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에 이어 올해 기대작 중 하나였던 <1987>을 어제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1987>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하 박종철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면서 고문 사실에 대해 은폐와 조작을 시도하지만 양심 있는 이들에 의해 그 진실이 폭로되면서 한국 사회를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됩니다. 


영화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합니다.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는 이들에 맞서 그 진실을 파헤치고 알리려는 양심 세력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인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화장을 시도하는 경찰을 제지하는 최 검사(하정우),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는 윤 기자(이희준), 부검 결과에 대한 조작을 거부하는 국과수 황 박사 등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했던 것은, 놀라우리만치 고증에 충실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박종철 사건을 최초 보도한 신성호 전 중앙일보 기자의 <특종 1987>이라는 책을 한 번 읽고 갔더랬는데, 책에서 본 사건의 전개과정이 스크린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극중 연희(김태리)라는 인물 빼고는 전부 실존 인물이라고 하는데, 각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실명과 신분이 자막으로 뜨고 있어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1987>에는 박 처장(김윤석)을 제외하고는 단독 주연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따로 없습니다. 하정우, 유해진, 설경구, 강동원, 김의성, 여진구, 박희순, 이희준, 오달수 등등 정말 많은 주·조연급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전부 비슷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6월 항쟁을 이끌어낸 것은 몇몇 '영웅'이 아니라 각자 자기 위치에서 양심을 지키고자 한 평범한 소시민들이 다함께 거둬낸 결실임을 강조하려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감독의 의도 자체는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스토리가 분산되어 약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특히 김태리와 강동원의 로맨스는 굳이 넣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아쉽습니다.


<신과함께>를 봤을 때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가슴이 매우 먹먹해지는 영화였습니다. 백골단이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장면이나, 경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장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각종 고문을 당하는 장면, 대학생들이 최루탄을 맞아가며 싸우는 장면, 서울시청 앞 광장이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찬 장면들을 보면서 몇 번이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던 것 같습니다. 


1987년이면 제가 태어나지도 않은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정말 저랬단 말이야?' 하고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얼마 전, 현대사 수업 도중의 일이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 대한 설명을 하시다말고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가는데 여기저기서 총 소리가 나더라. 그런데 그게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쿠데타였다"면서 "그게 불과 3~40년 전 이야기라 나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새삼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저분의 기억 속에는 우리가 겪지 못했던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에 묘한 이질감이 들었더랬지요.


그리고 '저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과연 앞에 나서서 최루탄 가스 마셔가며 열심히 돌을 던질 수 있었을까. 단순한 가정일 뿐임에도 쉽게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만큼 두렵고 험난한 길이기 때문이지요. 30년 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위해 싸운 순국선열들에 대해 더욱 감사함을 느끼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편안한 삶을 구걸하는 대신 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꿋꿋이 가시밭길을 걸어간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제가 누리는 자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 자신도 그렇거니와 영화 <1987>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 선열들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오늘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

■ 기사 링크: http://omn.kr/oxn5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지난 6일 공개된 영화 <1987>의 메인 예고편에서는 경찰 조사 중 사망한 한 대학생의 죽음을 두고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 파헤치려는 이들의 숨 막히는 대결이 묘사됐다.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아래 박종철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던 22살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범행 직후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로 위장,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나 결국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6월 민주항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 <1987>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박종철 사건 뒤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30년 만에 공개된 특종기자의 취재수첩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 개봉에 맞춰 함께 읽어보면 좋을 '가이드북'이다. 올해 1월 박종철 사망 30주기에 맞춰 출간된 <특종 1987>이다. 박종철 사건의 전개 과정 뿐만 아니라,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들 그리고 박종철 사건이 한국 민주화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다뤄내고 있어 1980년대의 정치적·사회적 흐름까지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인 신성호 전 중앙일보 기자는 1987년 1월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박종철 사건을 최초 보도한 장본인이다.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린 특종 기자로서 그는 30년 전 자신이 취재하며 보고 들은 진실을 낱낱이 공개한다. 덕분에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그렇다면 박종철 사건은 세상에 어떻게 알려질 수 있었던 걸까. 1987년 1월 15일 오전, 중앙일보 사회부 법조 출입기자였던 저자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대검찰청 취재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 친분이 있던 이홍규 공안4과장이 "경찰, 큰일 났어"라며 저자에게 툭 한 마디 던진 것. 젊은 기자의 '촉'이 즉각 발동됐다. 이른바 박종철 특종의 시작이었다.


