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 


중간에 군대도 갔다오고, 전역 후에도 바로 복학하지 않고 1년 동안 쉬면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네요. 복학을 앞두고 알아보니 학교는 여전하면서도 바뀐 것도 많은가봅니다. 당장 학제개편이 이뤄지면서 단과대학들도 다 바뀌었습니다. 교내 비리 문제로 시끌벅적한 건 변한 게 전혀 없네요. 씁쓸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휴학하고 지금처럼 사는 게 너무 즐거워서 복학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한 때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며 배운 게 뭔가 회의감도 컸습니다. 그렇다고 자퇴라는 선택도 막연하기만 해서, 결국 복학하기로 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학기는 지난 번에 받아둔 장학금이 있어서 그냥 버리기도 좀 아깝더군요. 대신 올해는 학점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정말 듣고 싶은 과목들만 듣다가 졸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 4학년 1학기 수강신청을 완료했습니다.


옛날엔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서버가 폭주하는 바람에 정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수강신청을 위해 아침 일찍 고성능 컴퓨터가 있는 PC방에 가서 수강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까지 큰 실패 없이 무난하게 듣고 싶은 과목들을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 수강신청을 위해 오픈시간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대기했는데, 이제는 정말 싱겁게 끝나는군요. 서버도 여유롭고, 사람들도 여유롭습니다. 아마 4학년이라 다들 여유가 생긴 듯 합니다. 자리도 많이 널널하네요. 그래서 장학금 신청이 가능한 최소 학점(12학점)으로 수강신청을 금세 끝냈습니다.


이번에는 총 4과목을 수강합니다. 전공은 '현대북한사' 딱 하나 뿐이네요. 1교시 수업이라 아침 일찍 가야하는 게 영 고달픕니다만 (출근길과 맞물려 인파가 장난이 아닙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밖에 학교를 가지 않아 예전보다는 편하게 통학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 과목들은 정말 제가 듣고 싶은 과목들만 꾹꾹 눌러담았습니다. 시간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이러닝(온라인강의) 강의로 '영화 중국어'를 골랐습니다. 오프라인 중국어강좌를 들으려고 했더니, 전부 1학년 때 들었던 과목이라 또 들으면 재수강이 됩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온라인 강의를 하나 신청했습니다. 올해 안에는 중국어를 배우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학교에 중국어 강의가 있는데 학원부터 가는 것보단 학교에 있는 강의를 잘 활용하는 게 우선이겠다 싶었습니다. 올해는 학교에 설치된 중국어 관련 과목들을 좀 듣다가, 학원으로 갈아탈 생각입니다.


'취재와 보도'는 언론정보학과 전공입니다. 저는 역사 전공이고 복수/부전공을 선택하지 않아 원래 들을 수 없는 과목이지만 미리 교수님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다보니 현장 취재를 할 일이 잦은 편입니다. 그런데 취재 요령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보니 주먹구구식으로 취재하곤 했습니다. 딱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정규 이론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에, 이번 참에 한 번 제대로 배워보려고 합니다. 완전 실습형 강의라고 하니 더욱 재밌게 배울 수 있을 듯 합니다.


교양으로 선택한 '문예창작의 이론과 실제'도 구미가 당기는 과목입니다. 그동안 블로그 글쓰기, 기사쓰기와 같은 비문학 글쓰기는 꾸준히 해왔지만 소설과 같은 문학적 글쓰기는 제대로 도전해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문학적 재능은 젬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방면으로 글쓰기 역량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한 번 신청해봤습니다.


복학하면 휴학생 때보단 덜 여유롭겠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이니 예전보단 널널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가는 통학길에 책도 좀 많이 읽고 남은 캠퍼스 생활 좀 의미 있게 보내다가 떠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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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omn.kr/m67r


[내용 요약]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하 박근혜 게이트)의 본질도 결국은 권력에 중독된 이들에 대한 얘기다. 비선 실세로 군림한 최순실 일당과 그런 최순실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처한 박근혜나 심각한 권력중독자들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중독된 나머지 그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훔치고 사유화하고자 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는 1%의 권력을 향한 그들의 욕망에서 비롯됐다.


