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평소부터 봉하마을은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거리가 워낙 멀고 교통이 불편해 마음 먹고 가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다 이번에 출발 3일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술집 '관악바보주막'에서 단체버스로 당일치기 방문을 한다기에 충동적으로 신청해서 다녀왔습니다.



봉하마을이 워낙 멀기에 하루 안에 다 보고 돌아오려면 새벽같이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발장소인 신림역으로 향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벌써 점심 때더군요. 한반도가 넓다는 걸 새삼 또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대통령의 집'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 머물렀던 집입니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집"이라는 유지에 따라 지난 5월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됐습니다.



예전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집을 일컬어 '아방궁'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은 바 있지요.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의 집인데 일반 주택보다는 호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꼼꼼하게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대통령의 집은 아방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방궁은커녕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집 한 채만 있더군요. 다만 이 집엔 '철학'이 있다는 것이 여느 집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집은 흙,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설계됐다고 합니다. 또 주변 산세와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립니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계속 밖으로 나오게끔 설계가 됐다고도 합니다. 이유인즉슨,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안에만 꽁꽁 틀어박혀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계속 밖에 나와서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표어가 액자에 걸려있습니다. 그 아래 웬 낙서가 있길래 의아했는데, 손녀가 한 낙서라고 합니다. 뭔가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서 뭉클했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휴식을 취하던 안채(거실)를 지나면 서재가 나옵니다. 서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참모들과 함께 마을 생태계 복원과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총 919권이라고 합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들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 다니는 입장에서 우리 출판사 책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없더군요. 아쉬워라...


노 전 대통령은 하루에 책을 5~6권씩 번갈아가며 읽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매우 비슷한 스타일인데요, 그만큼 지적 욕구가 왕성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퇴임 후 그가 남긴 육필 원고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가 가진 지식의 원천이 모두 이 책들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책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나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이를 지도자로 세우게 되면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컨셉을 강조하던데, 앞으로도 책 읽는 사회 만들기에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대통령의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던" 유서 내용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 묘역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 새겨진 작은 너럭바위 하나만이 이곳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잠든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문구가 뭉클하더군요. 연신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게도 9년 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9년 5월 23일, 당시 고3이었던 저는 토요일이었음에도 모의고사를 보기 위해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졸중', '노무현 전 대통령 음독' 등 노 전 대통령의 유고 소식이 확실치 않은 상태로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하굣길에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서거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더랬지요.


영결식이 있던 29일은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였습니다. 어느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영결식 생중계를 틀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이게 나라냐"면서 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이래저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인 듯 합니다.


묘역 참배 후에는 봉화산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봉화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굽어봤던 장소,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부엉이바위는 펜스와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관람객들은 아쉬운 마음을 이기지 못했던지 펜스를 넘어 부엉이바위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펜스로 막혀 있었지만 부엉이바위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바라본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참 가슴이 착잡해지더군요.



내일이면 벌써 그의 서거 9주기를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요. 무너진 민주주의를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촛불)으로 바로 세우는 모습을 보고 못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요. 그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실천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면서 "야! 기분 좋다!"고 외치지는 않았을까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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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드디어 역사적인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우리 대한민국 가수들로 구성된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보도된 선곡 리스트를 보니 대부분 남한 가요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남한의 최신 가요들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좀 더 회담의 성격에 맞는 의미 있는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남북한은 그동안 군사적 대치와 문화적 단절로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주민들의 동질성 회복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한때 한민족이었음을 상기시켜주는 노래를 이번 공연에서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대표적으로 독립군가가 있습니다.


독립군가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독립군들이 만주 벌판에서 일제와 맞서 싸울 때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 당시에는 남도 북도 없었습니다. 그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 하에 똘똘 뭉쳐 한 목소리로 군가를 부른 '한민족'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독립군가를 우리 예술단이 부른다면 서로의 역사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북측 영접단도 독립군가의 일종인 '용진가'를 연주한 바 있습니다. 이는 남과 북이 함께 일제와 맞서 싸웠던 역사를 되새기며 다시 하나로 나아가자는 뜻이었습니다.



