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읽고 있던 <김영삼 회고록> 2권 정독을 완료했다.


올해 초부터 읽은 책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었더랬다. 마침 읽고 있던 <김영삼 회고록>이 거의 종반부에 이른 상태라 좀만 스피디하게 읽으면 리스트에 한 권이라도 더 올릴 수 있겠다 싶어 조금 급하게 읽었다. 사실 내일 읽어도 상관 없는 건데, 그냥 나의 결벽증적인 증상 때문이랄까.


덕분에 63권으로 마무리될 뻔 했던, 올해 읽은 책 리스트는 64권으로 결산됐다. 당초 100권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고작 반 조금 넘은 수치다. 어디 갈 때면 항상 옆구리에 책 한 권 끼고서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도 100권 채우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런 거 보면 속독하는 양반들 참 대단하고 부럽다.


물론 많이 읽는 게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느리게 읽더라도 깊이 있게 읽을 수만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싶다. 하지만 워낙 책 욕심이 많은 성격인지라, 책장에 쌓여만 가는 책들을 보면 서둘러 읽고 빨리 빨리 다른 책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래서 나는 속독을 지향하는 완독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아래는 올해 읽은 책을 정리한 것.


1. 거짓말이다

2.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 (2017.1.8)

3.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 (2017.1.12)

4. 서평 쓰는 법 (2017.1.15)

5. 박근혜의 권력 중독 (2017.1.19)

6. 커피가 죄가 되지 않는 101가지 이유 (2017.1.31)

7.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17.2.3)

8. 흐린 세상 맑은 말 (2017.2.6)

9. 정본소설 사임당 (2017.2.13)

10. 대한민국이 묻는다 (2017.2.20)

11. 밤이 선생이다 (2017.2.26)

12. 서른, 정치를 공부할 시간 (2017.3.6)

13. 이재명은 합니다 (2017.3.11)

14.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2017.3.19)

15. 라면을 끓이며 (2017.3.24)

16. 채식주의자 (2017.3.26)

17.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2017.4.2)

18. 독립정신 (2017.4.6)

19. 82년생 김지영 (2017.4.12)

20.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2017.4.17)

21. 전두환 회고록 1 (2017.4.30)

22. 페미니스트 모먼트 (2017.5.4)

23.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2017.5.10)

24. 보이차를 알면 건강이 보인다 (2017.5.10)

25. 위스키의 지구사 (2017.5.17)

26. 결혼불능세대 (2017.5.19)

27. 북한의 역사 1 (2017.5.21)

28. 대통령 없이 일하기 (2017.5.28)

29. 무예 인문학 (2017.6.1)

30. 쿨 레이디 (2017.6.2)

31. 북한의 역사 2 (2017.6.8)

32.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2017.6.14)

33.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2017.6.18)

34. 왕따의 정치학 (2017.6.24)

35.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2017.7.4)

36.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2017.7.11)

37.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2017.7.17)

38. 공터에서 (2017.7.20)

39. 너답게 살아갈 너에게 (2017.7.24)

40. 시골무사 이성계 (2017.7.28)

41. 지적 생활의 즐거움 (2017.8.3)

42. 덩케르크 (2017.8.15)

43. 서간도에 들꽃 피다 7 (2017.8.22)

44. 허형식 장군 (2017.8.30)

45. 정조와 정조 이후 (2017.9.13)

46. 프로불편러 일기 (2017.9.18)

47. 주진우의 이명박 추적기 (2017.9.22)

48. 조용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2017.9.23)

49. 상도동 그소설 (2017.9.26)

50. 송곳 1 (2017.10.2)

51. 송곳 2 (2017.10.3)

52. 송곳 3 (2017.10.3)

53. 문재인노믹스 (2017.10.5)

54. 아리랑 (2017.10.13)

55. 다행히 졸업 (2017.10.31)

56. 오래된 생각 (2017.11.2)

57. 문제는 검찰이다 (2017.11.5)

58.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들 (2017.11.8)

59.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17.11.30)

60. 굿바이 MB (2017.12.3)

61. 특종 1987 (2017.12.7)

62. 김영삼 회고록 1 (2017.12.17)

63. 조선과 중화 (2017.12.30)

64. 김영삼 회고록 2 (20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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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오마이뉴스>에서 보내주는 신간 서적들도 읽기 벅찬 탓에, 따로 책을 살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읽고 싶은 책들은 온라인 장바구니에 나날이 쌓여만 가더군요. 가끔씩 Yes24 홈페이지에 들락날락하며 "언제고 꼭 사주마" 다독이고 또 다독이면서 혹여나 품절 내지는 절판되지는 않을까 안부만 묻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이나 사볼까 하고 주문했습니다. 장바구니에 쌓인 책들을 모두 주문하려면 제 가진 재산을 다 털어야 할 형편이더군요. 그렇게까지 책을 살 정도로 금수저에 책바보는 아니라서, 10만원 어치만 골라 주문했습니다. 무슨 책을 먼저 골라야하나 참 행복한 고민인 듯 합니다. 물론 고르지 못한 책들도 장바구니에 있는 이상 읽고 싶은 책들이긴 마찬가지지요. 순위를 매긴다는 게 모순이긴 합니다. 그래서 구매해놓고도 함께 데려오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는 영 아쉬움이 남곤 합니다.


