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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9.20 [영화] <카트> (2014)

영화 <카트>를 봤습니다.


이 영화도 봐야지 봐야지 하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본 영화입니다. 한 대형마트 계약직 판매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 통지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요, 2007년에 있었던 한 대형마트에서의 대량 해고 사태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딱히 그 사건 하나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곳곳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풍경이기 때문이죠.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작년 말에 방영했던 드라마 <송곳>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드라마 <송곳>이 영화로 리메이크된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이 영화가 더 먼저 개봉했더군요. 대형마트의 대량 해고 사태에 직면해 투쟁을 벌이는 여자 판매사원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회사의 부당 해고 방침과는 무관하게 자리가 보장된 정규직 남자사원이 여자 판매사원들과 연대해서 노조 투쟁을 벌이는 것도 그렇고. 놀라우리만치 드라마와 영화의 구조가 빼다박은 듯 흡사합니다.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 둘 다 출연한 배우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노조 활동을 거부하거나 노조에서 탈퇴하는 이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내내 머릿 속을 맴돌더군요. 영화에서 보면 마트 측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이간계를 씁니다. 몇몇 주동자들에게 "당신만은 자리를 보장할테니, 노조에서 탈퇴해라"라고 유혹하죠. 사람인 상 그런 유혹에 당연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투쟁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직업 활동가'나 먹고 사는 게 충분히 보장되어 마트 알바를 그저 용돈벌이 정도로나 하는 이들이라면 별 의미 없는 제안이겠지만, 대다수의 계약직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입니다. 그저 '반찬값' 벌러 나온 게 아니라 '생계'를 위해 뛰어나온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마트 측의 제안은 정말 달콤한 악마의 열매일 수밖에요.


결국은 이에 굴복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은 굴복한 이들에 대해 '변절자'라고 욕하고 매도하지만,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누가 저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당장 집에 돌아가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데 말이죠. 어떻게 보면 끝까지 남아서 투쟁을 벌이자고 외치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드라마나 영화니까 가능하지, 실제로 당장 내 가족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내 아들이 급식비를 못내서 점심을 굶는다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를... 그리고 이길 확률도 희박한 이 싸움을 굳이 내가 해야하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일제강점기의 상황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군요. 독립운동가들을 끊임없이 회유하기 위해 이간책을 썼던 일제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굴복하며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조선인들... 여기에는 생계형 친일파 혹은 대다수의 힘 없는 민중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물론 두 사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다소 어폐가 있겠지만, 결국 강자 앞에서 굴복해야 하는 약자들의 현실이나, 생계를 위해 현실과 일정 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힘 없는 민중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독립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카트>에서도 대형 마트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부당해고에 끝까지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지금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죠. 대량 해고 사태에 몇 년, 몇십 년 동안 굴하지 않고 천막 농성을 벌이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저들에겐 도대체 어떤 신념이 있기에,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가족들의 생계를 외면하면서까지 투쟁을 벌이는 것일까. 그 신념이란 것이 일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나보다는 우리를 위하자는 마음이 신념으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요? 지금 당장은 나나 내 가족이 고통받아도, 결국 나 하나의 희생으로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것을 꿈꾸기에... 그들은 기꺼이 투쟁에 앞장섭니다. 우리 독립운동가 선조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마지막으로 영화 <카트>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우리를 한 번만 봐달라"고. 이 외침은 우리에게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길거리에서 내몰려 천막 농성을 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언제 한 번 따뜻한 관심 한 번 줘봤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하게 됩니다. 당장 저게 내 가족의, 내 미래의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니까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고 자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군요.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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