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평소부터 봉하마을은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거리가 워낙 멀고 교통이 불편해 마음 먹고 가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다 이번에 출발 3일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술집 '관악바보주막'에서 단체버스로 당일치기 방문을 한다기에 충동적으로 신청해서 다녀왔습니다.



봉하마을이 워낙 멀기에 하루 안에 다 보고 돌아오려면 새벽같이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발장소인 신림역으로 향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벌써 점심 때더군요. 한반도가 넓다는 걸 새삼 또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대통령의 집'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 머물렀던 집입니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집"이라는 유지에 따라 지난 5월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됐습니다.



예전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집을 일컬어 '아방궁'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은 바 있지요.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의 집인데 일반 주택보다는 호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꼼꼼하게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대통령의 집은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방궁은커녕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집 한 채만 있더군요. 다만 이 집엔 '철학'이 있다는 것이 여느 집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집은 흙,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설계됐다고 합니다. 또 주변 산세와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립니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속 밖으로 나오게끔 설계가 됐다고도 합니다. 이유인즉슨,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안에만 꽁꽁 틀어박혀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계속 밖에 나와서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표어가 액자에 걸려있습니다. 그 아래 웬 낙서가 있길래 의아했는데, 손녀가 한 낙서라고 합니다. 뭔가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서 뭉클했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휴식을 취하던 안채(거실)를 지나면 서재가 나옵니다. 서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참모들과 함께 마을 생태계 복원과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총 919권이라고 합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들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 다니는 입장에서 우리 출판사 책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없더군요. 아쉬워라...


노 전 대통령은 하루에 책을 5~6권씩 번갈아가며 읽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매우 비슷한 스타일인데요, 그만큼 지적 욕구가 왕성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퇴임 후 그가 남긴 육필 원고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가 가진 지식의 원천이 모두 이 책들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책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이를 지도자로 세우게 되면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컨셉을 강조하던데, 앞으로도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대통령의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던" 유서 내용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 묘역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 새겨진 작은 너럭바위 하나만이 이곳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잠든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뭉클하더군요. 연신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게도 9년 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당시 고3이었던 저는 토요일이었음에도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졸중', '노무현 전 대통령 음독' 등 노 전 대통령의 유고 소식이 확실치 않은 상태로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하굣길에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서거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영결식이 있던 29일은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였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영결식 생중계를 틀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이게 나라냐"면서 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이래저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인 듯 합니다.


묘역 참배 후에는 봉화산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봉화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굽어봤던 장소,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부엉이바위는 펜스와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관람객들은 아쉬운 마음을 이기지 못했던지 펜스를 넘어 부엉이바위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펜스로 막혀 있었지만 부엉이바위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바라본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참 가슴이 착잡해지더군요.



내일이면 벌써 그의 서거 9주기를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요. 무너진 민주주의를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촛불)으로 바로 세우는 모습을 보고 못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면서 "야! 기분 좋다!"고 외치지는 않았을까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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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처음 읽었던 때 말이다. 꽤나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젠 책 속의 구절들도 가물가물하지만 소설을 읽던 당시의 감정만큼은 여전히 또렷하다.


답답함, 굴욕감, 분노. 차라리 이 모든 내용이 픽션이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품었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우리네 역사를 마주하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1636년(인조 14년) 12월, 청나라의 침략으로 시작된 병자호란은 조선의 역사, 아니 5천 년 민족사를 통틀어 가장 굴욕적이고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한때 '야만족'이라 깔보던 여진족들이 하늘처럼 떠받들던 중화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 임금의 무릎을 꿇린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렇다 할 전투조차 치러보지 못한 채 너무도 빠르고 무기력하게 항복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비감에 젖게 만든다.


원작 소설의 충실한 반영


처음 영화 <남한산성>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기대보다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아무리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박희순 등 내로라하는 명품배우들을 총출동시켰다지만 적을 물리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나 극적인 반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패배와 굴종의 역사에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던 걸까. 지난 3일 개봉한 <남한산성>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매우 뜨거웠다. 개봉 직후 <킹스맨: 골든 서클>을 제치고 예매율 1위를 달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비록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장면들은 없었지만 병자호란의 비극적인 역사를 스크린에 제대로 구현해냈다는 평들이 쏟아졌다. 특히 동명의 원작 소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평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영화 <남한산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에 당연한 얘기일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는 김훈 소설이 갖는 특유의 '비장미'와 '절제미'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구체성 없이 모호하면서도 은유적인 김훈만의 문장이 영화의 대사와 캐릭터의 성격으로 고스란히 구현된 것이다. 


