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기획하고 시도했던 열정대학 학생선택과목 '함께 무예 배워볼과'가 조기 종강되었습니다. 아니 폐강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싶습니다. 정해진 이수기간을 채우지 못했고, 종강조차 소리소문 없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원래는 7월 16일이 종강 예정일이었습니다. 종강일에는 수강생들과 다함께 모여 종강파티를 할 예정이었고, 제 구상으로는 사당 본부전수관에 가서 사부님께 최종 점검을 받는 형식으로 추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종강파티는커녕 공식적인 종강을 알리지도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끝나버렸습니다. 이미 종강예정일이 지났으니, 종강은 했다고 봐야하겠죠.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할 의사도 없으니까요.


사부님도 기대가 컸고, 저 역시 야심차게 준비했던 과목이었기에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초반엔 매끄럽게 잘 진행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워낙 사회가 뒤숭숭하다보니, 호신술을 지도하는 과목이 개설되었을 때 오히려 여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함께 무예 배워볼과'도 저 포함 총 7명이 수업에 함께 했는데, 저 빼고 6명 전원이 여학생이었습니다.


저 역시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기본 틀은 무예24기의 권법을 지도하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제가 배운 무술들의 기법을 응용한 호신술도 조금씩 지도했고, 그 기법에 대한 무예24기만의 방어법도 고안해서 지도했습니다. 일단 무예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죠. 과하게 수련하면 오히려 지치고 질려할까봐, 수강생 개개인의 신체 여건에 맞춰 꼼꼼히 지도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원래는 토요일 하루 수업이었지만, 주말에 시간이 안된다는 수강생들을 위해 평일 저녁 시간까지 할애해가면서 별도의 클래스를 추가 개설했고요. 수강생들에게 매 수업 후 수련일기를 블로그에 올리도록 과제를 부여했고, 꼼꼼히 읽으며 일일이 피드백해주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부분은 사부님께 대신 물어봐가면서까지 성실하게 답변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반 몇 주 동안은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다들 수련 시간에 열심히 나와주었고, 심지어 추가적으로 또 나와서 보강을 받는 수강생도 있었습니다. 수련일기도 다들 꼼꼼히 잘 써주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더군요. 갑자기 다들 바쁘다고 수련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해서 첫 번째 결강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열정대학 건물이 아닌 사당 전수관을 대관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다들 전수관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했는데, 당일 날 취소하려니 사부님께도 면이 안서더군요.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두 번째 결강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토요반 수강생들이 계속 나올 생각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아예 토요반을 전격 폐지해버렸습니다. 평일에 꾸준히 나오는 수강생 대상으로만 하겠다고 선포했죠. 그렇게 2주 연속 결강 사태를 맞이한 제 심정도 우울했고, 수강생들에게 서운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 제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나 싶어 수강생들에게 기탄없이 의견을 제시하라고도 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바빠서 그런거고 열심히 해주고 계신다고 위로를 해주더군요.


어쨌거나 2주 연속 결강으로 더 이상 초기의 커리큘럼(권법 28세 진도를 모두 나가는 것)대로 수업 진행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목검을 들고 가서 서로 격검을 시키거나 호신술 위주로 지도하는 등 좀 더 흥미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평일반 수강생들도 결석 혹은 잦은 지각으로 수련 시간을 제대로 맞춰주질 않더군요. 거기에 겹친 장마로 인해 하루 또 결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마무리도 없이 종강만 바라보게 됐네요. 그래도 유종의 미는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파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보려 했습니다. 가장 먼저 언제 하면 좋겠냐고 의견을 구했는데, 다들 묵묵부답입니다.


마지막이니만큼 가급적 다수의 사람들이 모였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평일, 주말 구분없이 다 열어놓고 가능한 날짜 투표하라고 했는데... 다들 제각각인데다가 심지어 투표 참여율이 반도 안되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기도 하고, 너무 섭섭해서 "그럼 차라리 여러분이 의견을 제시해달라"고까지 호소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 아무도 대답을 안 하네요. 


제가 더 이상 매달려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매달릴 이유도 없기에 씁쓸하지만 그냥 단톡방을 나와버렸습니다. 이대로 종강인 거죠 뭐. 그 길로 사부님께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굳이 가르치려 매달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도 "이번 열정대학 사태가 네 잘못이건 네 잘못이 아니건, 뭐든지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해야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해주시더군요. 동감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수강생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뭔가 말 못할 불만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한 번 곰곰이 고민을 해봤는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열정대학 '함께 무예 배워볼과'는 유종의 미는 거두지 못했지만, 일종의 반면교사로 좋은 교훈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2학기부터 자유학기 강사로 중학생들에게 무예를 지도하게 되는데, 이번 실패의 경험은 반드시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뭐 사람 일이 항상 잘되란 법은 없죠. 그냥 훌훌 털어버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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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써 열정대학 학생선택과목 '함께 무예 배워볼과'도 5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2주 뒤면 종강이고, 마지막 수업은 사당 전수관에 가서 '종강파티'를 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으니, 실질적인 수업은 다음 주가 마지막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다들 열심히 잘 따라와주긴 했는데... 얼마 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네요. 