"6년째 법조를 출입하고 있던 나는 이홍규 과장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찰 간부들은 비교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 p.25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데스크(편집부)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비밀작전에 가까운 취재가 시작됐다. 검찰과 서울대, 유족을 상대로 이중, 삼중 취재를 한 끝에, 사망한 대학생의 신원이 서울대생 박종철임이 밝혀졌다. 이미 돌아가고 있던 윤전기를 즉각 멈춰 세운 채 박종철의 사망 소식을 급하게 지면 배치했다. 그렇게 박종철 사건은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와 탄압이 극심할 무렵이었다. 저자는 박종철 사건을 보도한 직후 자신과 언론사에 가해온 정부의 압박에 대해서도 폭로한다. 당장 기사를 내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더라는 정부 고위 관계자 얘기도 우습고 황당하지만 "정보기관에 끌려갈지도 모르니 피신하라"는 동료들의 충고에 따라 밤새 잠적해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당대 언론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 구슬프기까지 하다.


그러나 저자의 특종을 시작으로 여러 언론사가 작심한 듯이 추가 취재와 보도에 매달렸다. 언론사 통·폐합, 보도지침 하달 등 전두환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언론인들이 박종철 사건을 기화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박종철 사건의 언론사적 의의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비로소 언론인들이 권력의 혀에서 벗어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기관 본연의 사명을 실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 <1987> 속 하정우, 실존 인물이었다


한편 영화 <1987>에서는 진실을 쫓는 기자, 사체 화장을 막는 검사, 숨겨진 진실을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교도관에 이르기까지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숨겨진 영웅들이 등장한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실제로도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용기를 낸 '의인'들이 있었다. 특히 "경찰, 큰일 났어"라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이홍규 과장의 경우 25년 만인 지난 2012년 딥 스로트(deep throat: 내부고발자)임이 밝혀졌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흘렸던 것이다. 훗날 그는 "어린 학생이 죽었는데 이렇게 묻어야 하나 싶었다"며 "진실은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내부고발을 결심한 동기를 증언한 바 있다. 


영화 속에서 하정우가 맡은 '최 검사' 역시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바로 사건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이었던 최환 검사다. 그는 사건 직후 고문 사실을 은폐하고자 사체 화장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아들이 조사 받다가 죽었다는데 당장 화장해서 유골 넘겨달라고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느냐"며 쫓아낸 일화로 유명하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부검 결과에 대한 경찰의 조작 시도를 우려해 부검도 사설 대학병원에서 집도하도록 지시했다.


이외에도 물고문 의혹을 제기한 의사 오연상, 물고문 혐의를 인정한 정구영 서울지검장, 경찰의 사인 조작 지시를 폭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황적준 박사 등이 박종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기여한 공로자들로 등장한다. 


저자는 1972년 당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 역시 딥 스로트였던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마크 펠트의 제보 덕분에 가능했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박종철 사건은 그 진실이 묻힌 채 전두환 정권의 여러 의문사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의의를 부여한다.


