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대망의 출국일이 밝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아침에 비교적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친구와 김포공항에서 만나 공항철도로 환승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출국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서 꽤나 일찍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금방 끝났습니다. 티켓 끊고, 미리 예매한 포켓와이파이와 교토행 하루카(고속철도) 티켓도 수령했습니다. 일본 고속철도 티켓을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수령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여행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참 신기하고 편리하더군요. 출국 심사 마친 뒤, 점심 먹고 면세점 구경 좀 하다가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동해 상공을 날아 마침내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깥에 나가는데, 훅 끼쳐오는 덥고 습한 공기. 확실히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던데 피부로 확 느껴졌습니다. 과연 3박 4일 동안 무사히 보고 다닐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어쨌거나 저희는 바로 교토로 가기 위해 하루카를 타러 이동했습니다. 사실 저나 친구나 일본어도 영어도 할 줄 몰라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직감'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할지 몰라도 직감적으로 여기다 싶으면 그냥 들이대고 본 거죠. 무식하면 용감하달까. 


그런데 생각보다 이 직감이란 놈이 대단하더군요. 여행 중 구글 맵이 잘못 알려준 길을, 직감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끼고 반대로 가니까 제대로 도착하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하루카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사실 교토행 하루카인 줄 알고 열차를 탔는데,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니 다른 블로거가 올린 하루카 내부 사진하고 지금 저희가 타고 있는 열차 사진하고 전혀 다르더군요. 


"야, 우리 잘못탄 것 같다"하고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간사이국제공항으로 돌아가는 반대편 열차를 탔습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보니 하루카행 열차는 하루카 전용 탑승구가 따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다른 관광객들도 거기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저 사람들 왜 열차 왔는데 안 타고 서있지' 하면서 다른 열차를 탔던 겁니다.


결국 도착하자마자 뻘짓을 하는 바람에 지체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카는 자유석으로 운영이 되는 터라 티켓이 있어도 좌석이 차면 입석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앞서 하루카를 탔더라면 이미 줄이 길어서 꼼짝없이 서서 갈 뻔 했는데, 한 번 보내놓고 나니 줄이 리셋되어 저희가 비교적 앞줄에 자리잡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하루카에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일반 열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하루카를 타니 1시간 20분 만에 교토역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역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교토타워부터 들르는 거였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막상 교토타워를 보니 그닥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그냥 역 앞에서 감상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바로 숙소로 길을 잡았습니다.





숙소는 교토역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저녁이라 날이 선선해서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뭐 이렇게 낯선 땅 구석구석을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자유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한 30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가 나타났습니다. 교토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는 '다나카-야-인'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료칸 분위기가 나는 숙소로 일부러 예매했는데, 이런 형태의 숙소들이 거리에 밀집해있더군요. 인적 드물고 조용하면서도 깔끔한 거리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이 맞는 용어인지 모르겠습니다)소리도 무척 좋았구요.




숙소에 도착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주인 아주머니의 한국어가 유창하시더군요. 알고 봤더니 재일교포라고 합니다. 아주머니의 아들인 '마사토'라는 이름의 청년이 저희를 숙소로 안내해주었는데 무척 밝고 경쾌한 청년이었습니다. 이후로 한 번도 보지는 못 했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곧장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산조역 근처에 있는 '이케다야'라는 술집이 바로 목적지였습니다. 


여기도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숙소가 위치한 지역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는데, 좀 걷다보니 시끌벅적한 번화가가 나타나더군요.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삐끼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성진국답게 유흥업소들이 많이 보이는데, 솔직히 이런 장면은 저희 동네 근처 신림동만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라... 크게 이색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낯 익은 사진이 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의 기반을 닦은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앞에 비석이 있길래 한자를 해석해보니 이곳이 료마의 거주지였다는 것 같군요.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이 부근에 료마가 암살당한 현장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제 관심사는 오로지 신선조에만 꽂혀 있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침내 신선조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 이케다야에 도착했습니다.




