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에서 대학생 서포터즈 1기 면접심사가 있었다.


나 역시 1차 서류심사 합격자로서, 면접에 응하기 위해 현충원으로 향했다. 전역한 지 3주 만에 다시 현충원에 오다니...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이미 현충관 앞에 도착하니 단으로 들어가는 샛길 앞에 안내판과 함께 아는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국유단 본청 전경)



(사진: 국유단 서포터즈 면접 안내판)


면접대기실인 2층 회의실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지원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면접 대기 시간 동안 국유단 관련 영상물을 시청했는데, 우리 팀이 작년에 철원 광덕산에서 발굴할 때 촬영했던 KBS <남북의 창> 영상도 나오고, <진짜 사나이 2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편>도 나오는 걸 봤다. 뭐 나야 군 복무하면서 실컷 봤던 내용들이긴 했지만, 함께 동고동락하며 발굴했던 멤버들이 등장하는지라 반가운 얼굴들 보는 재미로 감상했다.




(사진: 면접대기실로 활용된 회의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다)


면접 대기하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간부님들께 인사나 드리려고 돌아다녔다. 이번 서포터즈를 담당하는 공보장교님도 반가워하시면서 "국유단 전역자라고 해도 특별히 가산점 주고 그런 거 없으니까, 똑같이 긴장하고 열심히 보라"고 하셨다. (덕분에 긴장을 좀 더 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 함께 당직을 서기도 했었던 탐사관 한 분은 "어떻게 왔냐"며, "사무실에 내 발굴복 있으니까 갈아입으라"고 농담도 하셨다. 하여간 마주치는 간부들 대부분 "어떻게 왔냐"는 반응이다 ㅎㅎ.. 심지어 지역대장님은 "이제 전역하려고 인사하러 왔나?"고 하셔서 당황... 분명 전역하기 하루 전날에 인사도 드리고, 간부사관 관련 상담도 길게 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내가 전역 안 한 줄 알고 계실 줄이야... ㅜㅜ


면접 보기 직전에 공보장교님 인솔 하에 지원자들이 1층 로비에서 전시된 유품들을 보며 유해발굴사업의 의의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임시감식소도 들어갔는데, 마침 한-미 공동감식 관련하여 미국 DPAA 쪽 관계자들도 와 있었다. 감식소에서 일하던 감식병들은 내 얼굴보고 깜짝 놀라고, 나는 그저 그 상황이 웃겨서 웃어주고...ㅎㅎㅎ





(사진: 국유단 1층 로비에서 공보장교님의 설명을 듣는 지원자들)


이윽고 면접 시간이 되었다. 면접은 접견실에서 4인 1조로 이루어졌다. 사실 접견실은 전역하기 전에 짱박혀서 커피나 마시면서 접견병과 한담이나 나누던 내 집 안방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면접이 뭐라고 또 긴장이 되는 건지... 현충원 올 때까지만 해도, 그냥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 볼 생각에 설레기만 했는데, 막상 면접을 볼 때가 되니 가슴이 두근두근... 내 집 안방이나 다름 없는 곳에 왔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스웠다.


들어가니 면접관이 세 분 계셨는데, 계획운영과장님, 공보장교님 그리고 유브레인 측 면접관 한 분이 계셨다. 한 10~15분 정도 면접을 본 것 같은데, '자기소개', '지원동기', '서포터즈가 된다면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와 같은 상투적인 질문들이었고, 유브레인 측 면접관께서 "서포터즈가 되면 팀 활동을 해야하는데, 팀 활동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뭐라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제법 신선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다.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서포터즈가 되면 하고 싶은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나의 강점은 국유단 전역자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예비역들이 전역하고 나면 군 복무 한 방향으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스스로 수행한 임무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국유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역자 출신으로서, 내가 수행한 임무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다"


"나의 소원은 남북의 평화통일이다. 통일부에서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나는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제작하곤 했고, 군 복무를 하면서도 유해발굴과 통일이 어떻게 연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다. 현재 북한 지역에서는 유해발굴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 지역에 있는 유해를 발굴하지 않는다면 남아있는 북녘의 이산가족들도 가족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여 나는 서포터즈가 된다면 나의 장기인 글쓰기를 살려, 북한 지역 유해발굴이 남북의 평화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데, 활동 포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말을 좀 많이 더듬고 버벅거린 것 같다. 긴장을 한 탓인지, 제대로 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는대로 말하다보니 그런 것인지... 지금 정리해보니 너무 이상하게 말한 듯... 그래도 의미전달이라도 똑바로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지난 3월 중국군 유해 인도식 당시 찍은 단체사진. 맨 왼쪽의 전투복을 입은 놈이 바로 나다 ㅎ)


