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7년의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2018년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요, 돌이켜보면 17년도 하반기는 학교 다니랴 동시에 학생운동하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바쁘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관두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서 맘고생이 심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보니 유독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제겐 군 시절 선·후임들이 그렇습니다. 2년 가까운 세월을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힘들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던 사이니 오만 정이 다 들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지요.


이번에 어쩌다보니 그 친구들과 뜻이 맞아서 함께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이른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전역병 캠핑'. 제겐 선임이 되는 친구 세 명(전역한 지금은 제게 동생들입니다만 ㅎㅎ)과 저, 그리고 후임 한 명까지 총 5명이 함께 다녀왔더랬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간 곳은 상암에 있는 난지캠핑장이었습니다. 우선 근처에 있는 홈플러스 월드컵경기장점에 들러 밤새 마실 술과 바베큐파티용 삼겹살, 안주 등을 잔뜩 사갔습니다.


저희가 빌린 텐트는 10인용 몽골텐트였습니다. 원래 함께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인원들이 갑자기 빠지는 바람에 공간은 넉넉해서 좋았으나... 이날 바람이 정말 장난 아니더군요. 


중앙에 장작 난로가 있긴 한데, 문제는 저희가 장작을 때워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불을 피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불보다 오히려 연기를 더 많이 들이마신 것 같습니다. 불도 자꾸 꺼지고... 캠핑장에서 장작을 파는데 한 단에 1만원이나 하는 통에 장작값이 너무 비싸서 양껏 때우지도 못하겠더군요.



그래도 고생하면서 마시는 술이 달다고, 어찌어찌 간신히 불씨를 붙여놓고서 저녁부터 다같이 바베큐파티를 즐겼습니다.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온갖 술을 마시니 극락이 따로 없더군요. 


특히 이날을 위해 집에서 아버지가 드시던 각종 술들(죽엽청주, 북대양, 스카치 위스키)에 마트에서 사간 벌떡주, 가시오가피주들을 챙겨갔는데 아주 반응들이 좋았습니다. 제가 준비해 간 술을 꿀떡꿀떡 잘 마시는 걸 보니 괜히 흐뭇하더군요.


멀리 부산에서 온 친구는 부산의 지역소주인 '시원' 두 병을 준비해왔고, 오늘 캠핑을 기획했던 친구는 사돈어른이 담근 복분자주를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홈플러스에서 산 공부가주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호화잔치였습니다.



난로 앞에서 다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지나간 군 시절을 돌이켜보려니 다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으니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줄을 모르겠더군요.


특히 이날 국유단 시절 썼던 모자도 챙겨오고 군 시절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서 미니 빔으로 즉석 상영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저희 부대는 특성상 워낙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다보니 이렇듯 추억할 수 있는 거리가 상당히 많은 게 장점입니다. 거기에 우리 부대 전용 OST라고 할 수 있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OST까지 입혀놓으니 괜히 지나간 시절이 그리워 왈칵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즉석에서 다른 전역자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우리끼리 점호와 약식제례(유해를 수습한 뒤에 지내는 제사)도 오랜만에 재현해보고 잠깐이나마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새벽 4시까지 먹고 마시다가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들 숙취 탓에 비몽사몽... 당산역까지 가서 설렁탕 한 그릇씩 먹고 헤어졌습니다. 다들 숙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통에 서로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게 못내 아쉽습니다. 저도 집에 오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네요.


아무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고 그리운 시절로 돌아갔다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여독이 많이 남는 캠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라고 지금보다 안 힘들었겠냐마는(그래도 군대인데!!!) 정말 지나가면 다 그리운 추억이 되나봅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절을 함께 헤쳐나왔기에, 유독 군 시절 선후임들이 반갑고 친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예 정식으로 국유단 전역자 모임을 상설화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까지 나왔는데요, 정말 실현됐으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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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 살면서 제일 무서운 꿈은 군대 꿈이라고 한다. 2년 가까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숨 막히는 위계질서 아래 억눌려있던 기억이 마냥 즐거웠던 추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강렬했던 기억은 잔인하게도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끔씩 꿈의 형태로 다시 드러나곤 한다. 