이케다야는 원래 여인숙이었습니다. 막부 말기에 막부에 적대적이었던 조슈 번과 도사 번의 존황양이파들이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교토수호직이었던 아이즈번 영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암살과 교토 시내 방화, 천황 납치라는 어마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첩보를 입수한 신선조 대원들이 1864년 7월 8일, 야밤에 이케다야를 습격해 이들을 처단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케다야 사건'입니다. 신선조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한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메이지유신을 1년 늦춘 사건'이라고 평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이곳이 과거 이케다야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비석과 함께 지금은 동명의 이자카야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다보니 술집에서는 적극적으로 신선조 마케팅을 하고 있더군요. 아예 내부에 신선조 관련 그림과 모형 등을 전시해놓고 있었고, 신선조 특유의 톱니바퀴 모양 하오리를 입어볼 수 있게끔 복장들을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원들도 신선조 하오리를 입고 서빙을 하더군요.





그외엔 딱히 신선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과거 신선조가 활약했던 역사적 현장에서 사케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첫 잔은 우선 이곳에서 죽어간 신선조 대원들을 위해 추모의 잔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케다야에서 가볍게 1차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서 숙소에서 2차를 달렸습니다. 깊은 밤, 교토의 료칸에서 친구와 마시는 사케 맛이 참 달더군요.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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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부터 24일까지 일본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 휴가는 굉장히 즉흥적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애시당초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슬슬 휴가 시점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서울에서부터 일본까지 자전거 일주를 계획한 군대 선임(앞으로는 그냥 편의상 '친구'라 부르기로)이 "일본에서 합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오더군요.


제게 허락된 휴가는 3일. 그러니까 주말끼고 3일이면 일본에서 며칠 동안 놀고 먹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판단했습니다. 그 친구가 자전거 타고 일본에 건너오는 시점에 맞춰, 저 역시 비행기 타고 건너가 일본 어딘가에서 만나 며칠 놀고 먹다가 저는 저대로 다시 돌아오고 그 친구는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올 휴가를 보내기로 잠정 합의를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왕복 항공권까지 다 예매했는데, 바로 다음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일본에서 폭우로 100여명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본 폭우 소식이 국내 실검에까지 오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그 친구가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인들은 복구하느라 정신없는데 그 옆에서 유유자적 자전거 타고 다니기엔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맥이 빠지더군요. '누구 때문에 내가 항공권을 예매했는데...'하면서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친구가 내건 명분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 가야하는 건가' 싶어 고민이 컸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그런 제 입장을 배려해서 "자전거 여행은 포기했지만 형과 비행기 타고 같이 가겠다"며 동행을 약속하더군요.



어쨌거나 자전거여행이 아닌 3박 4일 간의 일본여행이 중심이 되면서 코스 역시 제가 주도해서 짜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에 가게 되면 교토 지역의 신선조(신센구미) 유적을 집중적으로 둘러볼 생각이었습니다. 작년에 NHK 대하드라마 <신선조!> 시리즈를 워낙 감명 깊게 본 터였습니다. 교토는 신선조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라 아직도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부랴부랴 국내 블로거들 중 이미 교토 신선조 투어를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정리해서 대략적인 코스를 짰습니다. (아래 코스 참조)


[교토·오사카 3박 4일 코스]


1일차(7.21): 교토 (이케다야)

2일차(7.22): 교토 (니시혼간지·마에카와저택·야기저택·코엔지·미부데라·킨카쿠지·사료호센·하치다이신사)

3일차(7.23): 교토 (기요미즈데라·산주산겐도·도요쿠니 신사·귀무덤·후시미이나리신사)

4일차(7.24): 오사카 (오사카성·도톤보리)



신선조 유적과 일부 유적들은 제가 짰고, 나머지는 친구가 골랐습니다. 일본의 폭염을 감안해서 최대한 널널하게 짜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괜히 이 더위에 이거 저거 보겠다고 욱여넣었다가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라. 다행히 신선조 유적들은 대부분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번에 해치우기(?)가 수월했습니다.