지난 주 토요일은, 과목 개설 후 사상 처음으로 '결강'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단 한 분도 참석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뭐 사유를 밝혀주신 분들도 있고, 그냥 아무 연락 없이 잠수타신 분들도 있고... 심적으로 좀 울적했네요. 다들 재밌다고 잘 따라와주다가 갑자기 안 나오는 바람에... 제 수련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혼자 고민도 해봤고, 학생들에게 물어도 봤지만... 다들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합니다. 뭐 정말 바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야죠.


어쨌거나 이 상태로는 애시당초 정했던 커리큘럼(종강까지 권법을 떼는 것)대로 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수업을 지도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집에 있는 목검 두 자루를 챙겨서 수련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련은 기존에 배웠던 거 가볍게 복습하고, 바로 검을 잡게 했습니다. 수강생들에게 목검 쥐는 법부터 간단한 타법까지만 지도하고 서로 툭탁거리며 때리고 막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확실히 만날 허공에만 주먹과 발을 날리다가, 뭔가를 들고 투닥거리니 다들 재밌어하는군요.


칼을 이용한 공방 연습을 끝내고는 기초 호신술 몇 가지를 지도했습니다. 뭐 전부 여기저기 무술도장을 다니며 알음알음 익혀두었던 것들이죠. 위급 상황에서 여자들도 쓸 수 있는 기술들 몇 개를 소개하니, 다들 또 신기해하고 재밌어합니다. 둘이서 짝 지어서 열심히 연습하네요.


어차피 다음 주 수업이 마지막이니, 마지막 수업 역시도 그냥 이렇게 서로 손이나 칼을 맞대고, 재밌게 수련을 하다가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용두사미가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애시당초 처음 개설한 과목이고, '기초 호신술 지도+무예에 대한 흥미 유발'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으니, 그닥 후회는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나오면서 제게 응원해주는 수련생들도 있고요. 다들 퇴근하고 쉬고 싶을텐데, 멀리서 와서 열심히 운동하는 거 보면, 저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마지막 종강파티 때까지 꾸준히 나와줘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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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열정대학에 야심차게 개설한 무예24기 과목 '함께 무예 배워볼과' 1강이 열렸다.


마침 그날은 불광동 근처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열정Class'가 열리는 날이라, 클래스 강연이 끝난 뒤에 바로 모여서 수련하기로 했다.


화요일반 멤버 제외하고, 또 오늘 갑자기 사정이 생긴 한 명이 결석하니, 수강생은 두 명밖에 없었다. 단촐하니 오히려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우선 몸풀이와 입선(참장)을 복습하고, 이번에는 둘이서 짝지어 함께 푸는 몸풀이도 새로 지도하였다. 이어 주먹을 쥐는 법부터 주먹을 지르는 법, 발차기(단퇴), 발차기 막기, 보법(진/퇴보)을 지도하였다. 하나 하나 배울 때마다 계속 반복 연습하고, 어느 정도 잡혔다 싶으면 다시 새 진도를 나가다보니 1시간 30분이 훌쩍 흘러버렸다. 쉬는 시간 없이 1시간 30분 동안 계속 떠들면서, 수강생들의 자세를 봐주다보니 끝나고나면 나도 진이 쭉 빠진다.



사실 야심차게 과목을 개설했고, 스타트가 좋아서 아직은 순항 중이지만, 그럼에도 개설자 입장에서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진도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권법 자체가 일반적인 중국권법에 비해 초식의 수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7주 안에 이것을 다 지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바로 투로를 들어갈 수도 없다. 무예를 수련하기 위한 기본공을 확실히 떼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지도하는 데만도 몇 주가 걸릴 것이다. (아니 사실 몇 주 안에 뗀다는 것도 불가능하지)


가르쳐주려면 하루에도 다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건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까. 어느 무술이든 기본이 잡힌 후에야 다음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 아무리 취미반이라고 해도 기본공을 대충 지도하고, 바로 진도를 빼버리면... 기본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수련하다가 몸까지 망칠까 저어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지도자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기본기만 주구장창 지도하자니, 수강생들 입장에서 맥이 빠져서 무예 자체에 흥미를 잃을까봐 그것도 걱정이 된다. 지금 당장은 기본기도 새로 배우는 동작이기에, 다들 재밌다고 하지만... 7주 동안 이것만 시키면 아마 중간에 다 '과목포기'하고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일단은 '취미반'으로 개설했기 때문에, 기본기를 중점적으로 수련하면서도 적당히 진도를 나가는 쪽으로 절충하긴 해야할텐데, 그 절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커리큘럼 상으로는 권법 진도를 다 나가자고 했지만, 그건 욕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권법에서 간단한 기술들만 뽑아서 지도할까? 