여하간 이번에 구매한 책들입니다. 제목들만 훑어봐도 대강 제 요즘 관심사가 어디에 꽂혀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트렌드이기도 하죠. 요즘처럼 자고 일어나면 매번 새로운 이슈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조금만 관심의 끈을 느슨히 하면 남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이 책들을 언제 다 읽느냐 그런 문제가 남았군요.



참고로 '굿바이 박근혜'는 Yes24에서 상품으로 끼워준 겁니다. 세상이 바뀌긴 했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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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부제: 오늘의 커피를 만드는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가 들려주는 커피와 인생

저자: 조원진

출판사: 따비

출판년도: 2016


<책 소개>


카페의 이름이 다헌이든 커피집이든 다방이든 어떠리.

그들에게 카페는 커피라는 종교를 섬기는 사원이며, 커피는 지옥 같은 세상살이를 견디게 하는 자유다.


커피 그 자체가 삶인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이 털어놓는 커피 인생


누군가에게 카페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우아한 돈벌이를 위한 밑천이다. 누군가에게 커피는 습관적으로 들이켜는 음료거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카페인이고, 누군가에게는 별다른 기술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여기, 커피가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을 마시거나 농담을 나누다가도 주제는 언제나 커피로 돌아오고, 카페의 생존을 걱정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한 잔의 커피를 더 맛있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다.


중학생 때부터 커피를 마셔온 저자가 꼽은 열아홉 카페의 바리스타와 로스터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카페를 운영하며 커피를 내어준다. 그들의 카페는 서로 개성도 다르고 그들이 내어주는 커피의 맛도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갖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커피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그저 즐기면 된다고. 다만, 그러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카페를 음악과 커피의 맛과 향으로, 그리고 정성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리 뷰>


요새 커피에 관심이 많아 구입하게 된 책. 출간된 지 2달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책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이론을 다룬 책은 아니다. 카페를 운영하며 커피를 만드는 이들, 즉 '바리스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직업으로서의 바리스타들의 삶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읽게 된 책이다. 커피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다양한 바리스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을 커피의 세계로 인도해 준 바리스타부터 시작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숨은 커피 명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스페셜티로 대표되는 커피 리브레의 대표 서필훈부터, 올드스쿨의 대명사이자 한국 카페의 원조 격인 학림다방의 이충렬 사장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곧 한국 커피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커피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대중들은 커피를 어떻게 받아들여왔는지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인터뷰하는 바리스타들에게 공통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커피를 내리는 데 영감을 주는 도구가 무엇이냐'고. 정말 신기하게도 커피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도구들은 별로 없다. 연필, 레코드판, 낡은 책상 등... 언뜻 봐서는 대체 커피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관해보이는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한국 커피의 대부인 바리스타 이정기는 '인문학'을 도구로 든다. 그는 젊은 시절 중국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평생을 송사(宋詞) 연구에 매진했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전공에 회의를 느끼고 커피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젊은 시절 매달렸던 인문학은 오히려 그의 강점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사고방식은 커피의 세계에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바리스타들이 추구하는 커피의 맛이나, 커피를 대하는 관점이나 철학 등 모든 부분에 있어 공통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각양각색의 철학을 가지고 커피를 내리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철학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것. 


여기서 맛있는 커피란,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보편타당의 맛을 의미한다. 아무리 케냐 AA의 고품질 원두로 내린 최상급 커피라고 할 지라도, 사람들이 거부한다면 맛있는 커피라고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스타들에게 넘어야 할 목표는 '믹스커피'란다. 믹스커피야말로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커피시장을 독점해왔는데, 그 이야기는 곧 믹스커피의 맛이 사람들의 입맛에 보편타당한 맛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리스타들은 믹스커피만큼이나 보편타당한 맛을 창출하기 위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카페의 주방 뒤에서 열심히 콩을 볶고 끊임없이 새로운 커피에 도전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맛있는 커피를 내리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커피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한 목적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연히 '카페의 생존' 문제도 걸려있다. '커피는 소통의 도구'라는 말이 맞긴 하지만, 몇몇 바리스타들은 "그 말은 대형 프렌차이즈 업계가 독점하고 있는 정글 같은 커피시장에서 살아남은 뒤에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직업으로서 바리스타를 선택한 이들에게 '커피는 소통의 도구'라는 말은 사실 배부른 소리일 터. 그래서 이 책에서는 카페의 생존을 고민하며 현실과 부분적으로 타협하해야하는 바리스타들의 고민과 삶의 애환도 주목한다.


