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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25 어제 술자리에서 겪었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 1

어제 참 황당하고 화가 나는 일을 겪었네요. 학교 선배들과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 하던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이 있었는데 제가 군대가고, 그 형들도 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거나 호주로 유학가는 등 각자 바쁘게 사느라 잠깐 서로를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났는데, 거의 2년 반만에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 형들... 저한테 빨리 군대나 가라고 놀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전역해서 다시 만나니 새삼 신기했습니다.


근데.. 선배들 중 한 사람을 술자리에 부른 게 화근이었네요. 그 형도 같이 잘 지내던 형이었고, 약간 좀 어벙하지만 사람이 착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근데 어제 1차에서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더군요.


만나서 서로 근황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 지 5분이나 됐을까?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술자리에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정치 이야기죠. (다른 하나는 종교) 저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국민인데 정치적 견해가 없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그런 얘기를 해야죠. 그 정도 눈치는 저도 있습니다. 


근데 이 형은 오랜만에 만나서 대뜸 '방산비리가 어쨌네', '너 김대중 좋아하지 않냐', '난 왜 박정희가 욕 먹는지 모르겠다'는 둥... 횡설수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짜증나서 저는 아예 듣지도 않고, 핸드폰만 했습니다. 같이 들어주던 선배도 짜증이 났던지 계속 소맥 폭탄주를 말아서 돌리더군요. (대충 눈치챘지만 빨리 취하게 해서 입 좀 닫으려고 한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저도 못 참고, 그 형한테 "아니 지금 전역하고 2년 반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왜 굳이 이런 얘기를 해야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리고 1차 끝나고 그 형 보내버리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끝내자고 하고, 다른 선배랑 함께 단 둘이 2차 가려고 했는데, 계속 끈질기게 따라 붙으려고 하더군요. 2차 같이 가려던 선배도 "그냥 한 번 데려가보자"고 해서 '정치 이야기를 안 한다는 조건'을 걸고 2차 술자리로 데려갔습니다.


다행히도 2차에서는 정치 얘기는 안 하더군요. 그냥 서로 어떻게 살았네 근황 얘기하면서... 이미 이때쯤 되니 만취해서 제정신들이 아니었습니다. 2차 끝나고 나와서 게임장 들러 악력 대결도 해보고... 여기까지가 딱 좋았던 것 같습니다. 


3차 가는 순간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만취하더니 이 인간이 또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할 말 못할 말을 전혀 가리지 못하더군요. 심지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과 반대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쌍욕을 한다. 내 아버지한테도 쌍욕할 수 있다"면서 핸드폰을 꺼내 자기 아버지한테 전화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또 다른 선배랑 계속 말싸움을 하더니, 서로 맞짱을 뜨네 어쨌네... 폭탄주 말아주던 선배도 워낙 한 성깔 하는 양반이라, 나중에는 한숨 한 번 푹 내쉬고 맥주병을 거꾸로 잡더군요. 제가 뜯어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젠 불똥이 애꿎은 저한테 튑니다. 그 정치 얘기 하던 인간... 완전히 정신 나가서 저한테 쌍욕하고, '나가서 맞짱 한 번 뜨자'고 소리지르고... 저도 만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진짜 옆테이블 손님들에게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최대한 존중을 해주고 있었는데, 제 귀에 대고 계속 쌍욕하면서 맞짱뜨자 그러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해대니까 저도 어느 순간 화가 나서, 그 인간 면상 보면서 '어떻게 때릴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먹 쥐는 걸 보더니, 폭탄주 말아주던 선배가 담배 한 대 피자면서 데리고 나와서 절 말렸습니다. 


저도 그 이후로는 그냥 '개가 짖는가보다' 하고 무시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술 취해서 제정신 아닌 인간 때려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무리 취했어도 저까지 이성을 잃으면 똑같은 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웃으며 넘겼습니다. 


나중엔 테이블에 토하고 그래서 옆테이블 손님이 눈쌀을 찌푸리는 등, 아주 목불인견이었습니다. 큰 싸움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형과의 인연은 이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한테 쏟아냈던 험악한 말들... 아무리 취했어도 생생히 기억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제 카톡과 페북 모두 그 형을 차단한 상태입니다.


한바탕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다시 돌아보니, 참 한심하고 우스운 노릇입니다.


그 형.. 요즘 갑자기 정치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고 있더군요. 원래 정치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정치를 할 깜냥도 절대 안될 인물이라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한 인간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건지 그저 웃을 따름입니다. 


여하간 그 형을 통해 저도 다시 한 번 술자리 처신에 대해 조심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도 군대 가기 전에 술 먹고 사소한 사고(주로 말실수...)를 많이 쳐서 후회한 적이 많았습니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으면 도저히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도 그런 일들을 통해 반성해서, 지금은 그런 사고까지는 안 치고 있는데... 이 형을 보니 더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은 자기 주량껏 마시고, 많이 마시더라도 절대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술자리에서 정치/종교와 같은 민감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 것.


아무리 되새겨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중요한 교훈입니다.

Posted by 가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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