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항일영화'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하고 있는 요즘이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암살>을 시작으로 2016년 작년 한 해에만 <동주> <귀향> <덕혜옹주> <밀정> 등 무려 네 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 것이다. 올여름에도 벌써 <박열> <군함도> 등 두 편의 항일영화가 개봉을 앞둔 가운데, 28일 개봉 예정인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이 13일 언론 및 일반 시사회를 통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1920년대 아나키스트 부부의 이야기


영화 <박열>은 1920년대 일본을 무대로 활동했던 아나키스트 항일운동가 박열(1902~1974)과 그의 아내이자 동지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1923년 일본 열도를 뒤흔든 '관동대지진' 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유례없는 대지진으로 일본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자 수습책을 논의하던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살포한다. 


광기에 휩싸인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들을 보이는 족족 학살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일본 정부 역시 본토 내 불령선인(일제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얕잡아 부르던 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아나키스트 조직 '불령사'를 이끌며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작전'을 준비하던 박열(이제훈 분)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가 체포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사진: 영화 <박열> 스틸컷 - 출처: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준익 감독, 마침내 <동주>를 뛰어넘다


영화는 대역죄 혐의로 체포된 박열 부부의 옥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좁은 감옥과 재판정에 국한된다. 영화 <암살>과 <밀정> 속에서 묘사된 아슬아슬한 총격전이라든지 스크린을 뒤흔드는 폭파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 박열은 황태자 암살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체포된 탓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이렇다 할 액션 장면이 없다는 점은 자칫 관객들이 지루함을 유발케 할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가 그랬다. 윤동주 시인의 삶이야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이 고귀했고, 시인의 역할을 맡아 달콤한 목소리로 시(詩)를 읊었던 배우 강하늘의 모습은 팬심을 사로잡을 만했다. 그 결과 입소문을 타고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영화적 재미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하기엔 선뜻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장면 없이 시종일관 느릿하고 조용한 템포로만 흐르던 <동주>의 전개는 다소 밋밋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의 한계일 수도 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시를 무기로 독립운동을 했던 윤동주 시인에게 총을 쥐여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박열>은 전작 <동주>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관객들의 눈을 현혹하는 자극적인 전개 없이 역사적 고증에만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영화적 재미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 열쇠는 바로 '해학'에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그려낸 암울한 시대


실제 역사가 그랬듯이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시대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대다. 주권을 잃은 채 노예적 삶을 강요받는 식민지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항일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함과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왔던 게 사실이다.


반면 <박열>은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암울한 시대를 경쾌하게 그려냈다. 일제에 의해 피체되는 험악한 상황에서조차 박열 부부를 비롯한 불령사 회원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즐기는가 하면, 다 함께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하며 유치장을 뮤지컬 무대로 둔갑시킨다.


취조가 시작되자 박열 부부는 오히려 자신들이 검사를 심문하는가 하면 일본인 간수를 통해 서로 간의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등 한마디로 이들을 '가지고 논다'. 상대적으로 일본 내각의 고위 대신들은 박열에게 휘둘리는 어리숙한 캐릭터들로 묘사된다. 캐릭터들의 해학적 묘사에 맞춰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들조차 경쾌하기 짝이 없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박열이 조선의 관복을 입고 재판정에 나타났을 때다. 박열을 지켜보는 영화 속 법정의 방청객들이 폭소를 터트리는 동시에 스크린 밖 객석에서도 폭소가 터져 나왔을 정도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 속에 흘러간다.



(사진: 영화 <박열> 스틸컷 - 출처: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물론 해학도 정도를 넘어서면 자칫 가벼워 보일 우려가 있다. 시사회에 앞서 열린 무대인사에서 이준익 감독 역시 "영화의 교훈적 의미와 재미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게 고민이었다"고 고백했다. 재미를 잡으려다 자칫 그 시대를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열>은 영화적 재미와 교훈적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박열 부부의 유쾌한 투쟁에 웃음을 짓다가도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며 일갈하는 박열의 모습에 짐짓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시쳇말로 '웃픈 영화'인 셈이다. 일본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로 풀어낸 <박열>은 그래서 항일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빛을 발한 배우들의 연기... 배우 최희서의 발견


