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커피보다는 녹차, 홍차, 보이차와 같은 차(茶)에 관심이 많았다. 커피맛을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커피와 차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커피란 밥 먹고 입가심용으로 먹는다는 가벼운 느낌의 음료였다면, 동양의 차(茶)는 자기수양, 건강유지와 같은 보다 묵직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뜨거운 물을 찻잎에 부어, 찻물을 우려내는 과정부터, 향을 맡으며 한 모금 음미하면 온 몸에 퍼져나가는 차의 향기. 그런 다도(茶道)의 과정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깨고, 커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바로 군대에서 비롯되었다. 


군필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군대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바로 이등병-일병 시절이다. 나같은 경우 일병 5호봉 때까지도 팀내 서열이 막내여서 더욱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날 위로해 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단 것이 땡긴다고, 사회 있을 때는 그닥 즐기지 않았던 믹스커피를 P.X에서 한 봉지(막대스틱 100개들이)나 사다가 관물대에 쟁여두고 매일 티타임을 즐겼더랬다. 처음에는 살찔 것 같아서 점심 먹고 한 잔씩만 먹다가, 나중에는 너무 땡겨서 하루에 2~3잔까지도 마셨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 믹스커피 한 잔 타서, 막사 옥상에 올라가 남산타워, 63빌딩, 한강, 현충원 일대를 바라보며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는 게, 그 시절의 유일한 낙이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3024334)


하지만 이후로도 믹스커피를 꾸준히 마시진 않았다. 사회 있을 때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가, 믹스커피의 그 인위적인 달달한 맛이 나중엔 거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입 안이 텁텁해지고, 살찌는 것 같아 어느 순간 믹스커피를 끊어버렸다.


그러다 15년 3월 영천으로 발굴하러 이동했을 때, 마침 발굴부대인 영천대대 P.X에 인스턴트 아메리카노 커피인 '수프리모'를 팔고 있길래, 냉큼 집어들었다. 인스턴트이긴 하지만 군대 안에서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커피 마니아들은 알 것이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아메리카노 커피를 종종 즐기곤 했다. 믹스커피에 비해 커피 본연의 향과 맛에 가까워서 마음에 들었다.


이후 다시 한 번 커피의 신세계를 접할 일이 생겼다. 작년 9월, 추석 연휴를 쇠기 위해 잠시 단 복귀했을 때의 일이다. 출타를 나갔다가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들러 우연히 '비니스 아마레또 아몬드(Beanies Amaretto Almond Flavour)' 라는 커피를 집어들었는데, 그 커피를 한 잔 맛보고 나니 다른 커피는 입에 댈 수가 없었다.



(사진: 비니스 아마레또 아몬드 커피)


이 커피 역시 인스턴트 커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몬드향이 물씬 풍기는 블렌딩 커피로, 향만 맡아도 기분이 매우 좋아지는 커피였다. 이때 당시의 나는, 발굴지에서 한창 분대장 역할을 수행하며 맘고생이 심했던 시기인데, 매일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텀블러에 커피 한 스푼씩 타서 마시곤 했다. 그럴 때면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았다.


마침 내 맞후임도 커피를 무척이나 즐기는 친구여서, 카누 커피를 하루에 4~5잔 이상 마시곤 했다. 그 친구와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시며 군 생활의 고됨을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커피 마시는 시간은 내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또 가끔은 내 관물대에 있는 다양한 커피 브랜드들을 보고 팀장님이 커피를 타달라고 한 적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커피를 타드리면 "김바리스타, 커피 맛 좋은데"라는 칭찬도 듣곤 했다.


그때부터 커피에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마신 커피는 사실 인스턴트 커피에 불과했기에, 직접 좋은 원두를 구별하는 법도 배워보고 싶었고,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가 내린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그래서 휴가 나가서 커피 관련 서적까지 사들고 와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역시 책만 읽어서는 그 욕구를 해소할 수가 없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내리고 해봐야 알텐데... 신체적 자유가 워낙 제한되는 곳이다보니, 별 도리가 없어 '나중에 전역하면 본격적으로 커피 공부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인스턴트 커피에 만족해야했다.




