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면 '부고'란이 있다. 웬만해선 잘 보지도 않고, 본다고 해도 무심코 넘기는 코너다. 남들 죽었다는 소식을 유의 깊게 볼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더욱이 유명인의 부고라면 부고란이 아니라 톱뉴스로 크게 실릴테니 일부러 부고란을 찾아볼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신문을 넘기다 무심결에 부고란을 봤을 때, 유독 뜨끔하면서 가슴이 저미어지는 때가 있다. 바로 독립운동가들의 별세 소식을 들을 때다.


솔직히 연세가 연세인지라 이상할 게 없지만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분들이 한 분, 두 분 우리 곁을 떠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쓰라리다.


지난 8일 밤에 백범 김구 선생의 경위대장(오늘날의 경호실장)이셨던 원로애국지사 윤경빈 선생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윤 선생은 1945년 1월, 장준하 선생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고, 나중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호위했던 분이다. 생존해있는 몇 안되는 광복군 출신이라 늘 만나뵙고 싶던 분이셨다.


마침내 지난 2013년, 경교장에서 윤 선생을 만나뵌 적이 있었다. 그해 여름, 일본군을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해 광복군이 된 청년들의 장정 루트를 따라 걷고 돌아왔던 차였기에 70여년 전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 계셨던 분을 만나뵀다는 사실에 몸둘 바를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이미 거동도 불편하셨거니와 귀도 잘 안 들리셨지만 내가 충칭에 다녀왔다는 말은 정확하게 알아들으셨다. 그 말에 반색하시면서 내 귀에 대고 "경교장은 민족정기의 상징이나 꼭 보존해 나가야한다"고 당부하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시는 뵙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쓸쓸하다.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후로, 생존 애국지사들을 만나뵐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분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올까봐 늘 조마조마하다. 그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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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스스로 노예되기를 자처하는가


무예24기 한양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시작된 박근혜 게이트가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매일 같이 쏟아져나오는 청와대발 뉴스속보에 경악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 유출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안방에 앉아 온갖 미용시술을 받은 것도 모자라 비아그라까지 반입해 청와대가 청와텔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린 생명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 304명이 차가운 바닷 속에 가라앉는 동안, 국가재난을 관리하고 총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무려 사건 발생 7시간 동안 관저에 들어앉아 출근조차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권은 법적·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정권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는 지금 미친 기관사가 운행하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꼴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관차에 가만히 앉아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것인가.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미친 기관사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학생, 주부, 농민, 직장인 등 직업의 구분도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만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 국민의 이름으로 청와대 안방에 들어앉아 귀를 막고 있는 암군(暗君)에게 퇴진 명령을 하달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도 아니며, 대통령이 물러나는 문제도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주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미친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맡긴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권자로서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포기한다면 스스로 개·돼지나 노예되기를 자처하는 꼴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 어찌하여 오늘의 질곡을 용납하고 이 현실을 초래한 원인을 우리 주권자는 방관만 하였던가? 언제나, 오직 주권자의 권능만이 조국의 진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중략···) 주권자의 우(愚)는 조국을 난파선으로 침몰시키고 말 것이다" - <주권자의 관용이 민주주의를 교살한다> (『사상계』1967년 4월 호 권두언)


"오늘날 나라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 각자 백성이요, 관은 우리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기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에 대해서 봉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관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만에 일이라도 관에 있는 자 번문욕례(繁文縟禮: 법과 규칙이 까다로움을 이르는 말)의 구름 위에 앉아서 백성을 농락하고 법을 짓밟는 일이 있다는 이것은 본말을 전도한 사회적 반역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의 퇴진을 요구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 <민주주의를 기원한다> (『사상계』1956년 9월 호 권두언)


2016년 11월, 우리는 지금 여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기필코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진리다.


"참다운 민중세력은 언제나 역사에서 승리한다. 겨울이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낙관을 지니고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친 이 암흑에서 그래도 지금 일어나야 한다. 봄이 온다. 꽃이 핀다. 저항의 계절에 우리는 민중의 새로운 승리, 민족사의 거대한 긍정을 다짐하자" - <저항의 자세를 적극화하자> (『사상계』1967년 2월 호 권두언)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산통을 겪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은 과거 독재정권 당시 민주투사들이 겪어야 했던 시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체념하고 방관함으로써 국민 스스로 주권자임을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시련을 청산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우리 스스로 후손들에게 독재정권의 유산을 떠넘기는 못난 조상이 될 수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뿌리 깊은 친일군사독재정권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기나긴 산통 끝에 찾아올 새로운 생명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아직도 광장으로 나가기를 망설이는가. 스스로 개·돼지나 노예가 되고자 하는가. 먼 훗날 우리 후손들로부터 '못난 조상'이라 손가락질 받고 싶은가. 우리의 자손들이 "그때 당신은 뭘 했느냐"고 물었을 때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조상이 되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자.


