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사극 영화가 세 편이나 개봉했습니다. <안시성>, <물괴>, <명당>입니다. 개인적으로 셋 다 크게 기대했던 작품은 아닙니다. 사극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닥 구미가 당기는 작품들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추석 전후로 <안시성>과 <명당>을 보았습니다. <물괴>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네티즌들의 감상평이 좀 안 좋더군요. 상영관에서도 슬슬 내려가기 시작한 것 같고... 기회가 되면 보는 걸로.


아래는 각 영화에 대한 촌평입니다.


1. 안시성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사실 초반엔 보다가 졸았습니다. 이번에 안시성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는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를 잘 못 보는 성격인 듯합니다. 안시성은 안시성에서 벌어지는 고구려군과 당군의 전투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터라, 기본적으로 안시성을 벗어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전투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투란 것도 사실 마지막의 '토산 전투'를 제외하고 나면 칼로 베고 찌르며 활 쏘고 돌 던지는 뻔하디 뻔한 공성전의 반복이라... 너무 지루한 나머지 창칼이 맞부딪끼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초반엔 너무 졸려서 한참 잤습니다.


조인성의 연기는 확실히 사극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인성만의 매력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대조영>의 임동진 선생이 중후한 카리스마의 양만춘 대장군 상을 정립했다면, 조인성의 양만춘은 친구 같은 젊은 리더의 상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실제 양만춘의 얼굴을 우리는 본 적도 없으니 어떻게 표현하든 그건 감독과 배우의 재량이라고 봅니다.


스토리 전개가 너무 뻔합니다. 저는 원래 머리가 둔해서 반전 예측도 잘 못하고, 해석이 필요한 영화는 질색입니다. 당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도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극찬을 하는데, 저는 대체 뭔 소린지 몰라서(심지어 해석을 봐도 이해가 안 가더라는) 보자마자 바로 시간 날렸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둔한 저조차도 너무나도 쉽게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뭐 하나 떡밥이 나오면 바로 '이 떡밥은 나중에 이렇게 활용이 되겠군' 하고 머릿속에 쫙 그려지더군요. 당 태종이 못 당기는 주몽의 신궁을 양만춘이 당겨서 당 태종을 쏘아맞춘다는 뻔한 설정, 그리고 활을 쏠 때 "고구려의 신이 함께 당겨주실 거다"라며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적 코드에 기대는 대사들까지. 아쉬움만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2. 명당


안시성보단 훨씬 낫습니다. <관상>, <궁합>, <명당> 등 동양철학 3부작 중 마지막 시리즈라고 하는데, <관상>보단 못 하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조승우야 <암살> 이후로 믿고 보는 배우인만큼 연기력 면에서 완벽했고, 백윤식 선생 역시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관상>에서는 충신을 <명당>에서는 간신을 연기하면서 극과 극의 캐릭터를 보여주었는데, 둘 다 너무나도 잘 어울릴만큼 역시나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지성'을 재발견했습니다. 지성이 나온 작품을 많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명당>을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야욕과 광기에 휩쓸린 흥선군의 역할을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두 눈빛에 서린 광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스토리는 감독이 지어낸 허구인 줄 알았는데,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더군요. 솔직히 저도 역사를 전공했지만 흥선군이 자손이 천자가 되려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사찰을 불태워버리고 묘를 썼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언급이 된 부분이라고 하는군요. 아마 야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찌 됐건 근거를 가지고 제법 개연성 있게 스토리를 풀어나간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흥무관학교 이야기는 제 개인적인 관심사(독립운동사)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코드라 매우 흡족했고요. 엄청 잘 만든 수작은 아니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제법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졸지도 않았고요)

Posted by 가베치
,

어제 아침에 방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니가 좋아하는 영춘권 나온다!"하고 부르시더군요. 뭔가 싶어 달려가봤더니, <혀 끝으로 만나는 중국 - 명절의 맛>이라는 중국요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더군요. 


이 시리즈 꽤나 유명하죠. 어제는 MBC에서 명절 특선으로 방영했는데, 공중파 뿐만 아니라 케이블에서도 종종 방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편이 아니라 시리즈물이거든요. 볼 때마다 감각적인 영상미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는데, 어제 방송 분은 영춘권이 나온다고 해서 아예 영상을 따로 구해다가 처음부터 봤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춘권은 굉장히 잠깐 나옵니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무술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고 있고요, 다만 거위구이 요리를 영춘권 수련에 빗대서 함께 묘사하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명의 영춘권사가 서로의 팔을 섞으며 치사오 하는 장면과 요리사가 능숙하게 거위를 손질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면서, 내레이션으로 무술수련과 요리의 공통점을 구결처럼 읊어대는데 영상미의 퀄리티가 대단했습니다.



한 편으로 부러운 것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명절만 되면 인근 무술가 가족 및 제자들을 대거 초청해서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그 자리에서 서로 투로도 보여주고 함께 손도 섞어보는 등 아주 재밌는 시간을 보내더군요. 중국영화나 무협지에 등장하는 문파 교류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좁아터진 무술판인데, 권종을 떠나 이렇게 명절 같은 때에 서로 모여 교류도 하고, 정(情)도 쌓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요리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한 요리의 향연에 입이 벌어지더라고요. 솔직히 우리나라 네티즌들을 보면, 중국에서 무슨 이상한 사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대륙의 클라스' 어쩌고 하면서, 심심찮게 중국을 비하하곤 하는데,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땅이 넓다보니 기괴한 사건, 사고도 많은 곳이지만 그만큼 수준 높은 문화와 각 분야별 쟁쟁한 고수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무술, 요리와 같은 단적인 부분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아... 중국은 정말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문화 > 다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큐] 대단원의 막을 내린 UHD 다큐 <천하무림기행>  (0) 2016.05.02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