최명길과 김상헌, 과연 누가 옳을까


영화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와 조정 신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청나라 군대가 코앞까지 들이닥친 상황에서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분)과 적극적인 항전을 부르짖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분)의 대립 구도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줄기다.


최명길은 적진과 남한산성을 끊임없이 오가며 나라와 백성이 모두 '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찾은 답은 화친이다. 조선군의 세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무모한 항전이 오히려 '말(言)의 길'을 끊어 더 큰 피를 부르게 될까 고민하고 두려워한다. 


반면 대의명분으로 무장한 김상헌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하는 전형적인 선비다. 싸워보지도 않은 채 적에게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함부로 맡길 수 없다며 "차라리 이 자리에서 신의 목을 베라"고 부르짖는다.


영화는 최명길과 김상헌 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논리적 정당성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고 있을 뿐이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나라와 백성부터 살리고 보는 것이 먼저 아니겠냐는 최명길의 주장도, 적에게 구걸하여 얻어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김상헌의 주장도 제각각 일리 있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동혁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남한산성은)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며 관객들 스스로 판단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위정자들의 책임 회피에 대한 통렬한 비판


다만 영화는 또 다른 대립 구도를 설정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바로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자들과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의 대립이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방법은 달랐어도 나라와 백성을 위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운 충신들이다. (사사건건 서로 반대만 할 것 같은 그 둘도 영화 속에서 때때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 둘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무겁게 여겼으며, 그 책임감에서 자신만의 신념이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각자가 목숨 걸고 화친과 항전을 부르짖은 것도 나라와 백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반면 영의정 김류(송영창 분)를 비롯한 대다수 중신들은 상황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를 반복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데만 급급하다.


최고결정권자인 임금 인조(박해일 분) 역시 다르지 않다. 인조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신료의 말을 경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고 도망치려고만 한다. "나는 살고자 한다"는 그의 한 마디에 나라와 백성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라는 그의 무책임한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는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보다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선 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더욱 강하게 비판한다. 그들의 '찌질함'을 더 노골적으로 비꼬기 위해, 영화는 인조와 조정 중신들의 대화 장면을 마치 만담처럼 우스꽝스럽고 과장되게 연출하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이 여의도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영화가 보내는 메시지가 뜨끔하게 다가오는 것은 오늘날 우리네 정치적 현실이 겹쳐 보이는 탓이다. 여의도의 그 많은 정치인들 중에 자신의 가슴에 달린 '금배지'의 무게를 무겁게 여기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헌정 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 앞에서도 상황의 엄중함과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가 결정권을 가졌다"며 득의만만하던 한 야당 대표의 말만 봐도 병자호란 당시의 위정자들과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선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 사드·북핵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외교·안보적 현안 앞에서 미·중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백성들이 그랬듯 이제 우리들도 위정자들의 현명한 '선택'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영화 <남한산성>은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지 않는다. 다만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으로부터 회피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책임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책임이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길을 걸을 것인지, 인조와 조정 신료들의 길을 걸을 것인지 말이다.


[일러두기]


* 해당 글은 <오마이스타> 기사로도 보도됐습니다

* 첨부한 스틸컷의 저작권은 영화 <남한산성>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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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입당 신청했습니다.


민주당은 온라인 당원이라는 제도가 있어, 굳이 지역 시/도당이나 중앙 당에 찾아가 원서를 제출하는 번거로움 없이 인터넷으로 마우스 클릭 몇 번 하면 신청이 끝나더군요. 사실 정치라는 건 특정 개인이나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접근성이 높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온라인 당원 제도는 선진적인 것 같습니다.


입당원서를 작성할 때, 뭐 이것저것 요구할 줄 알았는데 그닥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 않더군요. 5분도 안되서 신청이 끝났습니다. 당비도 매월 1,000원으로 저렴하더군요. 당비를 안 내도 당원이 될 수 있지만, 제 목소리를 내는 '권리당원'이 되려면 당비를 정기적으로 납부해야한다길래 흔쾌히 정기이체를 약속했습니다. 