2016년 11월 26일


무예24기 한양류

(http://cafe.naver.com/seoulmuye24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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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대학 16년도 3학기가 개강한 지도 벌써 2개월이 다되어간다. 이 시점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본부전공선택과목인 '기자학과'가 어제 개강했다. 마지막 특강까지 포함해서 총 5주 강좌로 구성되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다고치면 5주라는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직접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마치 본격적인 바리스타 교육을 받기 전 취미과정인 홈바리스타 과정부터 먼저 시작했듯이, 이번 강좌 역시 기자라는 직업이 나의 가치관에 맞나 판단하기 위한 탐색과목 정도로 생각한다.


기자란 사실 고단하고 외로운 직업


첫 강의는 경제전문지인 이데일리 산업부 소속의 신정은 기자가 연사로 나섰다. 오늘 강의의 주제는 '기사쓰기의 이해'.



신 기자는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란 사실 고단하고 외로운 직업이다"라는 말로 강의의 서두를 열었다. 그녀가 준비해온 PPT에는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 근거들이 통계 등으로 제시되어 있었는데, 여러 직업들 중 수명도 가장 짧아 단명하는 직업군에 속한다고 한다. 그에 대한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불규칙하고 과다한 근무시간, 치열한 보도경쟁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더욱이 요즘은 몰지각한 기자들로 인해 '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져 기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도 않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악플러들이 다는 악플 때문에 상처 받을 때도 많다는 것이다. 신 기자는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쓴 기사에 달린 악플들 몇 가지를 사례로 보여주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신 기자의 이름을 대놓고 언급하며, '기자 이름 기억해두겠다'는 악플이 보이던데... 이건 거의 협박 수준 아닌가. 기자들이 알게 모르게 겪어야 할 고충들에 대해 새삼 깨달았다.


기사쓰기의 단계


이어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신 기자는 기사를 쓰기 위한 단계를 2단계로 나누었다.


1) 아이템 발굴


기사쓰기의 가장 첫 번째 단계로, 기사를 쓰기 위한 소재를 발굴하는 단계다. 신 기자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취재거리다"라며, 남들과 다른 관점과 호기심을 갖고 주위 사물을 바라보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실제 자신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한창 구제역으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 인근에 위치한 음료수 공장을 보고 "혹시, 구제역이 저 음료수 공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도 구제역의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공장의 거리가 멀어서 그런 의혹은 깔끔하게 풀렸지만, 신 기자는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이처럼 주위 사물을 찬찬히 잘 살펴보고, 호기심을 갖고 남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캐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아이템을 발굴하기가 어렵다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파악해서 기사 아이템으로 잡아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2) 야마 잡기


그렇게 아이템이 선정되었다면, 다음 단계는 '야마'를 잡는 것이다. 야마란 해당 기사의 주제, 핵심, 방향, 논조 등을 두루 포괄하는 용어로, 일본식 표현이다. 아직도 언론계에서 공공연하게 쓰이는 표현인 듯 싶었다. 사실 나부터도 군 복무 시절에, 일본의 잔재인 것을 알면서도 일본식 표현들을 적나라하게 사용했으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국내 언론계에서도 아직 이런 표현을 당연하다는듯이 쓰는 것이 의아하긴 했다.


여하간 신 기자는 "기사의 야마를 정했다면, 야마 외의 곁가지들은 버려야 한다"며 "아까운 건 알지만, 그래도 기사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고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한 기사에 두 개의 주제 이상은 담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야마를 드러내기 위한 제목을 잘 뽑는 것도 중요하다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도 기사의 내용을 대충 파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목이 싱거우면(?) 기사를 읽지도 않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기자는 "그렇다고 일부 연예지처럼 일부러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는다던가, 본문에 없는 내용으로 낚시성 제목을 뽑으면 절대 안된다"고 못박았다.


