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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08 [영화] <밀정> - "의열단의 이름, 만세불망하리라"

어제 개봉한 영화 <밀정>을 보고 왔습니다. 개봉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봤더랬죠. 사실 이 영화는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 전공이 전공이다보니, 역사를 소재로 한 팩션영화(그중에서도 특히 독립운동에 관한 영화)에 대한 개봉 소식이 들려오면 늘 달려가서 보곤 합니다.



의열단을 소재로 한 팩션영화


영화 <밀정>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1920년대에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활약했던 항일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1923년에 있었던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과 '제2차 대암살 파괴계획'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 다수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자결한 사건입니다. 후자는 이번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사건인데, 의열단이 중국에서 직접 제조한 폭탄을 식민지 조선의 수도인 경성으로 반입해 동시다발적 폭탄테러를 벌이려던 계획이었습니다. 파괴 대상은 조선총독부, 조선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식민지 통치기관들이었고, 암살 대상은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조선총독부 수뇌들이었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계획이 사전에 탄로나는 바람에 작전은 미수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작전에서 경기도 경찰부 고등계 소속 경부인 황옥이 의열단의 폭탄 반입을 남몰래 도왔다고 하는데요, 재판 당시에는 자신이 의열단과 무관함을 주장하여 지금까지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영화도 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고요. 이렇게 때로는 역사가 밝혀주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사진: 영화 <밀정> 스틸컷 - 출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암살>보다 더 재밌게 본 영화


개인적으로 작년에 개봉했던 비슷한 주제의 영화 <암살>보다 더 재밌게 봤습니다. <밀정>에서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을 맡은 송강호와 역시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은 엄태구의 심리전을 보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의열단원들을 밖으로 빼내려는 이정출과 그런 이정출의 틈을 파고들며 의열단원들을 찾아내려는 하시모토의 대결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박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의열단 vs 일본 경찰'의 구도라기보다는 '밀정 vs 일본 경찰'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수시로 벌어지는 총격전 역시 스릴 넘쳤습니다. 의열단원들은 실제로 명사수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제법 자주 묘사됩니다. 단총 한 자루를 가지고서 다수의 일본 경찰을 가지고 노는 장면 말이지요.


잔혹하다고 외면해서는 안될 우리의 역사


그리고 영화가 꽤나 잔혹하다는 평이 있습니다. 저 역시 보는 내내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고문 장면 등이 상당히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회피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눈을 부릅 뜨고 지켜봤습니다. 마치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직시하고, 그 치욕과 분노를 가슴에 새기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실제로 잔혹하다며 평점을 낮게 주는 관객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외면하고 싶지만 저게 진짜 우리 선조들이 겪어온 역사라고. 오히려 저기서 묘사된 장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저들의 희생과 고통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의열단장 정채산 역으로 특별출연한 이병헌. 이병헌의 연기력만큼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약산 김원봉을 모티브로 한 역할인데, 의열단 리더의 고뇌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으로 분한 조승우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처럼, 이번 영화의 가장 큰 공신 중 한 명은 역시 이병헌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두 이병헌의 입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영화 <밀정>에서 이병헌이 맡은 의열단장의 모티브가 된 '약산 김원봉')


영화가 가진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밀정>을 보고 나오는 내내 영화가 가진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년 영화 <암살>을 보고 나오는 길에, 관객들 입에서 '김구', '김원봉'이라는 이름이 회자되는 것을 보며 새삼 고무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해 깨닫는 시간이었는데, 이번 영화를 보고 난 소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학이란 결국 대중과 소통해야 그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역사학자들이 세미나 현장에서 새로운 논문 발표하고, 초야에 묻혀 연구를 위한 연구에나 매진할지언정, 그게 대중과 유리되어 있다면 결국 '죽은 학문'에 불과할 뿐이죠. 저 역시 우리의 잊혀져 가는 역사를 어떻게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늘 촛점을 맞추고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 대중에 미치는 파급력만큼은 논문과 비견될 일이 아니죠. 



(사진: 해방 후 촬영된 실제 의열단원들의 모습)


그런 점에서 이번에 개봉한 영화 <밀정>이 점점 흐릿해져만 가는 역사의 기억을 대중들에게 다시 또렷하게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해봅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어주신 김지운 감독님과 좋은 연기 해주신 배우 분들께도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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