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화제작 <부산행>을 뒤늦게 봤습니다.


지난 번 <터널>과 비슷한 이유로,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저는 좀비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흉한 몰골들을 보는 것 자체가 꺼림칙해서... 그래도 하도 여기저기서 '부산행', '부산행' 하길래, 얼마나 재밌는지 한 번 보자는 심산으로 방금 보고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 잘 만들긴 했어요. 감독이 영화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메시지도 단순명료하게 잘 전달이 되고 있었습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게 하고, 머리 써가면서까지 메시지를 추리하게 만드는 요즘 영화들과 달리, 정말 단순명료하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 가볍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한 번 들여다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보는 내내 김의성이란 배우가 맡은 버스회사 상무 역할에 집중해서 봤습니다. 대단한 악역이라고 소문이 났길래, 얼마나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일까 궁금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아등바등 저 혼자 살아남겠다고, 다른 이들의 생명은 아랑곳않는 캐릭터더군요. 하지만 그 캐릭터의 행동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서 남들 처지까지 신경쓸 여유가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자문해봅시다. 


저는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사실 도덕이란 것 자체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다수의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 인위적 가치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의사(義士)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대다수의 인간들은 저런 상황에 처해서 누구나 김의성이 될 겁니다. 


물론 김의성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단 겁니다. 저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라고 과연 김의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는가. 뭐 당연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요. 나라와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인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별로 없기에, 우리가 그분들을 의인이라고 존경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버스회사 상무의 민폐짓과 더불어 우리 마동석 형님의 격투씬이 또 이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죠. 그 큼지막한 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는데,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그런데 영화를 보니 좀비들은 관절이 뒤틀려도 금세 관절을 끼워맞춰서 다시 공격해오더군요. 총알도 안 통하는 것 같고요. 타격으로는 좀비들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역시 칼과 같이 예리한 무기로 신체를 절단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좀비들과의 격투에는 무조건 진검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로, 우리 모두 무술을... 아니 무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기왕이면 휴대하며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을 말이죠. 먼 훗날 있을지 모를 좀비들과의 격투에 대비해서, 저 역시 무예24기 수련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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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무예를 수련하면서 '깊이 있는 수련'에 대해 한 번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아는 형님께서 블로그에 좋은 글을 올려주셨더군요. (링크: http://blog.naver.com/k0062/220779264179)


그 형님과 저는 서로 수련하는 권종 자체가 다르지만, 무술을 수련하는 입장에서 그 형님의 글을 보며 배우는 점이 참 많습니다. 꼭 무술의 실기적인 교류가 아닐지라도, 무술 수련에 있어서의 철학이나 원칙 등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자극을 받고 있거든요. 이번에 형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니, 저 역시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에 대해 글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꽤 많은 무술을 배워봤습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3년 이상 배웠죠. 그중에는 깊이 있게 무예를 지도하는 곳도 있었지만, 수박 겉핧기식으로 초식의 형태만 지도하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겉모습이라도 제대로 지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몇 번 보여주고 마는 식의 지도... 용법은 자연히 알 길이 없고, 외형(外形)조차 제대로 따라하고 있는지 의문일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잠깐 다녔던 어느 도장에서의 일입니다. 하루는 초식을 연마하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왜 동작을 그렇게 해!"하고 호통을 치신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더군요. 저는 당연히 그 동작이 정석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연습을 했기 때문이죠. 그곳의 교육과정은 관장님께서 한두 번 보여주면, 뒤에서 따라하고 마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교육방식이 옳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세하게 동작을 지도해주고 그런 지적을 받았더라면, 그나마 덜 억울했을 듯 합니다.


