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예24기 한양류 식구들과 함께 관악산에 다녀왔다.


식구라고 해봐야 사부님과 두희 형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 뿐이었지만... 그래도 제일 수련터에서 제일 체력 좋은 남자 3인방이 산을 타니, 거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전역하고 이틀 만인 4월 15일에, 관악산 등산을 했었는데... 오늘이 5월 15일이니 딱 한 달만에 또 관악산을 타게 된 셈이다. 물론 그때는 사당역에서부터 연주대를 찍고, 깔딱고개를 지나 서울대입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서울대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연주대를 찍고 연주암 뒤로 내려가는 완만한 우회코스를 통해 사당역까지 거꾸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한 달 간격으로 관악산의 여러 코스를 찍어서, 이제 '사당-연주대-서울대입구' 구간은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이 든다.


아무튼 오전 9시 30분에 서울대입구 근처 만남의 광장에 모인 우리는, 설렁설렁 이야기를 하며 등산을 했다. 지난 번에 혼자 산을 탈 때는, 혼자라서 그랬는지 매우 심심하고 지루했는데 오늘은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며 산을 타니 긴 등산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무예24기 이야기, 십팔기 이야기, 역사학계 이야기...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연주대에 도착.


정오가 되면 관악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에서 점심 공양을 무료로 한다기에, 내려갔더니 줄이 정말 길다. 하필 오늘이 일요일이었던지라 등산객들로 바글바글거렸는데, 생각보다 로테이션이 빨리 돌아서 금세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비빔밥'. 사찰음식인데다가 다량으로 뽑아내는거라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시장이 반찬이고 무료로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맛있게 한 그릇 비워내고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길에 우리는 '산악 뜀걸음'을 했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등산객들을 새치기하며 바위를 뛰어넘고, 흙길을 뛰어내려가는 등 험준한 산길을 달려갔다. 사부님 曰 "이게 일반 평지에서 달리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하셔서 나도 사부님 따라 열심히 뛰었지만, 따라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자칫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건데, 사부님은 넘어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뛰어다니셨다. (한복 입고 어떻게 저렇게 잘 뛰어다니는지.. 역시 무예를 오래 수련하면 저래 되는건가)


사부님은 "산에서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뛰면 효과가 좋다. 특히, 넘어질까 긴장을 하게 되는데, 긴장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몸을 쓸 줄 알아야 고수가 된다. 단, 긴장을 풀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말에 유념하며 열심히 따라 뛰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없어지셨다.




결국 두희 형님과 단 둘이 한참 내려가다보니 하늘이 흐려지는 것이 곧 비가 올 조짐이었다. 그래서 발걸음 속도를 더 빨리 올렸는데, 결국 산을 다 내려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수관에 도착해보니 사부님은 비가 오기 시작할 때쯤 이미 전수관에 도착했다고 한다. 21세기 김광택?


아무튼 정신 없이 뛰어다니느라 자연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친한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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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전역한 지 이틀째.


이미 말년 휴가 때부터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하지?'하는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전역하고 나니 심사가 더 울적하고 불안해진다. 전역하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군 생활 2년 동안 남들보다 뒤쳐진데다가 나이도 있고 하니 정말 빨리 뭐라도 해야한다는 중압감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전역도 했으니 공식적인 '백수'가 된 셈인데,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마냥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잠만 자는 것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 오늘은 근처 관악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 중 하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어머니 따라 가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전역하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휴가 때만 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 결국 전역하고서야 오게 됐다.


특별히 준비랄 것도 없이, 그저 김밥 두 줄과 시원한 생수 한 병만 챙겼다. 물론 복장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갖추었다. 군 생활하며 입었던 발굴피복으로 완전 무장하고, 우리 단 캡모자까지 착용한 뒤에 전투화(발굴화)까지 신고보니 영락없는 발굴병의 모습이다. 사실 나한텐 이 복장이 가장 편할 수밖에 없다. 늘 산을 탈 때마다 이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산을 탔으니... 오랜만에 추억이나 느낄 겸, 일부러 발굴복으로 갖춰입고 집을 나섰다.