이번에 출간된 <박근혜의 권력 중독>은 바로 권력중독자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책이다. 저자 강준만은 그동안 정치, 역사, 사회 등 분야와 경계를 넘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을 날카로운 필치로 비판해온 바 있다. 얼마 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문제아 트럼프의 진실을 추적했던 그가 드디어 한국사회의 문제아, 박근혜에게 칼날을 들이댔다.


그가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하나의 의문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때는 '선거의 여왕', '한국의 잔 다르크' 등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받던 박근혜가 한 순간에 최순실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린 상황 자체가 의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게이트가 폭로된 이후 쏟아지는 언론 보도만 보면 박근혜는 아무런 의지도 생각도 없는 정신박약자나 다름 없다.


정말 그녀에겐 어떠한 의제와 비전도 없었던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강준만은 박근혜의 생애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박근혜는 권력 행사 그 자체를 즐겼던 의전 대통령이었다는 것.


- 이하 내용은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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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평 쓰는 법

저자: 이원석

출판사: 유유

출판년도: 2016.12.14

가격: 10,000원


작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꾸준히 기고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서평은 전문 분야도 아니고, 누군가의 책을 함부로 평가할 만큼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닌 터라 유난히 힘든 활동 중 하나입니다. 다만, 제가 쓴 서평들이 높은 등급으로 자 메인 배치된 덕분에 떠밀리다시피 서평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서평단이 되면 일주일에 두 권씩 신간 서적을 받아보는 특권이 있거든요. 책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가난한 학생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그래서 늘 서평 쓰는 것을 힘들어하면서도 차마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쓰고 힘들어하고 쓰고 힘들어하고를 무한반복 중입니다.


어차피 꾸준히 서평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정말 제대로 쓰는 법을 익히는 게 맞습니다. 사실 서평 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스킬조차 없이 제멋대로 쓰다보니까 때론 제 스스로 제 글이 마음에 안 들 때도 있고, 스스로도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서평 쓰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보고자 집어들게 된 책입니다.


일단 책이 굉장히 얇습니다. 페이지도 16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이고, 책 자체도 작습니다. 이렇게 얇고 작은 책, 더욱이 종이조차 재생종이를 활용해 금세라도 찢어질 듯한 연약한 책인데 책값은 일반적인 책과 비슷하게 책정되어 있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버라도 튼튼했다면 그 가격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을텐데 말이죠.


다만 내용은 꽤나 알찬 편입니다. 서평을 왜 써야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미리 설명하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 구체적으로 서평을 쓰는 법, 좋은 서평의 예와 나쁜 서평의 예 등을 알차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서평들을 다시 훑어볼 때마다 단순한 책 소개에 그치는 게 아닐까 싶어 스스로도 혼란스러웠지만, 저자는 "그래도 기본적으로 요약은 깔고 들어가는 게 맞다"고 해서 다소 위안이 됩니다. 다만 요약만 존재한다면 그건 정말 책 소개에 불과하고, 반드시 서평가 자신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서평이란 기본적으로 책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평도 있을 수 있지만, 나쁜 평도 있어야 합니다. 저같은 경우 지금까지 대부분 그 책을 소개하면서 공치사에 가까운 평들만 남겼습니다. 물론 그 책을 깔 만큼 내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실력 없는 사람이 어줍잖게 비판하려 들었다간 되레 깡통 소리만 듣기 십상이니까요.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인지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가혹하리만치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서평의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돈과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는 책들은 거를 수 있도록 거름망 역할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어느 서평가는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나는 이 책을 모두 내다버렸다", "행여나 쓰레기통에서 주워다 누군가 읽을까봐 갈기갈기 찢어서 버렸다"는 등의 독설을 남겼더군요.


저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그렇게 독설을 할만큼 책을 읽으며 불만을 가져본 경험이 그닥 없고, 약간 무섭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예인데, 책이 아닌 영화에 대해 독설에 가까운 평을 올렸다가 제대로 한 번 데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잘못한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평론이야 독설도 포함되니까요. 그러나 제 스스로 다른 사람의 비난을 수용하거나 무시할 정도의 깜냥이 안되다보니 후폭풍이 두려웠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선 나도 욕 먹을 각오를 깔고 들어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서평가의 조건에는 한참 못미치는 듯 합니다.