물론 처음에 제대로 배웠다고 하더라도, 혼자 수련을 하다보면 자세가 계속 어긋나기 십상이고, 그래서 꾸준히 교정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사부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 동작을 배운 지 몇 개월이나 지난 뒤에서야 지적을 받았으니, 그동안 그 관장님께서는 제가 동작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점검도 안 해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무예 수련의 깊이란 걸 느낄 턱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무예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저는 무예24기를 수련하면서 '깊이 있게 수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점차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공연 연습 때문에 기창의 투로만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급하게 배운 투로를 통해 기창을 완벽하게 숙달했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사부님께 기창 교정을 받고 있는데, 기본기 하나에서부터 동작의 숨은 의미와 용법에 대해 세심하게 지도해주시는 데서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수련 시 사부님께서 일러주신 부분들을 신경쓰며 수련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찌르기' 하나를 하더라도 보법이며, 안법이며, 칼날의 각도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은 창을 쓰든 칼을 쓰든, 욕심 안 부리고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들 하나 하나에 집중해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기 하나조차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닌 탓에, 이 모두를 완벽하게 숙달하기 위해선 정말 평생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무예란 하루이틀 배우고 말 것도 아니고, 평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조급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가장 단순한 베기나 찌르기 하나를 하더라도 평생 한다는 생각으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하루 수련할 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정말 단순한 동작인데, 그 동작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수련의 깊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무예24기는 태생적으로 복원무술이라는 한계가 있어, 여러모로 '무술적 깊이'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 무예24기 수련을 권유받았을 때, '정종 문파에서 수련하는 내가 왜 굳이 검증도 안된 복원무술을 배우나' 하면서 망설였습니다. 


결국 무예24기 수련을 시작했을 때도 '그냥 한 3개월 정도만 수련하다가 핑계 대고 나가야지'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이곳 '무예24기 한양류'에 정착하여 5년째 수련을 해오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수련을 꾸준히 해왔으니, 사실상 제 무예 경력 중 가장 많은 경력을 차지하는 게 바로 무예24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이곳 한양류가 존재하는 한, 평생 이곳에서 수련을 할 생각입니다. 아직도 사부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게 많고, 사부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평생 교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을 할 정도로, 한양류는 타 무예도보통지 수련단체에 비해서도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적 복원이 꽤 높은 수준까지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사부님 역시도 "다른 건 몰라도 장병기 기법의 복원과 운용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한양류만큼 하는 곳도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자부하시더군요. 사부님 밑에서 무예를 배우면서, 사부님의 실력을 봤기에 저 역시 그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 담고 있는 한양류에 확신을 갖고 무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만약 무술을 배우는 분이라면 진지하게 한 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서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와 용법을 제대로 알고 지도하고 계시는지, 사부님께 동작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면 망설임 없이 답변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계신지, 무술을 수련하면서 실전에서 쓸 수 있다고 확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술을 수련하면서 '깊이'를 느끼고 있는지... 자문자답을 해보고 그게 아니라면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을 찾아 떠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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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어딜 나가기가 참 겁이 나는 요즘입니다. 무예 수련하기에 가장 힘든 계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촉한음서(觸寒飮署)라고 했으니... 무예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요근래 저는 기창(단창)의 매력에 푹 빠져서, 기창 위주의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길쭉한 창을 쭉쭉 뽑아 찌르고 베는 맛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칼 수련에 한창 빠져있을 때는 뭐든지 베고 싶더니, 창 수련에 빠지게 되니 이젠 창을 들고 길을 다니다보면, 작은 빈틈만 보여도 푹푹 찌르고 싶은 욕구가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보라매공원에 기창을 들고 가서 수련을 했습니다. 먼저 지난 정규전수 시간에 배운대로, 화단의 풀잎을 하나의 표적으로 설정해놓고, 기본이 되는 찌르기(刺)와 베기(磨)를 반복 연습했습니다. 확실히 표적이 있으니 집중도 더 잘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반복하면 할수록 정확도도 올라가고, 창에 힘도 실리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창 하나만 해도 수련해야 할 과정이 상당한데, 언제 24기를 다 숙달시키나... 이럴 때면 참 막막함을 느낍니다.


아무튼 기본기를 반복 연습하고, 기창 투로를 몇 번 반복해서 연습을 했습니다. 확실히 찌르기와 베기 연습을 하고 난 뒤에 투로를 연습하니 훨씬 동작들이 부드럽게 이어지더군요. 그리고 공연 연습 때와 달리 동작의 의미를 하나 하나 분석하면서 제대로 수련을 하려고 하다보니, 동작들의 의미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듭니다. 몇몇 동작들에 대해 벌써 의문이 생겼는데, 이건 정규전수 시간에 사부님께 여쭤보고 답을 구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분석했을 때는, 투로를 빠르게 진행했을 시에 마지막 '우일자-좌일자-후일자-전일자' 구간에서 보법이 엉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상체는 무거운 창을 들고 계속 전환하는데, 전후좌우 사방으로 계속 움직여야 하다보니, 아직 보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기본 보법을 지키면서 한 걸음씩 숙달하려고 신경쓰고 있습니다. 또한 '퇴산색해세'를 할 때에도, 복호세에서 전환할 때 자연스럽게 전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반복 연습만이 답이겠죠.