(사진: 휴가 때 샀던 커피 책,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실제 해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그리고 전역한 지금, 이제 비로소 커피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질 기회가 왔다. 커피 공부를 하긴 해야하는데 카페 알바를 하면서 배워볼까, 아니면 커피 학원을 다녀볼까 계속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때마침 동네 문화센터에서 '홈바리스타' 과정을 연다고 해서, 오늘 낮에 냉큼 가서 신청하고 왔다. 주당 하루씩 3개월 동안 진행되는 과정인데, 수강료가 6만원이다. 자격증반이 아니고 취미반이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 커피에 관해서는 생초보니, 취미로라도 일단 커피의 세계를 접해볼 생각이다. 우선은 커피와 친해지는 것이 시작일테니. 그 다음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진: 홈바리스타 과정 등록 영수증)


어서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워서, 후임들에게 면회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직접 내린 커피를 나눠 마시면서 함께 군 생활하던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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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열정대학' 23기 신입생 입학신청을 완료했다.


열정대학이란 기존의 대학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청년 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소셜벤처기업으로, 일종의 '공존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기존 학교의 커리큘럼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를 대안학교라고 하는데, 열정대학은 기존 대학의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대학의 교육에서 부족한 '진로교육' 부분을 중점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설립하였기에, '서로 도와 함께 존재한다는 뜻'으로 공존(共存)학교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열정대학에서는 전문 교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 누구나가 강사가 되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하는 구조라고 한다. 내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 그 버킷리스트를 토대로 과목을 개설하고, 그 과목을 듣기를 희망하는 다른 수강생들과 한 팀을 이루어,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인데, '기존 대학에서 배울 수 없었던, 내가 하고픈 모든 일들이 과목이 되는 학교'라는 슬로건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진: 열정대학 소개 - 출처: 열정대학(http://passioncollege.com/))


여하간 열정대학을 처음 알게 된 건, 전역하기 얼마 전의 일이다. 당시 말년 병장이었던 나는, 전역을 앞두고 한창 나가서 무슨 일을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군 PC방)에서 일자리나 대외활동 정보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열정대학'이라는 이름을 보고, 흥미가 생겨 홈페이지에 들어가 관련 정보들을 읽다보니 전역하면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차 때 아예 열정대학 입학설명회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입학설명회를 다녀온 직후에 오히려 고민이 더 깊어졌다. 20만원이라는 등록금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대외활동들은 대부분, 나의 재능(글쓰기)을 기부하고 그 댓가로 원고료를 받아 챙기는 활동들이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오히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용이 말년 병장이었던 내게는 참 부담스러운 금액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더욱이 등록금 뿐만 아니라 세부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추가 비용이 또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부대 복귀해서도 동기들에게까지 상담을 구할 정도로 계속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결심을 굳혔다. 그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1. 기존 열정대학 수강생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

2. 내가 여기서 뭐 하나라도 건진다면(사람, 일, 취미, 적성 등) 이 정도 비용은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거라는 생각

3. 전역하고서 마냥 노느니 뭐라도 해야한다는 압박감

4. '할까 말까 고민할 땐 해라'라는 열정대학의 슬로건



(사진: 열정대학 교육방향 - 출처: 열정대학(http://passioncollege.com/))


결국 전역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열정대학 측에 등록금을 지불하고 입학신청을 완료했다. 내가 등록한 학기는 16년도 3학기인데, 5월 2일부터 7월 26일까지 3개월 가까이 학기가 진행된다고 한다. 한 학기만으로 나의 적성을 찾고,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 학기 신청 시즌이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등록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열정대학은 나에게 큰 가치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나 역시, 고민 끝에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입학한 것이니만큼, 뭐라도 건져가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열심히 활동에 임할 것이다. 아직 개강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개강일이 하루 하루 손꼽아 기다려진다. 전역하고 당장 할 것도 없는데...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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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병장 가베치, 2016년 4월 13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사진: 7월 동기들과 전역 기념 단체사진)

 

그렇다. 내가 드디어 전역을 했다. 아직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말년이 되어 종종 나오던 휴가를 또 나온 마냥, 언제고 부대로 복귀를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전역하는 당일 새벽까지도 불침번 근무를 서고 나왔는데, 복도 벽에 걸린 전자시계에 찍힌 날짜 '4월 13일'을 보면서 같이 근무를 서던 부사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작년 1월에도 함께 근무를 서던 선임과 내년 4월이 과연 올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며 근무를 섰었는데, 벌써 그 선임은 전역했고 나도 날이 밝으면 전역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1년 9개월이란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욕도 많이 먹어보고, 서러움에 남몰래 눈물 흘리기도 했고, 또 평생 잊지 못할 인연들을 만나 즐거운 추억을 쌓기도 했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는데, 전역한 지금은 마치 그 시간들이 한바탕 꿈만 같다.

