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한창 커피에 푹 빠져 살았었는데요, 얼마 전부터 커피 대신 차(茶)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사실 무예24기를 가르쳐주시던 사부님께서 보이차의 효능을 열심히 말씀하고 다니셔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실제로 수련 전후로 보이차를 직접 끓여주셔서 몇 번 얻어 마시다보니 저도 보이차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부님 따라 차회도 가보고 보이차도 사서 마셔봤는데요, 제 성격이 원래 한 번 꽂히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보이차도 마시다보니 '제대로 알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맛과 향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지, 어떤 차호로 우리는 것이 좋을지, 각 차의 특징은 뭔지... 아무래도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때마침 '티쿱스토어'란 곳에서 제1기 발효차 교육을 실시한다는 광고를 냈더군요. 정규 차예사 과정은 50만원 정도 하는데 반해, 이번 교육은 단기 과정이라 6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수강료로 차 이론을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요. 선착순 모집이라길래 하루 고민하고 바로 다음 날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사실 사부님은 "차라리 그 돈으로 차를 사먹으라"며 "차는 이론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많이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수강신청했습니다.




교육은 총 2주에 걸쳐 4강(매회 100분: 이론 60분+실기 40분)으로 구성됐는데요,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반이 있고 토요일에 몰아서 하는 강의가 있었습니다. 대신 토요반은 일주일에 두 번 할 것을 한 번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강의시간도 한 번에 3시간으로 책정됐더군요. 장시간 수업을 들을 자신이 없긴 했지만, 토요일이 제일 프리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보단 한 번 가는 게 편해서 토요반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4일 토요일, 첫 강이 열렸습니다. 강의는 창덕궁 앞에 위치한 '한국문화정품관'이란 곳에서 진행됐습니다. 오늘은 첫 날이라 발효차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차의 기원, 분류, 갈래, 쓰임)과 녹차&홍차에 대해 배웠습니다. 남자 차예사 한 분, 여자 차예사 한 분 이렇게 둘이서 강의를 진행하셨는데요, 남자 차예사 분께서 이론 설명을 하는 동안 여자 차예사 분은 끊임없이 차를 우려내주셨습니다. 



이론 설명을 듣다보니 다들 궁금한 것도 많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많아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난해하더군요. 커피도 어렵지만, 차란 것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단기 과정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사부님의 말씀이 슬슬 이해도 가더군요. 실제로 강의를 해주신 차예사 분들도 "우리는 어릴 적부터 주입식 교육을 많이 받아서 자꾸 교과서적인 접근을 한다"면서 "차는 일단 많이 마셔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나중엔 이론 설명을 그냥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듣듯 편하게 들으면서 우려주시는 차를 마시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처음엔 보이차로 워밍업을 하고 이어서 우롱차->녹차->홍차 순으로 차를 시음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보이차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 차를 마시는 순서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차는 발효도가 낮은 순부터 높은 순으로 마셔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향도 옅은 차에서 점점 진한 차로 가야한다고 하고요. 맨 마지막엔 보이차를 마시면서 기운을 정돈해줘야 몸이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잘못 마시면 밤에 잠도 못자고 괴롭다고 하네요. 그런 설명을 들으니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뭣보다 가장 인상 깊은 얘기는 차에 담긴 오행의 원리였습니다.


녹차: 木의 기운 / 뻗침의 성질 / 각성 효과 / 변비 해소 / 소화 작용 (위)

홍차: 火의 기운 / 올림의 성질 / 각성 효과

우롱차: 土의 기운 / 풀림의 성질 / 소화 작용 / 안정 효과

백차: 金의 기운 / 응축의 성질 / 집중 효과

보이차: 水의 기운 / 내림의 성질 / 소화 작용 (장) / 상성하허(上盛下虛)


이렇듯 차마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하나만 마시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날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맞는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위가 더부룩하면 녹차를 마시고,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아프면 보이차를 마시면 된답니다. 중국인들은 더울 때 홍차를 마신다고 합니다. 홍차는 火의 기운이 있어 습한 여름에 마시면 몸의 습기를 건조시켜줘 더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이열치열의 원리인 셈이죠.


현대인들에게 제일 필요한 차는 보이차가 아닐까 해요. 상성하허라는 말처럼, 현대인들은 머리 쓸 일도 많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아서 기운이 자꾸 머리로 올라오는데 보이차를 마시면 이 기운을 아래로 내려준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의 복원력을 높여줘서 각종 병이 침투할 수 없는 튼튼한 면역체계를 세워주기도 하고요.