서평을 쓰는 스킬에 대해서도 가볍게 다루고 있지만, 깊이가 없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서평가로서의 마인드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공치사에 가까운 형식적인 서평, 단순 책 요약에 치우치는 서평을 하고 있던 건 아닌가 스스로를 계속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당장 다음에 쓸 서평이 훨씬 멋드러지게 잘 나올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평소보다 글을 쓸 때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지적한 바를 바탕으로 제 서평에 뭐가 부족한지 계속 고민하면서 퇴고를 해야겠죠.


PS. 그런 점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제일 마음 편합니다. 마음이 편하니 문장도 잘 뽑힙니다. 솔직히 공식적인 매체가 아닌 개인 공간이다보니 어떻게 쓰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제 편한대로 쓰다보니 글 쓰는 게 부담이 없죠. 매체에 담을 땐 퇴고도 여러 번 해야하고, 공적인 매체다보니 독자들의 반응들도 고려해야하고, 표현도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야하고, 때론 제 주장에 따른 자료조사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보다 매체 글쓰기가 훠얼씬 힘든 게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매체에 글을 쓰게 되느냐도 글쓰기 스타일이나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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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http://omn.kr/m1ap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서평은 링크를 참조)


이번에 출간된 <동경삼재>를 읽었다. 동경삼재(東京三才)는 일본 동경(도쿄)으로 유학 간 조선인 유학생들 중 세 명의 인재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바로 당대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던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를 뜻한다.


3.1운동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독립을 부르짖었던 최남선과 이광수는 1920년대 이후 친일의 길을 걸었고, 1940년대에는 동포 청년들에게 전선으로 나가 천황을 위해 죽을 것을 독려했다. 지조를 지킨 이는 홍명희 한 사람 뿐이었다.


해방 후 홍명희는 월북하고, 최남선과 이광수는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나왔다. 기회를 놓칠세라 그 둘은 스스로의 반민족행위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제 몸을 팔아서 아버지의 고난을 면케 하려는 심청의 심경밖에 있을 것이 없었다. 다른 친일파는 어떠한지 몰라도 내가 하려는 친일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가 생기는 노릇은 아니었다. (…중략…)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자처하던 나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 이광수, <나의 고백>


"내가 친일파인가 아닌가는 나의 저서가 굉장히 잘 팔리는 것으로 보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 최남선


해방 후 이들이 내뱉은 정교한 변명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들이 한때마나 민족지도자랍시고 독립만세운동을 독려하고 청년들에게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단 말이던가. 뻔뻔하기까지 한 저들의 행태를 보며 오늘날 양심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가 오늘날 지식인들의 변절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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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6년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군요. 제겐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올 한 해는 '전역의 해'였습니다. 4월에 전역을 하면서 마침내 1년 9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전환됐으니까요. 비로소 다시 태어난 해라고나 할까요. 전역하고 나서는 군 생활 중 정리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왔던 것 같습니다. 


직접 커피 한 잔 내려마시고 싶어서 커피 공부를 시작했고, 남자라면 악기 하나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해금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열정대학과 이태원대학 등 대안대학에서 무예24기를 가르치면서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강사로 채용되어 중학생들에게도 무예24기를 지도했는데, 여기서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깨닫는 계기가 됐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짭짤한 원고료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밑천이 되어주었고, 꾸준한 활동으로 상도 탔으니까요. 그리고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마침내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올 한 해는 대충 이 정도로 언급하기로 하고 2017년 신년 목표를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1. 형의권의 꾸준한 수련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됐습니다.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배움에도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예24기를 수련하다가 한계에 봉착해서 여기에 왔으니, 오히려 더 전념할 수 있겠죠. 만약 큰 고민 없이 시작했다면, 그만큼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을 겁니다. 오랜 방황과 고민 끝에 어렵게 시작한 권술이니만큼, 평생 공부라고 생각하고 수련을 하려고 합니다. 사부님이나 사형들 말씀으로는 1년 동안은 체(體)를 만들어야해서, 그 과정이 대단히 지루하다고 합니다. 그 지루함을 못 이기고 떠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고. 그래서 저는 새해 목표 중 하나를 형의권의 꾸준한 수련으로 잡았습니다. 지루함과 싸워 이기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수련해서 몸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변이 없는 한, 형의권을 중도에 관둘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2. 무사히 졸업하기