 

군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봤지만, 역시 남는 건 '사람'일 것이다. 미운 선임, 고운 선임도 만나고 반대로 미운 후임, 고운 후임도 만났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다 추억일 뿐이고, 군 생활하며 즐겁게 지냈던 선후임, 동기들과 앞으로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고 평생 우정을 잘 간직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내 군 생활의 기억들)

어찌되었건 1년 9개월의 군 생활은 결코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나의 軍 시절 약력]

 

2014년 7월 14일 - 논산 육군훈련소 입대 (29연대 1교육대 2중대 2소대 97번 훈련병)

2014년 8월 22일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전입 (발굴과 발굴4팀 이병)

2014년 8월 31일 - 14년도 후반기 유해발굴작전 출동 (경기 포천, 강원 고성, 충북 증평)

2014년 11월 1일 - 일병 진급

2014년 12월 23일 - 2014 국군 감동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2015년 3월 5일 - 15년도 전반기 유해발굴작전 출동 (경북 영천, 문경, 경기 포천, 강원 화천, 고성, 강릉)

2015년 6월 1일 - 상병 진급

2015년 8월 25일 - 15년도 국유단 독서 경연대회 최우수 독후감 수상

2015년 9월 4일 - 15년도 후반기 유해발굴작전 출동 (강원 철원)

2015년 10월 16일 - 발굴4팀 분대장 취임

2015년 11월 13일 - 2생활관 분대장 취임

2016년 1월 1일 - 병장 진급

2016년 2월 1일 - 분대장 이임, 말년 병장 취임(?)

2016년 4월 13일 - 육군 병장 만기 전역, 예비역 편입

 

 

(사진: 전역 기념 단체사진)

 

전역 당일날 당직사령이었던 행보관님이 "밖에 나가보면 군 생활이 그래도 제일 편했다는 걸 알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는데, 벌써부터 그 말에 공감이 간다. 이등병 때 읽은 <서경석의 병영일기>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전역을 하는 중대장이 병사인 서경석에게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는 곳이고, 나는 이제 전쟁을 하러 간다"는 말을 마지막 인사로 남긴 것이다.

 

이제 정말 전쟁을 치르러 사회에 나왔다. 다시 사회로 던져진다는 게 참 무섭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또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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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중대장님의 허락을 받아, 부대 안으로 목검(木劍)을 반입하여 검 기본기 수련에 매진해오고 있다. 


1년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휴가 나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칼을 잡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동안은 오로지 맨손무예 권법 수련만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입대 전에 배웠던 검술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제대 후에 완전 쌩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동안 수련해왔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검 수련에 대한 갈망은 심해졌다. (물론 덕분에 권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기본기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는 되었지만...


여하간 검 수련을 너무 하고 싶어, 이젠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병장의 파워로, 중대장님께 '목검 반입'을 요청했고, 중대장님도 '절대 후임에게 장난치거나 때리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반입을 허락해주셔서, 이제 부대 안에서 검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목검 반입이 승인되니 너무 기뻤고, 매일 매일 전투체육(체력단련) 시간만 기다려졌다.


그래서 매일 전투체육 시간만 되면 목검을 들고 막사 옥상에 올라가 신나게 휘둘러댔고, 확실히 손에 무언가를 잡고 휘두르는 맛(?)이 있어, 권법 수련을 할 때보다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수련하지 못했던 기본기(들어베기, 갈겨베기, 허리베기, 걸쳐베기)부터 해서, 각종 검법들(본국검, 제독검, 쌍수도, 왜검)을 열심히 땀 흘리며 수련했다.