면접을 마치고, 발굴과와 계획운영과에 가서 간부 및 계원들에게 인사도 하고 서로 근황도 나누었다. 간 김에 코팅지가 벗겨진 내 전역증도 다시 만들었다 ㅋㅋㅋ 본부중대에 가서 중대장님과 행보관님한테도 인사드렸다. 행보관님이 제일 반가워하신 것 같다. 옆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전역 후 근황도 말씀드리고, 나가서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재입대도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행보관님도 여전하신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행보관님과 이야기하고 나오는데, 내 집이나 다름없던 5생활관에 잠깐 들러, 내가 쓰던 침상에 잠깐 앉아 감상에 빠졌다. 내 관물대와 침상은 여전히 그대로 있고, 군 생활하면서 쓰다가 전역하기 전에 두고 간 세면바구니도 그대로 있었다. 물론 3주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軍 생활이기에... 내 침상도, 관물대도, 생활관도... 그리고 사람들도 너무 그립기만 하다.


다른 후임들하고도 만나서 얘기 좀 하다가 나왔는데, 뭐랄까...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역하고 솔직히 어디 마음 붙일 때가 없어 힘들었다.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고, 만날 사람도 별로 없고, 아직 사회화가 덜 되어서 여전히 군대 꿈만 꾸고 있고... 그런데 내가 군 생활하던 단에 와서, 정든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나니 마음도 편안해지고, 정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닌가 싶은 착각도 들었다.


뭐 어쨌거나...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원자 중 내가 유일한 전역자인 것 같던데... 유해발굴 관련해서는 그 누구보다 정통할 수밖에 없는 전역자 출신으로서, 나의 강점을 살려 한 번 열심히 해보고 싶다. 전역자들이 전역 후에도 자기가 수행한 임무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그 의미와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모범을 보이고 싶다. 그것은 곧 내 군 생활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니까.



(사진: 기념품으로 받은 수첩과 코인)


PS. 기념품으로 수첩과 코인을 받았다. 국유단 발굴병 지원 면접 때 기념품으로 받은 코인과, 전역병 간담회 때 단장님으로부터 받은 코인... 그리고 오늘 서포터즈 지원 면접 때 기념품으로 받은 코인까지... 난 국유단 코인이 무려 세 개나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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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학생 서포터즈 1차 서류심사 결과가 나왔다.

나도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들어가 있다. 다음 주 면접이라고 하는데... 그럼 나는 전역한 지 2주 만에 다시 부대로 복귀하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겠군아... ㅋ


이 소식을 다른 전역자들에게 말했더니,


"ㅋㅋ 형은 진짜 전역 안 한 것 같아. 전역하고 이렇게 군대랑 못 떨어지는 사람 첨 봄"


이라고 카톡 답장이 돌아왔다.


하기사 전역한 지 이틀 만에, 발굴복 입고 관악산 등산을 하질 않나, 전역하고 9일 만에 간부들을 다시 만나지를 않나... 또 집도 자대가 있던 현충원 바로 옆 동네라, 군대와의 인연은 끈질긴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뭐 흔히들 전역하고 나면 내가 복무했던 부대 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겠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군 시절이 그립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역한 지 2주 밖에 안 된 국유단 출신인데다가, 간부들하고도 친하기 때문에, 다른 대외활동과는 달리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지원하긴 했다. 그래도 합격자 명단을 보니 경쟁률이 꽤 높은 것 같다. 다른 지원자들보다 '국유단 출신'이라는 게 가장 큰 메리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오히려 이 메리트를 잘 살려서, 남들보다 면접을 더 잘보려 노력해야겠다.


PS. 사실 부대랑 집이 가까워 놀러가려면 매일 놀러갈 수도 있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갈 생각은 못 했다. 다행히 면접이라는 명분이 생겼으니, 다음 주에는 오래간만에 간부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후임들 얼굴도 보고 와야겠당. 면접보단 애들 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네~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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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국방부 직할기관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단훈을 공모한다는 소식입니다.