아울러 이번 공연에서 독립군가가 공연된다면, 독립군가를 점점 잊어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도 의미 있는 역사교육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뜻을 청와대에 전달코자 국민청원을 올렸으니 동의하시는 분들은 적극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주변에도 널리 퍼뜨려주세요!


▶ 청원하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7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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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위협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삶, 국가무한책임은 어디로?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49&aid=0000132522&sid1=001


2007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부대다.


국유단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국가무한책임'을 완수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꽃다운 청춘을 불살라가며 희생한 모든 국가유공가자들은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묻힌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을 영구 지속사업으로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가무한책임의 범주에는 지금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생존 국가유공자들도 포함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가보훈처'라는 기구가 있어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국가유공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1연평해전에 참전해 우리 해군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댓가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잃은 한 참전용사가 편의점에서 콜라를 훔치다 적발됐다는 사연은 보훈처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물론 보훈처에서도 국가유공자를 보살피기 위해 연금을 지급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살 곳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거나 당장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폐지를 줍는 등 생계에 위협을 받는 국가유공자들의 이야기가 매년 들려오고 있으니, 과연 이들을 위한 보훈처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국가유공자를 위한 제도가 형식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보훈처가 미처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고위공직자 중 '적폐청산' 1호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전격 경질하고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겠다는 등 보훈사업에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제 그 의지에 걸맞는 실천이 필요할 때다.


2017년 6월 24일


역사독서모임 독사신론(讀史新論)

(http://facebook.com/suhistor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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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omn.kr/ne12


"귀하께서는 2017.5.25.(목) 10:00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되는 전직 대통령 뇌물죄 등 관련 사건의 방청자로 당첨되셨습니다."


지난 19일 저녁 날아온 한 통의 문자메시지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19일 오전 서초동 서울회생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 방청권 추첨에 응모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그러나 방청권 당첨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찾아갔지만 법원 앞은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의 기운'을 받은 것인지 7.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재판 방청권을 따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카톡이며 페이스북에 당첨 소식을 공유했더니 많은 지인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덧글과 함께 '좋아요' 수가 쭉쭉 올라갔다. 언젠가 <오마이뉴스>에서 뉴스게릴라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올렸을 때보다 더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다. 이게 정말 축하받을 일이 맞긴 한 건지 씁쓸하긴 했지만 어쨌든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내가 당첨된 건 5월 25일에 열리는 두 번째 재판 방청권이었다. 공교롭게도 온종일 수업이 몰려있는 날이었다. 평소 결석은커녕 지각조차 절대 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으나 이번 일만큼은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교수님들께 이메일로 사정을 설명하며 부득이하게 결석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교수님들 모두 "역사적인 현장에 가기로 한 결정을 존중한다"라면서 흔쾌히 이해해주셨다. 덕분에 법정으로 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포인트①] 재판 전 법정 안팎 풍경


마침내 5월 25일 아침이 밝았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방청권 배부에 참여하기 위해 일찌감치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로 향했다. 청사 입구에는 돌발 사태를 대비해 경찰 병력들이 배치돼 있었다. 지난 23일 재판 당시 박사모 회원들이 진을 치고 앉아 방청객들에게 시비를 건다는 말을 듣고 나름 긴장했으나 법원 앞은 조용했다. 


재판정이 위치한 서관 입구에서 "재판을 방청하게 해달라"는 한 할머니와 "사전에 당첨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며 막아서는 법원 직원들 간의 사소한 실랑이 정도가 고작이었다.


줄을 선 방청객들은 '5번 법정 출입구' 앞에서 신분증 검사와 몸 수색을 거쳐야만 했다. 한 차례 엄격한 심사를 받고 난 뒤에도 재판정이 있는 4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계단마다 직원들이 대기하며 방청권을 재차, 삼차 검사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재판이 열리는 417호 대법정에 들어섰다. 150석 규모의 법정은 생각보다 아담한 편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좌석은 72번. 좌석 배치는 무작위로 이뤄졌다. 앞에서 다섯 번째 줄이라 결코 좋은 자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앉아서 난생 처음 구경하는 법정 안 풍경을 열심히 눈에 담기 시작했다.