전역한 지 꼭 1년이 되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군대 꿈이라고 해서 전부 악몽은 아닌가보다. 가끔씩 꾸는 꿈 중에는 깨고 나면 왠지 모를 애틋함과 아련함을 품게 만드는 꿈도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가려진 봉우리, 아슬아슬한 절벽으로 이뤄진 길.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나. 생각만 해도 아련해지는 이 풍경은 군 시절 나의 추억이 깃든 한 산에 대한 이야기다.


유해발굴병으로 복무했던 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경북 영천, 경기 포천, 강원 고성, 강릉...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난히 인상 깊은 지역이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내겐 강원도에 위치한 설악산 상봉이 그랬다.


설악산의 한 봉우리인 상봉은 해발 1,243m가 넘는 험준한 산이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당시 이 봉우리에서는 국군과 북한군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워낙 치열한 전투였던 탓에 이곳에서 전사한 호국영령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그 군번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이등병 당시, 나는 상봉을 작전구역으로 배정받았다. 워낙 높고 험한 산이었던 탓에 베테랑 발굴병들조차 쉬쉬하던 그 산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어리바리 이등병에게 첫 과제치곤 매우 버거운 과제였던 셈이다.


등산로 초입이었던 옛 미시령 휴게소 터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자욱한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등산로와,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오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오르기 시작한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저앉고 말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다리의 힘이 풀려서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마음과 달리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나를 보며 혀를 차던 선임들은, 내가 메고 있던 무거운 발굴장비마저 대신 짊어지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여느 산과는 달리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이었기에, 바위틈을 손으로 비집으면서 간신히 올라가야만 했다. 발을 헛디디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너무 힘든 나머지 무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처럼 이등병이었던 내게 해발 1,200m가 넘는 험준한 상봉과의 첫 만남은 ‘끔찍한 악몽’이자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렇게 온 몸으로 기다시피해서 간신히 정상에 도착하니 동해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절경이 펼쳐졌다. 성인 남성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 발걸음 하나 옮기는 것도 조심해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구간들이 끊임없이 펼쳐진 이곳. 정상에 올랐다는 뿌듯함에 앞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단 말인가’


산에 오른 발굴병력들은 저마다 작은 손전등과 집게 하나씩만을 휴대한 채, 전 사면을 뒤덮고 있는 바위틈 사이사이로 손전등을 비춰가며, 긴 집게로 바위틈 사이의 유해를 찾는 식으로 발굴작전을 수행했다.


작전이 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틈 사이로 시레이션(전투식량), 칫솔, 탄피 등 유품들이 쏟아졌다. 아, 이런 곳에서도 전쟁이 있었구나. 눈앞에 펼쳐지는 전쟁의 흔적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며 나는 놀라움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꼈다. 높은 산을 오르느라 죽상이던 발굴병력들 역시 탄성을 내질렀다. 책으로만 접하던 전쟁의 기억을 두 눈과 양 손의 살갗으로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바위틈 사이에서 첫 유해가 식별됐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된 완전한 형태의 유해를 생각하던 내게 그곳에서 드러난 유해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워낙 작아 부위조차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의 조각유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상관은 저 멀리 동해바다에 떠있던 적의 군함들의 이곳 상봉을 향해 무차별 함포사격을 실시하면서 아군들이 형체를 알 수 없는 형태로 산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유해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 험준한 산의 바위틈 사이에서 풍상을 맞아가며 60년의 세월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유해들을 수습하고 입관한 뒤 태극기로 고이 덮어 봉송했다. 봉송병에 의해 운구되는 유해를 뒤에서 바라보는 그 잠깐 사이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맨 몸으로 버티고 서 있기도 힘든 이 험한 봉우리에서 싸우다 스러져갔어야 할 젊은 청춘들...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야 했던 그들을 생각하니 산이 너무 높다며 마냥 투정부렸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은 채 상봉의 넋으로 스러져간 그들을 생각하며 나는 나의 지난 날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역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때때로 상봉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어쩌다 꿈속에서 그 험준한 봉우리를 마주할 때면 다시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설악산을 오르던 기억, 치열한 전투의 흔적과 바위틈에 드러난 유해들을 지켜보며 지난 날을 돌이켜보던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내게 주어진 청춘의 시간을 얼마나 치열하고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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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가 제작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홍보 영상입니다. 오늘 아침에 서 교수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가 되었더군요.