그동안 수련을 하고 싶어도 못 해왔기에, 수련에 대한 욕구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입대 전보다도 더 열심히 수련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매일 혼자서 수련하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으로부터 정기적인 교정을 받지 못하고, 매일 독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의문점들이 켜켜이 쌓여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당장 수련에 대한 욕구에 불타오르고 있는데, 이 의문점들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괜히 그릇된 자세로 수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의문점들은 휴가를 이용해 사부님께 여쭤볼 요량으로, 매일 매일 텍스트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 그 의문점들은 24개까지 늘어났다)


편으로, 뭔가 대달한 깨달음을 얻은 마냥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 없이 허공에 칼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베기의 느낌이 달라진 것이다. 순간 뭔가 득도라도 한 느낌마저 들어 묘한 전율까지 일었다. 그래서 그날은 삘(?)이 붙어 계속 베기를 했다. 진짜 손바닥에 피물집이 잡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서 계속 휘둘러대다가 나중에서야 손을 들여다보니 피물집이 잡혀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느낌을 사부님한테 보여드리고, 과연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교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길이 맞다면 몰라도, 틀린 길이라면 내 자세가 완전히 엉망으로 뒤틀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들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해서 이미 뭐라도 된 마냥 설레고 흥분한 상태였다. '어서 이걸 사부님께 보여드려서 사부님을 깜짝 놀래켜드려야겠다', '사부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다'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나는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 것이다. 그게 잘못된 길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때마침 평소 무술에 대해 좋은 격언을 자주 올려주시는 <한국형의권연구회> 형의권사님의 블로그에서 새로 올라온 글을 하나 읽다가, 그 글이 내게 해당되는 글이라 그러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긴 했다. (해당 글 링크: http://blog.naver.com/k_rabbit/220618298924)


그리고 마침내 지난 휴가 때 설레는 마음으로 전수관을 찾아가 사부님 앞에서 베기를 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칼 수련을 전혀 안 하다가 오래간만에 칼을 잡고 베기를 했던 한 달 전보다 자세가 더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오,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엔 사부님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라며 아예 수련을 중단시켰다.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감도 오질 않아 답답했다. 사부님께 그간의 경과를 설명드리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교정 받지 않고 혼자 판단하게 되면 그게 결국 사도(邪道: 그릇된 길)로 빠지는 것"이라며 주의를 주셨다. 나로서는 '설마...'했던 일이 진짜가 된 것이었다.


결국 사부님은 빠르게 베는 것도 중단시키고,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베면서 '베려하지 말고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하셨다. 당분간은 절대 칼을 빠르게 휘두르지 말라고 해서, 체념하고 지금은 계속 천천히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오른 어깨가 계속 뚜둑거리는 것도, 이걸 통해 교정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예전에는 그냥 어깨가 덜 풀려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막 휘둘렀는데, 잘못하면 어깨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교정을 하는 중이다.


아무튼 지난 번 휴가 때의 교정을 통해 또 한 번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뭔가 혼자서 득도한 마음으로 설레여 하다가 그게 잘못된 길이란 걸 깨닫게 되니 날개가 꺾인 새마냥 기운도 빠지고, 심지어 우울한 마음까지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한다. 무려 1년 6개월이란 시간을 칼을 놓고 살았다. 그런데 단 2주란 시간 동안 혼자서 열심히 휘둘렀다고 무슨 고수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또한 무예란 사부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이라면 평생 교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어차피 평생 무예 수련할 건데, 이런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스스로 누누이 다짐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휴가를 나왔고, 며칠 뒤에 전수관에 가서 사부님께 교정을 받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진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딱히 한 것도 없어서 진전이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번 일을 통해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되새겼다. 군 생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한창 어리바리해서 힘들었던 이등병 때, "조급해하지 말라"던 간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군 생활이든, 무예든, 인생이든... 결국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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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6년 3월 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1. 오늘부로 군 생활 93% 찍음. 총 복무기간 639일(1년 9개월) 중 596일(1년 7개월 16일)을 복무했고, 남은 복무기간은 43일(1개월 12일)이 되겠다.

이등병 때 만날 달력 보면서 하루 하루 날짜 지우는 재미로 살았는데, 일병 꺾이고서부터 어느 순간 날짜 지우는 취미를 잃어버렸다. 날짜 세는 게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건지, 그냥 귀찮아서 그랬던 건지... 이제는 굳이 안 세고 싶어도 동기, 후임들이 알아서 며칠 남았다고 알려준다. 100일까지는 참 더럽게 시간이 안 가더니, 두 자리로 깨진 뒤로는 시간이 쭉쭉 가는 느낌이다.

이번에 나온 휴가를 포함해 남은 휴가가 24일이니 사실상 실질적인 군 복무기간은 한 달도 안 남았다. 어느 덧 전역을 바라보게 되는 짬이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2. 오래간만에 아파트 옥상에서 저녁 운동을 했는데, 옥상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내는 1년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닥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입대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몇몇 고층 빌딩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밤하늘에 뜬 별들이며 야경들이 입대 전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던 그때의 정경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과, 서울 시내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내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았다. 군 생활 1년 9개월은 내 인생에 있어 '일시정지'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남들은 그 시간 동안 거듭 성장해왔는데, 나는 그저 1년 9개월 동안 일시정지했다가 전역 후에 다시 2014년 7월 13일. 입대 전 원점의 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닐까.

