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웹서핑을 하던 중 새로 나온 무협영화 한 편이 풍극안 선생의 유작이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작이라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작품을 뜻하는 바인데, 저는 풍극안 선생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부랴부랴 찾아보니 2016년 3월 2일 식도암으로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향년 68세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kamagi2000/220764824382)


풍극안 선생이라면 성룡과 함께 성가반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7,80년대 다양한 무협영화로 이름을 날린 분입니다. 워낙 개성 있고 험악해보이는 마스크 탓에 단골 악역으로 등장하곤 했지요. 제가 보던 무협영화에는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기에 워낙 인상 깊은 배우였습니다. 최근에는 <쿵푸허슬>에서 맹인 음악무술가, <엽문 2>에서 팔괘장을 구사하는 정 사부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분이 돌아가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제가 아무리 홍콩무협에 대해 옛날만큼 관심이 떨어졌다고 해도, 참 충격적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홍콩무협배우의 별세 소식을 이제서야 알다니요.


홍콩에선 유명한 분이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탓에, 국내 DB에도 업데이트가 안된 모양이더군요. 네이버에는 아직도 사망 정보가 안 올라와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렇게 하나둘 잊혀지는 것이...


요근래 제가 좋아했던 홍콩무협영화 배우들이 하나 둘 지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참 씁쓸함을 느낍니다. 홍가권의 대가이자 쇼브라더스 무협영화의 거장 유가량 감독이 2013년에 별세하고, 유가량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황비홍 역으로 정통 홍권을 선보인 유가휘는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 신세입니다. 이제 풍극안 선생마저 돌아가셨네요. 여기에 이연걸은 난치병에 걸려 매우 수척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룡, 견자단도 언제까지 그 몸과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참 가슴이 아파옵니다. 어릴 적 전설처럼 생각했던, 때론 친구보다 더 친숙했던 스크린 속 스타들이 하나 둘 지는 것을 지켜봐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새삼 이소룡의 죽음이 당대 열성팬들에게 줬을 충격과 슬픔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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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야심한 밤을 틈타 중국무협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한 달 전쯤에 국내 개봉도 했던 영화 <활 : 명궁 류백원>이라는 영화입니다. 원제는 '전사류백원(箭士柳白猿)'입니다.



(사진: <활 : 명궁 류백원> 국내 공식 포스터 -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 감독이랑 출연진을 보니, 대충 어떤 스타일의 영화일지 보기도 전에 이미 감이 오더군요. 서호봉 감독이 맡은 영화인데, 이 감독은 예전부터 상업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죠. 이 감독이 만든 대표적인 영화가 무사 : 4대 문파와의 혈투> (원제: 왜구의 무기), <사부 : 영춘권 마스터> (원제: 사부)인데, 이 영화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단 이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볼 때는,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접고 보는 게 편합니다. 그리고 웬만큼 예술영화나 철학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싶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다 못해 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 물론 저는 예술영화나 철학영화 같은 거 체질적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만, 희한하게도 서호봉 감독 영화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토리보다는 영화 속 액션에 집중해서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오히려 머리만 아파지더군요. 뭔가 감독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영화를 만든 것일텐데... 머리가 아파서 그런 건 넘겨버리고 영화 속 액션에 집중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무뢰배에 의해 누이가 강간당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도, 지켜주지 못했던 한 사내가 그 충격으로 출가해서 '류백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뒤, 활의 고수에게 궁술을 배워 무림으로 들어오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뒤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스토리도 복잡하게 얽혀서 이어집니다만, 역시 이해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참,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속으시면 안됩니다. 제목이 '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영화 <최종병기 활>처럼 주인공이 활을 들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물론 주인공의 주무기가 활이고, 결국 핵심 키워드가 활인 것은 맞습니다만, <최종병기 활>과 같은 화려한 활 액션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는 활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궁술에 담긴 원리를 권술로 풀어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보면 안됩니다. 하지만 활을 진지하게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활 뿐만 아니라 창술, 권술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액션이 등장합니다. 특히 권술의 경우는 역시 서호봉 감독답게, 밋밋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스타일로 표현됩니다. 상대방과 화려하게 초식을 주고받으며 비현실적인 대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근접전'을 한다면서 서로 의자에 앉아 손을 맞대고 영춘권의 치사오하듯이 대련을 하는 장면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창술 역시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창의 기본기술을 몇 합 주고받다가 싱겁게 끝납니다. 물론 대단히 현실적인 액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액션영화는 '빠르고 화려한 액션'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술감독들도 점점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동작들로 액션을 연출하고 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수효과까지 도입되어 굉장히 자극적인 액션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극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게 확실히 이런 액션은 밋밋하다 못해 허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석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네요. 네이버 영화 리뷰들을 찬찬히 살펴보니까, '기존의 화려하고 말도 안되는 중국무협영화를 비웃기 위해 만든 영화다', '블랙코미디 영화다', '완전히 허접한 액션영화다' 등등...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예를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동작 하나 하나 흥미롭게 봤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한 배우 우승혜(2015년 작고)는 실제 무림의 고수로 명망이 높았던 분입니다. 검술에도 조예가 깊어, 소실된 당나라 시대 검법 '쌍수검법'을 복원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죠. 그런 분의 몸짓을 영화로나마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여하간 무예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실제 무술인이기도 한 배우들의 몸짓도 눈여겨 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내내 계속 영화 속 우승혜 노사의 몸놀림이 아른거리네요. 덕분에 몸도 근질거립니다. 마침 날이 밝으면 무예24기 정규수련이 있는데, 오랜만에 장병기(특히 기창)를 휘두르면서 근질거리는 몸을 풀어봐야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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