통상 입당 심사가 2주 정도 걸린다고 하는군요. 요새 정국이 정국이다보니 민주당 후원과 당원 가입 신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평상시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뭐 급한 것도 아니고... 언제든 문자가 오겠지 하는 느긋한 심정으로 기다릴 생각입니다.


사실 저는 26년 동안 정당 활동과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정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죠.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기성세대에 만연한 불신 풍조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번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오히려 심화됐죠. 국민들은 추운 겨울에 주말도 반납하고 매주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드는데, 야당은 탄핵 시기와 절차를 놓고 지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솔직히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이 더 얄미워서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어쨌거나 정치를 외면하고 불신한 풍조가 박근혜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하면 결국 나라가 산으로 가게 됩니다. 더러우면 오히려 그걸 정화시키도록 노력을 해야죠. 저 스스로 주권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정당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민주당이냐?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그분이 그러더군요. "정치권이 무심한 것 같아도 국민들의 촛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실제로 탄핵하기로 결정한 후 민주당이 보인 행보는 일사천리였습니다. 더욱이 요새 들어 호감을 갖기 시작한 박원순, 박주민, 표창원, 안희정 등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기도 하고요. 제 생각에도 제1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게, 정치 풍토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쉽다고 판단해서 민주당 입당을 결정했습니다.


당원이 된다고 해서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마는... 일단 이렇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보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참여하면서... 내 자신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먼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목소리를 보태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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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참 황당하고 화가 나는 일을 겪었네요. 학교 선배들과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 하던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있었는데 제가 군대가고, 그 형들도 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거나 호주로 유학가는 등 각자 바쁘게 사느라 잠깐 서로를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났는데, 거의 2년 반만에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 형들... 저한테 빨리 군대나 가라고 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전역해서 다시 만나니 새삼 신기했습니다.


근데.. 선배들 중 한 사람을 술자리에 부른 게 화근이었네요. 그 형도 같이 잘 지내던 형이었고, 약간 좀 어벙하지만 사람이 착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근데 어제 1차에서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더군요.


만나서 서로 근황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 지 5분이나 됐을까?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술자리에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정치 이야기죠. (다른 하나는 종교) 저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국민인데 정치적 견해가 없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그런 얘기를 해야죠. 그 정도 눈치는 저도 있습니다. 


근데 이 형은 오랜만에 만나서 대뜸 '방산비리가 어쨌네', '너 김대중 좋아하지 않냐', '난 왜 박정희가 욕 먹는지 모르겠다'는 둥... 횡설수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짜증나서 저는 아예 듣지도 않고, 핸드폰만 했습니다. 같이 들어주던 선배도 짜증이 났던지 계속 소맥 폭탄주를 말아서 돌리더군요. (대충 눈치챘지만 빨리 취하게 해서 입 좀 닫으려고 한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저도 못 참고, 그 형한테 "아니 지금 전역하고 2년 반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왜 굳이 이런 얘기를 해야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리고 1차 끝나고 그 형 보내버리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끝내자고 하고, 다른 선배랑 함께 단 둘이 2차 가려고 했는데, 계속 끈질기게 따라 붙으려고 하더군요. 2차 같이 가려던 선배도 "그냥 한 번 데려가보자"고 해서 '정치 이야기를 안 한다는 조건'을 걸고 2차 술자리로 데려갔습니다.


다행히도 2차에서는 정치 얘기는 안 하더군요. 그냥 서로 어떻게 살았네 근황 얘기하면서... 이미 이때쯤 되니 만취해서 제정신들이 아니었습니다. 2차 끝나고 나와서 게임장 들러 악력 대결도 해보고... 여기까지가 딱 좋았던 것 같습니다. 


3차 가는 순간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만취하더니 이 인간이 또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할 말 못할 말을 전혀 가리지 못하더군요. 심지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과 반대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쌍욕을 한다. 내 아버지한테도 쌍욕할 수 있다"면서 핸드폰을 꺼내 자기 아버지한테 전화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또 다른 선배랑 계속 말싸움을 하더니, 서로 맞짱을 뜨네 어쨌네... 폭탄주 말아주던 선배도 워낙 한 성깔 하는 양반이라, 나중에는 한숨 한 번 푹 내쉬고 맥주병을 거꾸로 잡더군요. 제가 뜯어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젠 불똥이 애꿎은 저한테 튑니다. 그 정치 얘기 하던 인간... 완전히 정신 나가서 저한테 쌍욕하고, '나가서 맞짱 한 번 뜨자'고 소리지르고... 저도 만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진짜 옆테이블 손님들에게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최대한 존중을 해주고 있었는데, 제 귀에 대고 계속 쌍욕하면서 맞짱뜨자 그러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해대니까 저도 어느 순간 화가 나서, 그 인간 면상 보면서 '어떻게 때릴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먹 쥐는 걸 보더니, 폭탄주 말아주던 선배가 담배 한 대 피자면서 데리고 나와서 절 말렸습니다. 


