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링크: http://omn.kr/np5n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 시작한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엔 영혼의 강제동원이 이뤄지고 있던 '대동아성전대비'와 탐방단이 새롭게 찾아낸 '윤봉길 의사 구금소 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특히 윤 의사의 구금소 터를 찾아가는 여정은 흥미진진한 내용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슬프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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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omn.kr/nojs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독립기념관 주최로 4박 5일 간 열린 '2017 대학생 나라사랑 역사탐방'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일본 가나자와·도쿄 지역 일대의 독립운동사적지 등을 둘러보는 내용으로 구성됐습니다. 탐방하는 동안 보고 들으며 느꼈던 경험을 탐방수기로 묶어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 전문을 옮겨오기에는 다소 번거로운 것 같아 앞으로는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뒤, 기사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용을 블로그에 링크로 첨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열람과 공유 부탁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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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에서 선발하는 '2017 나라사랑 역사탐방단'에 최종 선발됐습니다.


사실 해당 행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요, 과 선배가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셔서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바빠서 계속 미루다가 신청 마감날 급하게 써서 냈는데 운 좋게도 선발됐군요. 30명 뽑는데 86명 지원했더군요. 최종 선발된 덕분에 올 여름 일본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 참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인 것 같습니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많이 못 다녀봤는데 입학 후 1학년 때부터 안중근의사기념관,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장준하기념사업회, 청년백범에 이르기까지... 매년 여름마다 지역을 달리해 중국 내 항일독립운동사적지를 탐방하고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정말 중국에 다녀왔던 기억들이 꿈같기도 합니다.


다만 졸업하기 전까지 일본을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차였습니다. 실제로 전 태어나서 일본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어쩌면 제 전공과도 가장 밀접한, 만악(萬惡)의 근원인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는 게 모순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졸업하기 전에 이렇게 대학생의 특권을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일본 답사를 다녀오게 됐습니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 그리고 의열단원들의 흔적을 좇아갑니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도 간다고 합니다. 과연 그곳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벌써부터 감정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일본 열도에 남아있는 선열들의 흔적과 여전히 살아숨쉬는 극우정치의 망령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참가비는 40만원이라고 하는군요. 요새 재정적으로 쪼들려서 난감한 상황입니다만, 미친듯이 글을 기고해서 원고료를 벌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여권도 만들고 분주하고 보내겠군요. 가서 사진도 많이 찍고, 돌아와서 <오마이뉴스>에 기행문을 기고해서 여러분과 경험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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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을 나와 홍 실장님과 함께 바로 옆 효창원의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올랐다. 이곳에서 나는 김구 선생님께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큰 절을 올렸다. 군 입대 전에 김구 선생님 묘소에 와서 참배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참배를 마치니 때마침 원로 애국지사 김우전 선생이 올라오고 계셨다. 김우전 선생은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님의 비서를 지낸 분이다.

 

 

이젠 생존 당시 김구 선생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노병(老兵)이지만 당신이 모셨던 김구 선생님에 대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고, 분향하는 것을 보니 내 가슴도 먹먹해졌다. 나는 김우전 지사님께 사진 한 장 같이 찍기를 청해 함께 사진을 찍는 영광을 얻었다.

 

 

 

이후 나는 홍 실장님과 헤어져 삼의사묘역(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묘역)과 임정요인 묘역(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였다. 삼의사묘역에 가니 예비 유해발굴병으로서 안중근 의사의 가묘(유해 없는 무덤)가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그런데 비석들이 하나 같이 새똥과 흙탕물로 뒤범벅되어 차마 못 볼 지경이었다. 급한대로 가방에서 물휴지를 꺼내어 닦을 수 있는 데까지 닦았다. 삼의사묘역 뿐만 아니라 임정요인 묘역도 심각했다. 특히 조성환 선생 묘역의 비석은 닦을 때보니 비석이 흔들려서 위태롭기까지 했다.