아무튼 수련은 재밌는데, 날이 덥다보니 쉽게 지치는 것이 함정이네요. 기본기 연습에 이어, 달리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추면서 창으로 가상의 적을 찌르는 연습을 했는데, 날이 더워 금세 지치다보니 조금만 뛰어도 몸의 힘이 쭉 빠집니다.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쩍 젖었고, 바지도 땀으로 젖어서 땀띠가 날 지경입니다. 여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하지 않아 부실해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여하간 여름철 수련이 제일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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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대학에서의 첫 무예 강의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뒤로, 당분간은 개인수련이나 열심히 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데 전념하기로 마음 먹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한 군데에 가있으면, 계속 그 쪽으로 기회가 생기나 봅니다. 열정대학과 비슷한 플랫폼을 가진 대안학교인 '이태원 대학교'에서 또다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계기는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수련터에 나가서 기창 수련을 하고 찍은 사진을 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MBN 윤범기 기자님이 본 겁니다. 참고로 윤 기자님과는 열정대학 기자학과 강의를 통해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그분은 신촌대학교와 노량진대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엔 이태원대학교 개강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윤 기자님께서 그 사진을 보자마자 제게 "우리 창술배워볼과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하고 제의를 하신 겁니다. 사실 기창은 제가 배운 지 오래 되지 않기에, 누군가를 지도할 만한 실력은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했고, 열정대학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라서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사부님과 먼저 의논을 하겠다고 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또다시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하시더군요. 윤 기자님 역시 집요하게 개설을 독려하기도 했고, 사부님도 제가 기창을 지도하는 것에 대해서 허락하셨기에... 다시 한 번 무예를 지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슬 들더군요. 그래도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기에, 오늘 열리는 사전 모임에 참여해서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나 확실히 보고 듣고 난 뒤에 판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태원 대학교의 강의실로 활용될 '용산문화예술창작소'에서 열린 사전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강의 개설자 분들을 보니, 아무래도 나이는 제가 제일 어린 듯 합니다. 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이더군요. 교수, 변호사, 공무원 등등 면면히 정말 화려했습니다. 북놀이, 고전무용과 같은 무형문화재를 이수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를 위해 모인 것을 보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다들 자기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인 듯한데, 제가 여기 낄 자격이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이태원 대학 소개에 앞서, 앞으로 강의실로 활용될 공간을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원 구성에 따라 30명 정도 수강이 가능한 소강의실부터, 최대 6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까지 있고요, 예·체능 과목을 위한 '공연연습실'도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창술을 지도하게 될텐데, 오늘 둘러보니 평수는 충분하지만 천장이 낮아서 창을 휘두르기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의견 조율이 있었는데, 정 안되면 옥상이나 주차장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보니까 주차장은 버스 전용 주차장이라 아주 넓더군요.


오늘 설명을 들어보니, 열정대학보다는 여러모로 안정적인 구조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열정대학의 맹점 중 하나는 전공 과목이 아닌 이상 개설자가 수강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수강료가 없으면 개설자 입장에서도 무책임해지기 쉽고, 수강생들도 자기가 수강하는 과목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죠. 수강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듣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귀찮으면 '안 들으면 그만' 하고 잠수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대학은 일단 그런 점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수강료'를 받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돈 받자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수강료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소액의 수강료고, 그것도 개설자와 이태원 대학 운영위원회 측이 5:5로 나눠가집니다. 


여기에 대해 윤 기자님도 "돈 벌자고 이런 일 하는 거면 차라리 다른 데 찾는 게 맞다"며 "수강료는 서로 무책임해지지 않기 위해서 내는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수강생들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자신이 낸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듣지 않을까요? 그리고 강사 입장에서는 소정의 수강료라도 받으니 조금 더 책임감 있게 과목을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강의를 개설한 개설자를 '학과장'이라고 대우하면서, 이태원 대학에서 개설되는 모든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것도 마음에 쏙 들더군요.