저도 그 이후로는 그냥 '개가 짖는가보다' 하고 무시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술 취해서 제정신 아닌 인간 때려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무리 취했어도 저까지 이성을 잃으면 똑같은 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웃으며 넘겼습니다. 


나중엔 테이블에 토하고 그래서 옆테이블 손님이 눈쌀을 찌푸리는 등, 아주 목불인견이었습니다. 큰 싸움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형과의 인연은 이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한테 쏟아냈던 험악한 말들... 아무리 취했어도 생생히 기억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제 카톡과 페북 모두 그 형을 차단한 상태입니다.


한바탕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다시 돌아보니, 참 한심하고 우스운 노릇입니다.


그 형.. 요즘 갑자기 정치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고 있더군요. 원래 정치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정치를 할 깜냥도 절대 안될 인물이라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한 인간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건지 그저 웃을 따름입니다. 


여하간 그 형을 통해 저도 다시 한 번 술자리 처신에 대해 조심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도 군대 가기 전에 술 먹고 사소한 사고(주로 말실수...)를 많이 쳐서 후회한 적이 많았습니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으면 도저히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도 그런 일들을 통해 반성해서, 지금은 그런 사고까지는 안 치고 있는데... 이 형을 보니 더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은 자기 주량껏 마시고, 많이 마시더라도 절대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술자리에서 정치/종교와 같은 민감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 것.


아무리 되새겨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중요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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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대학 2016년도 3학기 기자학과 사전과제


■ 책의 제목


정의를 부탁해/권석천 저/동아시아


■ 저자에 관하여(저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 포함) (300자)


이 책을 쓴 저자 '권석천'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법대 출신들이 가는 일반적인 코스(사법고시)를 걷지 않고, 언론계로 진출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법에 애착을 느낄 수 없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하지만 막상 신문사에 들어가니 법의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법학이라는 그의 전공이, 그의 기자 생활을 규정지어버린 것이다. 


그는 사실 문화부 기자를 꿈꾸었지만, 신문사에서는 그의 전공이 '법학'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조 기자'로 보내버린다. '개인의 사정은 조직의 필요 앞에 무력했다'는 그의 고백에서 무력감과 분노를 읽은 것은 나 뿐일까. 


여하간 그는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중앙일보에서 논설위원을 하며 '권석천의 시시각각'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한 주마다 중앙일보 지면에 실리는 그의 칼럼은 독자들에게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분노를 제공한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한국 사회를 가르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합리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사회의 현안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대중들에게 그가 '균형 있는 언론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나 역시도 이번에 그가 쓴 책을 읽으며, "아직까지도 이런 언론인이 남아있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인상 깊은 구절 (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넣어주세요)


1. '칼럼은 편견이다.' 언젠가 읽은 작가 김훈의 한마디가 위안이 돼주었습니다. 그래, 꼭 정답일 필요는 없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을 보여주면 돼. 텅 빈 모니터, 깜빡이는 커서 앞에 진실하면 되는 거야. (p.5)


2. 가장 큰 난관은 용기였습니다. 팩트와 팩트를 논리로 이어가다보면 이 선을 넘어도 되는 걸까. 고민되는 지점이 나타나곤 합니다. 자기검열의 경고등이 켜지는 순간이지요. 기자로서의 양심에 비춰 문제가 없다면,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면, 글을 완성하기 위해 피할 수 없다면 눈을 질끈 감고 그 선을 넘었습니다. (p.6)


3.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면 기자는 사건이 만드는 것입니다. (p.11)


4. 더 심각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자기기만쯤은 멋지게 해낼 수 있어야 먹이사슬의 위쪽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데 있다. (p.23)