제목 뽑기... 굳이 신문 기사가 아니어도 개인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도 늘 어려워서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다. 제목 뽑기만 따로 뽑아서 강좌 하나 해도 모자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내용은 앞으로, 곁가지는 뒤로


이어 그녀는 "한편을 유용하게 쓸 것'과 '문장은 무조건 짧고 간결하게 쓸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한편이란 글에 반전 혹은 부연설명을 주기 위한 부사다. 기자 본인이 전달하고자 했던 기사를 다 완성한 상태에서, 좀 아쉽거나 뭔가 더 설명하고 싶을 때 유용하게 쓰라는 것이다. 대신 이 내용은 잘려도 상관이 없어야만 한다. 어디까지나 '부연설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문기사는 '역피라미드'순으로 작성을 한다고 한다. 이것은 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야마(핵심)가 담긴 중요한 내용은 모두 앞쪽에 서술하고, 뒤로 갈수록 쳐내도 무방한 부연설명 위주로 서술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작성하는 이유는 신문지면의 한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편집을 하면서 지면 관계상 글을 줄이게 되면 뒤에서부터 쳐내기 때문에 이런 구조로 작성을 한다는 것이다. 이건 처음 듣는 팁이라 앞으로 글을 쓸 때도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기사의 종류]


1. 스트레이트


1) 직접적으로 정보를 전하는, 기사의 전형적인 형태

2)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

3) 역피라미드 형태


2. 단신 기사


1) 짧은 스트레이트

2) 400자 이내로 짧게 쓰는 기사


3. 피처 기사 (박스 기사)


1) 스트레이트가 아닌 기사들을 주변에 선을 그어 구분하던 데서 비롯된 명칭

2) 특정 사안의 배경이나 전망을 추가 설명하는 해설, 사건이나 사건의 주인공 등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흥미 있는 화제를 다루는 글

3)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자료를 분석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뒷이야기 등

4) 자유로움, 기자 개인의 문체가 드러나기도 함, 내러티브 기사 등


4. 기획기사


1)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

2) 1~2면을 바름

3) 기사 연재


5. 스케치 기사 (르포 기사)


1) 사건의 주변 분위기를 묘사한 기사

2) 주관을 배제하고 현장 분위기를 전달 (완전한 배제는 불가능)


6. 칼럼


1) 기자 경력 15년 이상

2) 평기자는 취재일기, 기자수첩, 기자의 눈 등으로 취재 뒷이야기를 쓰는 것

3) 주관적 글쓰기

4) 새로운 시각, 정보, 글맛을 갖춰야 함


디테일의 차이


기사의 전체적인 틀을 잡는 법에 이어 '디테일한 면'을 잡는 법을 언급하였다. 첫 번째로, 매 문장마다 끝을 맺는 '서술어'를 다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쓴 기사를 화면에 띄웠는데, 서술어마다 블라인드 처리를 해놓고 수강생들이 직접 돌아가면서 하나씩 맞춰보았다. 신기하게도 모든 서술어가 다 달랐다. 같은 뜻이지만 반복해서 쓰는 게 아니라, 전부 색다른 단어를 쓴 것이었다. 이걸 보면서 기사 한 편을 쓰기 위해 참 많은 정성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나부터도 지금 이 후기를 작성하면서 서술어를 최대한 색다르게 끝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로는 '인포그래픽'을 강조하였다. 인포그래픽이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 외적인 수단으로, 사진 및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요즘은 인터넷 신문 시대라 글보다는 이런 인포그래픽이 오히려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스브스뉴스>를 비롯하여 주요 언론들까지도 도입한 '카드뉴스'가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감정 표현을 금지하라'고 강조했다. 기자는 독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이지, 기자 개인의 신념을 주입시키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


그녀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기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세 가지'를 강조했다. 그 세 가지란 다음과 같다.


1) 저널리즘


'저널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신문과 잡지를 통하여 대중에게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사실을 끝까지 추적하여 보도하려는 정신', '사건을 균형있게 바라보려는 시각', '자신만의 줏대' 등 기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저널리즘에 입각한 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가치관


신 기자는 바로 이 가치관을 제일 강조했다. 즉, 기자라는 직업이 내 가치관에 적합한지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기자란 '고단하고 외로운 직업'이다. 실제로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업만족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과도한 근무시간에 비해 그렇게 높은 소득을 받는 직업도 아니고, 취재 및 보도경쟁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그녀는 본인이 기자를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장이 좋기 때문이다. 평생 살면서 만나보지 못할 유명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내가 기자였기에 가능한 일이고, 이슈 현장의 한복판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짜릿함을 느낀다"


