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후 백수인 저한테 그래도 가장 바쁜 날이 있다면, 화요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낮에 부천으로 해금을 배우러 가고, 해금 수업이 끝난 뒤에는 곧장 집 근처 문화센터로 가서 홈바리스타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저녁에 중앙대학교에서 '활쏘기 특강'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화요일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정신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하간 해금 수업이 끝난 뒤에는, 홈바리스타 강의 시간까지 텀이 참 애매합니다. 그래서 보통 해금을 10~20분 정도 더 연습하고, 근처 식당에 들러 급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에 바로 문화센터로 가면 시간이 딱 맞곤 합니다.


오늘도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 학원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요, 마침 학원이 부천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근방에 식당은 많은 편입니다. 오늘도 그래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러시아 요리 전문점'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갔습니다. 원래 저는 흔히 먹는 음식보다는 매 끼니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하거든요.


식당에 들어서니, 러시아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종업원들 역시 전부 러시아 출신인 듯 했습니다. (살짝 동양계의 모습이 보이는 게 고려인 동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지라, 식당 내부는 한가했는데, 다소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온 러시아인들도 몇 명 있더군요.


테이블 하나 잡고, 메뉴판을 받아서 펼쳤는데 메뉴만 봐서는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요. 메뉴 아래 간단한 설명이 있긴 한데... 그래도 무난해 보이는 '먀소 브 클랴레'라는 요리를 메인요리로 주문했습니다. 튀긴고기 요리라고 하는데, '돈가스'와 흡사하다는 설명만 듣고서 바로 주문했죠. 



그리고 메인요리를 주문하면 사이드메뉴가 무료라고 해서 '러시아 식빵'을 골랐는데, 서빙하시는 분이 "클랴레에는 러시아 식빵보다는 으깬 감자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해서 그럼 그걸로 달라고 했습니다. 이대로 메인요리만 먹기에는 아쉬울 것 같아서 '캄포트'라는 음료도 주문했습니다. 총 8,000원이네요.


근데 막상 요리가 나오니까... 비주얼이 돈가스가 아니라 오믈렛이예요. 근데 한 점 썰어서 먹어보니, 맛도 진짜 오믈렛입니다. 제가 아는 돈가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계란옷을 입혀 구워낸 돼지고기 오믈렛이었습니다. 소스도 그냥 케쳡이었구요. 



솔직히 맛도 저한텐 별로였습니다. 돈가스와 같은 바삭함도 없고, 돼지고기가 질겼습니다. 계란에 소금이 뭉쳤는지 먹다가 갑자기 짠맛이 확 나기도 했고요. 캄포트라는 음료도 러시아식 과일주스라고 하는데, 밍밍해서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사이드메뉴로 나온 으깬 감자가 차라리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뭐 다른 요리들도 있으니까, 섣불리 이 집이 맛없다고 평가할 순 없겠고요. 그래도 다른 테이블에 올려진 요리들을 보니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요리들도 많던데, 기회가 된다면 다른 요리에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오늘은 그냥 제가 메뉴를 잘못 선택했다고 봐야죠 뭐.


Posted by 가베치
,

- 영화명: 태양 아래

- 감독: 비탈리 만스키

- 장르: 다큐멘터리

- 국가: 체코, 러시아. 독일, 라트비아 그리고 북한

- 개봉일: 2016년 4월 27일

- 관람가: 전체관람가


전역하고 처음으로 영화관에 다녀왔다.


사실 요근래 상영작들 중에서 그닥 극장에까지 가서 볼 만한 작품은 없는 것 같아, 딱히 영화관에 갈 이유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태양 아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오늘 조조로 보고 왔다.



북한 찬양에서 북한 현실에 대한 고발로의 전환


영화의 전체적인 감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북한판 빅브라더'다. '빅브라더(big brother)'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년>이란 작품에서 비롯된 단어인데, 막강한 정보와 권력을 쥐고서 사회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 내지는 사회체계를 의미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사회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인민들을 주무르는 북한 당국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초창기 기획의도는 북한을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애초에 이 영화는 북한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지원 아래 기획된 작품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이 이루어졌는데, 감독을 맡은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1년 동안 북한에 체류하면서, 북한의 현실을 목도하고 위험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바로 초기 의도와는 달리 북한을 고발하기 위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것.