물론 이 역시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뒷받침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박열 역으로 배우 이제훈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영 미덥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 박열의 사진을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험상궂은 그의 외모를 표현하기에 이제훈은 너무나도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의 우려를 깨고 이제훈은 역사 속의 박열을 현실에서 되살려냈다. 연인 가네코를 향해서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동자를 하다가도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분노를 쏟아낼 때 눈동자에 서리는 광기는 영락없는 박열 그 자체였다. 타임머신이 있어 그 시대의 박열을 마주했더라면 이제훈의 눈빛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 <박열>의 최대 수혜자는 가네코 역을 맡은 배우 최희서라고 하겠다. 이미 <동주>를 통해 이준익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던 그녀는 <박열>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을 마음껏 뽐낸다. 어설픈 조선어를 구사하는 일본 여인의 억양은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서 분노의 포효를 쏟아낼 때는 그 서슬 퍼런 광기에 소름마저 돋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최희서는 역사의 뒤편에 가려진 채 주목받지 못하던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인을 성공적으로 되살려냄으로써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는 데 톡톡한 공을 세웠다.


역사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주인공을 내세워 비교적 덜 알려진 숨은 주인공을 발굴해내는 기법은 이미 이준익 감독이 전작 <동주>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본 방식이었다. <동주>를 통해 관객들은 주인공 윤동주(강하늘 분)보다 친구였던 송몽규(박정민 분)라는 존재에 더 주목했다.



(사진: 영화 <박열> 스틸컷 - 출처: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잊혀진 이들을 만나 반갑고 고마웠던 <박열>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은 알아도 박열은 잘 모르지 않느냐"며 개봉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항일영화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역사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익히 알려진 사실들을 재구성한 사례가 많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이름은 그 짧은 항일독립운동사에서조차 비중 있게 다뤄진 이름들은 아니었다.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삶을 만나는 것은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 속 숨은 영웅들을 발굴해 오늘에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이준익 감독의 시도는 그 자체로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 암울했던 삶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싸웠으나 역사에서마저 잊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영화 <박열>은 더욱 반갑고 고마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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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검을 휘두를 때 번쩍번쩍하는 검광과, 부드럽게 상하좌우로 베어내리는 검선(線)을 보자니 '참 곱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검을 수련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런 매력에 빠져서 검을 수련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어제부터는 연구회에서 중국식 도법(刀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유엽도라고 부르는, 중국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를 쓰는 법입니다. 기초 자세만 배웠을 뿐임에도 참 어렵더군요. 무예24기를 수련하면서 조선식 검술을 수련하다가 중국식 도술을 해보려니 차이점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전에 배운 게 지금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닥 안 해봤습니다만, 역시나 어제 수련하는데 제 폼이 엉성한지 사부님으로부터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릇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빈 그릇이면 붓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채워진 그릇을 도로 비워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제 고민을 듣던 사형도 "나도 그래. 그건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되는 문제야"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결국 수련은 평생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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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식입니다.


조선시대 권법에 관한 논문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군사> 101호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수원 무예24기시범단의 최형국 박사님께서 쓰신 논문입니다. 



(사진 출처: muye24ki.com)


그렇게 긴 분량의 논문도 아니고, 문화사적 관점에서 쓴 논문이라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조선시대 군사들은 맨손무예를 어떻게 익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동작의 고증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고 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남아있는 사료들을 통해 학술적으로는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합니다. 조선군이 병영에서 어떻게 권법을 익혔고, 권법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논문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만, 아래 논문 PDF 파일을 따로 첨부해뒀습니다. 편하게 다운받아서 읽어보시면 됩니다.



조선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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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블로그에 접속했더니 방문자 수가 무려 '1,900명'을 돌파했습니다. 누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 방문자수입니다. 그동안 평균 방문자수가 200명 정도를 항상 웃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제 오늘 1,000여명이 넘게 방문해서 2,000명 돌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아마 이 기세대로라면 오늘 안에 2,000 돌파도 식은 죽 먹기일 듯 합니다.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 관리 페이지에서 '유입 키워드'를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 <임진왜란 1592>를 키워드로 타고 들어오셨더군요. <임진왜란 1592>는 KBS와 중국 CCTV가 합작해서 만든 팩츄얼 드라마(사실에 기반한 다큐+드라마 형식이라고 합니다)로 5부작인데 어제 첫 방송을 했다죠. 어제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어서 집에 와서 뒤늦게 찾아봤습니다만, 너무 피곤한 관계로 보다 끄고 오늘에서야 다시 봤습니다.