코스를 짜면 짤수록 자꾸 가보고 싶은 지역이 늘어나는 게 함정(...) 원래는 신선조 유적만 돌아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찾던 중 '하치다이 신사'가 또 눈에 띄더군요. 미야모토 무사시가 요시오카 일족과 대혈전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라고 합니다. 한때 또 미야모토 무사시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결국 추가했습니다. 더 추가했다간 죽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고 참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들더군요. 대학 입학 후 거의 매년 중국으로, 일본으로 그도 모자라 러시아와 독일까지 다녀왔지만 대부분 단체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준비랄 게 없었습니다. 숙식이며 이동이며 모두 현지 가이드가 함께 하니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사실상 처음으로 혼자 가는 자유여행(친구와 가는 거긴 하지만)이라 더 많이 떨리더군요. 항공권 예매부터 숙소 예약까지... 모든 걸 처음 하다보니 마치 해외여행을 처음 가는 사람처럼 헤매기도 하고 걱정도 컸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철저하게 준비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젠 직장에 얽매인 몸이라 환전할 여유조차 빠듯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여행을 떠나는 대망의 21일이 밝았습니다. 뭔가 덜 준비된 것 같은 불안함과 찝찝함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발걸음을 잡았습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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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미친듯이 덥다. 정말로.


어제는 수련하다 처음으로 퍼졌다. 상대방과 열심히 자유추수를 하는데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넘어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한증막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자유추수를 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너무 더우니까 공격이고 방어고 간에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중간 중간 '타임'을 외치면서 숨을 돌리다가, 결국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말하고 끝내버렸다. 


그러고 나서 옆에서 쉬고 있는데 극도의 갈증과 더위에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침 사제 한 분이 대련을 요청하러 다가왔는데 어지러워서 못 하겠다고 거절했다. 미안하게도. 


어차피 수련 끝날 때도 다 되었고 해서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이거 뭐 쉬어도 충전되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이 상태로는 더 못 할 것 같아서 결국 사부님께 먼저 간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수련터에 늦게 오는 법은 있어도 먼저 가는 법은 없었던 터라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워서 지쳤다고 하니 다들 왜 이렇게 약하냐고 한다. 


나도 자괴감을 느낀다. 나만 유난히 더위를 타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년 여름엔 어떻게 견뎠나 의문이다. 오죽하면 여름엔 수련을 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도 들었다. 근데 나 없는 동안 쭉쭉 뻗어나갈 동기들을 생각하면 또 그러진 못하겠다. 덥다고 쉬는 모양새도 우습고. 매년 여름마다 수련 안 할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극복해야 할 과제인 듯 하다.


오늘도 미팅이 있어 낮에 돌아다녔는데, 정말 밖에서 돌아다니는 그 잠깐의 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밥 먹는 동안에도 등줄기에 흐르는 땀 때문에 먹는 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밥 먹는 것조차 고통스러우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마트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샀는데 소음만 요란할 뿐 전혀 시원하지가 않다. 7천 원만 날렸다. 썅.


7월 말에는 일본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7월 말이면 더위가 절정일 때다. 게다가 한국보다 더 습하고 덥다는 일본이다. 여행 가서 더위 때문에 고생만 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된다. 여행은 고생하러 가는 게 아니라 즐기러 가는 건데... 친구와 같이 가기로 한 터라 이제 와서 "더워서 못 가겠다"고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고민이다. 난 왜 이렇게 더위를 타는 걸까. 나의 저주 받은 체질이 원망스럽다.


그나저나 함께 수련하는 사형이 남양주에 지부를 오픈했다. 굉장히 부럽다. 나도 수료하고서 보라매공원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치는 상상을 해봤다. 내가 열심히 땀 흘리며 꿍푸를 쌓아오던 장소에서 제자를 받아 가르친다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느 순간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수련터 홍보는 블로그로 할까 SNS로 할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서라.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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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의 진리>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온갖 성질(덥고 눅눅하고 굽꿉하고 찝찝하고 끈적끈적하고... 여름 하면 생각 나는 모든 느낌들)이 모인 여름 장마가 시작됐다.