 

효창원은 현충원과 달리 국립묘지가 아닌 근린공원이라 현충원만큼의 관리를 기대할 순 없다지만, 엄연히 공원관리소가 있는데 대체 관리소는 무얼 하고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다. 아마 군대 가기 전까지도 열심히 용산구청에 민원을 넣다갈 것 같다. 내가 전역하고 나왔을 때면 이미 효창원이 국립묘지가 되어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염원한다.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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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얼마 전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효창원 국립묘지화' 입법추진에 대해 그 지역 주민들과 구의회 등에서 강하게 반발하며, 심지어 효창공원 앞에서 대대적으로 반대서명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하필 이 소식을 접한 오늘은 8월 29일, 103년 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국권을 강탈당한 날이기에 더더욱 가슴 아픈 소식으로 들려온다. 하놀도 무심치 않았는지 오늘따라 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린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효창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은 이곳에 주둔하며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난 뒤에는 미군이 다시 이곳에 주둔하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직후 외세의 교두보나 다름 없던 이곳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민족영웅들의 유해를 찾아 안장한 바 있다. 그것은 외세의 교두보나 다름 없던 이곳에 민족영웅의 유해를 안장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불어넣고 성지화하고자 했던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범 선생 당신도 서거하신 뒤에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비롯하여 앞서 언급한 세 의사의 묘역(여기에 훗날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기 위해 마련해둔 안중근 의사의 가묘 포함)과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이 있다. 즉, 이곳이야말로 민족의 성지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 발생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할 만한 일이었다. 김구 선생에게 열등감을 느껴 공권력을 동원해 효창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지 못하게 막고, 그도 모자라 그 주변에 효창운동장을 짓는 등 민족의 성지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던 이승만 독재정권의 그런 잔혹한 행위들이 바로 오늘의 분란이 일어나게끔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효창원을 탄압해 공원화했을 때부터 이미 지역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언제 어느 때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써 자리매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효창원 국립묘지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고, 당장 자신들의 편의부터 생각하는 그 지역 주민들의 이기적인 마인드에도 환멸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효창동 주민도 아니고, 또 그들 나름의 속사정이 있을텐데 내가 무턱대고 "이곳은 민족의 성지이니 당신들이 무조건 양보하시오!"라고 할 자격도 없다.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동의 없이 무조건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대체부지를 선정해 효창원 내 선열들의 유해를 그곳으로 이장하자는 저들의 의견 역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의견이다. 효창원은 김구 선생께서 깊은 뜻을 가지고 직접 조성하신 곳이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민족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인데 이곳을 완전히 공원화시키고 선열들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도 어렵다면 서로 합의를 볼 수 있는 타협안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국립현충원만큼은 아니어도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서도 국립묘지로서의 격(格)은 갖추고 있는 그런 장소로 만드는 것도 생각해봄직 하다. (일반인이 편안하게 다가서기 부담스러운 지금의 현충원보다는 오히려 주민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자주 찾는 장소가 된다면 그것이 민중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뜻에도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효창원은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겪어야하는 것인지... 새삼 분란을 일으키도록 원인을 제공한 이승만이 사무치게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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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제27차 <아!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이하 장정) 모집 포스터가 나왔다. 26차 장정을 다녀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참 이럴 때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실감한다.

장정은 장준하 선생이 중국 쉬저우의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 광복군이 되는 6천리 장정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행사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 장준하 선생이 추운 겨울에 얼어죽을 각오로 넘어야만 했던 파촉령 등등... 10박 11일 장정 기간 동안 들렀던 곳들 중 어느 한 군데도 눈물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마침내 장정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는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해 '애국가'와 '독립군가'를 힘차게 부르고 정식으로 '청년등불'이 되었을 때의 감격은 직접 다녀와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정말 내 스스로가 광복군이 된 것 같고, 단신으로 일본군 몇 명 정도는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사실 요즘 무료로 떠나는 해외역사탐방이 많다보니, 주위에 홍보해도 참가비 95만원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내 돈 내고 다녀와야 돈이 아까워서라도 더 열심히 보고 듣고 느끼고 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개인이 가려면 95만원으로 택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정도 비용도 국가보훈처에서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금액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알바해서 번 돈으로 참가비를 내고 다녀왔다. 장정 막바지에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님께서 "니가 알바한 돈으로 참가비 내고 왔는데,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또 알바해서 95만원 내고 가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녀본 모든 역사탐방이 하나같이 다 유익하고 의미있었지만, 특히 장정과 장정을 다녀온 청년등불들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부디 많은 분들이 지원하고 선발되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기를...

자세한 사항은 http://www.peacewave.or.kr/bbs/zboard.php?id=4_2_1_1&page=1&page_num=30&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n&keyword&no=4687&category 를 참조.

PS. 장정을 다녀와서 국가보훈처 블로그에 게재했던 후기가 있는데, 이걸 한 번 읽어보면 어떤 행사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1부: http://mpva.tistory.com/2292
2부: http://mpva.tistory.com/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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