법정은 방청객들을 인터뷰하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한 언론사의 기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를 타깃으로 삼은 그 기자가 질문을 던져왔다. 조용히 지갑에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꺼내 건네니 그는 "사방에 기자들뿐이네요"라면서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인 유영하, 채명성, 이상철, 김상률 변호사 등 4명이 입장했다. 뒤이어 서울중앙지검 이원석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 등 검찰 측 검사 8명이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은 각자 준비한 서류를 읽으며 쑥덕쑥덕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았으나 거리가 멀어 알아들을 순 없었다.


[포인트②] 다소 여유로워진 박근혜


"피고인은 들어와서 피고인석에 앉기 바랍니다."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법관 3명이 입장하고 피고인의 입장을 주문하는 재판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청객들의 시선은 일제히 법정 서쪽 출입구에 쏠렸다. 경위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제히 방청석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청객들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꼴깍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만이 법정에 짙게 깔렸다.


무거운 정적을 깬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또각또각' 소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명확하게 들려오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마침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자신의 자리인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거침없는 발걸음이었다. 변호인들과 가벼운 웃음으로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은 그는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재판관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갈음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허공과 정면 그리고 자신의 변호인들에게만 향했다. 어쩌다 슬쩍 곁눈질을 할 법도 한데 그는 결코 우리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말수도 적었다. 공식적으로 그가 내뱉은 말은 오전 재판과 오후 재판 종료 당시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대한 대답뿐이었다. 그마저도 "자세한 건 추후에 말씀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3일 첫 재판과는 달리 그는 다소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검찰 측의 서증조사(검찰이 제시한 증거들 가운데 박 전 대통령 측의 동의를 얻어 채택된 증거들을 검찰 측이 법정에서 다시 설명하는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유 변호사와 간간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모니터 속 증인들의 신문조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적기도 했고, 고개를 가로젓거나 끄덕이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물론 그의 소통은 변호인들에게만 국한됐다.


[포인트③] 검찰과 변호인의 팽팽한 기싸움


재판은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23일 첫 재판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 홀로 참석한 두 번째 재판은 검찰 측의 서증조사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10만 쪽이 넘는 방대한 수사기록을 모두 검토하기도 전에 조사를 강행하는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재판을 끌 여유가 없다"며 재판부가 기각을 했음에도 변호인들의 태클(?)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주신문을 특검이 먼저 하는지 검찰이 먼저 하는지"의 절차 문제를 두고 또다시 딴죽을 걸었다. 보다 못한 검찰 측도 칼을 빼들었다. 검찰 측은 "절차 문제로 45분 이상을 끌어 실체를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변호인단에 일침을 날렸다.


결국 재판 시작 1시간 만에 검찰 측의 서증조사가 시작됐다. 검찰 측 검사들은 두툼한 서류뭉치들을 꺼내 카메라에 비춰가며 증인들의 신문조서 중 요지만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은 법정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방청객들에도 공개됐다.


이날 검찰 측은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 혐의 사건의 공판 기록을 중심으로 관련 증인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고영태, 차은택,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등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주요 혐의자들 뿐만 아니라 전경련, 청와대, 대기업 관계자 등 증인 수십여 명의 법정 진술이 고스란히 공개됐다.


그러나 서증조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인들이 제2차 공세를 시작했다. "검찰이 검찰 측 신문만 공개하고 반대 신문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유 변호사는 "방청객에 기자들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검찰 측 의견만 언론 보도로 나갈 것 아니냐"라면서 "검찰 수사도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 그에 맞춰 따라가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이런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에도 "기록이 너무 방대해서 전부 낭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기각했다. 이에 변호인 측이 "재판을 진행하는 데 시간에 쫓겨서 한다는 건 어폐가 있다"라면서 여전히 굴복할 수 없다는 태도로 맞서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검사들은 꿋꿋하게 신문조서를 읽어 내려갔다. 검사들과 변호인들의 팽팽한 기 싸움 사이에서 재판관은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양 측이 서로 잘 합의하라"고 다독였다.