드디어 내년에 복학을 합니다. 오랜 시간 학교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복학이 좀 두렵습니다. 내년엔 17학번이 들어오는데, 제 학번이 11학번입니다. 완전 화석인 셈이죠.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면서 학교 생활하려니 걱정도 되고, 그동안 굳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나 할까 걱정됩니다. 다행히 1학기 등록금은 장학금을 타뒀기에 맘 편하게 다닐 수 있겠습니다만, 2학기 장학금을 탈 수 있을지도 우려스럽고요. 사실 지금 상황에서 토익 점수와 졸업논문만 있으면 조기 졸업이 가능한데, 그에 대한 대비도 전혀 없는 상태라 좀 아쉽군요. 이건 한 번 알아볼 생각입니다. 반짝 해서라도 저 조건 충족이 가능하면 조기 졸업도 노려볼 만 하니까요. 하루 빨리 학교를 뜨는 게 제 소원입니다.


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꾸준히 활동하기


올해 군 전역 후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이었습니다. 용돈벌이나 할 셈으로 시작한 시민기자 활동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의미 있었습니다. 일단 부수입이 매우 짭짤했습니다. 지금까지 기사쓰기로 벌어들인 원고료만 200만원이 넘었습니다. 그 돈으로 술도 사 먹고 책도 사 읽고 무술도 배우는 등 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돈을 떠나 제 글쓰기를 가다듬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고요. 글 쓰는 지적노동이 군 생활하며 삽질하는 육체노동 못지 않게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도 글 한 편 탈고해서 메인에도 올라가보고, 제 글을 통해 누리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달의 게릴라' 상도 타보고, '2월 22일상'이라는 상도 수상해서 내년 2월에 시상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 서평단에 합류하면서 매주 2권씩 신간 서적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혜택도 입었습니다. 덕분에 요새는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요새 제 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년에 복학하면 학교생활이 바빠서 지금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데요, 열심히는 못해도 꾸준히 활동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4. 운전면허 따기


부끄럽게도(?) 26살 먹도록 운전면허를 못 땄습니다. 따야할 필요성은 강하게 느끼는데,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군요. 가급적 복학 전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목표를 세워봤습니다. 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운전면허는 꼭 따고 싶습니다.


5. 책 많이 읽기


아무리 바빠도 책은 지금보다 더 많이 읽고 싶습니다. 독서만큼 유익하고 재밌는 취미가 없거든요. 전공 서적이나 취업을 위한 수험서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86권의 책을 읽었고, 전역 후에는 <오마이뉴스> 서평단 활동을 위해 책을 꾸준히 읽어오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읽고 싶은 책은 나날이 쌓여만 가고 있으니까요.


6. 해금 꾸준히 배우기


생각해보니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반 년이 넘었습니다. 해금 배우기는 말년 병장 시절 정리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대견함을 느낍니다. 이것 역시 형의권처럼 이변이 없는 한, 꾸준히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해금을 대여해서 쓰고 있었는데, 조만간 아예 제 해금을 장만할 생각입니다. 언제까지 배워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스승이 따로 필요 없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7. 중국어 배우기


중국어를 참 좋아합니다. 영어는 아무리 배워도 머리에 안 들어오는데, 어릴 적부터 중국무술이나 중국요리 등 중국문화를 좋아했다보니까 중국어도 친숙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나 대학 교양수업 때면 제일 열심히 들었고, 성적도 항상 우수했습니다. 문제는 꾸준히 배웠어야 했는데, 단기로 끝내서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거. 내년부터는 중국어를 한 번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제 소원이 그 좋아하는 중국무협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 겁니다. 아울러 앞으로 중국 갈 일이 많을 텐데, 현지에서 통역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도 목표고요. 그러려면 역시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배워야겠죠.