그 이후로는 역사가 설명하는 그대로다. 박종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 전국의 광장은 박종철 사건 조작과 은폐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함성으로 뜨거웠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의 수용으로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30년째 풀리지 않은 의혹... 전두환 개입 여부 밝혀야


저자는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에 대해 지적한다. 바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실체다. 박종철 사건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 경찰, 검찰 등 관계기관은 수시로 모여 사건의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사건 직후 경찰이 밝힌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수사 결과 역시 이 자리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이 회의 구성원에 대한 실체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으며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법적 시효는 지났다 하더라도 역사적 진실 규명에는 그 시한이 있을 수 없다"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았음을 주지시킨다. 또 당시 권력의 꼭대기에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분명히 밝혀야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박종철이라는 이름 석 자는 흐릿해진 지 오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박종철이라는 이름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원하던 모습이고, 박종철이 꿈꾸던 세상인가? 오늘의 우리 모습이 그들이 꿈꾸던 세상과는 거리가 있다면 박종철 사건은 30년 전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 p.239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지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손으로 6명의 대통령을 뽑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총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을 사찰하며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역대 보수정권의 행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민주화의 길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씁쓸한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그러나 좌절할 이유는 없다. 6월 항쟁 이후의 실패가 곧 민중의 실패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30년이란 시간은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더 뜨겁고 단단하게 담금질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혁명은 바로 그러한 갈망이 폭발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문화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는 시급한 과제가 남아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지난 실패를 답습해야만 한다. 박종철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적폐청산과 제도적·문화적 민주화가 완성되는 날, 비로소 우리는 박종철이라는 이름 앞에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가베치
,

1. 강철비


Daum 웹툰 '스틸레인'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영화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북한 군부의 쿠데타로 최고지도자의 유고(有故) 사태가 발생한다는 시놉시스 아래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개인적으로 개봉 전부터 무척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던지라 개봉 당일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영화 내내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눈에 자주 띄는군요. 북한이 드론을 이용해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도 웃겼고, 북파공작원 몇 명이 계엄령이 떨어진 수도 서울을 들락날락하면서 국군 부대를 가지고 노는 것도 황당했습니다. (사실 제 친구는 '우리나라 군대라면 충분히 뚫리고도 남을 거다'라며 역설적으로 너무 현실적인 반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만...)


다소 뻔하고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한반도 현실에 빗대어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들인지라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북한 군부의 쿠데타와 남한에 대한 핵미사일 발사 위협,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철수하는 미국, 일본, 중국까지...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못내 우울함과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북한의 잦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북한의 위협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북한의 존재를 가벼이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턱대고 책임 지지도 않을 전쟁을 부르짖는 것도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잠시 빌린 땅일 뿐이며,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평화롭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딜레마를 푸는 해법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분단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평화라는 화두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

2. 신과함께 - 죄와 벌


이 작품 역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너무 재미있게 봤던 터라 영화화 소식이 들렸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만 봐도 영 아니다 싶었습니다. 원작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캐릭터(진기한 변호사)는 아예 빠져버렸고, CG 등만 보면 그냥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원작 팬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았는데, 막상 개봉하고나니 연일 호평이 쏟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제 친구도 "영화 보다 울었다"면서 "꼭 보라"고 강추를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확실히 원작과는 다른 전개로 이어집니다. 애시당초 원작을 스크린에 옮기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감독이 아예 원작과 다른 노선을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험 부담이 큰 도전이었을텐데,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내용은 아이를 구하다 죽은 소방관(차태현)이 저승차사들과 함께 49일 간 7번의 재판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습니다. 7개의 지옥마다 심판하는 테마(거짓, 천륜, 폭력, 불의, 배신, 살인, 나태)가 있고 각각을 관장하는 대왕들이 등장합니다. 검사 역할을 맡은 판관들로 오달수와 임원희가 등장하는데 시종일관 진지한 상황에서 둘이 깐족거리는 게 눈에 거슬렸습니다. 나름 영화를 스무스하게 끌어보려는 감독의 설정이었을텐데, 저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저승(신)도 이승(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부각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망자가 무죄선고를 받아야 자신들도 환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변호하는 차사들이나, 반대로 망자가 유죄를 선고받아야 보너스를 받는 탓에 아무리 정의로운 망자여도 어떻게든 죄를 부풀려보려는 판관들을 보면 오늘날 인간사회의 재판제도를 에둘러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라면 손수건 한 장씩 준비하고 가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보고 나온 사람들이 펑펑 울었다길래, '나는 절대 울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들어갔습니다만... 아주 두 눈이 벌개지도록 질질 짜면서 나왔습니다. 끝날 때쯤 객석도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하더군요. 감독이 사람 울리는 데 아주 재능이 탁월한 듯 합니다. (왜 그렇게 다들 우는 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극중에서 염라대왕(이정재)이 남긴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하지 않은 일을 죽어서 하겠다고 한다" 죽어서 후회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잘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죽어서 지옥 가지 않으려면 정말 착실하게 살아야겠습니다.