5. 2015년의 사건들은 세월호와 인과의 끈으로 묶여 있진 않더라도 최소한 겹쳐져 있다. 부끄러움의 자정 능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항용 나타나는 현상이요, 징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자기기만의 시스템을 더 높이 쌓아올리는 것인지 모른다. (p.24)


6. 시스템은 중요하다. 다만 시스템이 우릴 구조해줄 것이라 믿는 건 오산이다. 착각이다.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선장, 해경, 장관, 총리,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움직여줘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스펙이 화려하다고, 신망이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진정성과 용기, 열정과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p.28)


7.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p.32)


8.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희생하는 사람과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피고인)는 국가를 위해 희생했고, 나(검사)는 봉사했다. (p.36~37)


9. "사도세자의 칼에 죽어간 환관과 나인이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죽음은 무시해도 되느냐"는 일갈이었다. 칼럼의 골격을 보면 사도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민초들은 돌아보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과연 우린 영조의 관점, 혜경궁 홍씨의 관점, 조선 사관의 관점에 묶여 있는 것일까. 뒤주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내버려진 환관과 나인들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p.45)


10.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북한식 전체주의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다. 한 로스쿨 교수는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p.60)


11. 우리가 할 일은 생경하고 철 없는 말들을 종북으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다. 종북세력이 '무해한 광신도'가 되게끔 헌법 정신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항균 능력을 키워 '건강하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건강이 진정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61)


12. 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는 전체주의 정당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 의미를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로 한정하는 경우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 정당의 자유를 제한하여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p.62~63)


13. 하지만 그들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가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 한다. (p.64~65)


14. 법치주의는 법 만능주의가 아니다. 권력자의 횡포를 막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법을 제대로 만들고 공정하게, 신중하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질서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을 내모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억압일 뿐이다. (p.71)


15. 나는 공권력이란 말이 되도록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건 권력이 아니라 권한이다. 권한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공(公)이란 수식어도 부적절하다. 공이 무조건 사(私) 위에 있다는 발상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p.75)


16. 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문장력은 학력 순이 아닙니다. 문장력을 뒷받침하는 생각의 질은 어떤 고등학교 나와 어떤 대학 갔느냐에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자신의 삶에 진지하고 솔직했느냐,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느냐에 따라 생각의 질이 달라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 진정한 글의 힘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 아닐까요. (p.100~101)


17. 사과는 반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왜 분노하는지 상대방 말을 듣는 데서 시작돼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해야 한다. 반드시 상대방 눈을 보면서 해야 하고, 때를 놓쳐서도 안 된다. 그래야 사과하는 사람도, 사과 받는 사람도 마음을 열고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p.138)


18. 국가의 명예란 국가가 스스로 그 명예를 주장하며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고 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악의적이고 상당성을 잃은 비판이라 할지라도 국민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p.150)


19. 감히 말씀드리건대 소통은 너(상대방)를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공감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소통과 공감은 오히려 나 자신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p.171)


20. 시스템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것이다. (p.174)


21. 총구에선 권력이 나오지만 투표함에선 권한이 나올 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통령이라도 공식적으론 권한이라고 해야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력을 인격화하고 우상으로 받들며 그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고 있다. (...) 권력엔 부패가 따르지만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p.178)


22. 한바탕 칼춤 뒤엔 억울한 혈점(피가 맺혀 살갗에 생긴 점들)들 부지기수요, 원(怨)과 한(恨)이 봄날 벚꽃처럼 구천에 흩날렸으니, 탓할 것은 칼이 아니요, 그 칼 쓰다 각자도생(各自圖生) 떠난 자들 아니던고. (p.214)


23. "검찰에 있을 땐 정의냐, 불의냐,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로만 봤습니다. 그런 이분법으로는 그 무엇도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저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간은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p.235)


24. "민주주의가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과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이들이 선거에서 패하게 하는 것이다. 멀고 험하고 귀찮은 길을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면역력을 강하게 만든다." (p.275)


25. 그들은 취재 대상이나 피사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름과 사연을 묻고 셔터를 누르는 것까지 '기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장에 급파되는 기자들은 재난자들에 대한 취재 기법과... 취재, 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고백에서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p.332)


26. 기자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신뢰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 (p.333)


27. "언론이, 기자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해부할 만한 전문성과 집요함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옳다, 그르다, 당위론에 머무르는 것 아닙니까." (p.340)