게다가 이태원 대학은 용산구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어 전망도 밝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용산구에서 이태원 대학을 지역사회를 이끄는 시범 모델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용산문화예술창작소도 무료 대관을 해주는 것이고, 오늘 구청 직원들도 나와서 적극적으로 저희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창술을 지도하기에 장소가 비좁은 것 같다는 제 의견에 대해서도 "주차장이나 옥상에서 강의를 지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하고, 커피 관련 학과를 만들려고 하는 바리스타 한 분이 "커피용품이 없는 점이 애로사항이다"라고 하니 "그 역시 구에서 물품을 준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니 든든하기도 하고, 잘하면 용산구에 무예24기를 뿌리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소 외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무기 마련'입니다. 창술 같은 경우 당연히 창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수강생들이 개개인별로 창을 구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봉으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봉을 구매할 의사가 얼마나 될지 막막한 게 사실입니다. 한 번 배우고 말 수도 있는데, 봉을 사야한다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안 들으려고 할 사람들도 있겠죠. 더욱이 봉을 들고 다니기도 버겁고. 


그런데 이 문제 역시 한 방에 해결됐습니다. 일단 이태원 대학 측이 운영비로 봉을 구입해주겠다고 합니다. 또 봉을 가지고 다니는 게 힘들다면, 창작소 건물에다가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고도 하더군요. 걱정했던 부분들이 시원시원하게 해결되고, 빵빵한 지원까지 곁들여지니 흡족합니다.


일단 8월 말에 공식 PT를 한다고 하니, 잘 준비해봐야겠습니다. 10월 개강 전까지 수련 역시 열심히 해서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워봐야겠습니다. 이번엔 열정대학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두사미'가 안되도록 최선을 다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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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습니다.


안그래도 2박 3일 동안 캠프 다녀오느라, 몸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여서 아침에 눈을 뜨고서도 '오늘 수련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수련을 빠지면 일주일을 또 후회할 것 같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정규수련에 참여했습니다. 날이 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뜨거운 햇살에 금세 지치기도 했지만, 집중해서 수련을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오늘은 '기창(단창)' 연습을 위주로 했습니다. 사부님께 기창 투로를 전체적으로 점검받고, 기본기 중 찌르기 자세를 지도받았습니다. 저렇게 화단의 작은 풀잎을 표적으로 삼아 찌르는 연습을 했는데, 일단 첫 번째 영상에서는 팔힘을 쓰지 않고 온전히 하체 힘으로만 찌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예가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하체에서 힘이 나오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하체의 힘만으로 창을 찌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질 않아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복하다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오더군요. 진보로 나가다가 표적에 닿는 순간 정지하면서 뒷다리에 힘을 실러 팍 찔러주니 힘이 실립니다. 바로 두 번째 단계로 나가 상체 힘까지 같이 쓰니 위력이 배가 되는 걸 느낍니다. 표적을 정해놓고 하다보니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찌르기시 고질적으로 드러나는 '삽질' 문제도 교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영상은 같이 수련하는 친구가 찌르기 연습을 하는 영상인데, 저렇게 표적지를 만들어서 찌르기 연습을 해봤습니다. 풀잎보다 저렇게 푹 찌르면 찢어지는 과녁이 있으니 더 재밌더군요.



이건 제가 찌른 종이입니다. 찌르기 연습 도중에 사부님께서 갑자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조각을 하나 주워서 '여기 빨간 부분을 표적이라 생각하고 찌르라'고 주문하시더군요. 집중해서 찔렀는데 푹 들어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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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창(旗槍) 교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개인수련을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전수에 나오는 걸로는 당연히 공(功)을 쌓을 수가 없으니까요. 다행히도 함께 무예를 수련하는 형님께서 기창을 선뜻 빌려주셨습니다. 현재 일이 바빠 수련터에는 못 나오고 계시는데, 기창은 집에 보관하기가 버겁다고 수련터에 맡겨놓고 가셨거든요. 제가 잘 관리하는 조건으로 빌려왔습니다.