3. 요즘은 故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입대 전 이등병의 편지를 자주 들었는데, 그때는 입대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마냥 우울하게만 들렸더랬다. 음악이나 가사 자체도 굉장히 우울하지 않던가.

그러다 휴가 나오기 전날인 엊그제 밤에, 침낭 속에 들어가 CD플레이어로 '이등병의 편지'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음악이 그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특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생)이여'라는 구절... 이 구절이 가슴에 콕콕 박혀온다.

예전에는 이 곡이 입대를 앞둔 청춘들을 위로해주는 곡으로만 생각했는데, 사실 이 곡의 진짜 의미는 전역할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 게 아닐까 싶다. 전역 후의 삶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는 말년에게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고 말해주는... 말년을 위한 위로와 희망의 노래가 아닐는지.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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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6년 2월 26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1. '다나까', '압존법' 폐지. 이제 군대에서 선임한테, 간부한테 '요'자 써도 된다네요. 진작에 이러길 바랐는데, 막상 후임이 나한테 요자를 쓰면 어색하기도 하고 기분이 참 이상할 듯...? 나부터 간부한테 요자를 쓸 수 있을지.

2. 사지방 컴퓨터도 완전 새삥으로 교체. 정말 빠르다. 근데 어차피 전역하면 집에서 실컷 할텐데. 별 감흥은 없다.

전역하기 전에 참 많은 변화를 겪는구나.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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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6년 2월 20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월요일부터 휴가를 나와 내일 복귀를 앞두고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 간의 휴가 기간 동안 푹 쉬고 싶었는데 뭔가 몸은 쉬어도 마음에는 끊임없이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다.

이제 슬슬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바깥에 나가기가 왜 이리도 두려운 것일까. 대인관계도 어렵고 장래 진로도 어둡고 막막하다.

이번 휴가 중 일부러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갖고 싶어서 일부러 주위에 휴가 나왔다고 알리지도 않고, 만남 약속을 잡지도 않았다. 불가피한 이유로 마주치게 된 사람들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어울리지 않는 쑥스러움을 타며 말을 아꼈다. 특히 초면인 사람들을 한꺼번에 여럿이 만나는 게 제일 큰 스트레스였다.

입대 전에도 사람 대하는 게 서툴렀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고는 있으나, 군 생활을 하며 마주치는 얼굴들이 굉장히 한정적이다보니 그 서투름이 더욱 심화된 것 같아 참 걱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로 걱정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입대 전까지만해도 가장 큰 걱정은 군대 문제였는데 막상 군 복무를 마칠 때가 되니 이젠 취업이라는 더 거대하고 막막한 현실이 앞을 가로 막고 있으니...

긴긴 휴가 기간 동안 외로운 심사를 달래려고 사방팔방 열심히 돌아다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열심히 가져보았지만 우울한 심사는 쉽게 달래지지가 않는 것 같다. 그냥 하루 빨리 복귀해서 쉬고 싶은 마음 뿐. 쉬러 나온 건데 전혀 쉬지 못하는 느낌이니 참...

원래 말년엔 다 이런건지 군대 다녀온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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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6년 2월 9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근황 겸 푸념>

중대장님의 배려로 지난 1월 외박 때 목검(木劍)을 반입하여 요즘은 검술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매일 같이 막사 옥상에 올라가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취해 신나게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리고 있다. 입대한 이후로 얼마만에 칼을 잡아보는 건지,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마냥 참 반갑다.

그러고보면 칼이란 참 정직한 벗인 것 같다. 내 심사가 혼란스러우면 칼의 길도 곧게 내려가지 않는다. 집중을 하면 비로소 길이 제대로 잡혀 내려간다. 하지만 요즘 휘두르는 내 칼은 늘 곧게 내려가질 않는다. 수련이 부족한 탓일까, 내 마음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아서일까. 여하간 이 목검이 현재로썬 유일하게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이나 다름 없다.