한겨울 추위에도 꿋꿋하게 밖에 나가 수련을 하면서도 여름만 되면 맥을 못 춘다.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체질 탓이다. 더우면 덥다는 핑계로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핑계로 요며칠 간은 수련을 좀 게을리 했다.


어제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 탓에, 도저히 엄두가 안나 야외수련은 포기했다. 대신 집에서 가볍게 수련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밖에 비가 온다고 해서 수련을 못 한다는 건 핑계다. 마음만 먹으면 '황소 한 마리 누운 자리'에서도 수련할 수 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끔 연습하면 된다. 사실 실내에서 수련하면 굳이 옷 갈아입고 나갈 필요도 없고, 오히려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막상 실내에서 하라고 하면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 어차피 집에 있으니 앉아 있고 싶고 눕고 싶다. 수련을 시작해도 몇 번 깔짝거리다가 살짝 땀이 날 즈음에 마무리한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일단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에 나온 이상 '기왕 나온 거 좀 제대로 하고 들어가자'는 생각이 든다.


일단 시작하면 기세가 오르기 때문에 땀을 비오듯이 쏟아가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련에 열중하게 된다. 그러니 일단 집밖으로 나서는 게 중요하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이거슨 만고의 진리다. 사람이 한 번 편한 것을 추구하게 되면 끝 없이 만족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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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하늘에서 미친듯이 비를 퍼부어댔다.


퇴근 후 사무실에서 나설 때만 해도 비가 그친 상태였는데, 사무실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10분 사이에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바짓단이 다 젖으니까 짜증나서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로 이동해 잠깐 비를 피했다. '빗줄기가 약해지면 얼른 뛰어가야지' 하고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만 보고 있는데... 도무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집은 코앞인데... 짜증나서 그냥 나왔다. 그러고 한 1분이나 걸었을까. 빗줄기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쳐버렸다. 하늘이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괜히 울컥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예년보다 이른 장마라고 하는데, 매년 언제 장마가 오는지 일일이 기억하고 있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이르게 왔든 늦게 왔든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눅눅하고 꿉꿉하고 습하고 덥고... 내가 싫어하는 온갖 성질의 것을 다 지니고 있는 여름 장마가 정말 싫다.


나는 원래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서 물 맞는 걸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옷이 젖었을 때의 찝찝함, 비가 오면 야외활동(수련을 포함한...)에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싫다. 더욱이 여름 장맛비는 시원함을 동반하기는커녕 꿉꿉함만 더해서 짜증난다.


비를 좋아했던 때도 있긴 있었다. 군 생활할 때. 물론 나는 여름 군번이라 훈련소에서 자주 비를 맞았는데, 그 기억은 끔찍했다. 비가 올 때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면 물에 젖은 판초우의가 종아리에 차박차박 달라붙는 그 느낌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행군 때도 웬 비가 그리 쏟아내렸는지... 그때 내린 비 때문에 녹슨 총을 기름칠하느라 무척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자대 배치 후부터 비는 나에게 '하늘이 내리는 축복'이었다. 비가 내리면 모든 작전이 중지되고 막사 안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 맞으며 산을 타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유해의 훼손이나 유실 우려가 있어서 웬만하면 그날 작전은 취소된다. 


그래서 발굴병들은 누구랄 것 없이 비 소식을 기다린다. 발굴병들은 아침마다 창문 밖으로 비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뉴스로 그날의 일기예보를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밤에 잠들 땐 내일 제발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잠을 청한다. 새벽에 자다 깨서 비 내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면 속으로 '아싸'를 외치고, 한참 내리던 비가 일과 시간 직전에 그쳐버리면 속으로 '씨발'을 외친다. 비가 그치면 영락없이 출동이기 때문이다. 호국영령께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그 당시 우리의 마음이 그랬던 것을.