아무튼 개인수련하기도 정신 없는데,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한 요즘이다. 


그래도 수강생들이 열의를 갖고 수업에 임해주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오늘은 수련 마치고 함께 집에 가는데, 한 학생이 가방에서 「조선무사」 책을 읽고 있다며 보여준다. 일전에 내가 열정대학 커뮤니티에 '무예 수련하면서 참고하면 좋을 서적 리스트'에 올려둔 책인데, 잊지 않고 책을 빌려서 읽는 것이었다. 



요새 열정대학 커뮤니티에 '수련하면서 참고할 서적'을 비롯해 매 수업이 끝난 뒤에 '수련일지'도 작성해서 올리고, 이런 저런 유용한 정보들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수강생들이 하나 같이 나에게 "개설자님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지금까지 이렇게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개설자는 못 봤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여러분이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주니까 저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는거죠"하고 대답한다.


실제로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을 때마다 절로 힘이 난다. 특히 나는 수강생들에게 매 수업이 끝난 뒤에 '수련일기'를 써서 각자의 블로그에 올릴 것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열심히 써주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의 수련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행간에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수강생들이 이토록 열의를 보여주니, 개설자 입장에서 어찌 열심히 하지 않으리오한 편으로, 나 역시 열심히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우리 사부님도 또한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PS. 이미 지난 화요일 첫 강의를 지도한 바 있지만, 그때는 인증샷을 찍지 않은 관계로... 벼르고 벼르다가 이번에서야 수강생들의 양해를 구하고 수련하는 사진을 찍어 짤막한 후기와 함께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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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 이어 계속 -


그렇게 나까지 총 7명으로 시작하게 된 '함께 무예 배워볼과'.


참 신기하게도... 나 빼고 전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자들이야 당연히 지원할 거라 생각했고, 여자 분들도 한두 분 있으면 수련 분위기가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남자는 한 명도 없고 오로지 여성들만 지원해서 솔직히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노린 것 절대 아님!)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과목 개설이 확정되고, 수강생들과 단톡방까지 만들어서 O.T 모임 날짜까지 잡았음에도, 마음 한 구석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그때 내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던 단 한 가지 생각.


'내가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이 함께 했던 첫 만남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마침내 지난 5월 28일 토요일 오후 7시, 남영동 열정대학 건물 3층 '즐거움'에서 '함께 무예 배워볼과' O.T 모임이 있었다.


사전에 미리 준비해 간 프린트물을 통해 먼저 과목 개설 배경과, 목표, 커리큘럼 그리고 과목에 대한 규정을 설명하고, 우리가 한 학기 동안 배워야 할 '무예24기', '권법', '무예도보통지'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열정대학 홈페이지 내에 개설한 커뮤니티)


수강생들이 자기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다들 지원동기가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태권도 검은띠까지 딸 정도로 무술 자체에 관심이 많은 분도 있었고, 뭔가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남들과는 다른 색다른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한 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들 얼마 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내 몸은 내가 지켜야한다'고 생각하고 호신술을 배우고 싶어 지원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 과목소개 때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소개했는데, 적절한 마케팅 효과였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던 시간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옥상에 올라가 간단하게 몸풀이와 입선(참장)을 지도했는데, 다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 자신이 여전히 많이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간단한 몸풀이와 입선 하나 가르쳤음에도, 내가 혼자 수련할 때와 달리 그 이론과 자세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니 계속 버벅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수강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계속 입이 턱 막혔다. '내가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왔는데, 따로 수업준비를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의 무지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수업을 통해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새삼 사부님을 비롯해 '스승'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이리도 진이 빠지는 일일 줄이야... 수업 내내 정말 사부님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티가 끝난 뒤, 근처 맥줏집에서 뒤풀이를 하며 "저를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도 지금 배우고 있는 학생의 입장이고, 모르는 것도 많기 때문에 감히 사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순 없어요", "미리 양해를 구하자면,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저도 사부님께 여쭤보고 대신 가르쳐드릴게요. 제가 책임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대신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지도할게요"라고 미리 못을 박아두었다.