3) 멀티플레이어


마지막으로 신 기자는 시대가 바뀌면서 종편이 등장하고, 독자(시청자)들의 의식 수준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으며, 언론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화(종이신문->인터넷 뉴스)하기 때문에, 이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다방면으로 프로페셔널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오늘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시간


그녀의 입담은 재치있었고, 강의 진행은 물 흐르듯 부드러웠다. 현직 기자로서 본인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생생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본인에게 있어서는 큰 상처가 되었을 법한 에피소드들도 이제는 지나간 추억인 것마냥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그녀를 보면서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의 열기는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식을 줄을 몰랐다. 강의 초반에는 쭈뼛쭈뼛 어색해하던 수강생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저마다 손을 들어 질문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수강생들의 질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신 기자의 답변을 옮겨본다.


[신정은 기자와의 일문일답]


Q. 소속 언론사와 기사의 방향을 놓고 대립하게 될 경우 어떻게 하는가?


A. 당연히 싸운다. 데스크에 끊임없이 찾아가 요구한다.


Q. 인터뷰를 하러 다가가기가 어렵다. 조언을 해준다면?


A. 처음부터 일을 목적으로 다가간다는 인상을 주지 말라.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친근함을 형성하라. 그리고 나서 인터뷰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Q. 실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A. 정말 그런 일이 많다. 욕도 자주 먹고,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가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는 거라 생각하고 털어버린다. 나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지 않은가?






무거운 발걸음


기자학과 1강 수업을 듣고 나오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사실 故 장준하 선생을 존경한다는 이유만으로 한때 언론인의 길을 꿈꾸었고, 실제로 다양한 정부기관 소속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나름 글솜씨를 인정받은 나였다. 그럼에도 스스로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내가 쓴 글은 누구라도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고, 내 글에는 줏대와 깊이가 없다는 강박관념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언론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낙인을 찍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정은 기자의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기자라는 직업이 갖는 매력에 대해 끌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실을 가려내고, 시민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감추려고 하는 사회 이면의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 사회정의와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나로서는, 여전히 기자만큼 매력적인 직업도 없다. 


다시금 이 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에, 내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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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대학 2016년도 3학기 기자학과 사전과제


■ 책의 제목


정의를 부탁해/권석천 저/동아시아


■ 저자에 관하여(저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 포함) (300자)


이 책을 쓴 저자 '권석천'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법대 출신들이 가는 일반적인 코스(사법고시)를 걷지 않고, 언론계로 진출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법에 애착을 느낄 수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하지만 막상 신문사에 들어가니 법의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법학이라는 그의 전공이, 그의 기자 생활을 규정지어버린 것이다. 


그는 사실 문화부 기자를 꿈꾸었지만, 신문사에서는 그의 전공이 '법학'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조 기자'로 보내버린다. '개인의 사정은 조직의 필요 앞에 무력했다'는 그의 고백에서 무력감과 분노를 읽은 것은 나 뿐일까. 


여하간 그는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중앙일보에서 논설위원을 하며 '권석천의 시시각각'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한 주마다 중앙일보 지면에 실리는 그의 칼럼은 독자들에게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분노를 제공한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한국 사회를 가르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사회의 현안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대중들에게 그가 '균형 있는 언론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나 역시도 이번에 그가 쓴 책을 읽으며, "아직까지도 이런 언론인이 남아있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인상 깊은 구절 (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넣어주세요)


1. '칼럼은 편견이다.' 언젠가 읽은 작가 김훈의 한마디가 위안이 돼주었습니다. 그래, 꼭 정답일 필요는 없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을 보여주면 돼. 텅 빈 모니터, 깜빡이는 커서 앞에 진실하면 되는 거야. (p.5)


2. 가장 큰 난관은 용기였습니다. 팩트와 팩트를 논리로 이어가다보면 이 선을 넘어도 되는 걸까. 고민되는 지점이 나타나곤 합니다. 자기검열의 경고등이 켜지는 순간이지요. 기자로서의 양심에 비춰 문제가 없다면,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면, 글을 완성하기 위해 피할 수 없다면 눈을 질끈 감고 그 선을 넘었습니다. (p.6)


3.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면 기자는 사건이 만드는 것입니다. (p.11)


4. 더 심각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자기기만쯤은 멋지게 해낼 수 있어야 먹이사슬의 위쪽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데 있다. (p.23)