나레이션은 걸그룹 '걸스데이'의 혜리가 맡았네요. 군 복무 시절,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국유단이라는 인연으로 다시 이렇게 만나는군요. (실제로 인연이 없다는 게 한스럽지만...)


제가 한창 군 복무를 하던 2015년을 기점으로 우리 단에 대한 홍보가 열심히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MBC <진짜 사나이 2> 특집 프로그램부터, 각종 다큐멘터리, 언론 보도 등등... 지금 제가 활동하고 있는 국유단 대학생 서포터즈도 그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여러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워낙 그 의미가 큰 국가적 보훈사업이기 때문에, 현충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반짝 홍보하는 정도로 그쳐선 안됩니다. 의미도 의미거니와 시간이 흐를수록 남아있는 유가족들도 점점 줄어들고 그만큼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도 버거워지기 때문에 '시간싸움'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꾸준한 홍보 활동으로 유가족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홍보 활동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국유단 출신이거나, 국유단에서 군 복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군 입대를 앞둔 이들에게는 한 번 하는 군 생활인데, 좀 더 보람차고 의미있는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는 방편도 될 것이고, 이미 국유단에서 군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하고 있구나"하면서 힘든 군 생활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저도 그랬고요.


여하간 전역하고 나서 우리 부대 이야기가 이렇게 화제가 될 때마다, 내가 수행한 임무의 가치가 남다르다는 생각에 가끔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국민적 관심도가 증가함에 따라, 국유단도 단 차원에서 좀 더 스스로 되돌아보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영상에 저도 잠깐 나옵니다. 살짝 나와서 못 알아보실 수도 있겠네요.


PS 2. 현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공식 블로그에서 '영상 소감 이벤트'도 진행 중입니다. 한 번 참여해보세요~ (http://blog.naver.com/makri5625/22072957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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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학생 서포터즈 1기, 그 힘찬 출발의 현장을 가다!


[2부] 28명의 호국영웅 메신저, 마침내 첫 걸음을 내딛다


안녕하세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학생 서포터즈 1기 김경준입니다.


지난 1부에서는 발대식에 앞서 우리 서포터즈들이 실제 6·25 전사자 유해발굴현장을 견학했던 시간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 2부에서는 마침내 서포터즈로서 공식적인 첫 걸음을 내딛는 발대식 현장을 생중계해드리려 합니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저와 함께 발대식이 열리는 생생한 현장으로 가보실까요?


마침내 서포터즈로서 내딛은 첫 걸음


발굴현장 견학을 마치고 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으로 복귀한 서포터즈들은 곧바로 국유단 본청 앞에 모여 발대식 준비를 마쳤습니다. 발대식은 이학기 단장(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육군 대령)의 입장과 함께 시작되었는데요, 먼저 서포터즈로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선서식’이 있었습니다. 선서 대표로 예비역 중사 출신의 신대식 씨(27,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성우과)가 활약해주었는데요, 성우과 재학생인만큼 멋진 목소리로 28인 서포터즈의 결의를 알렸습니다.


(사진: 발대식을 통해 첫 걸음을 내디딘 국유단 제1기 대학생 서포터즈)


선서 낭독이 끝난 다음에는 ‘서포터즈 조끼 및 국유단 뱃지’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이학기 단장을 비롯한 발굴과, 감식과, 대외협력과, 계획운영과 등 국유단의 조직을 대표하는 과장급 간부들이 직접 서포터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끼를 입혀주고, 국유단 뱃지를 가슴에 달아주었습니다. 