8. 진로 정하기


이것도 중요한데 여전히 막막한 부분입니다. 내년만 학교를 다니면 졸업인데, 아직까지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네요. 입대하기 전만 해도 당연히 졸업하고 대학원 가서 역사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스스로 공부 체질이라는 생각도 안 드는군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시민기자 활동을 하다보니 그것 역시 딱히 제 체질은 아닌 듯 합니다. 여러모로 가장 많이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올해 안에는 생각을 정리해서, 취업을 준비해야겠죠.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네요. 너무 무리하게 목표를 세우면 오히려 질려버릴 듯 합니다. 사실 이미 저 정도만으로도 굉장히 거창한 듯 하네요. 그리고 정리해놓고보니 죄다 돈을 많이 벌어야 가능한 일인 듯 합니다. 배움도 결국 돈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일단 최대한 지출을 아끼고,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부수입을 늘리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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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omn.kr/l6vm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대결>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찍은 감독이 <서유기 리턴즈>, <치외법권> 등 전형적인 B급 영화를 많이 찍은 감독이라, 약간 의구심이 생기긴 했지만 네티즌들의 호평을 보고 기대를 했었더랬습니다. 더욱이 취권으로 현피를 뜬다는 설정도 반가웠고, 영춘권이나 칼리 아르니스, 실랏까지 다양한 무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액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스토리는 당연히 진부하고, <취권>에 대한 오마주라지만 어설픈 오마주의 과도한 남발로, 그저 <취권>의 아류작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저도 영화 보는 눈이 높지 않아서, 웬만하면 좋게 평가해주는데 이 영화는 실망 그 자체입니다. 스토리가 진부했다면 액션이라도 괜찮았어야 했는데, 이건 영... 어설픈 취권 연기도 그저 웃플 뿐이었습니다.


실망스러운 감정으로 <오마이뉴스>에 리뷰를 써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대체합니다.


PS. 극장 가서 보기엔 본전 생각 많이 나는 영화입니다. 나중에 케이블 채널로나 보면 좋을 듯 합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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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블로그를 통해서도 소식을 공유한 바 있습니다만, 지난 6월부터 제가 직접 주도했던 소셜펀딩이 하나 있었습니다. 땡볕에서 고생하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발굴병들에게 위문품을 후원하기 위한 펀딩이었습니다. 당시 펀딩 소식은 <오마이뉴스> 등에서도 6.25 특집 기사로 메인에 올라갔고, 저 역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펀딩을 홍보하고 다녔지요.


그렇게 7월 31일부로 펀딩이 종료되었는데, 최종 모금액은 48만원이었습니다. 200만원을 목표액으로 힘차게 시작했는데, 달성률 24%에 불과해 아쉽던 차였습니다. 애시당초 모금액으로는 더위에 고생하는 발굴병들에게 아이스패드를 사서 지급하고, 차액으로 어렵게 살고 계시는 6.25 참전용사 분들을 후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모금된 금액만으로는 한참 모자라겠더라고요. 부득이하게 집행 용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이 컸습니다.



펀딩을 대리했던 <나도펀딩> 측에서는 "전액을 참전용사 후원에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안해왔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물론 그쪽이 더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펀딩의 취지는 '고생하는 발굴병을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알리고 펀딩을 진행해서 모금한 건데, 취지에서 다소 벗어난 용도로 집행을 한다면 네티즌들을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찝찝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돈은 오로지 발굴병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후임들을 위해 쓰고자 결정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41만원(세금 떼고 나니 이렇게 또 줄어들더군요)으로 50명이 넘는 발굴병들에게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죠. 국유단 출신 동기와 선임 그리고 아직 복무 중인 후임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먹을 게 남는 거다'라고 외치더군요. 


군인들은 늘 굶주려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역시 군 생활 당시에는 늘 굶주려 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세 끼 밥 꼬박꼬박 먹이는 곳이 군대지만, 이상하게 밥 먹고 돌아서면 금세 허기 지는 곳이 군대이기도 합니다. 개인정비시간(휴식)이면 대부분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걸그룹 아니면 먹방을 보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곤 했죠. 사회에서야 언제든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출타의 자유가 없는 사병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거니와 대다수 병사들이 출타를 앞두고서는 '나가서 먹을 음식' 리스트부터 작성하곤 했지요.