기창을 가져오기 위해 어제 수련터에 갔는데, 창 끝이 빠져있길래 사부님과 본드를 이용해 수리했습니다. 하루 정도는 그대로 놔두라고 하셔서, 어제는 수련을 못 하고 오늘 드디어 옥상에 올라가 휘둘러봤습니다. 수련터에서 쓰는 공용 기창보다는 가벼운 듯한데, 아무래도 봉 재질이 훨씬 가벼운 재질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무게가 덜 나가는 걸로 자세를 연습하고, 점점 무거운 창으로 심화시켜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창날이 예리하게 갈려있지는 않지만, 창 끝은 뾰족합니다. 그라인더 같은 걸로 갈면 아마 진짜 위험한 흉기(?)가 될 것 같습니다. 워낙 긴 데다가, 창 끝이 뾰족하다보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기창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 원래는 깃발이 달려있어야 합니다만 따로 달아놓지는 않은 상태더군요. 이게 깃발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그냥 하는 것보다 깃발이 펄럭이는 게 훨씬 뽀대(?)도 나고, 펄럭펄럭 소리가 경쾌하여 휘두르는 맛이 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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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수련 중에 '허공의자'라는 수련이 있다. 무예24기를 수련하며 배운 것인데, 등을 벽에 바싹 붙이고 허리를 낮춰 의자에 앉은 것마냥 허공에 앉아 버티는 수련이다. 중국무술의 마보와도 비슷한데, 마보만큼이나 힘든 수련 중 하나다.


이 자세는 척추를 바르게 하고, 기혈을 뚫어주어 내기(內氣)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자세라고 한다. 앉아서 버티는 자세이니 하체 단련이 되는 것은 묻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하루 10분씩 3개월 이상 꾸준히 하면 뱃살도 들어간다고 한다.


처음 이 자세를 배웠을 때는, 1분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그때 사부님이 "여학생들도 10분 이상은 한다"고 하길래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군대 있을 때는, 매일 같이 이 자세를 연습하기도 했다. 그때도 3~4분을 넘기기 힘들었던 것 같다.


허공의자 수련은 결코 쉽지 않은데, 우선 하체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무술의 마보 자세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허리를 낮추고 앉아 오랜 시간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지루함' 역시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가만히 앉아서 5분, 10분 버틴다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허공의자를 하는 도중에 '얼마나 됐을까' 하며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고작 1분 지났을 뿐이다. 이런 지루함을 이겨내보고자 일부러 TV를 보면서 하기도 했고,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지루함을 다소 덜 수는 있었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너무 힘든 수련인지라, 사실 무예를 수련하면서도 은근슬쩍 이 수련은 거르곤 했다. '오늘은 몸이 피곤하니까 생략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갖은 핑계를 대면서 내 자신과 타협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부님으로부터 허공의자의 효용성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계속 듣다보니, 꾸준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평생 무예를 수련하며 대가가 되겠다고 다짐해놓고서는 힘들다는 이유로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완벽한 '자기모순'도 없을 것이다. 사부님이 내게 자주 하는 말씀 중에 하나가 "그래가지고 무슨 대가가 되겠다는거야?"다. 확실히 이런 말을 들으면 자극이 된다.


요즘은 그래서 개인수련을 하게 되면, 무조건 허공의자부터 먼저 한다. 최소 10분을 기준으로 허공의자를 수련하는데, 며칠 전부터 허공의자가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항상 힘들다. 하지만 1~2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자세가 완전히 잡히면, 어느 순간 하체가 시원해지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오늘은 그 느낌이 절정에 달했다. 너무 편안해서 졸음이 올 지경이었다. 오늘은 TV나 음악도 켜지 않았다. 사부님 말씀대로 온전히 호흡에만 집중했다. 그랬는데도 지루함은커녕 편안함이 느껴졌다. 몸이 편안해지니 마음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하체가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비오듯 줄줄 흘렀을텐데 오늘은 땀도 그닥 안 나고, 하체도 일체의 요동이 없었다. 다만 등에는 땀이 나서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하체가 계속 허리 아래로 낮아지는 바람에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세를 잡곤 했지만, 한 번 풀린 자세를 다시 잡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시간을 정확하게 재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20분 가까이 한 것 같다.


사부님 말씀에 따르면 "이 자세를 하고 나서 호흡을 하면 정말 공기가 맛있다"고 하는데, 나는 원체 감각이 둔한지라 아직까지는 그런 느낌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면 허공의자가 편안해진다'는 말에는 공감할 정도가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꾸준히 하다보면 나중에는 공기가 맛있다는 말에도 공감할 정도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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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기창(旗槍)


增(증)


창날 길이 9촌, 자루 길이 9척, 붉은 칠을 한다. 주석판 이하에서는 검은색·흰색 칠을 모두 5마디로 하고, 혹은 누런색이나 붉은색의 작은 기를 단다. 


