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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21 [군대] 지친 軍 생활을 위로해주던 커피 한 잔의 추억

사실 나는 커피보다는 녹차, 홍차, 보이차와 같은 차(茶)에 관심이 많았다. 커피맛을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커피와 차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커피란 밥 먹고 입가심용으로 먹는다는 가벼운 느낌의 음료였다면, 동양의 차(茶)는 자기수양, 건강유지와 같은 보다 묵직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뜨거운 물을 찻잎에 부어, 찻물을 우려내는 과정부터, 향을 맡으며 한 모금 음미하면 온 몸에 퍼져나가는 차의 향기. 그런 다도(茶道)의 과정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깨고, 커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바로 군대에서 비롯되었다. 


군필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군대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바로 이등병-일병 시절이다. 나같은 경우 일병 5호봉 때까지도 팀내 서열이 막내여서 더욱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날 위로해 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단 것이 땡긴다고, 사회 있을 때는 그닥 즐기지 않았던 믹스커피를 P.X에서 한 봉지(막대스틱 100개들이)나 사다가 관물대에 쟁여두고 매일 티타임을 즐겼더랬다. 처음에는 살찔 것 같아서 점심 먹고 한 잔씩만 먹다가, 나중에는 너무 땡겨서 하루에 2~3잔까지도 마셨던 것 같다. 점심시간에 믹스커피 한 잔 타서, 막사 옥상에 올라가 남산타워, 63빌딩, 한강, 현충원 일대를 바라보며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는 게, 그 시절의 유일한 낙이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3024334)


하지만 이후로도 믹스커피를 꾸준히 마시진 않았다. 사회 있을 때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가, 믹스커피의 그 인위적인 달달한 맛이 나중엔 거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입 안이 텁텁해지고, 살찌는 것 같아 어느 순간 믹스커피를 끊어버렸다.


그러다 15년 3월 영천으로 발굴하러 이동했을 때, 마침 발굴부대인 영천대대 P.X에 인스턴트 아메리카노 커피인 '수프리모'를 팔고 있길래, 냉큼 집어들었다. 인스턴트이긴 하지만 군대 안에서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커피 마니아들은 알 것이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아메리카노 커피를 종종 즐기곤 했다. 믹스커피에 비해 커피 본연의 향과 맛에 가까워서 마음에 들었다.


이후 다시 한 번 커피의 신세계를 접할 일이 생겼다. 작년 9월, 추석 연휴를 쇠기 위해 잠시 단 복귀했을 때의 일이다. 출타를 나갔다가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들러 우연히 '비니스 아마레또 아몬드(Beanies Amaretto Almond Flavour)' 라는 커피를 집어들었는데, 그 커피를 한 잔 맛보고 나니 다른 커피는 입에 댈 수가 없었다.



(사진: 비니스 아마레또 아몬드 커피)


이 커피 역시 인스턴트 커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몬드향이 물씬 풍기는 블렌딩 커피로, 향만 맡아도 기분이 매우 좋아지는 커피였다. 이때 당시의 나는, 발굴지에서 한창 분대장 역할을 수행하며 맘고생이 심했던 시기인데, 매일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텀블러에 커피 한 스푼씩 타서 마시곤 했다. 그럴 때면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았다.


마침 내 맞후임도 커피를 무척이나 즐기는 친구여서, 카누 커피를 하루에 4~5잔 이상 마시곤 했다. 그 친구와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시며 군 생활의 고됨을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커피 마시는 시간은 내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또 가끔은 내 관물대에 있는 다양한 커피 브랜드들을 보고 팀장님이 커피를 타달라고 한 적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커피를 타드리면 "김바리스타, 커피 맛 좋은데"라는 칭찬도 듣곤 했다.


그때부터 커피에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마신 커피는 사실 인스턴트 커피에 불과했기에, 직접 좋은 원두를 구별하는 법도 배워보고 싶었고,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가 내린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그래서 휴가 나가서 커피 관련 서적까지 사들고 와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역시 책만 읽어서는 그 욕구를 해소할 수가 없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내리고 해봐야 알텐데... 신체적 자유가 워낙 제한되는 곳이다보니, 별 도리가 없어 '나중에 전역하면 본격적으로 커피 공부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인스턴트 커피에 만족해야했다.




(사진: 휴가 때 샀던 커피 책,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실제 해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그리고 전역한 지금, 이제 비로소 커피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질 기회가 왔다. 커피 공부를 하긴 해야하는데 카페 알바를 하면서 배워볼까, 아니면 커피 학원을 다녀볼까 계속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때마침 동네 문화센터에서 '홈바리스타' 과정을 연다고 해서, 오늘 낮에 냉큼 가서 신청하고 왔다. 주당 하루씩 3개월 동안 진행되는 과정인데, 수강료가 6만원이다. 자격증반이 아니고 취미반이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 커피에 관해서는 생초보니, 취미로라도 일단 커피의 세계를 접해볼 생각이다. 우선은 커피와 친해지는 것이 시작일테니. 그 다음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진: 홈바리스타 과정 등록 영수증)


어서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워서, 후임들에게 면회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직접 내린 커피를 나눠 마시면서 함께 군 생활하던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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