당장 이 돈이 돌아가야 할 후임 병사들도 그렇고, 제 개인의 경험에 빗대서도 그렇고 먹을 것으로 전달하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추석 특식'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40만원이라는 한도 내에서, 50여명이 넘는 인원들을 골고루 먹여야 하다보니, 메뉴 선택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KFC에서 '타워박스' (7,300원)와 '고구마너겟'(2,000원)을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1인당 한 세트씩 돌아갈 수 있게 했으니, 저도 군 생활 중에 꿈꿔보지 못한 호화 만찬이나 다름 없었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추석 특식 수송 작전'


발굴병들이 추석 연휴를 쇠기 위해, 잠시 자대인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복귀한 어제를 D-day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부대에 연락해서 잔류인원 파악하고, 인원 수에 맞춰 KFC에 단체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그걸 혼자서 짊어지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양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겁니다. KFC 측에서도 "몇 박스는 될 거다. 절대 혼자 오시면 안된다"고 만류하더군요. 운전면허도 없고, 같이 들고 갈 만한 사람도 없는지라... 결국 군 생활 중 직속상관으로 모셨던 중대장님께 S.O.S를 요청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중대장님이 자가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하여 햄버거 세트를 수송해올 수 있었습니다. 중대장님은 "너 때문에 살다 살다 별 짓 다한다"고 투덜거리셨지만, "그래서 중대장님 것도 하나 샀지 말입니다"라고 하니, 금세 좋아하시더군요.



막사에 도착해 방송으로 후임병들 집합시키니, 애들이 슬금슬금 생활관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뾰루퉁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애들이 제 얼굴을 보고 1차 충격을 받더니, 뒤에 쌓인 햄버거 박스들을 보고 2차로 놀랍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엽더군요. (처음에 뾰루퉁했던 건, 이제 좀 쉬려고 하는데 정신교육이라도 시키나 싶어 그랬답니다 ㅎㅎ)


행정계원들이 인원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햄버거 양이 모자라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지만, 이제 곧 집에 갈 말년들이 "어차피 우린 나가서 먹으면 된다"고 양보하는 덕분에 다들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못내 미안하더군요.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애들에게 특식을 나눠주고, 일일이 찾아가서 이번 특식의 의미를 전달해줬습니다. "너희 발굴병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네티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산 거니까, 나한테 감사하지 말고 성금을 모아준 네티즌들에게 감사하면서 먹자"고 말이죠. 애들도 퍽이나 감동 받은 눈치였습니다. 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햄버거를 입 안 가득 욱여넣는 녀석들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안쓰럽기도 하고 '역시 특식으로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사들의 고충은 전역자가 더 잘 아는 법


저희 부대 최고 어른이신 단장님(육군 대령)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시고, 저를 소환하셨습니다. 그래서 단장님과 만나 차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냐"면서 격려해주시더군요. 사실 전역하고서도 서포터즈다 뭐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대를 방문해서 일도 돕고, 후임들하고 놀아주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단장님께서도 "너 대체 언제 전역하려고 그러냐. 그러지 말고 아예 말뚝 박아라.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돈도 주고... 얼마나 좋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뚝을 권유하시더군요.


저도 제가 평소 품었던 생각을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전역하면 보통 자기가 복무했던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 부대에서 복무했던 전역자들도 전역하고나면 부대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부대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라는 숭고한 보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대에 자긍심을 갖고, 자주 부대를 찾아 고생하는 후임들을 격려하는 게 전역병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구자가 되어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해보니까 아무리 사병 복지를 늘린다고 해도, 간부와 사병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는 큰 것 같았다. 전역한 내가 그래도 병사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늘 배고파하는 후임들에게 특식으로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어제 그렇게 특식을 전달하고 오니 마음 한 구석이 많이 뿌듯합니다. 사실 이번 펀딩 초기에 "사병들의 복지가 중요하지만, 그걸 왜 펀딩으로 도우려 하느냐. 군 차원에서 해야 될 일 아니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성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그 말에도 동의합니다. 저 역시 일부 비리군인들이 방산비리로 해먹은 돈만 풀어도, 사병 복지가 지금보단 훨씬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펀딩은 어디까지나 "국민들도 너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부디 힘내!"라고 격려해주기 위한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일에 치이고, 간부들에게 치이고... 위로 받을 구석 하나 없는 사병들에게는 한 마디의 따뜻한 위안과 격려가 절실한 법입니다. 저 역시 군 생활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고요. 그런 순수한 마음까지 왜곡되고, 저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에는 다소 서운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뭐 어찌되었건 몇몇 뜻 있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신 성금 덕분에, 50여 명의 발굴병들이 호화로운 추석 특식을 즐기며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이 친구들만 고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맘 편하게 귀성길에 올라 고향에서 가족 품에 안길 때, 여전히 전/후방 각지에서는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60만 국군 장병이 있습니다. 펀딩을 주도했던 한 사람으로써, 마지막 한 가지를 더 제안하고자 합니다. 잠시나마 국군 장병 여러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주위에 군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덕담 한 마디 건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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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omn.kr/kxwy