사실 저희 부대에는 '비례삼불 귀가국선(非禮三不 歸家國宣)'이라는 단훈이 존재하긴 합니다. 2대 유차영 단장이 직접 만든 이 단훈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비례삼불의 경우 '비례불사(非禮不思)', '비례불촉(非禮不觸)', '비례부동(非禮不動)'으로 '예를 갖추어 모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유해를 발굴할 생각도 하지 말고, 만지지도 말고, 옮기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뒤의 귀가국선은 '유해를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것이, 바로 국가가 앞장서서 선양해야 할 의무'라는 뜻입니다.


나름대로 괜찮은 뜻이긴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단훈이 한자어라서 너무 딱딱하고 어렵다는 여론에 따라 새 단훈을 제정하자는 공론이 일었고, 병사와 간부들을 대상으로 단훈 공모전을 개최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도 단훈 공모전에 참여했었고, 全 간부/병사 투표를 통해 최종 단훈 심사까지 진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끝내 결정되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대국민 공모전으로 전환해서 더 기발하고 의미 있는 단훈을 찾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공모요강>


- 이해하고 기억하기 쉬운 간명화된 문장, 문구, 단어로 단훈을 표현 (30자 이내)

ex. 국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 / 조국, 희생, 선양 /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 단훈의 선정 이유와 의미에 대하여 자유 형식으로 기술


<참여방법>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공식 홈페이지(http://www.withcountry.mil.kr/)에 접속하여, '참여마당' - '단훈공모' 게시판에 '비밀글'로 등록


<유의사항>


- 소속, 이름, 연락처를 반드시 작성


<포상 및 혜택>


- 단훈 채택자에게는 소정의 포상품 지급

- 모든 참가자 중 추첨을 통해 기념품 지급


포상도 포상이지만, 내가 직접 기안한 단훈이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라는 국가적 사업을 수행하는 국직기관의 단훈으로 쓰인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머리 한 번 굴려봐야겠네요.. ^^;;;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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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역했지만 그래도 나의 청춘을 바쳤고, 나의 추억이 깃든 부대라 애틋하다.

16년에도 다들 안 다치고 무사히 발굴 임무 수행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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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전역한 지 이틀째.


이미 말년 휴가 때부터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하지?'하는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전역하고 나니 심사가 더 울적하고 불안해진다. 전역하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군 생활 2년 동안 남들보다 뒤쳐진데다가 나이도 있고 하니 정말 빨리 뭐라도 해야한다는 중압감에 마음이 무겁다.


이제 전역도 했으니 공식적인 '백수'가 된 셈인데,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마냥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잠만 자는 것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 오늘은 근처 관악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 중 하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어머니 따라 가본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전역하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휴가 때만 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 결국 전역하고서야 오게 됐다.


특별히 준비랄 것도 없이, 그저 김밥 두 줄과 시원한 생수 한 병만 챙겼다. 물론 복장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갖추었다. 군 생활하며 입었던 발굴피복으로 완전 무장하고, 우리 단 캡모자까지 착용한 뒤에 전투화(발굴화)까지 신고보니 영락없는 발굴병의 모습이다. 사실 나한텐 이 복장이 가장 편할 수밖에 없다. 늘 산을 탈 때마다 이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산을 탔으니... 오랜만에 추억이나 느낄 겸, 일부러 발굴복으로 갖춰입고 집을 나섰다.




(사진: 오늘의 내 등산복장! 완전 발굴병 코스프레가 따로 없다)


사당역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코스가 있다고 하여, 무작정 사당역으로 향했다. 내 손엔 지도도 없었다. 그저 주말에 사당역에 가보면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있었던 것만 생각하며, '어떻게든 길이 나오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평일 오전임에도 드문드문 등산객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길이 맞나 싶을 때는 그 사람들을 이정표 삼아 따라갔다.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관악산 등산로 초입이 등장!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음에도 뒤돌아보니 경치가 아름다웠다. 저 멀리 내가 군 생활한 현충원도 보이고, 우리 집도 보이고, 63빌딩이며 한강이며 서울시내 한복판이 다 내려다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올라갔던 것 같다.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지만, 목적지인 연주대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길어서 지루했다. 이정표 상으로는 소요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하러 가는 산이 아니어서 그런지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코스가 힘든 코스도 아니었고. 다만 목적지인 연주대에 다다르니 마지막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험한 암벽이었다. 






