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제 블로그를 자주 구독하는 분들이라면, 군 시절 전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올라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저는 원체 대인관계가 넓지 않은 터라,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들은 매우 한정적인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군 시절 만났던 전우들과는 이상하리만치 끈끈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서, 초중고대학 학창시절을 통틀어 만나는 친구들 한 명 없어도 이 친구들과는 굉장히 자주 만납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과 엊그제 또 뭉쳤습니다. 경주 여행 때 자신의 자취방을 내주었던 친구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겠다며 주말에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평생 술벗인 JH와 이 친구 그리고 군 시절 제가 유독 아꼈던 후임 한 명이 뭉쳤습니다. 이 후임 친구는 전역한 뒤로 처음 만났습니다. 중간 중간에 계속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빼다가 이제서야 나타났네요. 처음엔 좀 서운했는데 이렇게라도 잊지 않고 나와주니 서운한 마음도 스르륵 녹습니다.



1차는 종각역 근처에 위치한 '백세주마을'이란 전통술집에서 시작했습니다. 국순당 직영 브랜드인 듯 합니다. 백세주가 기본 술이고 다양한 전통주가 있습니다. 


가격이 좀 세서 비싼 술은 먹지 못했습니다만, 분위기도 좋고 가볍게 한 잔 하기에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1차에서 6만 원 정도가 나왔는데, 제가 맏형이기도 하고 취직해서 그나마 월급이 들어오는 입장이라 기분 좋게 한 턱 냈습니다.



2차는 '오사카 부루스'라는 이름의 이자카야로 갔습니다. 오늘따라 '사케'가 먹고 싶었거든요. 


분위기가 다소 시끄럽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3,900원부터 시작하는 저렴한 안주가 무척 흡족스러웠습니다. 사진에 나온 안주들은 '와사비 문어회', '칠리새우', '가라아게', '닭똥집튀김'입니다. 저렴한 만큼, 퀄리티 역시 별로였지만 이 가격에 저렇게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요.



마지막 3차는 가볍게 생맥주로 달렸습니다.


호객하는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들어왔는데, 다트 던지기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면 서비스를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도전해봤습니다만... 술에 취하니 영...  냥 막 던지다가 끝났습니다. 


드라마 <주몽>을 보면 주몽이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도 활로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추는데, 저는 아직 무공의 경지가 바닥을 기는 모양입니다.. 껄껄...


이날 술자리는 막차 시간 직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더 부어라 마셔라 놀았을텐데, 다들 저녁 늦게 만나는 바람에 오래 놀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겹도록 자주 보는 얼굴들인데, 매번 만날 때마다 반갑고 하는 얘기 또 하고 듣던 얘기 또 들어도 질리지 않고, 헤어질 때면 늘 아쉽고... 참 신기합니다. 저희도 이젠 만날 때마다 농담처럼 "먼저 죽으면 남는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관이나 들어주자"면서 껄껄 웃곤 합니다. 이래서 남자들이 만나면 군대 얘기 한다고 하는 걸까요? 그만큼 동고동락을 함께 하며 뜨거운 청춘을 보냈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청춘의 흔적을 마주하니 반가움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 '꽃보다 국유단' 모임이 언제까지고 서로의 삶에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며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우정 이어갈 수 있기를...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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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7년의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2018년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요, 돌이켜보면 17년도 하반기는 학교 다니랴 동시에 학생운동하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바쁘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관두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서 맘고생이 심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보니 유독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제겐 군 시절 선·후임들이 그렇습니다. 2년 가까운 세월을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힘들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던 사이니 오만 정이 다 들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지요.


이번에 어쩌다보니 그 친구들과 뜻이 맞아서 함께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이른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전역병 캠핑'. 제겐 선임이 되는 친구 세 명(전역한 지금은 제게 동생들입니다만 ㅎㅎ)과 저, 그리고 후임 한 명까지 총 5명이 함께 다녀왔더랬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간 곳은 상암에 있는 난지캠핑장이었습니다. 우선 근처에 있는 홈플러스 월드컵경기장점에 들러 밤새 마실 술과 바베큐파티용 삼겹살, 안주 등을 잔뜩 사갔습니다.


저희가 빌린 텐트는 10인용 몽골텐트였습니다. 원래 함께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인원들이 갑자기 빠지는 바람에 공간은 넉넉해서 좋았으나... 이날 바람이 정말 장난 아니더군요. 


중앙에 장작 난로가 있긴 한데, 문제는 저희가 장작을 때워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불을 피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불보다 오히려 연기를 더 많이 들이마신 것 같습니다. 불도 자꾸 꺼지고... 캠핑장에서 장작을 파는데 한 단에 1만원이나 하는 통에 장작값이 너무 비싸서 양껏 때우지도 못하겠더군요.



그래도 고생하면서 마시는 술이 달다고, 어찌어찌 간신히 불씨를 붙여놓고서 저녁부터 다같이 바베큐파티를 즐겼습니다.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온갖 술을 마시니 극락이 따로 없더군요. 


특히 이날을 위해 집에서 아버지가 드시던 각종 술들(죽엽청주, 북대양, 스카치 위스키)에 마트에서 사간 벌떡주, 가시오가피주들을 챙겨갔는데 아주 반응들이 좋았습니다. 제가 준비해 간 술을 꿀떡꿀떡 잘 마시는 걸 보니 괜히 흐뭇하더군요.


멀리 부산에서 온 친구는 부산의 지역소주인 '시원' 두 병을 준비해왔고, 오늘 캠핑을 기획했던 친구는 사돈어른이 담근 복분자주를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홈플러스에서 산 공부가주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호화잔치였습니다.



난로 앞에서 다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지나간 군 시절을 돌이켜보려니 다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으니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줄을 모르겠더군요.


특히 이날 국유단 시절 썼던 모자도 챙겨오고 군 시절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서 미니 빔으로 즉석 상영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저희 부대는 특성상 워낙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다보니 이렇듯 추억할 수 있는 거리가 상당히 많은 게 장점입니다. 거기에 우리 부대 전용 OST라고 할 수 있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OST까지 입혀놓으니 괜히 지나간 시절이 그리워 왈칵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즉석에서 다른 전역자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우리끼리 점호와 약식제례(유해를 수습한 뒤에 지내는 제사)도 오랜만에 재현해보고 잠깐이나마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새벽 4시까지 먹고 마시다가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들 숙취 탓에 비몽사몽... 당산역까지 가서 설렁탕 한 그릇씩 먹고 헤어졌습니다. 다들 숙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통에 서로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게 못내 아쉽습니다. 저도 집에 오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네요.


아무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고 그리운 시절로 돌아갔다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여독이 많이 남는 캠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라고 지금보다 안 힘들었겠냐마는(그래도 군대인데!!!) 정말 지나가면 다 그리운 추억이 되나봅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절을 함께 헤쳐나왔기에, 유독 군 시절 선후임들이 반갑고 친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예 정식으로 국유단 전역자 모임을 상설화하는 게 어떻냐는 제안까지 나왔는데요, 정말 실현됐으면 좋겠네요 ㅎㅎ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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