28. 언론의 조폭성은 현장 상황을 사소하게 여기면서 내부의 생각을 강요하는 데서 나온다. 존경받는 성자도 모든 상황에서 옳을 순 없다. 보수든, 진보든 모든 언론이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반대쪽에 선 이들의 다른 면도 보려고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p.341)


29. 정의와 취향은 반대쪽에 있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 정의로운 사회는 다른 이의 취향을 철저히 존중해주는 곳일 것이다. (p.345)


30. 사실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받아쓰는 행태가 신뢰를 저버린다는 문제 제기였다. 실제로 언론의 공신력이 낮아진 데는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해온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들은 같은 길을 가는 동료라는 의식을 잃은 채 특정 진영의 종군기자, 개별 언론사 샐러리맨이 돼왔다. (p.348)


31.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다. 이기는 게 정의다.' 이 지랄 같은 상식을 깨는 건 슈퍼히어로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어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다. (p.415)


■ 감상평 (600자 이상)


열정대학 기자학과를 수강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사전과제였다. 현재 R-POINT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책 한 권 읽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400쪽이 넘는 이 책의 두께를 보고 지레 겁을 먹었으나, 막상 책장을 펼쳐드니 도무지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책을 쓴 저자는 현직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이 책 역시 그가 중앙일보에 매주 기고하는 논설코너 '시시각각'의 글들을 묶은 것이다. 그래서 글들의 주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있었으며, 신문사 칼럼의 형식에 맞춰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문사의 사설이나 논설에 대해 호의적이진 않은 편이다. 재미는 있지만, 스트레이트성 기사에 비해 개인이나 사측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간 글이기 때문에, 아무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집필하려 신경썼다고 해도, 어느 정도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이트성 기사들은 기사를 쓴 기자보다는 기사의 소재가 되는 사건에 대해 독자들의 칼날이 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논설이나 사설은 사건보다는 집필한 기자에게 칼날이 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나 보수 언론, 진보 언론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따른 언론사별 색채가 뚜렷이 구분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논설의 성향 역시 매우 강한 색채를 띠고 있다. 나처럼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신문을 읽어도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저자 소개만 보고서, '이 책도 어쨌든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의 성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런 편견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중앙일보> 칼럼이라는 타이틀만 없었다면, 이 논설이 어느 신문에 실렸을지 감도 잡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권석천 위원은 우리 사회와 언론을 지배하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 이런 기자가 있긴 하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 때 장준하 선생을 존경해 언론계로 진출하는 것을 꿈꾸었던 나로서, 롤모델까지는 아니어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입대 전까지만 해도 통일부, 국가보훈처 등에서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기자라는 꿈을 잠깐이나마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군 생활 중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기자라는 꿈에 대해서는 회의를 느꼈더랬다.


일단 보수/진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언론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나는 이승만도 존경하고 김구도 존경한다. 동시에 이승만도 비판하고, 김구도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어디 그런가. 보수 언론에서 김구는 빨갱이요,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이다. 진보 언론에서 김구는 민족지도자요, 이승만은 독재자다. 하지만 김구든 이승만이든 각 인물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비판하고 넘어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잣대로, 그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한마디로 재단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사고가 아닐까. 이런 양극화된 언론계에서 과연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나를 받아줄 곳은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에 쉽사리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지 못했다.


두 번째로, 자신이 없었다. 내게 사건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잣대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줏대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글쓰기 능력이나 취재 능력 등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여러모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겼고,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글 한 편 쓸 때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역시 글재주가 없어"라며 자신감이 위축되어 갔다.


하지만 권석천 위원의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권 위원 역시 25년 이상 언론계에 몸을 담은 '베테랑 기자'이면서도, 아직까지도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매번 글을 쓰면서도, 색다른 문체와 시각으로 글을 구성하기 위해 '독백체', '편지글',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노력과 시도가 존경스러웠다. 나같은 경우도 글을 쓰는 스타일이 고정적인데 사실 나만의 색채를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글이 담기는 매체나 형식에 따라 글의 스타일도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능력이 늘 부러웠기 때문에, 권 위원의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분석한 현안 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분석도 인상 깊었지만, 그가 강조하는 '기자 정신'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피해자를 취재할 때는, 그를 단순한 취재대상이나 피사체로 인식하지 말고, 피해자가 겪고 있을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감과 배려',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나 사건을 합리적으로 보려 노력하는 '균형 잡힌 시각',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도자료만 보고 받아쓰는 수동적 보도가 아닌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사건의 근본을 인식하고 진실을 보도하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취재' 등등... 여러 글들을 통해 그가 강조하는 기자가 갖춰야 하는 자세들은, 수많은 글을 써왔던 내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였거니와, 다시 한 번 '기자'라는 꿈을 꾸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먼 훗날,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이 글을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있든, 기자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든... 어쨌든 글쟁이로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이 책을 통해 받은 자극이 언제까지고 유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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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2년 2월 16일 새벽 3시에 쓴 글이다.