(사진: 관악산 등산 중 내려다 본 서울시내)


사실 중학생 때 처음 관악산을 탔던 기억은 내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연주대를 코앞에 두고서 암벽이 무서워 한사코 안 가겠다고 버텼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일행들은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당시의 기억은 약간은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이라, 굳이 관악산을 다시 찾은 것도, 나름 산 좀 탄다고 자부하는 국유단 발굴병 출신으로, 다시 한 번 정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너무 관악산을 무시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방자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시 타도 산이 험하긴 험해 겁이 났다.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길이니 우회하여 돌아가라는 경고문도 군데군데 있었다. 근데 애석하게도 우회로를 찾지 못해서, 결국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앞으로 못 갈 것 같아서, 일부러 앞만 보고 전진했다. 암벽에 찰싹 달라붙어, 밧줄과 쇠사슬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기어올라갔다. 끝 없는 암벽을 타고 올라서니 마침내 관악산 정상 도착!




(사진: 관악산 정상 도착!)


일단 무사 도착에 안도의 한숨을 푹 한 번 내쉬어주고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니, 평일임에도 등산객들은 꽤 있는 편이었다. 평일에도 이 정도인데, 주말엔 얼마나 사람이 많을까. 산은 역시 사람이 드문 평일에 타야 그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연주대는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초기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의상대'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를 듣고,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연주대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찰칵! 뒤에 보이는 암자가 연주대)


연주대에 가보니,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무릎 꿇고 저마다 각자의 소원을 부처님께 빌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소원 하나 빌어야겠다 싶어 합장을 하고 작은 소원(?)을 빌었다.


연주대에서 기도를 드린 뒤에, 연주대에서 조금 아래에 떨어져 있는 사찰 '연주암'에 들러 사찰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도 부처님께 절과 기도를 드리고서, 점심을 먹은 뒤에 반대 방향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사진: 관악산 연주대 근방에 위치한 사찰, 연주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서울대학교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길은 악명 높은 '깔딱고개'였다. 계단이 워낙 많아서 등산객들에게 정말 힘든 구간이라고 하는데, 나야 내려가는 입장이라서 힘든 줄 몰랐지만,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좀 힘들긴 했을 것 같다. (계단하면 또 악명 높은 화천의 무명 943고지를 잊을 수 없다)


그래도 사당역에서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길이 너무 길어서 지루했는데, 이쪽 길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다. 사실 올라가면서도, 어떻게 다시 반대로 내려가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 길은 상대적으로 짧아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내려가다보니 어느새 서울대 캠퍼스가 나왔다. 물론 캠퍼스가 워낙 넓은지라,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데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다. 등산로를 따라 호수공원을 지나,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서울대를 벗어나 삼성고등학교 앞까지 왔다. 마침 그곳에 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사진: 연주대를 배경으로 한 장)


관악산 연주대를 정복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내려오고 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좀만 더 천천히 오르고 내려가며 경치를 즐겼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수 있겠다. 발굴지에서 등산을 하면, 사브작사브작 천천히 오르는 게 아니라, 간부와 선임들의 눈치 때문에 죽기 살기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짬이 차면 천천히 타고 싶어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르게 타고 있다. 덕분에 후임들은 나 따라오느라 죽을 맛이었다.


사실 난 타고난 성격도 급해서, 등산을 통해 '사브작사브작' 걸으며, 성격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었는데, 경치를 즐길 것도 없이 그저 빠르게 타다보니 이게 잘 안되는 것 같다. 등산모임이라도 나가야 할까봐.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면서 천천히 타다보면 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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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병장 가베치, 2016년 4월 13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사진: 7월 동기들과 전역 기념 단체사진)

 

그렇다. 내가 드디어 전역을 했다. 아직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말년이 되어 종종 나오던 휴가를 또 나온 마냥, 언제고 부대로 복귀를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전역하는 당일 새벽까지도 불침번 근무를 서고 나왔는데, 복도 벽에 걸린 전자시계에 찍힌 날짜 '4월 13일'을 보면서 같이 근무를 서던 부사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작년 1월에도 함께 근무를 서던 선임과 내년 4월이 과연 올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며 근무를 섰었는데, 벌써 그 선임은 전역했고 나도 날이 밝으면 전역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1년 9개월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욕도 많이 먹어보고, 서러움에 남몰래 눈물 흘리기도 했고, 또 평생 잊지 못할 인연들을 만나 즐거운 추억을 쌓기도 했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는데, 전역한 지금은 마치 그 시간들이 한바탕 꿈만 같다.

