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사온 보이차(진년소타)는 무려 20년 이상 된 차지만 제 입맛엔 여전히 밍밍하고 몸에 반응도 별로 없어서 지금 먹기엔 좀 아까운 차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 보이차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은 자사로 만든 차통에 찻잎을 넣어두고 10년, 20년 묵혀서 먹곤 한답니다. 그렇게 되면 차가 숙성이 되어 맛과 향이 매우 풍부해지고 효능도 배가 된다고 하죠. 김치나 된장, 간장 등을 오래 묵힐수록 그 맛이 더욱 진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은 주머니 형편상 보이차를 묵혀서 먹는다는 건 배 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았는데 월급이 들어오니 이제 좀 도전해 볼 만한 여유가 생겼습니다. 돈 들어올 때 지르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또 후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통 하나를 장만하고 내친 김에 진년소타도 한 봉 더 사서 차통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물론 꼭 차통에 보관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직사광선을 피해 공기가 잘 통하는 공간에 아무렇게나 보관해도 무방하다고는 합니다만, 기왕이면 자사차통에 보관하는 게 훨씬 안전하고 나중에 맛과 향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야심한 밤에 포장지를 일일이 벗겨가며 차를 담그는 건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나름 운치 있더군요. 한 알 한 알 포장지를 벗길 때마다 속살을 내보이는 찻잎을 보니 일단 눈이 즐겁고 다음으로 슬며시 올라오는 차향에 코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차통은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그러나 자사차통에 넣어두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보이차의 최대 적은 '습(습기)'인데 습도가 높은 여름 장마철에 관리를 잘못하게 될 경우 찻잎에 습이 껴서 차를 영영 못 먹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가급적 건조한 환경에서 보관하고, 여름철에는 한 번씩 찻잎을 뒤집어주면서 습이 끼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번거로운 걸 귀찮아 하는 제 성격상 철저한 관리는 힘들 것 같은데... 저 차들이 올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지 쬐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뭣보다도 그때까지 찻잎이 남아있을는지... 마음 같아선 5년, 10년, 20년까지도 묵히고 싶지만... 성미가 급한 저로서는 1주일이나 버틸 수 있을까 싶습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으니 종종 생각날 때마다 한 알씩 빼먹다 보면 결국 한 달도 못 가서 동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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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담 2018. 3. 30. 00:02


난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술부터 산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들어온 원고료로 꼬박꼬박 술을 사서 마셨다. 언제 한 번 뉴스게릴라 상을 타는 바람에 상금으로 20만 원인가를 받은 적이 있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시바스 리갈'을 샀다. 그리고 그날 친구와 한강에서 홀라당 다 까먹었다.


가끔씩 주머니가 좀 풍족하다 싶으면 양주를 사고, 궁핍하다 싶으면 저렴한 술(싸구려 고량주, 전통주, 사케류...)을 산다. 밤에 홀짝 홀짝 마시면 운치도 있고 좋다.


내 소원은 집 안에 나만의 바(Bar)를 차리는 것이다. 가끔씩 연속극을 보면 부잣집 회장님들이 집안에 바를 차려놓고 비싼 술들을 홀짝 홀짝 즐기시던데. 나도 그런 바 하나 집안에 차리는 게 소원이다.


영화 <특별시민>을 보면 곽도원이 구두 페티쉬가 있어서 신지도 않는 구두를 잔뜩 모아놓고 그걸 보며 희열을 느끼는데, 나는 술에 그런 페티쉬가 있는 모양이다. 저렇게 진열해놓고 있으면 흡족하다.


아무튼 이번 달엔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조니워커 블랙라벨'을 질렀다. 가장 낮은 등급인 레드라벨조차 가난한 학생이었던 내겐 사치였는데... 만날 마트에 갈 때마다 블랙라벨 병을 들었다 놨다 만지작 거리며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는데... 꿈에 그리던 술을 사게 되어 감개무량.


첫 월급의 상징성 때문일까. 아니면 꿈에 그리던 술을 샀다는 감격 때문일까. 한 달이 지나도록 개봉할 엄두를 못 낸다. 저 술을 마시긴 마셔야 하는데... 그냥 까야 하나 아니면 기념으로 보관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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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금 연습 영상을 올려봅니다.


요새 무예 수련하면서 셀프 동영상 모니터링 하는 재미에 맛들렸는데, 해금도 한 번 동영상 모니터링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급하게 촬영해봤습니다. 급하게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계속 연습해왔던 곡이고, 영상 촬영 전에도 몇 번 연습해서 손을 풀고 촬영한 결과물입니다. 