(사진: 오늘의 내 등산복장! 완전 발굴병 코스프레가 따로 없다)


사당역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코스가 있다고 하여, 무작정 사당역으로 향했다. 내 손엔 지도도 없었다. 그저 주말에 사당역에 가보면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있었던 것만 생각하며, '어떻게든 길이 나오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평일 오전임에도 드문드문 등산객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길이 맞나 싶을 때는 그 사람들을 이정표 삼아 따라갔다.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관악산 등산로 초입이 등장!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음에도 뒤돌아보니 경치가 아름다웠다. 저 멀리 내가 군 생활한 현충원도 보이고, 우리 집도 보이고, 63빌딩이며 한강이며 서울시내 한복판이 다 내려다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올라갔던 것 같다.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지만, 목적지인 연주대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길어서 지루했다. 이정표 상으로는 소요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하러 가는 산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코스가 힘든 코스도 아니었고. 다만 목적지인 연주대에 다다르니 마지막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험한 암벽이었다. 






(사진: 관악산 등산 중 내려다 본 서울시내)


사실 중학생 때 처음 관악산을 탔던 기억은 내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연주대를 코앞에 두고서 암벽이 무서워 한사코 안 가겠다고 버텼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일행들은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당시의 기억은 약간은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이라, 굳이 관악산을 다시 찾은 것도, 나름 산 좀 탄다고 자부하는 국유단 발굴병 출신으로, 다시 한 번 정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너무 관악산을 무시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방자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시 타도 산이 험하긴 험해 겁이 났다.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길이니 우회하여 돌아가라는 경고문도 군데군데 있었다. 근데 애석하게도 우회로를 찾지 못해서, 결국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앞으로 못 갈 것 같아서, 일부러 앞만 보고 전진했다. 암벽에 찰싹 달라붙어, 밧줄과 쇠사슬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기어올라갔다. 끝 없는 암벽을 타고 올라서니 마침내 관악산 정상 도착!




(사진: 관악산 정상 도착!)


일단 무사 도착에 안도의 한숨을 푹 한 번 내쉬어주고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니, 평일임에도 등산객들은 꽤 있는 편이었다. 평일에도 이 정도인데, 주말엔 얼마나 사람이 많을까. 산은 역시 사람이 드문 평일에 타야 그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연주대는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초기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의상대'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를 듣고,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연주대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찰칵! 뒤에 보이는 암자가 연주대)


연주대에 가보니,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무릎 꿇고 저마다 각자의 소원을 부처님께 빌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소원 하나 빌어야겠다 싶어 합장을 하고 작은 소원(?)을 빌었다.


연주대에서 기도를 드린 뒤에, 연주대에서 조금 아래에 떨어져 있는 사찰 '연주암'에 들러 사찰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도 부처님께 절과 기도를 드리고서, 점심을 먹은 뒤에 반대 방향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사진: 관악산 연주대 근방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서울대학교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길은 악명 높은 '깔딱고개'였다. 계단이 워낙 많아서 등산객들에게 정말 힘든 구간이라고 하는데, 나야 내려가는 입장이라서 힘든 줄 몰랐지만,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좀 힘들긴 했을 것 같다. (계단하면 또 악명 높은 화천의 무명 943고지를 잊을 수 없다)


그래도 사당역에서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길이 너무 길어서 지루했는데, 이쪽 길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다. 사실 올라가면서도, 어떻게 다시 반대로 내려가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 길은 상대적으로 짧아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서울대 캠퍼스가 나왔다. 물론 캠퍼스가 워낙 넓은지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데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다. 등산로를 따라 호수공원을 지나,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대를 벗어나 삼성고등학교 앞까지 왔다. 마침 그곳에 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관악산 연주대를 정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내려오고 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좀만 더 천천히 오르고 내려가며 경치를 즐겼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수 있겠다. 발굴지에서 등산을 하면, 사브작사브작 천천히 오르는 게 아니라, 간부와 선임들의 눈치 때문에 죽기 살기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짬이 차면 천천히 타고 싶어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르게 타고 있다. 덕분에 후임들은 나 따라오느라 죽을 맛이었다.


사실 난 타고난 성격도 급해서, 등산을 통해 '사브작사브작' 걸으며, 성격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었는데, 경치를 즐길 것도 없이 그저 빠르게 타다보니 이게 잘 안되는 것 같다. 등산모임이라도 나가야 할까봐.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면서 천천히 타다보면 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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