어쨌거나 앞으로도 살면서 비 오는 날을 반길 날은 없을 것 같다. 살면서 비를 반겼던 기억은 군 시절이 유일할 것 같다.



PS. 요며칠 수련터에 못 나갔는데, 비가 와서 또 하루 제꼈다. 이 비를 뚫고 수련터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거보면 장대비에도 꿋꿋하게 수련터에 나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한편으로 내 스스로의 열정이 이거밖에 안 되나 싶어서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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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에서 선발하는 '2017 나라사랑 역사탐방단'에 최종 선발됐습니다.


사실 해당 행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요, 과 선배가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셔서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바빠서 계속 미루다가 신청 마감날 급하게 써서 냈는데 운 좋게도 선발됐군요. 30명 뽑는데 86명 지원했더군요. 최종 선발된 덕분에 올 여름 일본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 참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인 것 같습니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많이 못 다녀봤는데 입학 후 1학년 때부터 안중근의사기념관,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장준하기념사업회, 청년백범에 이르기까지... 매년 여름마다 지역을 달리해 중국 내 항일독립운동사적지를 탐방하고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정말 중국에 다녀왔던 기억들이 꿈같기도 합니다.


다만 졸업하기 전까지 일본을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차였습니다. 실제로 전 태어나서 일본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어쩌면 제 전공과도 가장 밀접한, 만악(萬惡)의 근원인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는 게 모순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졸업하기 전에 이렇게 대학생의 특권을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일본 답사를 다녀오게 됐습니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 그리고 의열단원들의 흔적을 좇아갑니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도 간다고 합니다. 과연 그곳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벌써부터 감정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일본 열도에 남아있는 선열들의 흔적과 여전히 살아숨쉬는 극우정치의 망령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참가비는 40만원이라고 하는군요. 요새 재정적으로 쪼들려서 난감한 상황입니다만, 미친듯이 글을 기고해서 원고료를 벌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여권도 만들고 분주하고 보내겠군요. 가서 사진도 많이 찍고, 돌아와서 <오마이뉴스>에 기행문을 기고해서 여러분과 경험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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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상으로는 이미 입추(立秋)가 지났습니다만, 여전히 날씨는 무덥습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유난히 매섭듯, 가을을 시샘하는 늦더위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은 것 같군요.


확실히 날이 덥다보니까 여러모로 기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핑계에 가깝지만, 날이 덥다보니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게 사실이에요. 무예 수련도 자꾸 거르게 되고, 가만히 앉아서 독서하는 것도 힘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 두드리는 것도 귀찮네요. 집에 있는 에어컨은 누진세다 뭐다 세금 폭탄이 무서워 이미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랩니다. 


너무 더워서 집에 처박혀있는 것조차 괴롭기 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딱히 스케쥴이 없어도 아침만 되면 무작정 집을 나섭니다. 책 한 권 들고서요. 처음에는 어딜 가야할지 몰라서 무작정 도심을 배회했는데,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재밌는 구경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는 여의도 IFC몰에 갔습니다. 건물 전체가 에어컨이 빵빵하니 돌아다녀도 지치질 않더라고요. 오히려 춥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IFC몰에는 영풍문고가 있어서 거기 앉아서 밀린 독서를 했습니다. 책 읽다가 출출해지면 바로 아래층 푸드코트 가서 밥도 사먹고, 후식으로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받아들고 다시 서점가서 독서하고... 그러다 졸음이 쏟아지면 돌아다니면서 상점 구경하고...



어제는 해금을 수리하러 간 김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한 강남 센트럴시티에 갔습니다. 여긴 IFC몰보다 볼 거리, 즐길 거리가 더 많더군요. 이곳에 입점한 반디앤루니스는 여의도 IFC몰의 영풍문고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규모가 장난 아니더군요. 그냥 역사 코너 한 칸만 둘러봐도 그 방대한 양에 질릴 정도였습니다. 과장 좀 보태서 말하자면, 죽기 전까지 이 코너에 있는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아무튼 만날 집에만 처박혀있다가, 이렇게 도심 한복판을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 건물 구경을 하니 나름 시간도 빨리 가고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누진세 걱정 없이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으니, 이렇게 저렴한 피서도 없을 듯 합니다. 밀린 독서를 할 수 있으니 생산적이기도 하고요.