(사진: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솔직히 말해서 전 별로였습니다. CG가 대단하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일단 화면부터가 너무 어두운 점이 내내 거슬렸습니다. 좀 조명을 밝게 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짙푸른 화면구성을 선택했을까요. CG는 영화 <명량> CG팀이 담당했다고 하는데, 거북선 CG도 그렇고 영화만큼 때깔이 잘 나오긴 했습니다만 화려한 CG를 살릴만큼 전투씬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뒷받침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연기+전투씬 스토리 등등)


그리고 저도 조선시대사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울 정도긴 하지만 군사사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고증 문제가 계속 걸리더군요. 환도 패용 문제는 이제 지겹기까지 합니다. 제작진이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대체 군관이 언제까지 칼을 손에 들고 다닐 요량인지. 출정할 때 이순신이 멋지게 등장하는 장면에서 '오 좀 멋있는데..?' 하려다가 水자 수졸복 입은 군졸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김이 팍 새버렸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 <명량>에서의 출정 장면을 그대로 본따온 것 같은데, <명량>은 그래도 군졸들이 갑주도 입고 있고 음악도 비장해서 볼 만 했습니다만... <임진왜란 1592>에서는 허접하기 짝이 없더군요. 사실 이순신이 입고 있는 두정갑도 엄밀히 말해서 정확한 두정갑의 형태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고증에 정확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진: 이순신의 출정 장면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고증을 떠나서 드라마적 재미도 그닥 없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은 고증은 엉망이었어도, 드라마적 재미는 충분했기 때문에 제가 높이 평가하는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통쾌한 포격전에 적절한 BGM 삽입까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요.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대단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극적인 재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수들은 다 어디 간 건지... 이순신하고 하급 군관, 이름 없는 무명소졸들만 수두룩빽빽하고, 이순신을 도와 함께 싸웠던 주력 지휘관들은 코빼기도 안 비추더군요. 무명소졸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지만, 그렇다고 전투의 실질적인 지휘관을 빼버리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어찌됐건 전투를 총 지휘하는 건 지휘관들이었으니까요. 50분짜리 짧은 드라마에 전투씬과 선조의 몽진, 일본의 침략을 다 담아내려니 중구난방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요.



(사진: 그나마 좀 멋있었다고 생각되는 이순신과 거북선의 대화 장면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화 캡쳐)


그리고 매우 기대가 컸던 최수종표 이순신 장군. 제 아무리 '사극왕'이어도 김명민의 아성은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김명민의 이순신 연기를 뛰어넘는 배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김명민 배우에 대한 편애일 수도 있겠지만, 제 주관이 그렇습니다. 최수종씨는 연기의 패턴이 단조롭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5부작이고 이제 시작이니,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만...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PS. 사극 제작진들에게 다시 한 번 최형국 박사님의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를 읽으라고 강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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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GV용산에 가서 <덕혜옹주>를 봤습니다.



(사진: 영화 <덕혜옹주>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요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천상륙작전>만큼이나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던 작품이죠. <인천상륙작전>이 '반공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선입견 탓에 말들이 많았다면, <덕혜옹주>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바 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덕혜옹주가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묘사되었는데요, 실제로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영화 속 덕혜옹주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의지를 보이는 인물은 아닙니다. 예고편의 편집을 자극적으로 하려다보니 그런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우려를 가지고 영화를 본 관객들 중에서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전 전문가들의 혹평과는 달리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덕혜옹주> 역시 개봉 이틀 만에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일단 영화의 막이 올라가면서 '이 영화는 허구가 가미된 팩션영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 망명 작전' 등은 모두 영화적 허구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것도 엄연한 역사왜곡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이 정도의 허구는 가미되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지만, 어쨌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계획했던 일이기도 하고, 이 장면을 넣었다고 해서 덕혜옹주가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오해할 소지도 별로 없거든요. 무엇보다 인트로 부분에서 '팩션'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덕혜옹주의 실제 삶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뭐가 역사적 사실이고, 허구인지 스스로 검색해서 공부하는 효과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천군> 같은 영화는 아예 남북한의 군인들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날아가 무기력한 청년 이순신을 각성시킨다는 시놉시스였는데요 뭘. 그에 비해 이 정도면 양반인 듯 합니다.