옛날부터 정치인들이 툭하면 위인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인습이다. 최고 지도자에서 말단 의원들까지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위인들을 이용한 자기 미화를 하는데, 그런 미화에 이용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순신이란 인물이 차지하는 위상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툭하면 이순신의 이름과 그의 업적을 들먹이며 국민들에게 자신을 이순신과 동일한 이미지로 봐달라고 선전을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이순신의 사당인 아산 현충사를 찾아 참배하는 것도, 공개 석상에서 툭하면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를 들먹이는 것도 모두 그러한 행보의 일환이다. 정치적 색깔과 어떠한 이념에 구애됨 없이 오로지 순결한 마음으로 이순신을 앙모하는 나로서는 눈에 뻔히 보이는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보가 참으로 불쾌하게만 느껴진다.

 

요새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순신과 같은 위인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 도가 지나쳐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벌이고선 이순신 동상 앞에서 했으니 이순신 역시 자신들의 목적을 지지한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망상에 시달리는 중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특히나 정치적 선동에 이순신을 끌어들이는 이들도 있는데, 이순신은 오로지 국가와 백성만을 생각한 군인이었다. 군인에게 정치적인 색깔과 이념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나 이순신의 경우 지기인 류성룡이 동인이었다는 것 때문에 동인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동인도 아니고 서인도 아닌 오로지 왜적을 맞아 싸울 생각에만 전념했던 참 군인이었다. 그런 그를 현대 정치판에 끌어들이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인들의 이름을 걸어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느냐마는 죽은 위인들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며 여기저기 갖다붙이는 행동은 그 위인들을 두 번 죽이는 행동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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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자매지(?)인 <오마이스타>에서 재미있는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6.4 지방선거 특집으로 드라마 <정도전> 속 등장인물을 선거에 출마한 후보라 상정하고, 애청자들에게 각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문을 받아 선발한 것입니다. 1후보 당 1연설문이 채택되었는데, 저는 기호 3번 이성계 장군에 대한 지지연설문을 작성해 당선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특집기사로 떴길래 링크 공유합니다.
부흥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지지하실 것인지, 연설문 보고 덧글로 지지 입장 표명해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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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의 열풍이 무섭다. 11년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오랜 시간 여의도 정치판에서 현실을 겪은 정현민 작가는 역사 속에서 현실을 발견했고, 그 역사는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치'의 참 의미를 되묻고 있다.

그런 <정도전> 속 인물들이 선거에 나온다면, 어떤 정치인의 모습으로 국민에 다가설까? <오마이스타>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이에 극 중 인물들이 후보로 출마한다는 가상의 '선택 2014', 아니 '선택 14세기' 기획을 마련해 애청자들로부터 지지연설문을 받았다.

'선택 14세기' 기획을 위해 원안 포스터 사용을 허락해 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정도전 갤러리'의 'HARANG'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격동의 시기를 살았지만, 고려의 백성들은 리더를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오늘은 6월 4일,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편집자 말>

아래는 각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문 링크.

기호 1번 - 정도전 (만두 하나도 나누는 나라) : http://omn.kr/8edz
기호 2번 - 이인임 (집정대신 20년의 경륜으로) : http://omn.kr/8ee2
기호 3번 - 이성계 (지금 고려로는 희망 없음메) : http://omn.kr/8ee6
기호 4번 - 정몽주 (찐빵처럼 포근한 남자) : http://omn.kr/8edy
기호 5번 - 최 영 (오직 고려 밖에 모르는 바보): http://omn.kr/8edx

 

 

PS. 그나저나 이거 공모전 당선자들에 대한 특전이 무려... 드라마 <정도전> 등장인물과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우다. 내레 참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갔수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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