러나 저들은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를 한 것이다."라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서 소름이 돋는 한편으로, 이 다큐를 만든 PD와 스태프들의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와 불굴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에 잠시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찍은 만큼, 다큐멘터리의 완성도는 높았으며 담당 PD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PD상까지 수상하는 등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얼어붙은 두만강 위에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가다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하고 죽은 여성의 시체가 며칠째 방치되어 있는 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죽은 지 며칠 지난 북한 여성의 시체가 방치되어 있는 모습에 함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던 학생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1시간 동안 나는 충격과 공포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국경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인신매매, 마약 거래의 처참한 광경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당 간부라는 자마저 먹을 것과 돈에 굶주려 취재진에게 "가지고 있는 것 아무거나 좀 달라."고 호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자매의 이별'이었다. 북한에서 간신히 탈북하여 중국으로 넘어온 한 자매가 있었는데, 언니는 자유와 행복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동생은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동생을 설득하여 함께 데려가고자 하는 언니와, 끝끝내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동생의 대화를 그대로 담아내었는데 그 대화를 듣고 보니 동생에게 한심함을 느끼기보단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동생 역시 북한 사회의 참상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고, 다시 돌아가면 굶어 죽든 어떻게 죽든 제 명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끝까지 북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닌 '조국'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북으로 돌아가면 당장 부모도, 집도, 땅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없음에도 그녀가 북으로 가고자 했던 것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살다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조국이다. 아무 것도 없지만 내게 정신적 위안을 주는 삶의 터전이 바로 고향이고 조국인 것이다. 그곳이 비록 북한과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지옥이어도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국 '통일'을 해서 하나의 조국을 만들어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남매는 국경에서 서로 부여잡고 한참을 운 뒤에 헤어졌는데 언니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대학생이 되어 새 삶을 시작했지만, 동생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둘에게 '이별의 기억'은 살아가는데 있어 영원한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끝난 뒤,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와 연민이었다. 우리와 같은 땅에 살며, 같은 역사를 가졌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며, 같은 피가 흐르는 북한 민족들의 참상을 보며 그들에게 한 없는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인간 사파리'나 다름 없는 지옥으로 인민들을 내던지고, 본인들은 호의호식하는 북한의 기득권층에 강한 분노를 느낀 것이다. 북한이 못산다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이처럼 실제 국경 지역의 참상을 보니 그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북 동포들은 굶주림에 던져놓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버린 것을 부끄러워해야하는가? 오늘도 내 또래 이북 동포들은 국경 지역에서 살기 위해 목숨을 건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도 만족치 못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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