얼마 전 <오마이뉴스>의 연예 분야 자매지 격인 <오마이스타>에서 '내 인생의 OOO'이라는 주제의 공모전을 열었더군요. 자신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나 드라마, OST 등 대중문화 분야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모전이었습니다. 


이런 공모전에 제가 빠질 수야 없죠. 뭐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 드라마가 한두 편이냐마는... 몇 가지 손에 꼽은 것 중에 그래도 제 인생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역시 성룡의 <취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본격적으로 무술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것도 결국 그 영화 한 편 때문이었으니까요.


평생 무술가로서 산다는 것... 약간 과장을 보태긴 했지만, 어쨌건 평생 무술을 수련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언젠가 문파를 열어 제자를 받는 것도 무술을 수련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고요. 당장 전업 무술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겠지만, 언젠가 저만의 도장을 여는 게 목표인 건 확실합니다. 이쯤 되면 영화 한 편이 제 인생을 바꾼 게 맞죠?


아무튼 그런 내용으로 솔직하게 글을 써서 제출했는데, 오늘 <오마이뉴스> 메인에 올라왔더라고요. 제 개인사가 널리 소개되니까 속살을 보인 것 같아서 남사스럽기도 하네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은 영 아닙니다. 무술 독학을 시도했다가 하루 만에 포기하고 도장에 다니게 됐는데, 마치 제가 무술 독학으로 경지에 오른 것처럼 제목을 지어놔서... 제목 때문에 괜히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애초에 제가 지은 제목은 '술에 취해 비틀비틀... 현실이 된 소년의 로망'이었는데, <오마이스타>에서 일방적으로 바꾼 제목이 더 마음에 안 듭니다. 누구보다 '무술독학'의 폐해를 열심히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아무튼 여유가 생기면, 제가 거쳐온 무술 이력에 대해 시리즈로 한 번 연재해볼까 합니다. 지금 커피 이야기를 연재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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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http://omn.kr/kse0

(가급적 링크를 통해 원문 기사로 보는 것을 권유함)

시간이 흘러 또다시 광복절을 맞았다. 으레 그렇듯 오늘도 정부는 성대한 기념식으로 이날의 의미를 축하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광복절의 의미를 설파하고,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발표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의미를 새삼 언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정부의 역행하는 역사의식에 비추어봤을 때 국민들은 과연 그 말에서 어떤 신뢰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한 애국지사가 대통령에게 던졌다는 직언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바로 92세의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 김영관 선생이 주인공이다. 아흔을 넘긴 노령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자세와 단호한 목소리로 "건국의 기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이다", "국군의 날을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9월 17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병(老兵)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실상 현 정부의 역사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야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대통령의 면전에 대고 언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웠고, 지금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신념이 부정당하는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지조로 일관하는 모습에 국민들도 감동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실 모든 이들이 이렇듯 지조로 일관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은 아니었다.

신념을 꺾고 변절한 이들

지조(志操). 국어사전에서는 이 단어에 대해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 또는 그런 기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지조를 잃고 종국에는 변절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들은 처음부터 친일의 길을 걸었던 이들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친일행위를 하기도 했다.

3.1 운동을 촉발시킨 민족대표들 중 최린, 정춘수, 박희도도 그랬고, 임시정부의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의 주필을 지내며 민족시인으로 추앙받았던 춘원 이광수 역시 '조선인 마빡을 바늘로 찌르면 일본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 모두가 일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부르짖는 철저한 민족반역자로 변절했다.