『엄주사부고( 州四部藁)』에 이르기를, "문황제(大明 成祖황제)의 어창(御槍: 임금님의 창)은 오문루(午門樓)의 포좌(座:어탑) 오른쪽에 두었는데, 창은 칠한 합죽으로 자루를 알고, 검은 정기를 달았는데, 약호(若號)중에 늘어뜨린 단 중에는 여러 가지 별들을 수놓았다. 창자루에는 칼자국이 세 군데나 있고, 화살 구멍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문황(文皇)이라 칭했다. 


그는 매번 대적을 만나면 문득 용감한 기병(驥騈)을 거느리고 중견으로 부딪쳐 들어가서(中堅:『후한서』「광무제전」에 '그 중견을 부딪쳐 들어가서...' 注에 중군장 지존이 기거하므로 견고하고 정예로써 스스로를 도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중견이라 한다.) 적 후방을 에워 싸고 깃발을 흔들면 군사들이 다투어 분전하니 적은 순식간에 크게 무너진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이르기를, "임금의 수레에 의장병으로 소기창대(小旗槍隊)의 장교(將校)가 2명이 연등한다(고려에는 팔관 연등회가 있다)." 기는 노부(의장병이다. 진·한 때부터 그 이름이 시작된다)은간 (작은 대나무) 작은 기창 이다.


案(안)


문황의 창은 기병의 무기이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실려있는 것은 의장용 무기이다. 기를 단 창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무릇 군의 행렬(5열 종대이기 때문에 군오(軍伍)라 함)은 각각의 장수가 무기를 잡고 이어서 치고 받는 자세를 연습한즉 대저 깃대를 단 창대에 날을 붙인 것은 그 치고 찌르는 술(무예기법)을 전하려 하는 것이니 오히려 현명하지 않겠는가? 호미와 고무래(『회남자』주에는 흙덩이를 부수는 연장이다)도 병기가 된다. 이에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 그 자세를 익힌다.


번역문 출처: 한국전통무예연구소(www.muye24ki.com)


[초식]


1. 용약재연(龍躍在淵)

2. 거극(擧戟)

3. 야차탐해(夜叉探海)

4. 중평(中平)

5. 중평(中平)

6. 진왕마기(秦王磨旗)

7. 한신점기(韓信點旗)

8. 중평(中平)

9. 복호(伏虎)

10. 퇴산색해(堆山塞海)

11. 거극(擧戟)

12. 은교출해(銀蛟出海)

13. 중평(中平)

14. 복호(伏虎)

15. 우일자(右一刺)

16. 좌일자(左一刺)

17. 후일자(後一刺)

18. 전일자(前一刺)

19. 야차탐해(夜叉探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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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란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말합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로서 부국강병의 실학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완료한 정조는, 이 책을 당시 중앙 오군영(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어영청)에 보급하여, 군영마다 제각각이던 군사들의 기예를 통일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 시스템이 확립된 탓에, 무예를 지도하는 별도의 무관(武館)이 존재하지 않았고, 아버지나 장인어른 등 무관직을 지낸 어른들로부터 무예를 전수받는 문화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무벌가문이 형성되었고, 가문마다 전해져오는 기법들도 제각각이었을 거라고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역시 장인어른이 무예 스승이었다죠. 그래서 옛 기록을 살펴봐도, 군영마다 무예의 명칭부터 제각각입니다. 동작들도 제각각이었겠죠.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정조는 무예의 명칭을 통일하는 동시에, 실제 동작들도 통일하기 위해 「무예도보통지」를 적극적으로 보급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정조 본인의 호위를 위해 창설했던 특수부대 '장용영(壯勇營)'에도 「무예도보통지」를 보급하였지요. 무예24기로 단련된 장용영 군사들은, 당대 최고의 호위무사들이었을 겁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경호원' 격이랄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조상들은 무예를 보존해야 할 하나의 전통문화로 인식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갑작스러운 개화의 물결로 인해 급진적으로 군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무예24기는 역사의 물결 속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암흑기(일제강점기와 6.25 등)가 워낙 길었던 탓에, 전통무예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못했죠.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경당, 십팔기를 비롯한 여러 전통무예연구단체들이 복원을 시도했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복원 스타일에 따라 유파를 형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무예24기 한양류의 경우는 경당-무예24기보존회의 계보를 이은 단체로, 보존회의 해석과는 달리 자체 해석으로 복원한 기법들도 상당합니다. 복원무술이다보니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긴 합니다. 타 유파의 기법 중에 차용할 만한 것들은 적극적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짜깁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복원무술이 안고가야 할 한계라고 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지 않는 이상 '100% 원형복원'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하다보면 '무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 봅니다.