아리랑 이 곡만 몇 개월째 연습 중인데도 아직까지도 삑사리도 나고 완벽하지 못한 것을 보면 무예 뿐만 아니라 음악에 있어서도 심하게 둔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뭐 특별히 자괴감이 들거나 스트레스 받고 하진 않아요. 무예 수련하면서 '기본에 충실하라', '슬럼프가 오더라도 우직하게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라'는 교훈을 체득한 뒤라서요. 요근래 들어서 꾸준히 개인연습을 하는 통에 진도에 뒤쳐질 정도도 아니고요. 사실 진도 욕심도 별로 없습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갈 생각도 없고, 그저 선생님이 가르쳐주실 때 뒤쳐지지만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모두 무예를 수련하며 깨달은 교훈들이죠. 아직은 화려한 곡에 대한 욕심은 없고, 삑사리가 나는 등 부실한 기본기나 확실히 극복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생각해보면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8개월 째입니다. 좀 있으면 1년이 되네요. 이제는 그냥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요. 처음엔 서울에서 부천까지 다니는 게 귀찮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배울 지는 모르겠지만, 스승이 더 이상 필요 없이 혼자서 교정하고 연습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꾸준히 다니고 싶습니다.


아래는 제가 다니는 부천 해금소리 교습소 약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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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딱히 강의랄 건 없었고, 지난 번에 예고했던 바와 같이 '핸드드립 경연대회'가 열렸다. 수강생 11명 중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린 사람에게 원두 한 봉지를 상품으로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지난 번에 구매한 원두가 이날 아침에 내린 커피를 마지막으로 바닥이 나는 바람에, 새로 원두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내심 '오늘 핸드드립 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해서 원두 한 봉 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원두 구입을 잠시 미루었다. 혹시 아는가. 만에 하나 다른 수강생들을 다 제치고 1등을 해서 얻게 될 지. 그러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원두 걱정이 없을 것 아니겠는가.


본격적인 드립을 하기 전에 오늘은 강사님이 직접 내려준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셨다. 오늘의 커피는 '엘 살바도르 라호야 SHG'라는 원두로 내린 커피였다. 등급을 의미하는 SHG는 지난 번에 배운 SHB와는 또 다른 개념이었는데, SHB가 'Strictly Hard Bean'으로 속이 알차고 밀도가 단단한 원두를 의미한다면, SHG는 'Strictly High Grown'으로 매우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원두를 의미한다고 한다. 찾아보니 SHB나 SHG나 큰 차이는 없는 듯 하다. 둘 다 어쨌든 고지대에서 자라는 커피를 의미하며, 높은 곳에서 자라날수록 밀도가 단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등급을 적용하는 나라가 다르다는 점이 차이랄까.


아무튼 커피는 높은 지역에서 자란 원두일수록 훨씬 맛있고 가치가 높다고 하며, 오늘 마신 이 라호야 커피는 카카오의 쓰고 단 맛이 나면서도 신맛도 적당히 섞여 있는 커피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 원체 미각이 둔한 것인지, 향과 맛의 특징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이어서 본격적인 핸드드립 대회가 열렸다. 원래 11명이 수강을 하는데, 한 명이 오질 않아서(아싸, 경쟁자가 줄었다!) 10명이서 대회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열린 개인전에서는 한 명씩 드립을 해서 돌려가며 맛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같은 원두를 썼음에도 사람에 따라 맛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이 참 신기했다. 같은 등급의 원두를 같은 양 넣었고, 같은 도구를 썼으니 승부는 결국 '물붓기'에서 판가름이 난 것 같다. 붓는 물의 양과 물줄기의 속도 등에서 이 미세한 맛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10명이 드립을 하는 동안, 강사님은 잘못된 드립 방법이나 잘된 드립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 원두가루 이상 물을 부으면 맛이 연해지므로 안됨 (물이 일정 이상 차면 멈추고 다음 추출을 기다려야 함)

- 2, 3차 추출시에는 물줄기가 굵어져야 함 (1차 추출시에 이미 원두가루가 불어서 물줄기를 얇게 부으면 추출이 느려지기 때문에)


사실 10명의 커피를 돌려가며 마셔봤지만, 정말 심하게 연하게 우리지 않는 이상 맛의 차이를 그닥 느끼지 못했다. 내 미각이 정말 둔하긴 한가보다. 이래서 무슨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ㅜ.ㅜ


아무튼 강사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신 덕분에... 내가 우승을 차지했다. 


강사님 曰 "전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래도 막내가 제일 잘 내렸다. 물줄기도 일정하게 잘 부었고, 드립퍼의 세 구멍에서 물이 잘 빠졌다. 좀 더 진하게 우렸으면 좋았겠지만,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며 칭찬해주셨다. 결국 커피원두 한 봉을 상품으로 득템했는데,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케냐AA' 원두를 집어들었다.



이어서 '단체전'이 열렸다. 단체전은 5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팀별 대표가 드립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가장 맛있게 커피를 내린 대표가 속한 팀 5명에게 각각 원두 한 봉씩을 상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팀은 나와 함께 유일한 남자 수강생이자, 제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대표로 나섰는데, 설마 했는데 이분이 또 우승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인도네시아 만델린 G1'이라는 원두 한 봉을 추가 득템했다. 


결국 오늘의 위너는 나였던 듯... ^^ 

커피 두 봉 들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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