[포인트④] 졸고, 깨우고... 다이내믹했던 재판정 풍경


이날 검찰 측 책상에는 서류로 만들어진 탑이 많이 쌓여 있었다. 서증조사 때 낭독하기 위한 증인 신문조서들이었다. 오전 재판 당시 조서를 낭독하던 검사가 세 번째 서류뭉치를 꺼내들자 방청석에서는 '어휴' 하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점심식사 후 오후 2시 10분부터 재개된 오후 재판에서는 '황금빛 보따리'가 등장했다. 주섬주섬 풀어헤친 보따리 속에서는 새로운 서류뭉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휴정한 사이 그새 보충해온 자료들인 듯했다. 내심 '검찰이 단단히 벼르고 왔구나' 혀를 내둘렀다. 


오후 재판은 변호인 측의 요청에 의해 15분 휴정한 것을 제외하면 검찰 측의 '마라톤 조서 낭독'으로 진행됐다. 목소리톤의 변화 없이 나긋나긋 읊어대는 조서들은 자장가나 다름없었다. 어렵고 낯선 법률용어들로 점철된 데다가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난 직후였던지라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많은 방청객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나 자고 싶다고 마음대로 잘 수도 없는 게 법정이다. 매의 눈초리로 방청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던 경위들은 졸고 있는 방청객들을 흔들어 깨웠다. 졸음을 깨기 위해 다리를 꼬아보기도 하고, 휴대전화를 열어 뉴스를 보기도 했지만, 한 번 쏟아진 졸음을 극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견디다 못해 중간에 퇴정하는 방청객들도 있었다. 재판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군데군데 빈 자리가 많이 보였다.


오후 5시 20분. 마침내 검사가 설명을 마치자 방청석에서 안도의 한숨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설명이 길어지며 잦아들었던 기자들의 타자 소리도 변호인 측의 '간이의견' 발언과 함께 다시 활기를 찾았다. 유 변호사는 검찰 측 설명에 대해 차분히 반박하며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정의롭게 수사했다고 믿지만 증거를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라며 의견을 갈무리했다.


이에 김 부장판사가 "기록을 다 파악하고 계신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자 방청객들은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의 종료 선언과 함께 '7시간 50분'만인 오후 5시 50분에 마무리됐다.


[포인트 ⑤] 당당했던 표정에서 굳은 표정으로


이날 나는 법정을 떠나는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은 몹시 초췌해 보였고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두 눈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을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가 18대 대통령에 취임하던 해, 나는 통일부와 국가보훈처에서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취임식부터 시작해서 각종 정부 기념식에 참석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글로 풀어내야만 했던 나는 그의 당당했던 표정을 여전히 기억한다.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본 그는 늘 당당했고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법정에서 다시 마주한 그의 표정에선 예의 그 당당함은 사라진 채 초췌함과 한 서린 눈빛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쫓겨난 독재자들이 모두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 그는 그렇게 마치 오욕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표정을 통해 말해주겠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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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 후기 기사 링크: http://omn.kr/nca0


오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이 예정된 가운데, 지난 19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서초동 서울회생법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방청권 추첨이 이뤄졌습니다.


마침 공강이기도 하고 저 역시 해당 재판에 무척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법원으로 갔습니다. 처음 가는 법원이었는데 참 넓더군요. 추첨장소가 있는 회생법원까지 걷는 동안 길이 한산하기에 생각보다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막상 추첨장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취재하러 온 각 언론사 취재진들과 전국 방방곡곡에서 응모하러 온 시민들로 복도가 장사진을 이루고 있더군요. 인원을 세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니 525명이 응모했다고 합니다. 150석 중 취재진 등을 비롯한 고정석을 제외하고 추첨으로 시민들에게 배부한 좌석 68석인데 7.7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합니다.



긴 줄을 보고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더운데 몇 시간 동안 대기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생각보다 줄이 금방 금방 줄어듭니다. 응모 절차가 복잡하지도 않고 직원들도 일처리가 빨라서 줄은 쭉쭉 빠져서 응모를 마치기까지 40분 정도밖에 안 걸린 것 같습니다. 