(사진: 함께 무예배워볼과 수강생들의 뜨거운 반응. 흐뭇하다)


교학상장의 의미


오티 모임을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정말 나부터 철저하게 수련을 하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며칠은 평소와는 달리 더 긴장한 상태에서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동작 하나 하나를 수련하더라도, 입으로는 계속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말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내 자세를 돌아보게 되고, 의문 나는 점은 즉각 사부님께 여쭤봐서 나부터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정말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화요일 수련반 1주차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 내가 무예를 연마하던 보라매공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무예를 수련하고 있으려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리고 오티 모임 때의 각성을 계기로 나름 철저하게 준비하고 수업에 임했던지라, 지난 번보다는 더 술술 설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스스로가 여전히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수강생들이 언제 어디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지 모르기 때문에, 매 시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더욱이 다들 수련의지가 대단해서,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그래서인지 지도자의 입장이 되고보니, 수련생일 때보다 더 열심히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각성도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수업을 마친 뒤에도 혼자 남아서, 보충 수련을 하다가 왔다.


과목 개강을 하게 되면서...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이 과목을 이끌어가게 될텐데, 일단 초기 반응이 좋아서 개설자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설자이자 무예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제일 바라는 것은 역시 '초심을 잃지 않는 것'과 '화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들 화기애애하게 수련에 임하고 있는데, 앞으로 종강까지 다들 이렇게 열심히 해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무예 지도자'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 것 같아 뿌듯하고, 더 열심히 수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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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남영동 열정대학에서 '함께 무예 배워볼과' 첫 O.T 모임을 가진 후, 오늘 정식으로 1주차 첫 수업을 진행했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는 열정대학 2016년도 3학기 학생선택과목으로 처음 개설된 과목이다. 바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24기'를 수련하는 과목인데, 이 과목을 개설한 이가 누구냐... 바로 나다.


내가 배우고 싶은 과목을 만드는 열정대학


참고로 열정대학은 기존의 대학교육이 해결해주지 못한 '진로 문제'에 대한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공존학교'로, 다양한 개성과 취미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또 잘하는 일이 뭔지 파악하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다. 그러다보니 열정대학 본부 차원에서 다양한 전문가를 초빙해 전공 과목을 개설하기도 하고, 일반 학생들끼리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분야를 과목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듣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 열정대학의 교육방향)


나 역시도 진로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전역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마냥 노느니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에 덜컥 등록금 20만원을 지불하고 23기 신입생으로 입학했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수강신청 기간이 되고보니, 내 구미를 당기는 과목들은 별로 없었다. 몇 개 전공 과목이 있었지만, 그것도 선발되지 못해 줄줄이 탈락... 그러다보니 나중엔 짜증까지 나더라.


그런데, 열정대학 측에선 나에게 "직접 선택과목을 만들어보라"며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음... 그럼 무슨 주제로 과목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국궁(활쏘기) 과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도 전역하고 국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고, 기왕이면 열정대학에서 초보자들을 줄줄이 모아다가 사부님 밑에서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대학 측에서는 "직접 국궁을 배워 지도하는 건 가능하지만, 외부인을 초빙해 강의하는 건 안된다"고 못 박았다. 타 단체에 대한 홍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무예24기 과목 개설을 결심하다


하지만 열정대학에서 뭔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기에, 그럼 아예 '무예24기'를 과목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권법 정도는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사부님께 의견을 타진해봤는데, 사부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사실 열정대학 입학 후 첫 O.T 시간에 작성했던 버킷리스트 중에는 '문파를 세워 제자 양성하기'라는 것도 있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고 전수관을 열어 무예24기를 후학들에게 지도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사진: 열정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내 버킷리스트)


처음엔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던진 말이라, 막상 허락을 받았음에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도 없거니와, 내가 권법을 지도할 정도로 실력은 있는가, 아무리 자문해봐도 자신이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사부님께 "제가 정말 권법 지도할 능력이 됩니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봤는데, 사부님은 "너 정도면 훌륭하지.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해주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함께 무예 배워볼과'의 시작!


과목명은 '함께 무예 배워볼과'로 정했고, 과목소개를 위해 20장이 넘는 PPT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과목 개설 버튼 클릭...!


(사진: 열정대학 과목소개에 올린 PPT 중 일부)


첫 과목 개설이다보니 너무 떨리고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열정대학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며, 누가 수강신청을 했는지 확인했다. 과목 개설 초기에는 계속 지원자가 0명이길래, '역시 안되는 건가...' 싶어 자조의 한숨도 쉬었지만, 어느 날 들어가보니 누군가 수강신청을 했다! 그때의 감격이란... 그리고 수강신청 기간 종료를 하루 앞두고, 총 6명이 지원했다. 애초에 5명 모집이었는데, 6명이 지원했으니 초과 지원이라는 대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래서 기존 모집인원보다 1명을 더 선발해서, 나까지 총 7명이 이번 학기 동안 수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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