 

군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봤지만, 역시 남는 건 '사람'일 것이다. 미운 선임, 고운 선임도 만나고 반대로 미운 후임, 고운 후임도 만났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다 추억일 뿐이고, 군 생활하며 즐겁게 지냈던 선후임, 동기들과 앞으로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고 평생 우정을 잘 간직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내 군 생활의 기억들)

어찌되었건 1년 9개월의 군 생활은 결코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나의 軍 시절 약력]

 

2014년 7월 14일 - 논산 육군훈련소 입대 (29연대 1교육대 2중대 2소대 97번 훈련병)

2014년 8월 22일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전입 (발굴과 발굴4팀 이병)

2014년 8월 31일 - 14년도 후반기 유해발굴작전 출동 (경기 포천, 강원 고성, 충북 증평)

2014년 11월 1일 - 일병 진급

2014년 12월 23일 - 2014 국군 감동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2015년 3월 5일 - 15년도 전반기 유해발굴작전 출동 (경북 영천, 문경, 경기 포천, 강원 화천, 고성, 강릉)

2015년 6월 1일 - 상병 진급

2015년 8월 25일 - 15년도 국유단 독서 경연대회 최우수 독후감 수상

2015년 9월 4일 - 15년도 후반기 유해발굴작전 출동 (강원 철원)

2015년 10월 16일 - 발굴4팀 분대장 취임

2015년 11월 13일 - 2생활관 분대장 취임

2016년 1월 1일 - 병장 진급

2016년 2월 1일 - 분대장 이임, 말년 병장 취임(?)

2016년 4월 13일 - 육군 병장 만기 전역, 예비역 편입

 

 

(사진: 전역 기념 단체사진)

 

전역 당일날 당직사령이었던 행보관님이 "밖에 나가보면 군 생활이 그래도 제일 편했다는 걸 알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는데, 벌써부터 그 말에 공감이 간다. 이등병 때 읽은 <서경석의 병영일기>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전역을 하는 중대장이 병사인 서경석에게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는 곳이고, 나는 이제 전쟁을 하러 간다"는 말을 마지막 인사로 남긴 것이다.

 

이제 정말 전쟁을 치르러 사회에 나왔다. 다시 사회로 던져진다는 게 참 무섭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또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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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군 유해 인도식'이 열렸습니다.

저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를 참관할 수 있었답니다.

직접적으로 행사를 뛰어야하는 영현병들과, 촬영을 해야하는 사진병을 제외하고는 부대에서 유일하게 참관한 병사라는... ^^;


중국군 유해 인도식이란 '6.25 전사자 유해발굴'을 하면서, 발굴되는 유해들 중에 중국군 유해로 판명나는 유해들을 인도적인 차원에 입각해 매년 한 차례 중국 측에 송환하는 행사를 말합니다. 2014년에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세 번째 행사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작년에 발굴한 중국군 유해 36구를 송환했답니다.



이번에 발굴한 유해 36구 중 2구가 제가 속한 발굴팀이 발굴한 유해라서, 더욱 의미가 있었는데요. 행사 참관 후에 공보장교님과 중대장님께 "오늘 행사 참관 후기를 국방일보에 기고하고 싶다"고 허락을 구하고, 참관 후기를 작성해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대충 휘갈겨써서 제출할 생각이었는데, 공보장교님이 계속 디테일한 수정을 요구하셔서 거기에 맞추다보니 몇 번을 수정하고, 새로 쓰고 나름 힘들었네요... ^^;;;


어찌됐건 공보장교님의 빠른 처리 덕분에 벌써 국방일보에 실렸습니다. 전역하기 전에 제가 발굴한 유해가 중국 가는 길도 지켜보고, 또 짤막한 기록도 남기게 되었으니, 나름 군 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래 본문 복사해서 올려놓았으니 많이들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다만 프로필 사진이 좀... ^^;;;;;