기개와 충절을 덕목으로 요구하는 군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선진기술을 배워와 독립전쟁에 보탬이 되자'며 일본으로 건너갔던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 45명 중 실제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5명에 불과했다.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이들이 '친일'이라는 명찰을 달고 일본군 혹은 만주군에 복무하며 동포를 억압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해방 후에 지조를 꺾은 이들

그런데 정작 일제강점기에는 끝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던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해방된 조국에서 변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광복군 출신으로 <압록강 행진곡> 등의 독립군가를 작사하며 광복군의 사기를 고취시켰던 한 소설가는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광복군>이라는 소설을 집필한다. 이 소설 속에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박 대통령조차 어이가 없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왜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쳤던 걸까.

이에 대해 또 다른 광복군 출신의 증언에 의하면 '청와대로부터 돈을 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랬다는 것이다. 결국 돈 몇 푼에 광복군 출신이라는 명예를 스스로 짓밟은 셈이었다. 이는 그 자신 뿐 아니라 광복군 전체가 우스갯거리로 전락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가문이, 일본 만주군 출신 박정희 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사실도 존재한다. 독립운동계의 양대 산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가문과 안중근 의사의 가문도 이러한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얼마 전 작고한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중국 공군에 입대하여 전투기 비행사 교육을 받은 바 있다. 그런 그도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박정희 정권에 적극 협력했다. 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함께 했던 그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타이완 주재 대사, 교통부 장관 등의 고위 관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집권이 시작되자 제9대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전력이 있다.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로, 그 자신 역시 광복군이었던 안춘생 전 독립기념관장(2011년 작고) 역시 김신 장군과 나란히 제9대 유신정우회에 입성하며, 독재정권에 협력했다는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우리는 지조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물론 한 평생 지조로 일관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인간은 욕망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독립운동가의 삶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에겐 한 평생 풍찬노숙하며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삶이 요구되었다. 

일신의 부귀영화는 꿈도 꿀 수 없었으며, 가족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도 사치였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 용기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 경찰의 고문을 이기지 못한 김구 선생 역시 <백범일지>를 통해 "차라리 아내가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음식을 들여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할 지경이었다.

해방 후의 삶이라고 달랐을까. 한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는 "예전에는 광복군 출신이라고 하면 취직이 되질 않아 일부러 그 이력을 숨기기도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인사들이 다시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알게 모르게 배제되는 상황에서 지조로 일관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시류에 순응하는 삶을 택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냉혹하고 엄정한 법이다. 변절한 이들은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죽은 뒤 역사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반면 끝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던 이들은, 현실에선 고된 삶을 살았을지언정 역사에 위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광복절은 바로 그런 이들을 기리는 날이다. 눈앞에서 가족이 굶어죽고, 그 자신이 고문으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꿋꿋이 '조국의 독립'이라는 신념을 고수하며 살았던 이들 말이다. 그런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광복절을 기리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니 이젠 우리들도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자. 분명 우리들 삶에도 각자의 본분에 요구되는 지조가 있을 것이다. 군인에겐 군인의 지조가, 언론인에겐 언론인의 지조가 있다. 어찌 그들 뿐이랴. 저마다의 삶에서 지켜가야 할 신념과 가치가 있는 법이다. 이번 광복절에는 바로 우리들 스스로의 지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우리들 삶에 어떤 지조가 요구되는지, 그리고 우리 스스로 지조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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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링크: http://omn.kr/kikp


어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스토리도 나름 괜찮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역사적 작전 뒤에 가려진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도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을 일깨워주는 영화였기에, 더욱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이 영화를 마냥 고운 시선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더군요. '시대착오적인 반공영화', '멸공의 촛불', '21세기판 똘이장군' 등 영화에 반공적인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반공영화라고 매도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를 '반공영화' 혹은 '안보영화' 등 정치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울러 꼭 반공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시각도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판의 근거로 들고 있는 두 가지 논리인 '시대착오적인 반공영화', '맥아더 우상화 영화'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기사를 한 번 <오마이뉴스>에 써봤습니다. 기사의 등급이 '버금'에 그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뭐 제 필력이나 설득력, 논리력이 그 정도밖에 안되는가보다 해야죠.


아무튼 블로그에 개인적인 리뷰도 올렸지만, 좀 더 많은 네티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기사라는 성격상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봤습니다. 


혹여 이 기사를 읽는 분들 중에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겠지만, 미리 밝히건대 그분들의 생각/의견도 존중합니다. 이 영화를 반공영화라서 보기 싫다고 주장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반공영화라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는 제 의견도 존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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