다만 충동구매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게 좀 힘듭니다. 워낙 먹을 거리, 볼 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서요. 지갑은 얇은데, 서점에만 가도 사고 싶은 책들이 넘쳐나고, 백화점에 가면 산해진미가 몰려있다보니 자꾸 돈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시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돈만 밝히는 속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돈 없으면 이런 것도 못 즐기는 게 사실이니까요. 늘 산해진미를 즐기고, 명품을 수집하면서 귀족처럼 살자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은 내가 먹고 싶은 게 있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지갑 걱정할 필요 없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갖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역시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겠죠.


어쨌거나 이럴 때 노트북이 있었다면 시원한 카페 같은 곳에 죽치고 앉아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이런 저런 글도 좀 쓸텐데 휴대용 PC가 없는 게 한이네요. 어쨌거나 저녁엔 집에 돌아와야 하는데, 열대야 탓에 집에서는 집중해서 작업을 한다는 게 여전히 버겁더라고요.


그러니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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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봅니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쓸 기운이 나질 않더군요. 컴퓨터 앞에 잠깐 앉아 블로그 포스팅하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뭔가 온 몸의 기운이 쑥 빠진 느낌입니다. 집에 있는 에어컨은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누진세니 뭐니해서 에어컨 키는 문제로 가족들과도 자주 싸웁니다. 저는 더위는 정말 못 참는 주의라 가능하면 하루 종일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고 싶은데... 더우니까 사소한 일로도 자꾸 짜증이 나서 더 신경질을 부리게 되는 것 같네요. 더우니까 무예 수련도 게을러지는군요. 여러모로 여름은 괴로운 계절입니다. 진심으로 여름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집에 있어봐야 에어컨도 못 키고... 답답한 마음에 오늘은 점심 먹자마자 책 한 권 들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더위를 피해 어딘가로 도망치듯 나온 건데... 막상 나오니까 밖에 돌아다니는 게 더 고통스럽네요. 주말이라 지하철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일단은 고궁박물관 가서 전시 좀 보다가, 광화문의 한 카페에 들러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죽치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래도 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니, 잠시나마 더위는 잊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봐야 더워서 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오죠. 돈도 없고, 딱히 갈 데도 없는 저한테는 그래도 이 방법이 가장 경제적이면서 간편한 피서법인 것 같네요. 당분간 더위가 풀릴 때까지는, 이렇게 카페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더위를 피해야겠습니다.


참고로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이명박 前 대통령의 자서전인 '대통령의 시간'입니다. 8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양장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 버겁네요. 그래도 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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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BS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나도펀딩'이라는 펀딩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도 6.25 전쟁 발발 제66주기를 맞아, 뭔가 의미 있는 펀딩을 한 번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SBS와 공조하여 의미 있는 펀딩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펀딩의 목적은 바로 국유단 후임 발굴병들이 쓸 물품을 후원하는 것입니다. 


요즘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많이들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일 고생이 많을 이들은 바로 군인이란 직업을 가진 이들이겠지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후방에서 고생하는 우리 국군 장병들... 이 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요. 


특히나 제가 소속되어 있던 국유단 후임 발굴병들을 생각하면 참 안쓰럽습니다. 우리들이 에어컨 바람을 쐬며 더위를 잠시나마 식히고 있는 그 시간에도, 우리 국유단 발굴병들은 여전히 호국영령의 유해를 찾기 위해, 이름 모를 산야를 오르고 또 오르고 있습니다. 


저도 발굴병으로서 군 복무를 하며, 두 번의 여름을 지내봤기에 그 열악한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더운 이 날씨에, 무거운 발굴장비와 물자를 짊어지고서 높은 산을 오르는 건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유해가 식별되기라도 하면,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정밀발굴을 실시해야 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아래, 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유해를 노출하는 과정도 결코 녹록지는 않습니다. 달려드는 산벌레 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여름에 발굴할 때는, 지쳐서 말할 힘도 없더군요.