(사진: 국유단 조끼와 뱃지를 수여받는 서포터즈들)


이날 서포터즈들이 입은 조끼는 실제 발굴현장에서 발굴병들이 착용하는 국유단의 상징적인 유니폼이고, 단 뱃지 역시 국유단 소속 장병들에게만 지급되는 뱃지라고 합니다. 서포터즈들이 이를 수여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다 같은 국유단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이로써 국유단 서포터즈 1기가 마침내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훈훈했던 간담회 현장


발대식을 마친 서포터즈들은 2층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이학기 단장과의 간담회를 실시하였습니다. 서포터즈들은 간담회에 앞서, 짧게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포터즈가 된 28명 모두 독특한 이력과 사연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유일하게 국유단에서 발굴병으로 전역한 저를 비롯해, 예비역 육군 중사, 학군단(ROTC) 소속 장교후보생, 발굴병 지원 희망자 등 그 면면이 다채로웠습니다. 특히 28명 중 여성이 15명이고 남성이 13명으로 여성 비율이 더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각기 개성 있는 서포터즈들의 면면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이학기 단장은 “이 자리에는 예비역 육군 병장이나 중사도 있고, 또 앞으로 장교가 되어 군을 이끌어 갈 분들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해서 다양한 꿈을 펼칠 대학생들이 다 모인 것 같다”며 국유단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원해준 서포터즈들에게 감사의 말을 표했습니다.


(사진: 발대식 플래카드)


이어 이학기 단장은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의의를 설명하였는데요, “전 세계에 자국의 전쟁을 수행하다 산화한 전사자들을 발굴하는 부대가 단 두 곳밖에 없는데, 하나가 미국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이다”라며 “전 세계 각국의 고위 인사들이 우리 단을 방문할 때마다, 유해발굴감식단의 존재를 알고 큰 감동을 받는데, 그때마다 뿌듯하다”고 밝혔습니다.


(사진: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하고 있는 발굴병들의 모습)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17218590035


또한 현재 유해발굴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였는데요, “국유단 소속 발굴 팀이 총 8개 팀이 있는데,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을 8개 지역으로 나누어 동시다발적으로 발굴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며 “지금이야 그래도 덜 힘들지만, 6~7월에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호국영령의 유해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발굴병들이 매일 산에 오르고 있다”고 하면서, 웬만한 사명감과 책임감 없이는 임무 수행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서포터즈들은 평소 궁금했던 사항들에 대해 가감 없이 질문을 던졌는데요, 특히 한 서포터즈가 “단장님이 목에 걸고 계신 군번줄(인식표)이 인상 깊다. 항상 인식표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고 엉뚱한 질문을 던져 좌중에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이에 이학기 단장은 “물론이다. 육사를 졸업한 이후 지금껏 퇴근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인식표를 풀어본 적이 없다”고 밝히며, “마침 인식표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러분께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고 하여 좌중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 MBC <진짜 사나이 2 – 유해발굴감식단> 편에서 인식표를 발굴하는 장면)

출처: MBC <진짜 사나이 2>


이학기 단장은 “유해가 나왔을 때 신원확인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바로 함께 나온 유품이다. 그리고 유품 중에서도 유해의 신분을 증명하는 인식표가 확실한 증거인데, 이 인식표를 발굴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인식표가 없다면 유가족 DNA 시료라도 있어야 발굴한 유해의 DNA를 대조하여 유가족을 찾을 텐데, 남아계신 유가족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아 유해발굴사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운 감정을 토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널리 알려져야 유가족 DNA 시료 채취가 활성화되고, 그래야 많은 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서포터즈 활동에 임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간담회가 끝났습니다.


대학생 서포터즈, 어떤 활동을 하나요


이어 앞으로 서포터즈들이 수행해야 할 활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요, 국유단 서포터즈들은 앞으로 국유단과 국민 사이의 다리가 되어,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쉽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방편으로 매월 1건 이상의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해 국유단 공식 블로그에 게재하게 됩니다. 또한 28명을 지역별로 7개 조로 나누어 연간 2회 이상의 오프라인 팀별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전국 각지를 다니며 국유단과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사진: 간담회 및 오리엔테이션이 열린 2층 회의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자원들이라는 것을 방증하듯, 오리엔테이션 내내 쉴 새 없는 질문이 쏟아져, 2층 회의실은 금세 후끈한 열기로 달아올랐습니다. 이에 이원웅 소령(공보장교·육군 소령)은 “여러분이 처음이라 누구보다 열의를 가지고 임하려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오히려 처음에 너무 열정을 불태우면 나중에 지칠 수 있다. 열심히 활동하되 임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항상 초심을 잃지 말아 달라”고 특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에는, 서포터즈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는 ‘상견례’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들 처음 만나 어색할 법도 했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마냥 서로 명함도 교환하고, 조별로 단체사진도 촬영하는 등 금세 친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서포터즈들의 이야기