실제로 이론 설명을 들으면서 차를 마시니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된 보이차를 마시면 허리와 등줄기가 훈훈해지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반응이 느껴지더라고요. 친절한 차예사님들의 설명에 얹어 귀한 차들을 마시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교육을 들으면서 심오한 차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개완이나 표일배로 간단하게 차를 우려마셔왔는데, 보이차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자사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자사호는 중국 강소성 의흥의 서남부 지역에서만 나는 자사라는 독특한 광물질로 만든 차호입니다. 희소성에 더해 수공예 작품이라 작품성까지 더해져 가격이 만만찮은데요, 이날 제가 본 자사호들도 최저가격이 7만원부터 시작해서 비싸게는 800만원 짜리까지 있더군요. 7만원도 학생 신분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어차피 한 번 장만하면 평생 마실 수 있으니 큰 맘 먹고 질렀습니다. 


오늘 강의 내내 차를 우려내주신 이정수 차예사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자사호 특징을 설명해주시면서 괜찮은 제품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자사호를 사고 나니 자꾸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내친 김에 개완과 찻잔 그리고 자사호를 닦을 때 써야 한다는 차건(수건)까지 샀습니다. 무려 8만 5천원이 나왔네요. 서비스로 우롱차 티백을 받아왔습니다.



처음엔 사놓고서도 '괜히 산 거 아닐까' 조금 후회도 되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학생 신분에 7만원은 보통 큰 돈이 아니기 때문이죠. 차에 대해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무슨 차 하나 마신다고 큰 돈 들이냐"고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혀를 차시더라고요. 그러나 막상 자사호로 보이차를 내려마시니 그 맛과 향이 정말 남다릅니다. 귀한 물건이니만큼 관리도 까다로워서, 혹여나 망가트릴까봐 조금 걱정은 됩니다만 어찌 됐건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우니 잘 샀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차 생활하려고 합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이면 2강이 있는데요, 이날도 좋은 차를 마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PS. 뜬금없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위대하고 매력적인 나랍니다. 무술, 요리, 차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저한테 중국은 너무 매력적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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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회(茶會)란 곳에 다녀왔습니다.


말그대로 차예관(찻집)에 모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정기적으로 존재하는 모임이 아니라, 그냥 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가면 그게 차회고, 찻집 네트워크를 따라 초면의 사람들끼리 모여 차를 마시면 그게 또 차회가 되곤 합니다.


집에서 마시던 보이차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찻잎을 새로 사기 위해서라도 차관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회를 연다고 하니 같이 가보자"고 권유받아서, 함께 다녀왔습니다. 차회가 열린 장소는 보이차 전문점인 지유명차 청담점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갔던 인사점과는 달리 독립된 점포가 있어서 규모가 큰 편이었습니다. 보이차와 차구(茶具: 차를 내리는 도구)가 정말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가격들이 후덜덜하더군요. 눈에 탐나는 것만 보이면 가격 생각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저조차도 수십 번씩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들이었습니다. 보이차를 내려마시는 자사호(찻주전자)가 최소 7만원에서 비싸게는 120만원까지 있더군요. (물론 그보다 더 비싼 자사호도 얼마든지 많다고 합니다) 보이차 역시 '차테크'란 말이 존재할 정도로 가격대가 다양한 편이지요.



커피가 그랬듯이, 차를 내려 마시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도구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개완(중국식 찻잔)이나 표일배(간편하게 내려마시는 휴대용 도구)를 통해 차를 내려마십니다만, 정말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갖춰야 할 도구들이 꽤 많은 편입니다. 어차피 평생 마실 차라면 도구를 언젠가 갖추긴 해야할 터인데, 솔직히 아직까지는 차 구매를 소비 1순위로 맞추기엔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도구가 좋은지도 잘 모르는 터에 무작정 지르고 보기에 가격 데미지도 너무 큰 것 같고요. 


이날 차회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쪽 점장님도 "일단은 도구 욕심 내지 말고 지금 있는 도구로 차만 열심히 마시라"고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이런 차회에 자주 와서 다양한 도구로 차를 내려마시다보면, 자연스레 경험으로 터득하게 된다고. 도구는 그때 가서 사도 괜찮다고 하네요. 아쉬운대로 일단 찻잎만 사왔습니다. '지유소타'라는 보이찻잎과 '매점'이라는 우롱찻잎을 데려왔습니다.



(가격대가 얼마로 보이시나요. 저 작은 자사호가 120만원, 파란색 개완이 40만원이었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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