23일 재판 방청권과 25일 재판 방청권이 있는데 두 장을 동시에 응모할 수 있었습니다. 신분증 확인 후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응모함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추첨은 11시 15분에 시작되는데 응모하고 귀가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당첨되면 홈페이지에도 공고하고 문자메시지로도 통보하거든요. 그렇지만 끝까지 현장에 남아 추첨 결과를 기다리는 시민들도 많더군요.


저는 뭐 나중에 통보받아도 될텐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어서 응모하자마자 오마이뉴스에 현장 기사 하나 송고하고 곧바로 법원을 나왔습니다. 긴 줄을 보고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있던 터라, 그닥 신경을 안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늦게쯤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25일 두 번째 재판 방청에 당첨됐다는 겁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바라 더 놀랍고 기뻤던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지인들이 엄청 부러워하고 또 축하해주더군요. 사실 뭐 대단한 경사도 아니고... 뇌물수수죄로 잡혀들어간 전직 대통령 재판 보러가는 것 뿐인데... 이걸 기뻐해야하는 건지 슬퍼해야하는 건지.. 영 씁쓸합니다.



아무튼 첫 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이 공강이라, 이날 되기를 바랐는데 두 번째 재판 방청권에 당첨됐습니다. 이날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강의가 있는 날이라 조금 걸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건 고민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미리 교수님들께 메일로 양해구하고 재판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 


촬영도 녹취도 안된다고 하니 아쉬운데 (설마 필기도 안되는 건 아니겠죠?)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해서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의 박근혜 재판 방청기' 라는 생생한 후일담을 한 번 남겨볼까 합니다.


PS. 그러고보니 통일부, 국가보훈처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도 가고, 정부기념식에서 박 대통령 연설하는 것도 열심히 취재하러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수의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볼 생각하니 참 착잡한 심정일 따름입니다.


PS. 사람이 태어나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경찰서, 병원, 법원이라고 하는데 박근혜 덕분에 난생 처음 법원도 가보게 되는군요. 이참에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은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그러나 이런 가르침, 한 번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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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변은 없었다. '어대문'은 사실이 됐다. 아직 최종 확정이 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개표 상황만 놓고 보면 그는 내일 무사히 청와대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에서 나는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한 그에게 표를 선사했고, 결국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크게 낙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나는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나의 뜻이 있어 내 소신대로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다. 물론 그 전략도 기본적으로 어대문이 될 거라 확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홍준표와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될 거라 생각했던 그가 대통령이 됐으니 안심이 된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과연 옳은 걸까 회의적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 바뀌면 많은 게 바뀌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근 10년 만에 이뤄진 정권교체는 고무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태로 치러진 보궐선거로 당선된만큼 그에게는 당선의 기쁨보다는 앞으로의 과제 수행을 위한 막중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지난 정권의 적폐를 모두 청산하고 광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촛불과 태극기의 민심을 하나로 봉합하는 일이 시급하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그의 당선을 축하하며 그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에서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낙선했을 당시 시민들이 그에게 헌정했던 광고영상을 그에게 다시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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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습니다.

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사실 탄핵소추안 발의부터 헌법재판소의 인용에 따른 파면, 그리고 구속까지... 모든 게 순리대로 흐른 것일 뿐입니다. 다들 예상했던 부분들이고요. 그럼에도 가슴이 아픕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능하고 부패한 후대 대통령에 의해 어떻게 무너져버렸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한국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인 셈이죠.

박근혜가 구속되면서 오늘 아침 가수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가 음원차트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하여간 네티즌들의 재치란. 그 노래보다는 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어 공유합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찾은 영상인데, 18대 대선 직전에 제작된 노래 같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의 일이라 아마 누가 됐든 다음 대통령만큼은 부정축재 및 측근비리가 없는 훌륭한 지도자이기를 바라며 쓰여진 곡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염원이 무색하게도, 끝내 우리는 또 한 명의 '범죄자'로 전락한 대통령을 보고야 말았네요. 역대 대통령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몇 없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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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신청을 완료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에 국민참여경선제를 채택하면서 대선후보를 민주당 당원 뿐만 아니라 당적을 가지지 않은 모든 국민들이 선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투표권을 가진 만 19세 이상 전 국민이 선거인단에 참여해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출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민주당 권리당원이지만 한편으로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인단 참여를 신청했습니다. 사실 대선이 아니라 경선에서부터 우리 손으로 대선후보를 뽑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참여경선제 채택으로 인해 새누리 잔당이나 바른정당 등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들이 '몰아주기'를 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깨어있는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합리적인 투표를 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경선에서부터 보다 많은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검증된 후보를 선출해야합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인터넷, 서류, ARS로 신청을 받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하면 1분도 안 걸립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몰려 서버 폭주로 접수가 지연되고 있다고 하니 여유 있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거인단 신청 링크: http://www.minjoo2017.kr/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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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대통령의 시간