덕혜옹주는 어릴 적에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서, 일본인과 정략 결혼을 해야했고 그로 인해 일찌감치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등 상당히 불행했던 삶을 보낸 여인입니다. 해방 후에도 정치적 부담을 느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이혼한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가, 나중에서야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죠. 뜻 있는 이들의 노력 덕에 생전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었기에 그녀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사진: 실제 덕혜옹주의 어릴 적 모습)


영화에서도 그런 덕혜옹주의 비참했던 삶이 잘 묘사되었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 울컥하는 장면들이 꽤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덕혜옹주 개인의 삶도 안타까웠지만, 그녀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굴종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계속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한택수(윤제문)처럼 비겁한 친일의 길을 걸었을까, 김장한(박해일)처럼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을까. 다 부질 없는 상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그런 상상이라도 계속 하게 되네요.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암살>과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9월에는 의열단을 주제로 한 영화 <밀정>이 개봉한다고 하니, 무척 기대됩니다. 요즘 들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제 입장에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알면 알수록 탄식만 나올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역사지만, 그만큼 더 외면해서는 안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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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정도전을 위한 변명

저자: 조유식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편년도: 2014년



<책 소개>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 정도전, 민본주의 국가 조선을 설계하다


조선의 건국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고려 말의 구습을 청산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때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이 바로 삼봉 정도전이다. 그러나 그는 태종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500년을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왔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혁명가 정도전은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고, 백성은 먹을 것이 하늘'이며,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 조선의 문물제도를 만들었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의 기본을 설계하는 등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그럼에도 그는 왜 역적의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가? 여기 정도전의 삶과 죽음을 집요하게 파고든 파란만장한 기록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역사의 진실을 들려준다.


<책 리뷰>


입대 전에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 하나가 바로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그의 캐릭터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조선왕조를 태조 이성계가 세운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조선을 세우고, 조선을 설계한 이는 바로 '삼봉 정도전'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부패한 고려왕조를 뒤엎고 새 왕조를 세우겠다는 야심으로 변방 호족인 이성계를 설득해 왕위에 올린 이가 바로 정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이 없었더라면 조선 역시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계는 그 자신 스스로가 왕조를 세울 야심을 갖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하기보다는, 누군가 부추기거나 추대하면 마지못해 수락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물론 창업군주이니만큼 겸손의 미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미화일 수도 있겠지만, 기록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살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도전이 조선을 세우기 위한 설계도를 가지고 이성계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함주막사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성계는 그저 그런 변방의 무장으로 남았으리라 봅니다. 설사 중앙에 올라서더라도, 이인임과 같은 권신이 되었지 새 나라의 창업군주까지는 넘보지 못했을 겁니다.


여하간에 이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던 시기에, 정도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주문했던 책입니다. 하지만 읽어보기도 전에 군대에 가느라... 전역하고서야 비로소 책을 펼치게 되었군요. 그래도 평생 서고에 묵혀두지 않고, 읽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정도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대중역사서라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닐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정도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촉발되었다고 하니까요. 정도전에 대해 많이 알려진 오늘날까지도 정도전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 책이 단연 독보적으로 우선순위에 노출됩니다. 그만큼 정도전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책이라는 뜻이겠지요. 아무튼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도 정도전에 대해서는 다들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고 하니, 정도전은 자신을 역적으로 규정한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꽤 긴 시간 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책은 정도전 정권이 무너지는 '왕자의 난'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방원의 칼날 앞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한 정도전의 모습과,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전의 모습... 실제 기록에 있는 대조적인 두 장면을 언급하면서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가 의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전제를 언급하며, <실록>과 같은 곳에 언급된 정도전의 행적은 많이 왜곡되었을 거라 추정합니다. 그리고 책 제목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지만, 저자는 승자(이방원)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진 패자(정도전)의 올바른 모습을 복원하고자하는 시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러기 위해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상당히 논리적으로 상황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신원하기 위해, 과도한 상상을 동원한다거나 억지 추리를 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기록의 허술함(진실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사관의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만)을 바탕으로 조각난 역사의 진실을 퍼즐 맞추듯이 끼워나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이지만, 정도전은 정말 천재적인 인물인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방 그리고 음악까지... 그가 발을 걸치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얕게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종 때 완성되는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의 모티브가 되는 <조선경국전>을 지었으며, 요동정벌을 준비하면서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진도>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진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라이벌이었던 태종 이방원이 훗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적용합니다. 웬만해선 그의 흔적을 부정하고 싶었을텐데, 그만큼 뛰어난 병법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조선왕조 개국을 찬양하는 노래도 스스로 지었고요. 이 모든 것을 정도전 혼자서 했다고 하니, 세종대왕 못지 않은 천재가 바로 정도전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오히려 그런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타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죠. 다만 사람을 잘못 만났다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고 봐야할까요. 