Posted by 가베치
,

영화명: 터널

개봉일: 2016년 8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성훈

배우: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어제 더위를 피해 한낮 피서를 즐기던 중에, 마땅히 시간 때울 거리를 찾다가 부천 CGV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때렸습니다. <부산행>과 <터널>이 인기라고 해서 두 영화를 언제고 볼 생각이었는데, <부산행>은 시간대가 안 맞았고 <터널>은 마침 시간대가 맞아서 바로 예매하고 봤습니다.


사실 전 재난영화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연가시>도 그렇고 <감기>도 그렇고, 재밌게는 봤지만 뭔가 보고 나서 찝찝함이 자꾸 남습니다. 재난영화의 특성상 분명히 누군가는 피해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바이러스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특히 재난영화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들이 속출하죠. 거의 절망적인 상황까지 이어지다가 주인공이 히어로처럼 극적으로 살아남아 인류를 구하는 구조로 전개되곤 합니다. 그래서 다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설사 영화일지언정 감정이 몰입되면 눈 뜨고 지켜보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재난영화는 나름 교훈이 있지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많이 던집니다. 그런 교훈 때문에라도 사람들이 재난영화를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 <터널> 역시 그런 점에서 꽤나 호평을 받고 있더라고요.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2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인양이 안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현실에 빗대어 봤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연관검색어가 '세월호'일 정도니까요.


재난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을 극화했다는 건데요, 특히 영화 <터널> 같은 경우는 당장 오늘이나 내일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들더군요. 옛날 같았으면 '어떻게 터널이 무너지겠어?'라고 생각했을테지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으며, 세월호까지 침몰한 마당에 터널이라고 과연 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아무튼 영화 보는 내내 안타깝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감독이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아주 작정하고 만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게 다 사실이라는 거지요. 터널 안에 사람이 갇혔는데도, 인근 터널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손해보는 것을 걱정하는 사업가들과, 카메라 앞에서 사진 찍기 바쁜 공무원들,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한낱 뉴스거리, 특종감 정도로 생각하는 기자들,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져버린 터널까지. 


긴 러닝타임 동안 많은 장면과 대사들이 나왔지만, "대한민국에서 FM대로 하는 곳이 어디 있나요? 여기가 운이 나빴던 거죠"라는 대사가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저 역시 로망처럼 생각했던 군대의 내부가 생각보다 많이 썩어있던 것을 보고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더랬습니다. 그런데 전역하고 사회 나와보니까... 군대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다 썩었어요. FM을 떠나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니, 이 정도면 정말 '안전불감증'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 셈이지요.


영화의 스토리는 네이버 영화정보에도 나와있고, 또 실제로 영화를 보러 가시면 알 수 있을테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꼭 극장 가서 보시라는 뜻이에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다만 감정 컨트롤 할 준비를 잘 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워낙 울컥하는 다혈질이라, 영화 보는 내내 몇 번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영화일 뿐인데도,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입에서 쌍욕이 나올 뻔 했거든요. 뭐 그래도 마지막에 정말 후련한 장면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만.. (앗, 이거 스포 아니죠?)


PS. 어찌나 몰입해서 영화를 봤던지, 영화 보다가 문득 극장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 만약 여기가 무너진다면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결국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결론이 나옵디다.

Posted by 가베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