요즘 들어 예전보다 더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다. 이등병 때 잠깐 탔던 외로움보다 더 쓸쓸한 느낌이랄까. 분대장을 떼고 난 뒤로, '말년'이라는 이름 아래 아예 기존 팀 생활관을 떠나 다른 말년 병장들과 독립 생활관에서 지내다보니 내 스스로가 뭔가 '퇴물'이 되어버린 느낌이 종종 든다. 찾아오는 후임들도 없고, 내가 해야 할 일도 없다.

말년의 자유를 즐기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밖에 나가서 뭘 해야할지 막막함에 몸은 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쓸쓸하고 불안하다. 특히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취업, 합격 소식 등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밖에 나가서도 맘 편히 칼이나 휘두르며 여유 있게 살고 싶은데, 가진 것도 없고, 뚜렷한 꿈도 없으니... 이젠 진짜 먹고 살 걱정을 해야할 때라 전역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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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6년 1월 30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우리 부대에도 병 수신 전용 핸드폰이 들어왔어요. 심플한 디자인의 폴더폰인데, 생활관별로 1대씩 비치됐네요. 전역하기 전에 병사 핸드폰이 들어오는 것도 보고...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근데 이게 수신 전용이라 전화를 받는 것만 되고, 문자도 저장되어 있는 상용문자(ex. 예, 그렇습니다 / 휴가 복귀했습니다 / 훈련 중입니다 등등...)만 답장으로 보낼 수 있어서 문자 톡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보내주시는 문자는 자유롭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외 게임, 카메라 등등 요즘 핸드폰에 기본적으로 있는 모든 기능이 없어요. (카메라가 달려있긴 한데 촬영 버튼이 없음;) 진짜 전화랑 문자만 됩니다. 처음에 핸드폰 들어왔을 때는 다들 신기해서 너나 할 것 없이 만져보겠다고 하더니만은 기능이 별로 없으니 생활관 구석에 내팽개쳐두고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네요.

그리고 이조차도 개인정비시간에만 사용 가능하고, 일과 시간하고 점호 이후로는 행정반에 반납해야해서 그때 전화하시면 엄청난 민폐랍니다. 22시 이후로 전화하시면 저희가 당직사령한테 욕 먹을지도 몰라요.

말년에 핸드폰으로 전화 올 일이 있기는 할까 싶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연락처 남겨드립니다. 안부 궁금하신 분들은 가끔 연락주셔요.

연락처: 010-8054-5665

(주말엔 07:30~21:30 통화가능)
(평일엔 07:30~09:00 / 11:30~13:00 / 18:00~21:30 통화가능)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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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6년 1월 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드디어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내게는 '전역의 해'이기에, 더욱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사실 지난 2015년 한 해는, 그동안 형식적인 수식어로 항상 따라붙던 '다사다난했던'이란 말이 참으로 실감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내 자신, 막내에서부터 최고 선임 분대장까지 급격한 서열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후임들을 받았으며, 그 후임들과 또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썰을 풀자면 한도 끝도 없고, 여기서 언급할 일도 아니라고 판단되기에, 그저 지난 한 해, 내 자신도 무척 힘들었고, 내 후임들은 나보다도 더욱 마음 고생을 많이 했으리라는 말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여하간 이제 모든 일들은 2015년 12월 31일부로 묻어두고, 2016년 새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해야겠다.

아무튼 오늘부로, 드디어 軍 5대 장성 중 하나라는 '병장'으로 진급했다!!! 꼭 1년 전인, 지난 1월 1일에도 사지방에서 새해를 맞는 소감을 페북에 남기며, "새해 첫 날 아침부터 X휴지나 치우는 암울한 현실 OTL"이라며 절규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루 하루 전역 날짜나 바라보는 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반드시 돌아간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오를대로 올라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권력의 최정점에까지 올라와봤으니,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년'이 되어야 할 준비를 할 때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군필자들이나 진짜 말년들은 비웃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도 병장이라고는 해도, 진짜 말년이 되기엔 아직 시간도 한참 남았거니와, 내 자신도 밑의 애들을 이끌고 좀 더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남아있기에, 말년이란 말을 언급하기가 껄끄럽다. 그러나 벌써 내가 물러나기를 바라는 이도 있는 것 같고, 자꾸 견장에 집착해봐야 알량한 권력에 대한 내 욕심만 확인하는 꼴인 것 같아서 이제는 물러나는 법도 배워둘 생각이다. 아무쪼록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겠다.

모쪼록 2016년에는 이제 사회인이 되어 여러분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조만간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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