그들의 공통점을 또 하나 들자면, 바리스타가 되기 전부터 이미 열정과 고집이 남달랐다는 점이다. 여기 열아홉 바리스타들은 대학 교수 자리를 제의받을 정도로 인문학을 오래 전공했거나, 그림 혹은 음악에 미친듯이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그 길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바리스타로 전환하긴 했지만, 바리스타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삶의 목표와 철학을 뚜렷하게 가지고 '열정적인 삶'을 살던 이들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언가에 미친 듯이 홀릴 정도로 고집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바리스타라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서도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리라. 결국 자신의 삶에 열정이 있고, 고집이 있는 사람은 어딜 가도 성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리스타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커피에조차 관심이 없는 이들일지라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들의 커피를 대하는 철학이나 자세 혹은 그들의 삶 그 자체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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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주문한 책들을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방금 전에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새로 주문했습니다. 기존에 산 책들을 항상 다 읽기도 전에, 자꾸 새 책을 사들이는 습관이 제 병폐이긴 합니다. 


하지만 책 주문을 앞두고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 책을 꼭 사서 읽어야 할 정도로 소장가치가 있는가', '언젠가 꼭 읽을 책인가' 등등... 몇 번의 자체문답을 거친 뒤에, 확신이 서면 구매를 하죠. 일단 사놓고 보면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는 심산으로요. (이런 마인드로 구매해놓고 여전히 읽지 않아, 먼지만 풀풀 날리는 책들이 꽤 많은 게 함정이지만요)



일단 '바리스타 자격증 2급 기본서'는 제가 지금 바리스타 자격증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문했습니다. 어제 부로 동네 문화센터에서 듣고 있는 홈바리스타 강좌가 모두 끝났는데, 강사 선생님께서 "필기 정도는 혼자 문제집 풀고 독학해도 충분히 딸 수 있다"면서 필기 시험만 독학으로 따두라고 권하시더군요. 그 다음에 실기반만 따로 수강하면, 바리스타 자격증 따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여름 동안 필기시험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주문했습니다.


'일본 검도의 역사'는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입니다. 눈여겨봤다가 좀 더 저렴하게 사려고 온라인 서점을 통해 주문했죠. 검도하면 역시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무시할 수 없는데, 생각보다 국내에는 일본 검도 관련 서적이 별로 없더라고요. 무예24기 중에서도 검술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검의 세계에 대해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는 제가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 서평 기사도 썼던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의 경우는 이미 읽은 책이지만, 따로 사진 않았더랬습니다. 책이 풀리자마자 오프라인 서점에서 읽었거든요. 이 책 역시 오프라인에서 사는 것보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는 게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그랬죠. 그래서 이미 읽은 책이지만,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기 때문에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돈 많은 독지가였다면, 이 책을 다량 구매해서 주위에 기증하고 싶은데, 그럴 여력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만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문해놓고 보니 책장에 아직까지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정말 많군요. 올해는 다른 일에 눈독들이지 말고, 서고에 있는 책들을 모두 독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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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이회영 평전

저자: 김삼웅

출판사: 책보세

출판년도: 2011년


우당 이회영(1867-1932)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내가 처음 우당 이회영을 알게 된 것은, 작년에 경술국치 100년 특집으로 방영했던 KBS 대하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솔직히 고3때나 재수 시절에나 한국근현대사를 수능 과목으로 선택해서 공부했었고, 특히 한국근대사를 중점적으로 공부한다고 하던 터에 우당 선생의 존함을 몰랐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이회영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엔 그 여운에서 쉽게 벗어나오질 못했다.

 

우당 이회영.

 

그는 생각보다 매우 크고 위대한 인물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뜻이다. 우리 말로 쉽게 번역하자면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기업 간부들이 요양 시설을 찾아 봉사 활동을 하고, 연말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을 기부하는 등의 행위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그런 행동들은 대부분 '눈 가리고 아웅'격으로 형식적인 행동에 그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00년 전, 바로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 우당 이회영이다.