그럼 과연 이번에 출범한 서포터즈들은 어떤 지원동기를 가지고 서포터즈에 지원하였고, 또 어떤 각오로 활동에 임하게 될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앞서 선서 대표로도 활약해주었던 신대식 씨는 예비역 중사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실제로 군 복무 중에 국유단의 홍보 포스터를 보고 국유단과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쟁 시에 군인은 총을 들고 적과 싸워야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지만, 군 복무 당시에는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총을 들 일이 없었다”며 “그래서인지 전역하고서라도 나라를 위해 더 봉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태극기를 바라볼 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습니다.


(사진: 공보장교와 함께 찍은 1조 단체사진)


신드보라 씨(23, 창원대 국제관계학과)는 서포터즈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진짜 사나이> 유해발굴감식단 편을 보고 알게 되었다”며 “주변에 국유단을 널리 알려, 국유단이 한 분의 유해라도 더 찾을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특히 전쟁을 겪으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에 임할 것이다”라는 포부를 드러냈습니다.


허도휘 씨(23, 동국대 정보통신공학과)는 “평소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이나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날이 되면, SNS에 관련 글을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을 관련 사진으로 바꾸는 등 주위에 알리기 위해 작은 노력들을 해왔다”며 “국유단 서포터즈를 통해 우리가 존재할 수 있게끔 해준 호국영웅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서포터즈를 지원하게 되었다”고 지원동기를 밝혔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포부를 묻는 질문에는 “단 한 명의 유가족이라도 더 DNA 시료 채취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에 임하겠다”며 “현재 여러 지역축제나 학교축제들이 열리는 계절이기 때문에, 젊은 층을 겨냥한 학교축제 현장에서의 홍보활동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축제 현장에서의 홍보활동을 계획 중이다”라고 하여 벌써부터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나타냈습니다.


유일한 국유단 출신 서포터즈


이처럼 뜨거운 애국심과 열정을 갖고 출범한 서포터즈들의 모습을 보며, 저 역시도 남다른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유해발굴병’이라는 보직을 부여받아, 지난 1년 9개월 동안 호국영령의 유해를 발굴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전역한 유일한 국유단 출신 서포터즈라는 긴 수식어는 제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사진: 16년 전반기 발굴작전 출동을 앞두고 후임들과 촬영한 단체사진)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누구보다 국유단과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발굴병 출신으로서, 네티즌 여러분께 실제 발굴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나 유해발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들을 재밌고 생생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8개월 동안, 저를 비롯한 28인의 국유단 대학생 서포터즈 1기들의 활동을 열심히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국유단 대학생 서포터즈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2부 끝 -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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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학생 서포터즈 1차 서류심사 결과가 나왔다.

나도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들어가 있다. 다음 주 면접이라고 하는데... 그럼 나는 전역한 지 2주 만에 다시 부대로 복귀하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겠군아... ㅋ


이 소식을 다른 전역자들에게 말했더니,


"ㅋㅋ 형은 진짜 전역 안 한 것 같아. 전역하고 이렇게 군대랑 못 떨어지는 사람 첨 봄"


이라고 카톡 답장이 돌아왔다.


하기사 전역한 지 이틀 만에, 발굴복 입고 관악산 등산을 하질 않나, 전역하고 9일 만에 간부들을 다시 만나지를 않나... 또 집도 자대가 있던 현충원 바로 옆 동네라, 군대와의 인연은 끈질긴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뭐 흔히들 전역하고 나면 내가 복무했던 부대 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겠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군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역한 지 2주 밖에 안 된 국유단 출신인데다가, 간부들하고도 친하기 때문에, 다른 대외활동과는 달리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지원하긴 했다. 그래도 합격자 명단을 보니 경쟁률이 꽤 높은 것 같다. 다른 지원자들보다 '국유단 출신'이라는 게 가장 큰 메리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오히려 이 메리트를 잘 살려서, 남들보다 면접을 더 잘보려 노력해야겠다.