[기고] 중국군 유해 인도식 참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병장 김경준



지난해 5월 내가 속한 발굴팀은 1951년 당시 국군6사단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화천 무명 943고지에서 유해발굴을 했다. 그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완전유해 2구가 발굴됐다. 그중 한 구에서는 ‘허충옥인(許忠玉引)’이라 새겨진 도장도 함께 식별됐다. 최종 중국군으로 확인돼 다소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피아를 떠나 현장에서 발굴되는 유해 중 국적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국적을 찾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3월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군 유해 인도식’ 행사가 열렸고 나도 이 뜻깊은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유해발굴병이라는 특수한 보직을 부여받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우리가 발굴한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감격스러웠다. 특히, 이번에 송환된 36구의 유해 중 2구의 유해는 우리가 직접 발굴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군악대의 진혼곡이 드넓은 활주로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해발굴감식단 영현병과 중국군 의장대 병사가 유해를 인도받기 위해 마주 섰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두 국가가 이제는 나란히 마주 서서 지난날의 은원(恩怨)을 풀고, 화해와 협력의 파트너로 손잡은 한·중 관계의 역사적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유해가 모셔진 관이 인도되는 순간, 중국 측 관계자 모두가 거수경례 혹은 목례로 정중히 유해를 인도받고 그들의 예법에 따라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중국 측 대표는 인도주의 원칙을 구현해 준 대한민국과 유해를 발굴하고 잘 보관해준 유해발굴감식단에 경의를 표하며 양국의 우호 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30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곧 전역을 앞둔 나에게 있어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라는 그동안의 군 생활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때는 적이었지만 이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중국군 유해를 송환할 만큼 향상된 우리의 국격과 이번 행사로 인해 더욱 발전될 한·중 관계를 생각하니 나의 21개월 군 생활도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책임. 그리고 우리는 현장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발굴사업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관심 갖고 참여해야 하는 숭고한 호국보훈 사업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전역한 뒤에도 이러한 보람과 긍지를 안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을 알리고 동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출처: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60405&parent_no=2&bbs_id=BBSMSTR_000000000127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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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재 복무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에서 이번에 대학생 서포터즈 1기를 모집한다고 합니다.


국유단은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아직까지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계신 13만여위의 호국영령의 유해를 발굴하여 가족의 품으로 모셔드리는 국방부 직할부대이자, 전세계에 딱 2개 밖에 없는 유해발굴 전문기관입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매우 숭고한 호국보훈사업이며, 따라서 대국민 홍보와 참여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좀 더 홍보의 폭을 넓히고자 대학생 서포터즈(기자단)을 창설하게 된 것인데요, 처음이다보니 단에서도 특별히 많은 혜택과 배려를 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부대 이야기다보니 아무래도 관심 가지고 홍보를 하게 되는데요, 혹시라도 서포터즈 관련해서 궁금하신 분들, 국유단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덧글 달아주시면 친절하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활동 특전으로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발굴 현장도 견학하고, 기사를 쓰면 소정의 원고료도 지급한다고 하니 뜻 깊은 경험을 하면서 용돈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뜻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랄게요.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MAKRI) 대학생 서포터즈 1기 모집


 모집 기간

2016년 3월 21일 (월) ~ 4월 24일(일) 자정까지​

 지원자격

-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휴학생 포함)

- 취재 및 글쓰기를 좋아하고 SNS 활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

- 발대식 및 오프라인 사업 홍보활동이 가능한 사람

 활동기간 및 내용

2016년 5월 ~ 12월, 약 8개월 활동

- 연 2회 팀별 오프라인 홍보 진행

- 월 1회 공식 블로그 포스팅

- 발대식 및 해단식(국유단 견학 및 발굴 현장 체험 진행)

 활동혜택

- 개인별 원고료 및 팀별 소정의 활동비 지급

- 활동 종료 후 수료증 및 우수 서포터즈 별도 포상

- 유해발굴병 및 감식병 모집 시 가산점 부여

 향후일정

- 서류심사 발표 : 4월 27일(수)

- 면접 전형 : 5월 2일(월)

- 최종 발표 : 5월 3일(화)

발대식 : 5월 9일(월)

 신청방법

아래에 첨부된 서류를 작성한 후

(지원서/자기소개서/블로그기사작성/개인정보활용동의서)

 makri5625@naver.com 메일로 보내주세요!!


* 개인정보활용동의서의 싸인은 사진을 찍어서 얹어주시면 됩니다!


제1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서포터즈 지원서류.hwp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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