5. 2015년의 사건들은 세월호와 인과의 끈으로 묶여 있진 않더라도 최소한 겹쳐져 있다. 부끄러움의 자정 능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항용 나타나는 현상이요, 징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자기기만의 시스템을 더 높이 쌓아올리는 것인지 모른다. (p.24)


6. 시스템은 중요하다. 다만 시스템이 우릴 구조해줄 것이라 믿는 건 오산이다. 착각이다.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선장, 해경, 장관, 총리,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움직여줘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스펙이 화려하다고, 신망이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진정성과 용기, 열정과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p.28)


7.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p.32)


8.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희생하는 사람과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피고인)는 국가를 위해 희생했고, 나(검사)는 봉사했다. (p.36~37)


9. "사도세자의 칼에 죽어간 환관과 나인이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죽음은 무시해도 되느냐"는 일갈이었다. 칼럼의 골격을 보면 사도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민초들은 돌아보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과연 우린 영조의 관점, 혜경궁 홍씨의 관점, 조선 사관의 관점에 묶여 있는 것일까. 뒤주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내버려진 환관과 나인들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p.45)


10.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p.60)


11.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 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61)


12.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는 전체주의 정당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 의미를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로 한정하는 경우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 정당의 자유를 제한하여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p.62~63)


13. 하지만 그들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가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 한다. (p.64~65)


14. 법치주의는 법 만능주의가 아니다. 권력자의 횡포를 막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법을 제대로 만들고 공정하게, 신중하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질서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을 내모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억압일 뿐이다. (p.71)


15. 나는 공권력이란 말이 되도록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건 권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권한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공(公)이란 수식어도 부적절하다. 공이 무조건 사(私) 위에 있다는 발상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p.75)


16. 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문장력은 학력 순이 아닙니다. 문장력을 뒷받침하는 생각의 질은 어떤 고등학교 나와 어떤 대학 갔느냐에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자신의 삶에 진지하고 솔직했느냐,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느냐에 따라 생각의 질이 달라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 진정한 글의 힘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 아닐까요. (p.100~101)


17. 사과는 반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왜 분노하는지 상대방 말을 듣는 데서 시작돼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해야 한다. 반드시 상대방 눈을 보면서 해야 하고, 때를 놓쳐서도 안 된다. 그래야 사과하는 사람도, 사과 받는 사람도 마음을 열고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p.138)


18. 국가의 명예란 국가가 스스로 그 명예를 주장하며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고 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악의적이고 상당성을 잃은 비판이라 할지라도 국민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p.150)


19. 감히 말씀드리건대 소통은 너(상대방)를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공감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소통과 공감은 오히려 나 자신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p.171)


20. 시스템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이다. (p.174)


21. 총구에선 권력이 나오지만 투표함에선 권한이 나올 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통령이라도 공식적으론 권한이라고 해야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력을 인격화하고 우상으로 받들며 그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고 있다. (...) 권력엔 부패가 따르지만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p.178)


22. 한바탕 칼춤 뒤엔 억울한 혈점(피가 맺혀 살갗에 생긴 점들)들 부지기수요, 원(怨)과 한(恨)이 봄날 벚꽃처럼 구천에 흩날렸으니, 탓할 것은 칼이 아니요, 그 칼 쓰다 각자도생(各自圖生) 떠난 자들 아니던고. (p.214)


23. "검찰에 있을 땐 정의냐, 불의냐,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로만 봤습니다. 그런 이분법으로는 그 무엇도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저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간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p.235)


24. "민주주의가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과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이들이 선거에서 패하게 하는 것이다. 멀고 험하고 귀찮은 길을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면역력을 강하게 만든다." (p.275)


25. 그들은 취재 대상이나 피사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름과 사연을 묻고 셔터를 누르는 것까지 '기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장에 급파되는 기자들은 재난자들에 대한 취재 기법과... 취재, 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고백에서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p.332)


26. 기자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신뢰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 (p.333)


27. "언론이, 기자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해부할 만한 전문성과 집요함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옳다, 그르다, 당위론에 머무르는 것 아닙니까." (p.340)


28. 언론의 조폭성은 현장 상황을 사소하게 여기면서 내부의 생각을 강요하는 데서 나온다. 존경받는 성자도 모든 상황에서 옳을 순 없다. 보수든, 진보든 모든 언론이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반대쪽에 선 이들의 다른 면도 보려고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p.341)


29. 정의와 취향은 반대쪽에 있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 정의로운 사회는 다른 이의 취향을 철저히 존중해주는 곳일 것이다. (p.345)