어느 시대가 되었건 간에 정도전 같은 인물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독주하는 인물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도 눈총을 받기 마련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정도전과 이성계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래서 '왕자의 난'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더라면, 정말 지금과는 다른 역사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움도 있고요. 그래도 태종 이방원이 집권했기에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위인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볼 따름입니다.


아무튼 정도전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그의 삶과 철학은 알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그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도전이라는 캐릭터에는 큰 감흥을 못 느꼈었는데, 이제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당히 흥미를 느낍니다. 


그의 천재적 능력을 따라가기에는 제 자신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민본'을 위한 그의 지고지순한 이상과, 권력에 도취하지 않고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뜨거운 열정... 여러모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도전, 어쩌면 이런 인물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계에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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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05157


<기사 요약>


지난 27일,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동구릉(사적 제193호)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조선의 건국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무덤, '건원릉'의 능침을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


'태조와 건원릉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개방 행사에는, 일반 시민들을 비롯하여 인근 73사단 장병들까지 참여하여 행사에 대한 관심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1시간 30분 코스로 진행되는 행사는, 동구릉 전문 해설가의 해설을 들으며, 동구릉 재실에서부터 수릉(문조와 신정황후의 능), 현릉(조선 제5대 임금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을 거쳐 건원릉까지 가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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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자매지(?)인 <오마이스타>에서 재미있는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6.4 지방선거 특집으로 드라마 <정도전> 속 등장인물을 선거에 출마한 후보라 상정하고, 애청자들에게 각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문을 받아 선발한 것입니다. 1후보 당 1연설문이 채택되었는데, 저는 기호 3번 이성계 장군에 대한 지지연설문을 작성해 당선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특집기사로 떴길래 링크 공유합니다.
부흥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지지하실 것인지, 연설문 보고 덧글로 지지 입장 표명해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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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의 열풍이 무섭다. 11년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오랜 시간 여의도 정치판에서 현실을 겪은 정현민 작가는 역사 속에서 현실을 발견했고, 그 역사는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치'의 참 의미를 되묻고 있다.

그런 <정도전> 속 인물들이 선거에 나온다면, 어떤 정치인의 모습으로 국민에 다가설까? <오마이스타>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이에 극 중 인물들이 후보로 출마한다는 가상의 '선택 2014', 아니 '선택 14세기' 기획을 마련해 애청자들로부터 지지연설문을 받았다.

'선택 14세기' 기획을 위해 원안 포스터 사용을 허락해 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정도전 갤러리'의 'HARANG'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격동의 시기를 살았지만, 고려의 백성들은 리더를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오늘은 6월 4일,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편집자 말>

아래는 각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문 링크.

기호 1번 - 정도전 (만두 하나도 나누는 나라) : http://omn.kr/8edz
기호 2번 - 이인임 (집정대신 20년의 경륜으로) : http://omn.kr/8ee2
기호 3번 - 이성계 (지금 고려로는 희망 없음메) : http://omn.kr/8ee6
기호 4번 - 정몽주 (찐빵처럼 포근한 남자) : http://omn.kr/8edy
기호 5번 - 최 영 (오직 고려 밖에 모르는 바보): http://omn.kr/8edx

 

 

PS. 그나저나 이거 공모전 당선자들에 대한 특전이 무려... 드라마 <정도전> 등장인물과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우다. 내레 참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갔수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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