그래서 현장에서 고생하는 우리 후임 발굴병들을 위해, 작게나마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이번 펀딩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펀딩은 7월 31일까지 진행되며, 목표액은 200만원입니다. 모금된 금액은 더위에 고생하는 국유단 소속 발굴병들을 위한 물품(아이스패드 및 물수건 등) 후원 비용 및 발굴된 유해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례비용으로 쓰일 것입니다.


뜻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소액이라도 괜찮습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소액마저도 부담스럽다면, 주위 지인들에게 알려주기만이라도 해주십시오. 애국은 꼭 총들고 전선에서 나라를 지켜야만 애국은 아닙니다.


펀딩 프로젝트 링크: http://nadofunding.sbs.co.kr/project/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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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해가 지날수록 여름이 더 더워지는 것 같다. 특히 올해 여름은 5월 말부터 슬슬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6월 중순에 이른 지금은 벌써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다가올 7, 8월 삼복더위는 어찌 견딜 수 있을는지... 체질적으로 더위에 약한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여름철은 수련하기가 참 안 좋은 계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마다 조금씩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차라리 겨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겨울엔 추워도 껴입고 운동하면 되고, 운동하다보면 금세 몸이 데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수련하기 좋다. 


하지만 여름에는 다 벗고 수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위 탓에 기운이 빠지고 온 몸이 나른해져 수련하기가 쉽지가 않다. 겨울철에는 관절이 굳어서 부상의 위험이 크다면, 여름철은 관절의 부상보다는 내기(內氣)가 손상될 우려가 매우 크다.


옛날 장용영 군사들은 촉한음서(觸寒飮署)라고 해서, 추위를 무릅쓰고 더위를 먹어가며 무예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목숨을 걸고 임금을 지켜야 하는 군대였으니 그런 거고... 평생 촉한음서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고 일찍 죽거나, 늙어서 병으로 고생할 우려가 크다고 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삼복더위에도 쓰러질 정도로 수련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다. 당장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선수들 혹은 무림제패를 꿈꾸는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려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취미로 무술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수련을 하다간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금세 관두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여름엔 수련을 하면 안될까? 그건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몸을 계속 움직여줘야 한다. 수련은 1년 365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름철 수련은 본인의 몸 상태에 맞게 그 양을 조절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약 수련양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이렇게 더운 날씨에 그 많은 양을 소화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지레 질려서 수련을 아예 거르게 될 확률이 높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무예 수련을 해왔는데, 요즘 들어 바쁘기도 바쁘거니와 날이 덥다보니 금세 몸이 피로해지고 귀찮아져서, 수련을 하루 이틀 거르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오늘도 저녁 먹기 전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가볍게 수련을 해줬다. 수련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름철엔 계절에 맞게끔 내가 수련양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부님도 종종 말씀하시길, "여름에는 무리하게 운동하면 내기가 손상될 우려가 있으니, 외적으로 활발하게 하는 운동보다는 정(靜)적인 수련을 위주로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더운 날씨에,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보면, 오히려 더위를 먹을 위험이 크다. 건강해지기 위해 무술 수련을 했는데,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이다.


오늘도 그래서 가볍게 몸을 풀고, 발차기도 허리 아래로까지만 천천히 차고, 주로 참장(입선)과 같은 내공 수련을 위주로 했다.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 칼쓰기. 오른쪽 어깨가 완치될 때까지는 왼쪽으로만 칼을 쓰라는 사부님의 충고에 따라, 보법 연습과 병행하여 왼손 칼쓰기 수련을 했다.


앞으로 다가올 7.8월 더위와 어찌 싸울지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름이 다가올 때는 항상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도, 또 어떻게 잘 극복해왔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26년이다. 올해도 정신없이 바쁘게 수련하고,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시원한 가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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