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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14 軍 후임들에게 전달한 '추석 특식' 2

예전에 블로그를 통해서도 소식을 공유한 바 있습니다만, 지난 6월부터 제가 직접 주도했던 소셜펀딩이 하나 있었습니다. 땡볕에서 고생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발굴병들에게 위문품을 후원하기 위한 펀딩이었습니다. 당시 펀딩 소식은 <오마이뉴스> 등에서도 6.25 특집 기사로 메인에 올라갔고, 저 역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펀딩을 홍보하고 다녔지요.


그렇게 7월 31일부로 펀딩이 종료되었는데, 최종 모금액은 48만원이었습니다. 200만원을 목표액으로 힘차게 시작했는데, 달성률 24%에 불과해 아쉽던 차였습니다. 애시당초 모금액으로는 더위에 고생하는 발굴병들에게 아이스패드를 사서 지급하고, 차액으로 어렵게 살고 계시는 6.25 참전용사 분들을 후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모금된 금액만으로는 한참 모자라겠더라고요. 부득이하게 집행 용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이 컸습니다.



펀딩을 대리했던 <나도펀딩> 측에서는 "전액을 참전용사 후원에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안해왔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물론 그쪽이 더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펀딩의 취지는 '고생하는 발굴병을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알리고 펀딩을 진행해서 모금한 건데, 취지에서 다소 벗어난 용도로 집행을 한다면 네티즌들을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찝찝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돈은 오로지 발굴병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후임들을 위해 쓰고자 결정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41만원(세금 떼고 나니 이렇게 또 줄어들더군요)으로 50명이 넘는 발굴병들에게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죠. 국유단 출신 동기와 선임 그리고 아직 복무 중인 후임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먹을 게 남는 거다'라고 외치더군요. 


군인들은 늘 굶주려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역시 군 생활 당시에는 늘 굶주려 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세 끼 밥 꼬박꼬박 먹이는 곳이 군대지만, 이상하게 밥 먹고 돌아서면 금세 허기 지는 곳이 군대이기도 합니다. 개인정비시간(휴식)이면 대부분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걸그룹 아니면 먹방을 보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곤 했죠. 사회에서야 언제든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출타의 자유가 없는 사병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거니와 대다수 병사들이 출타를 앞두고서는 '나가서 먹을 음식' 리스트부터 작성하곤 했지요.


당장 이 돈이 돌아가야 할 후임 병사들도 그렇고, 제 개인의 경험에 빗대서도 그렇고 먹을 것으로 전달하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추석 특식'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40만원이라는 한도 내에서, 50여명이 넘는 인원들을 골고루 먹여야 하다보니, 메뉴 선택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KFC에서 '타워박스' (7,300원)와 '고구마너겟'(2,000원)을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1인당 한 세트씩 돌아갈 수 있게 했으니, 저도 군 생활 중에 꿈꿔보지 못한 호화 만찬이나 다름 없었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추석 특식 수송 작전'


발굴병들이 추석 연휴를 쇠기 위해, 잠시 자대인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복귀한 어제를 D-day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부대에 연락해서 잔류인원 파악하고, 인원 수에 맞춰 KFC에 단체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그걸 혼자서 짊어지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양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겁니다. KFC 측에서도 "몇 박스는 될 거다. 절대 혼자 오시면 안된다"고 만류하더군요. 운전면허도 없고, 같이 들고 갈 만한 사람도 없는지라... 결국 군 생활 중 직속상관으로 모셨던 중대장님께 S.O.S를 요청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중대장님이 자가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하여 햄버거 세트를 수송해올 수 있었습니다. 중대장님은 "너 때문에 살다 살다 별 짓 다한다"고 투덜거리셨지만, "그래서 중대장님 것도 하나 샀지 말입니다"라고 하니, 금세 좋아하시더군요.



막사에 도착해 방송으로 후임병들 집합시키니, 애들이 슬금슬금 생활관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뾰루퉁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애들이 제 얼굴을 보고 1차 충격을 받더니, 뒤에 쌓인 햄버거 박스들을 보고 2차로 놀랍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엽더군요. (처음에 뾰루퉁했던 건, 이제 좀 쉬려고 하는데 정신교육이라도 시키나 싶어 그랬답니다 ㅎㅎ)


행정계원들이 인원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햄버거 양이 모자라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지만, 이제 곧 집에 갈 말년들이 "어차피 우린 나가서 먹으면 된다"고 양보하는 덕분에 다들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못내 미안하더군요.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애들에게 특식을 나눠주고, 일일이 찾아가서 이번 특식의 의미를 전달해줬습니다. "너희 발굴병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네티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산 거니까, 나한테 감사하지 말고 성금을 모아준 네티즌들에게 감사하면서 먹자"고 말이죠. 애들도 퍽이나 감동 받은 눈치였습니다. 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햄버거를 입 안 가득 욱여넣는 녀석들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안쓰럽기도 하고 '역시 특식으로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사들의 고충은 전역자가 더 잘 아는 법


저희 부대 최고 어른이신 단장님(육군 대령)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시고, 저를 소환하셨습니다. 그래서 단장님과 만나 차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냐"면서 격려해주시더군요. 사실 전역하고서도 서포터즈다 뭐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대를 방문해서 일도 돕고, 후임들하고 놀아주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단장님께서도 "너 대체 언제 전역하려고 그러냐. 그러지 말고 아예 말뚝 박아라.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돈도 주고... 얼마나 좋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뚝을 권유하시더군요.


저도 제가 평소 품었던 생각을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전역하면 보통 자기가 복무했던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 부대에서 복무했던 전역자들도 전역하고나면 부대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부대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라는 숭고한 보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대에 자긍심을 갖고, 자주 부대를 찾아 고생하는 후임들을 격려하는 게 전역병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구자가 되어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해보니까 아무리 사병 복지를 늘린다고 해도, 간부와 사병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는 큰 것 같았다. 전역한 내가 그래도 병사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늘 배고파하는 후임들에게 특식으로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어제 그렇게 특식을 전달하고 오니 마음 한 구석이 많이 뿌듯합니다. 사실 이번 펀딩 초기에 "사병들의 복지가 중요하지만, 그걸 왜 펀딩으로 도우려 하느냐. 군 차원에서 해야 될 일 아니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성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그 말에도 동의합니다. 저 역시 일부 비리군인들이 방산비리로 해먹은 돈만 풀어도, 사병 복지가 지금보단 훨씬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펀딩은 어디까지나 "국민들도 너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부디 힘내!"라고 격려해주기 위한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일에 치이고, 간부들에게 치이고... 위로 받을 구석 하나 없는 사병들에게는 한 마디의 따뜻한 위안과 격려가 절실한 법입니다. 저 역시 군 생활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고요. 그런 순수한 마음까지 왜곡되고, 저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에는 다소 서운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뭐 어찌되었건 몇몇 뜻 있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신 성금 덕분에, 50여 명의 발굴병들이 호화로운 추석 특식을 즐기며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이 친구들만 고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맘 편하게 귀성길에 올라 고향에서 가족 품에 안길 때, 여전히 전/후방 각지에서는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60만 국군 장병이 있습니다. 펀딩을 주도했던 한 사람으로써, 마지막 한 가지를 더 제안하고자 합니다. 잠시나마 국군 장병 여러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주위에 군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덕담 한 마디 건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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