PS. 사실 부대랑 집이 가까워 놀러가려면 매일 놀러갈 수도 있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갈 생각은 못 했다. 다행히 면접이라는 명분이 생겼으니, 다음 주에는 오래간만에 간부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후임들 얼굴도 보고 와야겠당. 면접보단 애들 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네~ 잇힝~!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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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군 유해 인도식'이 열렸습니다.

저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를 참관할 수 있었답니다.

직접적으로 행사를 뛰어야하는 영현병들과, 촬영을 해야하는 사진병을 제외하고는 부대에서 유일하게 참관한 병사라는... ^^;


중국군 유해 인도식이란 '6.25 전사자 유해발굴'을 하면서, 발굴되는 유해들 중에 중국군 유해로 판명나는 유해들을 인도적인 차원에 입각해 매년 한 차례 중국 측에 송환하는 행사를 말합니다. 2014년에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세 번째 행사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작년에 발굴한 중국군 유해 36구를 송환했답니다.



이번에 발굴한 유해 36구 중 2구가 제가 속한 발굴팀이 발굴한 유해라서, 더욱 의미가 있었는데요. 행사 참관 후에 공보장교님과 중대장님께 "오늘 행사 참관 후기를 국방일보에 기고하고 싶다"고 허락을 구하고, 참관 후기를 작성해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대충 휘갈겨써서 제출할 생각이었는데, 공보장교님이 계속 디테일한 수정을 요구하셔서 거기에 맞추다보니 몇 번을 수정하고, 새로 쓰고 나름 힘들었네요... ^^;;;


어찌됐건 공보장교님의 빠른 처리 덕분에 벌써 국방일보에 실렸습니다. 전역하기 전에 제가 발굴한 유해가 중국 가는 길도 지켜보고, 또 짤막한 기록도 남기게 되었으니, 나름 군 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래 본문 복사해서 올려놓았으니 많이들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다만 프로필 사진이 좀... ^^;;;;;



[기고] 중국군 유해 인도식 참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병장 김경준



지난해 5월 내가 속한 발굴팀은 1951년 당시 국군6사단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화천 무명 943고지에서 유해발굴을 했다. 그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완전유해 2구가 발굴됐다. 그중 한 구에서는 ‘허충옥인(許忠玉引)’이라 새겨진 도장도 함께 식별됐다. 최종 중국군으로 확인돼 다소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피아를 떠나 현장에서 발굴되는 유해 중 국적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국적을 찾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3월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군 유해 인도식’ 행사가 열렸고 나도 이 뜻깊은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유해발굴병이라는 특수한 보직을 부여받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우리가 발굴한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감격스러웠다. 특히, 이번에 송환된 36구의 유해 중 2구의 유해는 우리가 직접 발굴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군악대의 진혼곡이 드넓은 활주로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해발굴감식단 영현병과 중국군 의장대 병사가 유해를 인도받기 위해 마주 섰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두 국가가 이제는 나란히 마주 서서 지난날의 은원(恩怨)을 풀고, 화해와 협력의 파트너로 손잡은 한·중 관계의 역사적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유해가 모셔진 관이 인도되는 순간, 중국 측 관계자 모두가 거수경례 혹은 목례로 정중히 유해를 인도받고 그들의 예법에 따라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중국 측 대표는 인도주의 원칙을 구현해 준 대한민국과 유해를 발굴하고 잘 보관해준 유해발굴감식단에 경의를 표하며 양국의 우호 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30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곧 전역을 앞둔 나에게 있어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라는 그동안의 군 생활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때는 적이었지만 이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중국군 유해를 송환할 만큼 향상된 우리의 국격과 이번 행사로 인해 더욱 발전될 한·중 관계를 생각하니 나의 21개월 군 생활도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책임. 그리고 우리는 현장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발굴사업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관심 갖고 참여해야 하는 숭고한 호국보훈 사업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전역한 뒤에도 이러한 보람과 긍지를 안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을 알리고 동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출처: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60405&parent_no=2&bbs_id=BBSMSTR_0000000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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