그는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6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과 노비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를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리나라에서 대대로 문벌이 높고 부유한 집안)이라 불렀다. 한양 땅에서 우당 집안 소유의 땅을 밟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그 재산의 규모가 얼마였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조선 유교 사회의 폐단이었던 성리학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양명학을 수용한 그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노비를 해방한 뒤, 그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당시 풍속으로는 금기시되던 재혼을 한 것이다. 또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결국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완전히 멸망하자 그는 6형제 모두를 설득하여 온 집안 식구의 가산을 팔아치우고 일가족 60여명(노비 포함)이 함께 간도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삼한갑족의 후예로 일제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던 그의 집안이 한꺼번에 해외 망명을 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엄청난 이슈였고 일제조차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우당 형제가 가산을 팔아치워 마련한 돈은 40만원으로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마저도 당시 우당이 급하게 팔아치우는 바람에 제 값을 받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최고 1조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우당은 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모두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세우는데 쏟아부었다. 그가 세운 신흥강습소는 후일 독립군 장교 양성의 요람 '신흥무관학교'가 되어 무장독립투쟁의 불꽃을 피우게 되니, 우당 이회영이야말로 한국 무장독립투쟁 역사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이처럼 대단한 가문의 후예였던 우당 이회영은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말그대로 몰락하고 만다. 형제들은 모두 쫄쫄 굶기에 이르렀고, 뿔뿔이 흩어져 생사여부를 알기도 어려웠다. 역시나 엄청난 거부였던 둘째 형 이석영은 심지어 굶어 죽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당은 오히려 없는 돈을 쏟아부어 동지들 끼니를 챙겨주었으니 우당 이회영과 그의 6형제는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당 이회영은 일찌감치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심취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외교 노선, 무장투쟁노선 등으로 갈리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선에 따른 독립운동계의 분열을 경계한 이회영은 아나키즘을 통한 독립운동을 주장하며 선각자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감투를 싫어했고, 항상 뒤에서 모든 실무를 맡아하면서도 공을 남에게 돌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중국 대륙에서 밀정을 처단하고, 일본 고위 공직자를 처단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무장투쟁에도 앞장섰다.

 

그는 1932년 본격적인 만주에서의 무장투쟁을 위해 대련으로 건너갔다가, 밀고에 의해 대련항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이회영을 신고한 밀정이 바로 둘째 형 이석영의 아들 이규서였으니, 참으로 그는 호부견자(虎父犬子: 호랑이 같은 아비에 개같은 아들)라고 할 수 있겠다. 무장독립투쟁의 마지막 불꽃을 피워올리려던 우당 이회영. 그의 나이 66세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나온 이회영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나, 생각보다 문체가 잘 읽히지 않으며 맞춤법 오류가 많이 보이고 어색한 문맥이 많아 완벽하다고 보기엔 다소 힘들다. 그러나 우당 이회영의 그 위대한 생애와 사상을 이해하기에는 적합하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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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중근 평전

문화/책 2016. 4. 15. 21:56

도서명: 안중근 평전

저자: 황재문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출판년도: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엔 안중근 의사를 다룬 저서(소설이나 문학 작품 혹은 연구서)들이 꽤 많은 편이지만 평전은 별로 없는 편이다. 이 책은 그나마 있는 평전들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인데(2011년 5월 출간)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까지 안중근 의사에 대한 평전은 한 권도 읽어보질 못했다. 항상 "읽어야지.. 읽어야지.."하면서 미루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무튼 기존의 평전보다 새로 나온 평전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뒤늦게 접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랄까...?

 

평전의 장점은 한 인물의 생애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 있다. 안중근 의사와 같은 민족의 영웅은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기에서는 흠이 될 만한 것들은 지워버리거나 모호하게 서술하는 경향이 있고, 독자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흠이 안 가도록 둔갑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내심 불만을 갖는 것이 이런 부분이다. 애시당초 인간이란 존재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듯이, 우리가 영웅으로 추앙하는 이들도 한 가지 흠이 있기 마련이다. 안중근 의사 역시 그러한 부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안중근 의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다 완벽한 '영웅화'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흠을 지우거나 감춰버린다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질감만 느끼게 할 수 있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절, 이순신 장군 현창 사업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요즘의 트렌드를 봐도, 우리가 추앙하는 영웅들도 영웅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실수도 하고, 어떤 점에선 무모하기도 하고, 또 다른 흠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그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단점들을 극복하여 더 위대한 영웅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를 통해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평전 역시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안중근이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특히, 정부 측 기록과 안중근 스스로의 기록이 불일치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괴리감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안중근이 자신의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에서 밝힌 것과 전혀 상반된 주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안중근 연구는 미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과제인 것이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안중근의 어린 시절은 상세하게 다룬 반면 성인이 된 이후는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쳐나가기에 내심 많은 기대를 하였는데, 그 뒤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분을 서술하였을 뿐 더 자세하게 파헤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특히, 안중근의 유해 문제에 대해 언급이 별로 되지 않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안중근의 거사 동지인 우덕순의 회고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았고, 나름대로 안중근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사실들을 접했기에 이 평전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안중근이라는 한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먼저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인 '안응칠역사'를 읽고 그 다음으로 이 평전을 읽어보길 바란다. '영웅'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었던 그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번에 기회가 되면, 이 책보다 먼저 나온 안중근 평전을 읽고 비교 리뷰를 써보고 싶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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