이 홍보 영상 속에 등장하는 무예24기 시범단원들은 현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소속으로, 매일 같이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에 신풍루 앞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구경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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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야심한 밤을 틈타 중국무협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한 달 전쯤에 국내 개봉도 했던 영화 <활 : 명궁 류백원>이라는 영화입니다. 원제는 '전사류백원(箭士柳白猿)'입니다.



(사진: <활 : 명궁 류백원> 국내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 감독이랑 출연진을 보니, 대충 어떤 스타일의 영화일지 보기도 전에 이미 감이 오더군요. 서호봉 감독이 맡은 영화인데, 이 감독은 예전부터 상업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죠. 이 감독이 만든 대표적인 영화가 무사 : 4대 문파와의 혈투> (원제: 왜구의 무기), <사부 : 영춘권 마스터> (원제: 사부)인데, 이 영화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단 이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볼 때는,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접고 보는 게 편합니다. 그리고 웬만큼 예술영화나 철학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싶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다 못해 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 물론 저는 예술영화나 철학영화 같은 거 체질적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만, 희한하게도 서호봉 감독 영화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토리보다는 영화 속 액션에 집중해서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오히려 머리만 아파지더군요. 뭔가 감독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영화를 만든 것일텐데... 머리가 아파서 그런 건 넘겨버리고 영화 속 액션에 집중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무뢰배에 의해 누이가 강간당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도, 지켜주지 못했던 한 사내가 그 충격으로 출가해서 '류백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뒤, 활의 고수에게 궁술을 배워 무림으로 들어오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뒤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스토리도 복잡하게 얽혀서 이어집니다만, 역시 이해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참,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속으시면 안됩니다. 제목이 '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영화 <최종병기 활>처럼 주인공이 활을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물론 주인공의 주무기가 활이고, 결국 핵심 키워드가 활인 것은 맞습니다만, <최종병기 활>과 같은 화려한 활 액션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는 활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궁술에 담긴 원리를 권술로 풀어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보면 안됩니다. 하지만 활을 진지하게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활 뿐만 아니라 창술, 권술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액션이 등장합니다. 특히 권술의 경우는 역시 서호봉 감독답게, 밋밋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스타일로 표현됩니다. 상대방과 화려하게 초식을 주고받으며 비현실적인 대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전'을 한다면서 서로 의자에 앉아 손을 맞대고 영춘권의 치사오하듯이 대련을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창술 역시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창의 기본기술을 몇 합 주고받다가 싱겁게 끝납니다. 물론 대단히 현실적인 액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액션영화는 '빠르고 화려한 액션'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술감독들도 점점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동작들로 액션을 연출하고 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수효과까지 도입되어 굉장히 자극적인 액션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극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게 확실히 이런 액션은 밋밋하다 못해 허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석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네요. 네이버 영화 리뷰들을 찬찬히 살펴보니까, '기존의 화려하고 말도 안되는 중국무협영화를 비웃기 위해 만든 영화다', '블랙코미디 영화다', '완전히 허접한 액션영화다' 등등...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예를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동작 하나 하나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한 배우 우승혜(2015년 작고)는 실제 무림의 고수로 명망이 높았던 분입니다. 검술에도 조예가 깊어, 소실된 당나라 시대 검법 '쌍수검법'을 복원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죠. 그런 분의 몸짓을 영화로나마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여하간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실제 무술인이기도 한 배우들의 몸짓도 눈여겨 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내내 계속 영화 속 우승혜 노사의 몸놀림이 아른거리네요. 덕분에 몸도 근질거립니다. 마침 날이 밝으면 무예24기 정규수련이 있는데, 오랜만에 장병기(특히 기창)를 휘두르면서 근질거리는 몸을 풀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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