30. 사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받아쓰는 행태가 신뢰를 저버린다는 문제 제기였다. 실제로 언론의 공신력이 낮아진 데는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해온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들은 같은 길을 가는 동료라는 의식을 잃은 채 특정 진영의 종군기자, 개별 언론사 샐러리맨이 돼왔다. (p.348)


31.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다. 이기는 게 정의다.' 이 지랄 같은 상식을 깨는 건 슈퍼히어로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어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다. (p.415)


■ 감상평 (600자 이상)


열정대학 기자학과를 수강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사전과제였다. 현재 R-POINT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책 한 권 읽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400쪽이 넘는 이 책의 두께를 보고 지레 겁을 먹었으나, 막상 책장을 펼쳐드니 도무지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책을 쓴 저자는 현직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이 책 역시 그가 중앙일보에 매주 기고하는 논설코너 '시시각각'의 글들을 묶은 것이다. 그래서 글들의 주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있었으며, 신문사 칼럼의 형식에 맞춰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문사의 사설이나 논설에 대해 호의적이진 않은 편이다. 재미는 있지만, 스트레이트성 기사에 비해 개인이나 사측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글이기 때문에, 아무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집필하려 신경썼다고 해도, 어느 정도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이트성 기사들은 기사를 쓴 기자보다는 기사의 소재가 되는 사건에 대해 독자들의 칼날이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논설이나 사설은 사건보다는 집필한 기자에게 칼날이 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나 보수 언론, 진보 언론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따른 언론사별 색채가 뚜렷이 구분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논설의 성향 역시 매우 강한 색채를 띠고 있다. 나처럼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신문을 읽어도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저자 소개만 보고서, '이 책도 어쨌든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의 성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런 편견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중앙일보> 칼럼이라는 타이틀만 없었다면, 이 논설이 어느 신문에 실렸을지 감도 잡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권석천 위원은 우리 사회와 언론을 지배하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 이런 기자가 있긴 하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 때 장준하 선생을 존경해 언론계로 진출하는 것을 꿈꾸었던 나로서, 롤모델까지는 아니어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입대 전까지만 해도 통일부, 국가보훈처 등에서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기자라는 꿈을 잠깐이나마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군 생활 중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기자라는 꿈에 대해서는 회의를 느꼈더랬다.


일단 보수/진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언론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나는 이승만도 존경하고 김구도 존경한다. 동시에 이승만도 비판하고, 김구도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어디 그런가. 보수 언론에서 김구는 빨갱이요,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이다. 진보 언론에서 김구는 민족지도자요, 이승만은 독재자다. 하지만 김구든 이승만이든 각 인물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비판하고 넘어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잣대로, 그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한마디로 재단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사고가 아닐까. 이런 양극화된 언론계에서 과연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나를 받아줄 곳은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에 쉽사리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지 못했다.


두 번째로, 자신이 없었다. 내게 사건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잣대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줏대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글쓰기 능력이나 취재 능력 등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여러모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겼고,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글 한 편 쓸 때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역시 글재주가 없어"라며 자신감이 위축되어 갔다.


하지만 권석천 위원의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권 위원 역시 25년 이상 언론계에 몸을 담은 '베테랑 기자'이면서도, 아직까지도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매번 글을 쓰면서도, 색다른 문체와 시각으로 글을 구성하기 위해 '독백체', '편지글',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노력과 시도가 존경스러웠다. 나같은 경우도 글을 쓰는 스타일이 고정적인데 사실 나만의 색채를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글이 담기는 매체나 형식에 따라 글의 스타일도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능력이 늘 부러웠기 때문에, 권 위원의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분석한 현안 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도 인상 깊었지만, 그가 강조하는 '기자 정신'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피해자를 취재할 때는, 그를 단순한 취재대상이나 피사체로 인식하지 말고, 피해자가 겪고 있을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감과 배려',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사건을 합리적으로 보려 노력하는 '균형 잡힌 시각',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도자료만 보고 받아쓰는 수동적 보도가 아닌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사건의 근본을 인식하고 진실을 보도하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취재' 등등... 여러 글들을 통해 그가 강조하는 기자가 갖춰야 하는 자세들은, 수많은 글을 써왔던 내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였거니와, 다시 한 번 '기자'라는 꿈을 꾸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먼 훗날,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이 글을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있든, 기자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든... 어쨌든 글쟁이로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이 책을 통해 받은 자극이 언제까지고 유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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