하여 만스키 감독은 목숨을 걸고 메이킹필름을 러시아로 밀반출해 재편집을 한 뒤 고발성 영화로 성격을 바꾸어 제작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에 의해 걸렸더라면, 최소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북한에 억류되어 평생 강제노동을 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참 대단한 용기와 신념을 가진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영화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평양에 거주하는 8살 소녀인 진미와 그녀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진미는 광명성절(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조선소년단에 입단을 하는데, 다가올 태양절(김일성의 생일)을 앞두고 소년단의 일원으로 공연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진미의 부모는 각자의 일터에서 성실하게 노동에 임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진미 아버지가 일하는 봉제공장에서는 "오늘 생산률 200%를 달성했다"며 생산률 높이기에 공헌한 여성 노동자에게 꽃다발과 박수를 안기고, 여성 노동자는 겸손하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꽃다발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다. 진미 어머니가 일하는 두유공장도 마찬가지다. "진미가 광명성절을 맞아 조선소년단에 입단했다"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북한의 초기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북한판 빅브라더


하지만 감독은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영화를 '비틀기' 시작한다. 만스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오디션을 통해 8살 소녀인 진미가 최종 주인공으로 선발되자, 진미의 집이 갑자기 고급 아파트로 바뀌었으며, 진미 아버지는 실제 직업이 신문기자였으나 영화 촬영을 위해 봉제공장 기술자로,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이었으나 두유공장 노동자로 직업까지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 진미 가족은 식사하며 나누는 대화까지도 당국이 지시한 대사를 읊조려야만 했다 - 출처: 네이버 영화)


하여 감독은 진미 부모의 직업이 당국에 의해 강제로 변경되었으며, 영화 촬영 중간에도 당국에서 길 안내를 이유로 자신들을 끊임없이 밀착 감시하고 통제했음을 중간 중간 자막을 통해 관객들에게 상기시킨다. 촬영한 필름을 사전에 검열당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


무엇보다 매 장면마다 북한 당국 측 인사가 짜여진 각본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대사를 읊도록 하는 메이킹 필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훈훈한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임을 알게 한다. 메이킹 필름 속 북한 노동자들의 눈에는 영혼이 없으며, 중간 중간 하품을 하거나 얼굴에 귀찮음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사진: 상심에 빠진 진미의 표정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말미에는 진미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데, 진미를 달래기 위해 스태프가 "좋아하는 시 없어?"라고 묻자, 갑자기 진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선소년단 입단 선서'를 읊기 시작한다. 진미에게 좋아하는 시는 '조선소년단 입단 선서'이며, 좋아하는 음식은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으로서, 늙는 것과 암을 예방해주는 김치'일 뿐... 진미는 "좋아하는 게 없냐"는 스태프의 질문에 울먹이면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할 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게 바로 북한의 현실이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면서, 인민들을 억압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경배하게끔 세뇌시키는 북한이라는 나라. 인간의 기본권인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혹자는 이런 북한을 두고 500년 동안 전제군주가 통치했던 조선왕조보다도 더 억눌린 나라라고도 평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조선은 임금이 무능하거나 폭정을 저지르면 반정(反正)을 일으키거나, 농민들이 떼지어 봉기라도 일으켰지만, 북한은 아예 그럴 여지조차 없으니 말이다. 어쩌다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이토록 잔인하고 비이성적인 나라가 세워졌을까 한탄스럽다.


진미는 무사할까?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진미 가족의 안부였다. 진미 가족은 북한 당국에 의해 동원되어 의도대로 촬영에 임했다지만, 감독이 임의로 진미 가족의 일상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고발해버렸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이다. 이게 괜히 죄 없는 진미 가족에게까지 불똥이 튈까봐 그게 너무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제작한 만스키 감독도 누구보다 우려가 큰 것 같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만스키 감독이 국내 시사회에 와서 "진미 가족의 안부가 제일 걱정이다. 진미와 그녀의 가족이 무사할 수 있도록 전세계 여론이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했단다. 국제사회의 여론 따위는 코웃음칠 북한이기에 저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북한사회의 현실을 전세계에 고발해야 한다는 대의(大義)와 진미 가족의 안부를 지켜야 한다는 소의(小義) 사이에서 누구보다 심적 갈등을 했을 감독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사진: 진미의 미소에 영혼이 없어보인다 - 출처: 네이버 영화)


외면해서는 안될 현실


다큐멘터리이기에, 내용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우리는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한반도 북부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재수없어 우리가 조금만 더 위쪽에서 태어났더라면, 우리 역시 스스로 통제당한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못한 채, 오로지 김씨 왕조만을 숭배하며 굴종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반도 북쪽에서는 '빅브라더' 아래 억압받는 우리의 동포가 있다. 그 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보는 것이 바로 영화를 본 관객들의 다음 과제다.


PS. 엔딩 크레딧에서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 주민들이 헌화한 꽃송이들을, 당국 관계자들이 일일이 금속탐지기로 검사하는 장면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무서운 거냐.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