저자: 이명박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출판년도: 2015년 2월

페이지: 800쪽

가격: 28,000원



[책 정보]


MB 정부가 걸어간 5년의 기록


2013년 2월 대한민국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다. 그는 퇴임 후 그해 5월부터 회고록 집필에 착수하여 1년 10개월의 집필 기간을 거쳐 퇴임 후 2년만에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을 출간한다. 이 책은 정책 위주의 회고록이다. 쓰나미처럼 덮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생각과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했는지, 왜 한 미 관계를 복원해야 했으며 어떻게 G20 정상회의에 동참하게 됐고 서울 회의를 유치할 수 있었는지, 대북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기 위한 철학과 대처방안은 물론 중국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4대강 살리기와 녹색성장, 세종시 문제에 대한 철학과 추진 배경, 추진 과정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에피소드나 뒷이야기도 많이 찾아내 수록했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소감]


저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생각보다 호감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제 사관이나 정치적 성향만 놓고 보면 당연히 반MB를 외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테지요. 


글쎄요... 저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저는 새가 양 날개가 있어야 균형을 잡으며 날아갈 수 있듯이, 정치 역시 진보와 보수 양 날개가 균형있게 공존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잘한 건 잘했다고 인정해야하고, 못한 건 못했다고 비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또한 정책만 놓고 비난해햐지,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신들의 세력을 불리기 위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도 경계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동안 잘 몰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MB를 외치며 욕을 해도, 저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광우병 사태'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뛰어나갔고, 저희 학교 학생들도 상당히 많이 뛰쳐나갔더랬습니다. 선생님들도 시위에 나간 학생들을 격려했고요. 그러나 저는 시위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나갈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엔 안 나갔어요.


군에 있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MB정부 5년을 회고하는 회고록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잘 몰랐으니, 이제라도 한 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사놓고 제대할 때까지 집 서고에만 처박아뒀다가, 이제서야 책을 읽게 되었네요.


800쪽 가까이 되는 두꺼운 양장이지만, 생각보다 빨리 읽었습니다. 회고록인지라 내용이 그렇게 무겁지도 않고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현대그룹 CEO 시절, 서울시장 시절 그리고 17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삶도 간략하게 실려있습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시점에서부터는 경제, 정치, 외교, 문화, 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MB 정부가 실시했던 정책들 그리고 그 정책들을 실시하게 된 배경과, 결과,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온전히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특히 이 대통령이 CEO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했기 때문인지 경제 정책에 대한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숫자에 매우 약한 문돌이인지라 경제 파트는 이해하기 버거운 점이 있긴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해가 안 가도 가볍게 읽으며 넘어갔습니다.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변명'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자화자찬'이라는 느낌도 들긴 했습니다. 회고록인데다가 자기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니, 자기 욕을 하는 게 말이 안되긴 하지요. 이 대통령도 후기에 "자화자찬으로 비춰질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하고 있네요.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거기에 MB 정권의 고충과 정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임 대통령과 전 정권을 교묘하게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 조금 거슬리긴 했습니다. 개인의 주장을 반영한 회고록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이해해야할까요? 회고록을 작성한 이 대통령 입장에선 '사실이 그런데 어쩌겠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이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는지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모든 정책이 완벽할 수 없었고, 국민들로부터 항상 지지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퇴임한 직후인 지금 와서는 오히려 현직 대통령보다 차라리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보수정권을 대표하는 이 대통령이나 진보정권을 대표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라 위해 일한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결국 역사가 판단해 줄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음엔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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